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군종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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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I

사랑하는 군종교구의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마침내 2020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대축일이 다가왔습니다.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반생활과 경제생활만이 아니고 신앙생활에도 큰 아픔과 어려움을 겪었고, 상황이 좀 나아졌다 해도 아픔과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탄생의 큰 기쁨이 우리 마음에 깊이 느껴지기 힘든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새워 양 떼를 돌보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전해 준 다음 소식은 온갖 아픔과 어려움을 넘어 크나큰 기쁨을 갖게 해 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II

성탄 대축일을 맞으면서 전 세계의 모든 이가 반드시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위에서 읽은 성경 구절,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천사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가 예수 성탄의 의미를 가장 잘 요약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탄생하셨는가?” 바로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탄생하셨는가?” 죄로 인한 멸망으로 향하던 인류를 구원하시어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나고,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천사만이 아니고 훗날 예수님께서 복음전파의 삶을 시작하셨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사가는 마태오복음사가나 루카복음사가와 달리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입을 빌어 탄생의 의미를 명확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당신 탄생의 의미를 가장 가까운 열두 제자들이 아닌, 주님을 알고 싶지만 이목이 두려워 밤에 몰래 찾아온 의회 의원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니코데모는 오늘로 치면 평신도, 아니 예비 신자에 불과한데, 그에게 당신 탄생의 의미를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신 당신 탄생의 의미에 관한 다음 말씀은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복음말씀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예비 신자 니코데모는 주님의 열두 제자들도 미처 듣지 못한 예수님 탄생의 의미와 신비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특별한 은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날 밤 이후 니코데모는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신앙생활을 한 후,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직후 나타나 주님의 유해를 내려서 묻는 아름다운 봉사를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함께 수행합니다(요한 19,38-42 참조).


III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무엇보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이 최고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외아들을 보내시어(혹은 파견하시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외아들을 내주시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내주다”는 단순히 “보내다”보다 그 의미가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내주다(혹은 내어주다)”는 맡겨진 사명을 단순히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고 사명 수행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명 수행을 위해 모든 수고와 고통과 희생을, 심지어는 죽임까지 당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는 깊은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으로 나아가는 동정심, 따뜻한 마음 자세,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포함하는 친절의 덕을 지니게 해주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겸손의 덕을 낳아주며, 더 나아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의 자세를 갖게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주시어”는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고, 특별히 인류 구원을 위해 아들이 겪어야 할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까지도 포함된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당신 탄생의 의미를 말씀하실 때, 미래에 오게 될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까지도 예고하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외아들을 내주시어”라는 표현 전에 하신 말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결과,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보내주셨을 뿐만아니라 구원을 위한 속죄와 희생 제물로도 바쳐지도록 곧 고통과 죽임을 당하도록 내어주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탄생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이 크신 사랑을 묵상하면서, 이 사랑을 충만히 누리기 위해, 내가 알게 모르게 범하는 여러 가지 죄들과 갖고 있는 크고 작은 악습들을 깨닫고 겸손히 뉘우치고 통회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래서 보다 깨끗해진 영혼으로 주님의 탄생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경축하 도록 해야겠습니다.


IV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각자는 현재의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여 탄생하신 우리 주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지니면서 방법을 찾도록 합시다. 무엇보다 주님의 탄생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를 드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 방법을, 현 사회 상황과 나의 개인 상황을 고려하는 가운데 찾아내도록 합시다. “나를 내어주는 사랑”은 자연스레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고, 나의 수고의 땀을 흘려주고, 나의 소유물을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나누도록 하며, 나의 가족이나 나와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지니는 이들만이 아니고 세상 모든 이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모임 참석을 자제하는 것과 다른 이에게 감염의 위험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등을 고려하면서 나에게 합당한 “나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 방향을 찾도록 합시다. 아마도 올해 성탄절 미사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성당 가족 모두가 웃음 가득한 가운데 갖는 형제적 친교를 갖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잘 참고 기다리다가 내년 성탄절 미사 후에는 성대한 친교의 잔치를 갖는 축복을 누리시게 되길 희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히 내리길 기도합니다.

2020 성탄절을 맞으면서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F. 하비에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