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산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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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임하시는 사랑과 평화의 주님

  2019년 성탄절을 맞아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모든 분들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여러 이유로 이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그분의 따뜻한 손길이 머물기를 바랍니다. 

  매년 12월 25일이면 우리는 ‘성탄절’을 경축하며 즐겁게 지냅니다. 본래 ‘성탄절’은 종교적 축제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축제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신자 뿐 아니라 그리스도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같이 기뻐하며 축하하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축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성탄절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이 축제가 상업화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탄절’의 근본 의미와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와 똑같은 조건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드님의 ‘강생의 신비’입니다.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신적 특권을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의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를 두고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200년)는 “신이 인간의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낮아지셨는데,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더 높아지려고만 하는데 모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의 욕심과 오만 때문에 저질러진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있습니다. 우선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산업화, 과학화라는 미명 아래 지구의 온난화 더불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가 이기주의의 극에 달하여 이웃 나라의 어려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국의 이익만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남북의 갈등에 이어서 이제는 한일 갈등과 무역보복, 지소미아 철회라는 강수까지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국내 경제 불황과 정치상황, 종교인구의 감소와 종교의 침체, 불신의 만연, 높은 자살률 등 모든 면이 다 어둡고 밝은 데가 없어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국가와 개인의 이기주의에서 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에게 생명과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고, 우리가 그분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축하는 것은 그분이 행하시고 사신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이웃에게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불우한 사람에게는 도움과 사랑의 손길을 뻗고, 힘들어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위로를 전해야 합니다. “그래, 내가 네 곁에 있다. 너는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존재다. 우리 더불어 살아가자. 힘이 되어 줄께!”라고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고, 그분의 성탄절을 축제로 지내는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 역시 이러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예수님의 성탄을 축제로 지낼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강생’을 우리 것으로 하고, 그분의 ‘강생’을 우리가 삶으로써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성탄 대축제를 지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과 삶을 되돌아보고 더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 세상에는 희망이 넘치고, 보다 밝은 세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위하는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이 세상과 우리나라에 힘찬 ‘희망가’가 울려 퍼지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삼석 요셉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