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산교구 성탄 메시지
주교 이미지

성탄 담화문

올해 2020년은 중국 우한(武漢, 무한)에서 시작된 맹독성 폐렴이 코로나바이러스-19 팬데믹 사태로 번져 온 지구촌이 수라장이 되어버린 한 해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그런대로 잘 대처해 왔는데 겨울 들어 백신(VACCINE)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귀신들이 발악이나 하듯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마치도 예수님께서 악령을 꾸짖으시니 고함을 치고 난동을 부리며 쫓겨나는 마귀들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입니다. 꼭 그렇게 되리라 굳게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 마음의 구유가 되어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림절이 깊어지면서 성탄 개그가 등장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코로나 때문에 구유에 격리 조치되어 보름 후에나 성탄 발표가 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주님 공현 대축일(옛날엔 1월 6일이었으나 지금은 1월 2일∼8일 사이에 오는 주일)도 바이러스 천지인 낙타 오염으로 동방박사들이 코호트 격리되어 음압병동에서 고난을 겪은 다음 비실비실 경배하러 오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런 개그야말로 가짜 뉴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의로운 청년 요셉이 인간적으로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내 될 사람의 임신 소식을 알고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인 일, 믿음의 처녀 마리아가 신랑 따라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왔는데 출산은 임박하고 받아줄 방은 없어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고 짐승 먹이통 구유에 뉘였다는 이 기막힌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 치 앞도 캄캄한 자신들의 운명을 오직 주님께 의탁하고 있는 믿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믿음의 백신이야말로 부작용 제로의 완벽한 백신이기에 예수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코로나 감염이 완벽하게 보호되었고, 따라서 제아무리 맹위를 부리는 코로나 속에서도 예수 아기는 따로 격리되지 않으신 채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며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성탄 시리즈의 주요 멤버인 산타 할아버지 얘기를 곁들일까 합니다. 어릴 땐 산타 할아버지보다는 그 선물에 침 흘리고 살았는데, 일찍부터 담배를 피웠던 나에게는 크면서 또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산타 할아버지는 꼭 굴뚝을 통해 오시는가? 나는 최근에야 그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이들이 산타를 기다리는데 담배를 즐겨 피우시는 산타로서는 담배 냄새가 아이들에게 역겨울 것 같아서 굴뚝에서 나는 연기 냄새로 살짝 위장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왜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누구보다도 소외된 자를 위해 오셨다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외된 자는 담배 피우는 영감님들인 것 같아서입니다. 집에서는 할머니에게 매일 구박 당하고 성당에 와서도 이 추운 날 저 바깥 외진 구석에 숨어서 피워야만 하는 가련하고 소외된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견진을 하러 본당을 가게 될 때 미사 후 단체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짧은 시간 동안 성당 뜰 외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시는 할아버지께 얼른 다가가 담배 한 대 주시라고 청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마치 일제시대 만주 허허벌판에서 독립군을 만난 양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사는 유일한 주교인 저는 저의 약점을 훌륭한 복음 정신(소외된 자를 위함)으로 위장하면서까지 이렇게 살아갑니다. 아마도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이 된 분들 혹은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분들도 저와 비슷한 부끄러움을 안고 사실 겁니다. 신앙인이면서도 믿음이 부족하여 이렇듯 부끄럽게 변명하며 살아가는 우리 의지박약한 사람들은 우리 힘으로, 우리 의지로 이겨내지 못하는 오랜 습성을 인정하고 믿음이 강한 분들보다 더 깊이, 더 간절하게 성탄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인간이란 아무도 스스로 자기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 모습입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께서 이러한 인간을 가엾이 보시고 마음이 아프셔서 인간의 처지가 되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성탄의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리 천주교 마산교구 신앙공동체는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갈수록 훌륭한 사람, 똑똑한 사람, 목소리 큰 사람들로 꽉 차가고 있습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덜 훌륭하고, 덜 똑똑하고, 그저 삶의 일선에서 허덕이는 분들을, 하느님께서 예수 성탄을 통해 그리하셨듯이, 우리도 따뜻이 감싸고 어루만지며 보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2020년 성탄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