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군종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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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I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민 여러분, 앞에서 인용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하는 천사의 말은, 성탄시기만이 아니고 언제나 우리 가슴을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줍니다. 우리 주님의 육화, 곧 하느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그대로 취하시어 세상에 탄생하심이 주는 영적인 의미가 너무나도 커서, 우리가 주일 미사나 대축일 미사 때마다 함께 큰 소리로 바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이나 ‘사도신경’에서 밑줄이 그어진 부분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바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깊은 절을 하도록 권고하는 부분으로써,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탄생을 고백하는 다음 문맥입니다. 저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의 이 부분을 인용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이 부분의 문맥이 우리 주님의 탄생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고백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이신 성모님의 몸을 통하여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거듭거듭 믿으면서 마음과 입으로 고백합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자비 충만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보이신 한없는 사랑의 표현으로써(참조: 요한 3,16), 이 사랑 때문에 당신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한없이 낮추시어 보내셨고 비참할 정도의 가난한 상태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낮추심’, 곧 하느님의 겸손은 이 세상 그 무엇에 비유해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겸손입니다. 사람이 벌레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비유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께서 당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이 ‘낮추심’은 이미 탄생의 여러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하늘에서 천둥 번개와 번쩍이는 광채와 우렁찬 천상의 찬미가 속에 내려보내신 것이 아니라, 서민에 속한 가문의 동정 마리아를 택하시어 주님을 탄생하게 하신 사실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탄생시키는 소식을 왕이나 귀족이 아닌 서민 중의 서민이며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던 양치기 목동들에게 전하신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왕이나 귀족의 말을 듣지 이 서민층의 목동들 말을 듣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 서민 목동들을 당신의 가장 중요한 소식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니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은 아니라도 사람들이 잠자는 보통의 방이라도 택하여 탄생시키셨을 텐데, 가축들의 집인 냄새나고 불결하고 추운 외양간에서 탄생하게 한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멸망으로 향하던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인해,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도 겸손한 모습으로, 가난한 모습으로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마음속 깊이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바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감사와 찬미는 곧바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감사에 찬 사랑의 응답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성탄절의 말구유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시다. 이 사랑의 고백이 나를 형제애로 인도해주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두 가지 축복을 누리게 해줍니다. 이 두 가지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두 축복이 나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모시키고 나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II


저는 우리 주님의 육화-탄생이 보여준 하느님의 ‘사랑의 은혜’에 이어, ‘빛의 은혜’도 잠시 묵상하고 싶습니다. 은퇴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05년 성탄절 미사 중에 하신 당신의 강론에서 주님의 육화-탄생이 가져온 또 하나의 은혜인 “빛의 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루카복음서는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2,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말씀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을 좀 길지만 인용하고 싶습니다. “빛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빛은 특히 깨달음을 의미하고 거짓과 무지의 어둠과 대립되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빛은 생명을 주고 길을 보여줍니다. 또한 빛은 따뜻함을 주기에 사랑을 뜻합니다. 사랑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미워하면 어두워집니다. 베들레헴 구유에 세상이 기다리던 위대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안에서 하느님은 당신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 영광은 우리를 사랑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 주고 모든 위대함을 포기하는 사랑의 영광입니다. 베들레헴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그 빛은 모든 세기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교황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온 빛과 사랑과 진리의 자취가 세기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바오로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아빌라의 데레사 등을 거쳐 마더 데레사에 이르기까지 성인들을 두루 살펴보면 베들레헴의 신비에서, 다시 말해 아기가 되신 하느님한테서 언제나 새롭게 불타오른 자비와 빛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고 하셨고, 우리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실 때, 이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이 아니고 주님의 빛을 충실히 받아 살아가면서 세상에 반사해주는 빛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반사하는 빛은 바로 “착한 행실”에서 드러나게 되고 이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 줍니다.(참조: 마태 5,16)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베들레헴에서 나온 빛과 사랑과 진리의 자취”인 많은 성인들도, 결국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착한 행실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빛을 반사해준 이들입니다. 우리도 이 성인들처럼 주님의 빛을 충실히 받아 살아가며, 우리의 착한 행실로써 그 빛을 반사하여, 세상 모든 이가 내가 반사해주는 주님의 이 빛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시다. 주님의 빛을 누리고 그 빛을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축복된 삶을 추구하도록 합시다.



III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님의 육화-탄생의 신비를 잠시라도 묵상하면서, 이 신비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하느님의 놀라우신 빛을 영신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 ‘사랑의 은혜’와‘빛의 은혜’에 대해 깊이깊이 감사드리고, 우리 각자 하느님의 ‘사랑의 은혜와 빛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이 하느님 사랑과 빛의 증거자요 전달자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 주님의 성탄 은혜 충만히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2019 성탄절을 맞으면서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F. 하비에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