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광주대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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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으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하며, 이 기쁨과 희망의 빛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밝게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1) 고통은 믿음을 확인하는 자리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불안감, 불신과 신앙생활의 제약, 그리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일상화된 삶에서 하루빨리 이 거센 풍랑을 이겨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맞바람을 거슬러 노를 젓느라 애쓰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혼자 뭍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안쓰러운 나머지 호수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습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담긴 말씀은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예수님의 행적에서도 발견됩니다. 돌풍이 호수로 내리 몰아치면서 물이 차 들어오자,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른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결을 잠잠하고 고요하게 만드시고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8,25)라고 물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환난과 시련 속에서 시험받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신앙이 머물러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물으십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고(필리 1,29),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0,31).

2) 코로나19로 가중되고 있는 어려운 현실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에세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인간성과 품위를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참한 현실 속에서는 삶의 의미와 희망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생존에만 급급해지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친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만연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 현상, 물신주의의 팽배, 갑질 문화, 끼리끼리의 배타적인 진영 논리, 이주민들에 대한 배척,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제, 환경 파괴, 불안정한 일자리,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력의 소외 등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근간에는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보다 탐욕과 욕망을 우위에 두는 ‘무분별한 자유주의’와 소수 집단의 이득만을 대변하는 ‘냉혹한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은 경제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하고 불균등을 심화하게 합니다. 또한, 지속되는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가 타인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과 심리적 거리 두기로 발전하여 이웃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팽배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3)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맹자는 이상적인 인간, 즉 대인(大人)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1) 이때의 대인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는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천지와 덕을 합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한 이를 지칭합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유학 사상이 주장하는 대인(大人)의 면모가 예수님 안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아기 예수님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6,22; 묵시 21,1)이라는 새로운 장(場)이 세상에 펼쳐졌고, 시작이며 마침(묵시 21,6)이신 분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당당히 외치는 당신의 권능과 위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과 호수까지 당신께 복종하게 만드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진리로 거룩해질 수 있게 됩니다(요한 17,17). 

4)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고통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향하는 온갖 조롱과 치욕과 비웃음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라고 외치면서 더욱 힘차게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하느님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표시로, “우리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종의 뜻을 현실에 맞게 이해하자면, 정부의 방역 수칙에 따라 성당 개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의 구성원인 신앙인 각자가 ‘선교하는 제자요 자비의 선교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개방적이고 주체적인 기쁨과 희망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임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복음의 기쁨」, 14항)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기일수록 우리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품고, 지역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여정을 통해 교회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6)이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는 육체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연대와 공동체성의 회복을 통한 영적인 치유가 함께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급속하게 확장될 수 있었던 다양한 요인 중에, 이웃들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한 채 주님의 영광이 아닌 이기적인 영광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우리 안에 있는 ‘정신의 세속성’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5) 낯선 사람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거룩한 탄생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요 희망인 까닭은 그 분의 오심으로 버림받은 이들의 세상이 그들을 환대하는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낯선 이웃에 배타적인 세상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친구들의 세상으로 변모되었기 때문입니다(루카 10,29-37 참조). 타인에 대한 배척과 지배가 만연했던 세상이 타인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의 세상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마침내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마태 5,3-12 참조).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낯선 사람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요한 15,15 참조)처럼 우리도 낯선 이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 안에서 하나 되는 형제애, 인류애입니다. 

6) 지금은 형제애, 인류애의 물결을 일으켜야 할 때
지금은, 형제애, 인류애의 물결을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살필 때가 아닙니다. 서로 희망이 되어야 할 시간입니다. 형제애의 물결은 바로 우리 가까운 이웃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의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전제이며 기초입니다. 우리 이웃 중에서 소홀히 했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들,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환대합시다. 주변에서 굶주리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몸소 가장 작은 이로 오시어(루카 2,12 참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분이 되셨으니(이사 52,7 참조), 그 기쁨과 구원의 희망이 세상 모든 이들의 빛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구민 여러분!
가장 미천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참 평화와 위로로 여러분 모두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 내시기 바랍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2020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