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조기낙태약)' 시판허가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
이미 알려진 것처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른바 사후피임약이라고 불리는 노레보정을 시판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였다. 프랑스의 HRA Pharma사의 제품인 '노레보'정은 일반 사회에서 사후피임약 혹은 응급피임약으로 불리는 호르몬제의 화학 약품으로서 지금까지 약국에서 시판되었던 피임약들과는 달리 성관계를 가진 후 복용하면 임신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약이다. 대한민국의 관련 정부기관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단순한 피임약, 혹은 응급피임약이라고 왜곡 선전하는 가운데 일반 시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였지만 실상 이 약은 단순한 '피임'의 작용이 아니라 '낙태'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 위원회, 가정사목 위원회 그리고 신앙교리 위원회와 생명윤리 연구회는 이 약품의 사용이 낙태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인간 생명 자체의 출산과 그 존엄성과 관련되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거스르고, 한편으로는 사랑과 생명을 위한 가장 소중한 원천으로서의 인간의 성(性)이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면서 무절제한 성문화를 조장, 방조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사후피임약의 사용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입장을 재확인하려고 한다.
1. 이 약품은 여성의 몸 안에 있는 황체 호르몬과 같은 성분의 합성 레보놀게스테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여성의 배란기 이전 며칠 전에 복용을 할 때에는 배란을 막는 전형적인 피임약의 효과를 가지겠지만 성관계 후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경우 72시간 내에 일정한 시간의 차이를 두고 복용하면 수정란의 자궁 내 착상을 막아주는 '반착상' 기능을 하는 조기 낙태의 결과를 가져오는 약품이다. 따라서 이 약품을 사후피임약 혹은 응급피임약이라고 칭하는 것은 용어의 잘못된 사용이며, 그 보다는 '조기 낙태약' 혹은 '화학적 낙태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의미를 전달해준다.
2.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해 언제나 변함 없이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다"([인공유산 반대선언문])고 가르쳐왔으며, 또한 이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귀중한 선물이며 동시에 인류 모두가 함께 보호해 나갈 책임을 부여하는 일종의 소명이라는 데에 어떠한 의심도 없다. 인간 생명은 모든 성장과정에서와 똑같이 생명 시작의 순간에서부터 항상 보호받고 사랑 받아야 하며, 따라서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는 인간 생명으로서의 수정란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생명권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변함 없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낙태를 유발하게 되는 이 약품의 사용은 언제나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3. 이 약품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낙태를 현저하게 줄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조기 낙태약'의 효과로 더 많은 낙태를 가져옴으로써 생명 경시 문화를 아예 이 사회에 뿌리박게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 이 약품의 시판은 우리 사회를 불건전한 성문화의 급속한 확산이라는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 청소년들의 혼전 성 관계가 증가하고, 성폭력이 난무하면서 원치 않는 임신이 증가한다면 그 근본적인 해결은 올바른 성문화를 위한 노력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곧 인간의 성이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이며 부정적이라는 이 사회의 인식을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는 참된 의미의 성교육과 생명, 가정이라는 인간 삶의 기본 가치가 존중되는 생명교육, 인성교육이 문제해결을 위한 더 근본적인 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 본 정의평화 위원회, 가정사목 위원회 그리고 신앙교리 위원회와 생명윤리 연구회는 이상에서 언급한 '사후피임약'이라고 불리는 '조기 낙태약'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입장은 이 약품이 손쉬운 임신중절과 인간의 성(性)이 요구하는 사랑과 책임의 회피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비윤리적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이 약품을 배포하고 처방하고 복용하는 행위 역시 윤리적으로 부당하다. 또한 이러한 의도에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이 과정에 직접 협력하는 모든 이는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혀 둔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현대 사회의 죽음의 문화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는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그 본연의 소명이며, 따라서 개인과 민족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 끊임없이 증가되고 있는 오늘날, 특히 인간 배아처럼 약하고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인간 생명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복음] 3항 참조) 사회 안에서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교회는 건전한 성문화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인류 사회의 건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위대함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우리 사회에서 용감하게 증거하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2001. 10. 29.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 영 수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 기 헌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안 명 옥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장 안 명 옥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