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의정부교구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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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탄절 메시지

  어둠이 깔려있는 세상에 빛을 비추시고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참 평화를 주실 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빛과 평화가 되어 오셨습니다.  빛과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베들레헴 하늘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 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고 천사들이 외쳤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어두움과 두려움을 없애 달라 외치며 아기 예수님께 달려갑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나약하고 천진한 아기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신 성탄의 신비는 두고두고 생각하게 해 주는 인생의 숙제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육화(肉化)의 신비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를 말해줍니다.  창조 때부터 당신을 닮게 만드셨고, 구세주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인간품위의 고귀함을 말해주며 동시에 인간의 평등함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둘째, 아기 예수님의 탄생 그 자리에는 가난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실 자리로 택하신 곳이 가난한 곳이었으며, 탄생의 자리에 함께 있어 친구가 되었던 사람들도 가난한 목자였습니다.  셋째, 구세주의 탄생을 알렸던 베들레헴 하늘의 천사들이 외쳤던 것은 평화라는 선물이었으며, 이 평화는 마음 착한 이들에게 전해진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처럼 성탄에 담겨있는 메시지이자 선물은 인간의 고귀함과 가난 그리고 평화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이 세계와 우리 사회를 위한 기도와 묵상 중에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인간의 고귀함이 손상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이나 TV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폭력사건이 보도되고 있으며, 부모들을 대신하여 사랑으로 돌보아 달라고 맡긴 아이들과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시설에서 함부로 다루어지고 있다 합니다.  또한 직장이나 사회 곳곳에서는 지위와 권력이 높다고 낮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무시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찾아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노동착취와 인권 유린에 시달리는 일들이었습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이 무시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작은 역할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가 흐르는 예수님 탄생의 현장인 구유에 초대되었던 사람들은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예수님 부모들에게 환대를 받았듯이, 우리도 우리 삶의 현장인 교회와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반기고 환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높지 않고 평범한 사람, 오히려 낮은 사람들을 환대하고 축복해 주는 세상이 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다 인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축복하다’는 단어는 라틴어로 ‘Benedicere’이며, 이는 ‘좋다(bene)’와 ‘말하다(dicere)’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축복을 보낸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하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친절한 말로 사람들을 대하기보다는 더 강하고 아픈 말로 다른 사람을 제압하고, 사실이 아닌 말로 경쟁자를 힘들게 하는 사회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히 정치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경쟁 상대에게라도 양보하고 함께 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권고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는 성덕이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몸짓들로 자라난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6)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작은 몸짓’이란 예를 들어, 이웃들과의 일상생활에서 뒷담화를 하지 않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야기를 걸어오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며, 길거리에서 만난 불쌍한 사람을 위해 묵주기도라도 짧게 드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성탄의 선물인 평화


  평화는 성탄의 선물이지만, 사람들의 착한 마음과 기도로 연대할 때 이루어집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불어왔던 한반도 평화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일찌기 예언자 이사야는 평화로운 동물의 세계를 묘사하며 민족들간의 평화를 노래하였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  이런 평화로운 세계가 언제 올 수 있을까요…. 

  최근 들어 세계 정세는 더욱 험악해져만 갑니다.  자국 우선주의와 경제적인 이익을 따지며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힘들게 하는 비정한 지구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평화는 성탄의 선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선물을 마음 착한 이들과 한결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베푸신다(이사 26,3) 하였습니다.  착한 마음과 평화를 위한 한결같은 심성은 누구보다 정치지도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자국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착한 마음과 평화를 함께 누리는 심성을 갖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이십니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정치지도자들을 위한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온 교회가 밤 9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치기로 한 결심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하며 평화의 주님께 한반도의 평화를 맡겨 드리도록 합시다.

2019년 성탄절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