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산교구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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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

  1. 1. 미안한 마음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
나라는 깨졌지만 산하는 여전하니
성 안에도 봄이 왔다고 초목이 우거지네

나라의 비운을 겪었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춘망(春望 봄날의 소망) 첫 구절처럼 가중되는 코로나로 수상한 정치 현실로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이 갈라지고 거칠어져 분노조절장애 상태에 놓여 있는 지금, 엄동에 피어 추위에 떨었던 저 꽃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합니다. 봄이 왔다고, 그러지 말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 부활의 길을 가자고 손짓합니다. 무슨 의미인지도 알겠고 고맙기도 하지만 약을 잘못 먹었는지 도무지 일어나지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오래오래 복용했던 습관이라는 약이 우리를 관성의 감옥에 갇혀버리게 한 모양입니다.

며칠 전 저녁 식사 후 교구청 주교관 앞뜰에 누군가 차를 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라 주차장이 거의 비어 있어서 아무 데나 적당히 파킹해도 되겠다 싶은데도 바닥 규격 위에 똑바로 세우려고 한참이나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귀해서 기다렸다가 그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작은 미소로 답해주는 순간 저는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그에게 도덕적인 빚을 지고 있다는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늘 빚을 지고 삽니다. 깜깜한 이른 새벽 쓰레기를 치우시는 분들, 더러운 오물을 수거하는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을 담보로 한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낮은 임금이나마 생계를 버텨보려고 애쓰는 많은 분들에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만일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일 뿐입니다.

 

  1. 2. 생명


나아가 사람은 사람에게만 서로 빚을 지고 사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더 큰 빚을 지며 살고 있습니다. 생명체는 그것이 살아 있는 한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얻어 취해야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 마치 원죄와도 같은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취하는 우리 인간은 그들의 값진 희생을 우리 자신들의 보다 나은 도덕적인 삶으로 갚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에덴동산 한가운데 ‘선악과’ 한 그루만 있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생명나무와 함께 두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창세기 2,9) 우리는 모두 생명 자체이시며 생명 있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느님의 생명나무에 어떤 식으로든 생명으로 참여(participatio)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진리

그렇습니다. 에덴동산 한가운데 귀하게 마련된 생명나무가 그렇듯이 그 곁에 조심스레 심어진 선악과의 주인도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고 하신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인간에게는 그 마지막 답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법률적인 용어로 하느님께만 유보(留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풀이하면, 도를 인간의 언어로, 개념으로 도라고 규정하면 그건 더이상 도가 아니다라는 뜻인데 노자의 이 깊은 뜻에 따라 적폐를 적폐라 하면 더이상 적폐가 아니다라고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 뜻은 오래오래 누적되어 온 폐단을 적폐라고 누군가 규정할 때 그 규정하는 잣대,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시금 그 기준(criterium)의 적법성이 의문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진위의 잣대는 인간이 마지막까지 휘두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때 다시금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서로에게 늑대가 되고 맙니다. 진리는 우리 손만으로 쟁취 ․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주어진 진리(요한 17,17 참조)를 그렇다! 그렇구나!를 반복해서 깨달으며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 4. 십자가의 길


끝내 사랑했던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며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와 함께 생명이시며 진리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길이 되셨습니다.(요한 복음 주해 Trac. 34,8-9) 그 길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부활케 하는 길이며 모든 선과 진리가 드러나게 되는 길 곧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피흘려 마련하신 이 십자가의 길이 우리에게는 하느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 부활의 길이 되었으니 그것이 코로나든 그것이 피폐함이든 더이상 인생이 주는 고달픔 속에 너무 연연하지 맙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예, 주님. 믿습니다. 우리는 그냥 뭇인간들이 아니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2021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