2019년 안동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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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肉化)의 신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바로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 1). 이렇게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고 싶어서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을 우리는 ‘육화(肉化)의 신비’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토록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이유를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고 오묘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겸손하고 단순합니다. 오로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상대방과 함께하기 위해,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는 지극히 겸손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지극히 단순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십니다. 당신 자신을 한없이 낮추십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지칠 줄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아기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한없이 위대하고 강하신 분이 힘없고 약한 어린 아기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한없이 부유하신 분이 가난하게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세상의 창조주 하느님이 한낱 피조물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느님이 이렇게 우리를 향해 오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시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순간을 더욱 함께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걸으려 오십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 한가운데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위대하고 강하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작아지시고 약해지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시고, 당신 자신을 끝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가장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사랑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 사랑 때문에 이루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었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택하신 사건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그 아기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하느님은 저 멀리 하늘 위에 계시지 않고 우리 가까이 우리 땅 위에서 우리와 더불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하느님은 주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한 모습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오십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 12)


“하느님께서는 힘에서 무력에로, 강함에서 약함에로, 창조주에서 피조물에로, 위대함으로부터 작음에로, 독립에서 의존에로 그렇게 자신을 옮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화의 신비입니다.”(헨리 나웬)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강생의 신비를 육화의 신비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알린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오시고 그러한 모습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 12)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께 경배하기 위해서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함께 찾아봅시다. 한 갓난아이처럼 무력하기 짝이 없어서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이 자신의 비참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의 모습이 그러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형제 안에서 주님께서 친히 태어나시고 주님께서 친히 함께 계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주님을 섬기듯이 이 형제를 받아들이고 섬기며 사랑할 때 우리가 거기서 주님을 만나 뵙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이웃에서, 마을에서, 공동체 모임에서, 구역/반 모임에서, 공소에서, 본당에서 그러한 형제를 찾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양들을 지키면서 주님을 밤새워 깨어 기다리던 목자들처럼, 우리도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천사가 우리에게 주님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게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가난한 형제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태어나시는 자리가 되는 가난한 형제들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도 잊지 맙시다. 

2019년 12월 25일

안동교구장 권 혁 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