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대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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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온 세상에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천 년 전 이스라엘의 산골 마을 베들레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며 죄에 물들어 멸망하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였습니다. 이번 성탄에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 구세주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께서는 성당에 오시면서 예쁘게 꾸며진 성탄 구유를 보셨을 것입니다. 마구간 안에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잠자고 계신 아기 예수님, 천사들과 양 떼를 지키는 순박한 목동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마구간 안에 가축이나 동물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인 구유에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은 교만과 이기심으로 죄를 짓고 결국 고통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스스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참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의 지혜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성탄의 신비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바로 인간의 더러운 죄와 악행, 교만과 이기심 그 한가운데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먹이 그릇인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구세주께서 먹히는 존재가 되셨고, 인간과 세상을 위한 구원의 희생을 준비하고 계심을 암시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인간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당신의 아드님을 주셨고, 우리의 형제가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소중하고 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12 참조).


올 한 해도 주님 성탄의 기쁨을 맞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되돌아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대화와 공존의 노력보다는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는 세태는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이러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지난 11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일본 사목 방문 중 도쿄돔 미사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자신에게만 유용하고 득이 되는 것만을 찾는 세속적 태도는 결국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재물의 노예로 전락시킬 뿐만 아니라 조화롭고 인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됩니다.”

교황님께서는 원폭 피해 지역도 방문하여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을 당부하고 모든 나라들이 핵무기 금지 조약에 참가하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하는 우리 신앙인 공동체는 솔선수범해서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과도 사랑을 나누고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44-46 참조). 주님께서 알려주신 이 사랑에 세상의 불안과 불신, 불목과 다툼을 해결할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사회와 국민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과 역할은 막중합니다. 먼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인내심 있고 끈기 있게 대화를 지속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보다 먼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특히 가장 약하고 상처받고 힘없는 이들의 대변자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번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가득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하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루빨리 한반도에 평화의 은총이 가득하도록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도 전구를 청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