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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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의 해 II
-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

1. “본당의 해 II”를 시작하며
  우리 광주대교구는 지난 2012년 교구설정 75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에 초점을 두고 교구 사목비전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요청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는 그 첫 단계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가정의 해’,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본당의 해 I’로 정하여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은 단숨에 성취되거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 속에서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당의 해 Ⅱ를 시작하는 2018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 가정과 본당의 복음화 상태 그리고 공동체의 일치와 활성화 정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짐과 함께 우리 교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본당의 해 II’로 정하여 본당의 복음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자 합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Kerygma-Martyria)와 전례(Liturgia),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를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또한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우리 교구가 사목비전을 통해 이런 본당의 모습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보편교회의 지향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상은 본당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단체가 지향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합니다.
 
2. “본당의 해 II”와 사목 중점사항
  우리 교구는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라는 사목비전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목 중점사항을 설정하였습니다.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은 공동체성 회복과 강화를 위하여 사목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쏟아야 할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목 중점사항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할 때 ‘본당의 해 II’는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공동체성 강화
  오늘날 공동체성 강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더욱 요긴해졌습니다. 특히 가정공동체가 가족의 유대와 결속을 약화시키는 갖가지 도전들과 어려움들 속에 놓여 있음을 직시합니다. 가정이 “친교와 기도의 자리, 복음의 참된 학교”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세포”가 되도록 가정공동체의 본질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가정과 더불어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본당의 공동체성 증진 또한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영세자 증가비율은 거의 답보상태인 반면, 쉬는 교우의 비율은 점차 증가추세이고, 주일미사 참례자(2016년 현재 16.7%)는 감소추세가 뚜렷합니다.
 특히 쉬는 교우 문제는 우리 교회가 오래 전부터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새 신자와 쉬는 교우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쏟아 그들이 성사생활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후속 돌봄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공동체성 증진을 위한 노력은 교회 내적인 차원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고유한 몫이 있습니다. 우선 각 본당이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데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성을 증진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이 형제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없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공동체성 회복과 민족의 오랜 염원인 통일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본당 공동체 안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이들, 즉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연로한 어르신, 폐품을 수거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면서 생활고를 겪는 어르신 그리고 약간의 지적 장애와 대화 단절로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관심 그리고 대화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현시대의 가난한 이들이며 우리 신앙 공동체는 이러한 약한 이들, 관심과 사랑,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은 교회의 믿음, 곧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발전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루카 4,18-19 참조)에서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자비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현으로 일깨워주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뜻 깊은 실천이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 하는 것도 교회의 소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우리 교회가 그동안 신앙 전수를 위하여 청소년들에게 쏟은 열정과 노력은 이제 변화된 사회상황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은 이제 본당공동체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이루어지거나 또 청소년들을 순전히 사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그 목적을 성취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을 복음화하고 교육하여야 한다는 인식과 젊은이들이 더 많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것은 사실 청소년 사목의 기본 방향을 매우 잘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모든 거리, 모든 광장, 세상의 모든 곳에서 예수님을 기쁘게 전하는 ‘신앙의 길잡이’”로 나설 수 있도록 본당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은 본당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청소년이 본당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본당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본당이나 성인중심의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당공동체 전체 속에 자리매김하고, 본당의 사목비전을 청소년과 성인이 서로 공유하며, 상호 다각적인 친교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과 청소년 사목협력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여 청소년 스스로 “젊은이들의 사도”
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본당공동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4)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
  사제들의 사목활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 사목 쇄신은 불가피합니다. 사목 쇄신은 무엇보다도 복음과 공동체를 모든 사목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제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은 사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준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게 봉사한다면 우리 사제들의 사목활동은 큰 희망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교회활동에 참여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저마다 지닌 역량과 지혜를 충만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사제단의 일치와 상호협력은 사목활동의 개인주의를 넘어 사목적 연속성과 일관성을 위해 매우 필요하며, 그 결실이 언제나 풍요롭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또한 사제단의 사목 교류 강화는 구체적으로 지구사목의 활성화를 통해서 심화할 수 있습니다. 지구사목은 사제단의 연대만이 아니라 본당들 간의 연대라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이런 사목적인 연대를 통해서 지구의 사목적인 현안을 공동으로 대처하고 지구 내 이웃본당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린 지구사목의 취지는 지구 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인 사랑을 공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3.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되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인 소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은 자비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자비 실천은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자비의 얼굴>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 본당과 공동체, 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비는 분명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기쁨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자신만의 안위와 세계를 벗어나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루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룰 때 비로소 완수될 수 있습니다. 보다 더 아름다운 공동체와 세상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헌신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힘은 우리 모두가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 일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삶이 근간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은 혼자의 힘으로만 이룰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또 더 사랑하고자 하는 원의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정결케 하여 오로지 ‘하느님 나라 건설’ 곧 나의 주변이 ‘사랑의 왕국’이 되기를 염원하는 신앙과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뜻과 힘과 마음을 모을 때 희망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투신하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의 주역으로 살아가도록 지지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때, 시대를 거슬러 복음의 가치와 희망을 살아가는 예언자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019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교구장 김 희 중 히지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