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원주교구 사목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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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너의 자선을 기억하고 계시다.”
(사도 10,31)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 교구의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절대적 희망이십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서 이 희망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지 난 한 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그 어려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적 희망이신 하느님 으로부터 비롯되는 작은 희망들을 바라보며 또 한 해를 시작합니다. 2021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 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두 신부님이야말로 강도만난 사람처럼 신앙과 영성에 헐떡이는 조선의 백성을 위한 착한 사마리아인이었습니 다. 우리 모두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우 리에게 전해주신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며, 기념하고, 이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특히 사순절 기간 동안 세 가지 훈련을 합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입니다. 기도 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서, 그리고 단식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 한 훈련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전하고 있는 이 훈련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 ‘기도의 해’였던 작년에 이어 올해는 이웃 과의 관계를 위해서 ‘자선의 해’를 선포합니다.

우리가 가족의 한 사람으로, 교회의 한 사람으로, 사 회의 한 사람으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밝고 건강하 게 살기 위해서는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 는 곳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갈등이 불가피하겠지만, 대화하며 해결을 시도할 때, 그리고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공동체는 행복한 공동체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한 다.”(마태 22,37)는 첫째 계명에 이어 “네 이웃을 너 자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둘째 계명을 주셨습 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고 싶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 들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일지라도 초지일관하여 끝까지, 그리고 자 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이웃들도 많습니다. 우리 는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에서도 율법교사는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 어서 예수님께 되묻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래 서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 니다.(루카 10,30-35) 예수님은 대화를 통하여 율법학자에 게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이웃이었다는 답 을 율법학자 자신으로부터 얻어냈습니다. 초주검이 되 어버린 사람을 버려두지 않고 가엾은 마음으로 상처를 치료해주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비까지 부담해준 고마운 사마리아 사람은 분명 강도를 만난 그 사람에게는 자신 의 몸처럼 사랑해야할 이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 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상으로 고마운 이웃들이 많습니다. 배고플 때마 다 음식을 제공해주고, 아플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 주 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도 학교에 보내며 등록금을 부담해준 ‘내 몸처럼 사랑해야할 이웃’이 있습니다. 그 런 부모님만큼은 아니어도 오늘의 내가 될 수 있기 위해 도움을 준 많은 이웃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이웃이었다면,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그 강도를 만난 사람 역시 이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그의 이웃인데, 그는 나의 이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 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웃들이 있는 셈입 니다. 이처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선은 강도를 만난 사 람과 이웃이 되게 하였습니다. 미움은 우리의 이웃과 원 수가 되게 하지만, 자선은 우리 서로는 물론 원수마저 이웃이 되게 합니다. 사실 당시 사마리아인과 유다인들 은 서로를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하 느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매정한 종’5 자선의 해 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마태 18,23-35 참조) 임금에게 만 탈렌트를 빚진 자가 그 빚을 모두 탕감 받았지만, 자 신에게 500 데나리온 빚진 동료에게는 모든 빚을 갚도 록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임금은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 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아주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논리를 우리 자 신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 께 대단히 큰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입니다. 곧 하느님 의 자비를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이웃들 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으로부터 입은 자비를 깨닫게 되면, 우리도 우리 이웃에게 자비와 자선을 베푸는 일이 쉬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둘째 이유는 바로 우리 들의 행복 때문입니다. 자선은 사랑의 행위요, 자비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홀로 행 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필요 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황금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 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뿐만 아니 라, 무엇보다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 그리 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사람입니다. 자 신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싫어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하시고, 우리가 좋아하는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 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 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 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 라.”(마태 25,34. 40)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행복한 사회 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회, 인간다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와 약육강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남기신 글이 있 습니다.

“...우리는 어수룩한 사람을 얕잡아보고 ‘저 사람은 내 밥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 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우리 모두에게 ‘밥’이 되셨습 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 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나는 결코 너의 밥이 될 수 없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그 뿐 아니라 타인 을 ‘내 밥’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돼있습니다. 그러나 진 정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타인에게 밥이 되어주는 사 람이 많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에게 먹 을 것을 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려는 마음도 밥이 되어주 는 것입니다. 나눌 것이 없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 로도 그들에게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 가 이기주의와 약육강식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에서)

우리는 “나눌 것이 없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밥이 될 수 있다.”는 말씀과 우리들에게는 나 눌 것이 많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는 자선할 수 있는 많은 선물들이 있습니다. 돈보다 귀 한 마음, 옷보다 귀한 미소, 집보다 귀한 사랑, 빵보다 귀한 친절, 권력보다 귀한 정직, 어떤 물건보다 귀한 칭 찬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많은 비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지옥은 팔보다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자기 입에 넣으려 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천국은 그 긴 젓가락으로 상대 방에게 음식을 먹여 주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야기 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자선을 베풀 때 이 땅은 천국이 됩니다. 자기 밖에 모를 때 이 땅은 지옥이 됩니다. 이 땅에 천국을 세울 것인지, 아니 면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있습니다.

지혜 문학에 속하는 토빗기는 아들에게 남긴 유언으 로 토빗기 전체를 요약합니다. “얘야, 무슨 일이든 조심 해서 하고, 어떠한 행동이든 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하 여라.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취한 채 너의 길을 걷는 일이 없 도록 하여라.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헐 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 너에게 남는 것은 다 자선으로 베풀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 하지 마라.”(토빗 4,14-16)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 우리 원주교구에, 우리 본당 공동체에 이루어지기 위해 서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됩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 의 위로와 평화를 기도합니다.

2020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