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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03-01 00:00
2020-09-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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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1983년 12월 14일 노동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간 한국 사회가 겪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노동자는 양적인 면에서 그 수가 대량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오늘날 산업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노동자 계층은 산업화의 발달에 근원적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그들 스스로가 가져야 할 정당한 권익은 소외된 채 버려져 왔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 중 하나인 열악한 노동 조건, 특히 생계 이하의 노동자군이 사회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음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순은 산업 사회의 평화 유지에 커다란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비인간화 현상으로 사회인 모두가 지탄해야 할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모순의 제거는 민주 사회, 복지 사회로 향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한국 산업 사회의 발전을 논함에 노동자 계층의 삶의 발전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어떠한 합리적 전제도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노동자 계층이 자기 발전을 통하여 역사 속에 창조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타당성이 누구에게나 인정되고 있기는 하나 경제에 있어서 이러한 기회 여부는 계속적인 과제로 취급되어 왔을 뿐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한 채 기피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과제에 대하여 그 절박성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이에 대한 실천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는 사회 각 계층의 자신의 권익을 수호하고 신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법률적 보장이 필수적인 것으로 우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에 한국의 노동자들이 심각한 소외로부터 탈피하여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정립하고 바른 참여를 하기 위하여는 노동관계법상 노동자의 기본 생활권, 노동 3권 등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법률상의 권리가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제헌 헌법에서부터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고 노동 조건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정하도록 하였으며 여자와 소년에 대한 보호를 규정하였다(제헌 헌법 제17조). 또한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 등 소위 노동 3권을 보장하였다(제헌 헌법 제18조). 이 헌법 정신이 관계 법률로 정착한 것은 1953년에 들어서 노동조합법, 노동 쟁의 조정법, 노동 위원회법, 근로 기준법 등 4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

이 법들이 선진 민주 국가의 관계법을 예로 삼아 입법화하였던 것이지만, 당시의 한국의 경제,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의 위정자나 정부는 이 법의 입법 취지를 살려 시행하려 하지 않고 애초부터 이의 시행에 소홀하여 이 법들은 준수되지 못한 채 형식적인 것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노동자의 권익이 법률이나 제도로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채 유기된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후 이 법은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뜯어고쳐졌는데 그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위정자의 편의나 경제 정책의 한 방법으로 고쳐졌던 것이다. 특히 수출 주도의 고도성장 정책을 이유로 노동자에 대하여 저임금 정책을 지속하였고 극도의 어려운 노동 조건이나 환경을 방치하여 제도적으로 노동자들이 나쁜 노동 조건 속에 일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는가 하면, 노동자들의 권익 수호 운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동 3권에 제약을 가하였다. 그중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에 의하여 단체 교섭 및 단체 행동권에 관한 규제를 받은 적도 있어 국가 보위라는 명분하에 인간답게 살 권리를 잃게 되는 모순된 일도 있었다. 또한 외국인 투자 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 쟁의 조정에 관한 임시 특별법을 만들어 외국인 기업에 대하여 저임금과 나쁜 근로 조건을 이용한 충분한 이익 보장을 해 줌으로써 노동자의 인권보다 외국인의 이익을 우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행 헌법은 그 전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 안의 기회를 균등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명시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9조), 국민의 평등(제10조), 근로의 권리, 의무, 보호, 기회(제30조), 노동 3권의 기본적 보장(제31조), 사회 보장(제32조)을 규정하고 있어 일견 노동자의 제 권리가 충분히 갖추어질 수 있는 것처럼 되어있으나, 사실상 이러한 헌법 정신에 의하여 제정 혹은 개정된 노동 관계법은 실제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현행 노동법은 법 제정 이후 정치적 경제적 이유만을 지나치게 내세운 나머지 무분별하게 부분적 개정을 가속한 결과, 법규상 평형성을 잃어 그 관계 규정 간의 맥락이 맞지 않아 적용이 어려운 부분도 많으며, 입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조항(예, 근로 기준법 제34조 최저 임금제)이 30여년이나 계속 명시되어 있기도 하고, 법률도 명시되어 있으나 실행에 있어서 법익을 확보하기에 힘든 것이 있는가 하면, 특히 전반적으로 법률상 명시된 권리가 실행되지 못하게 만든 것도 있다. 이러한 법률의 오류와 모순점은 너무나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에 간략히 지적하거나 시정안을 제시하기가 힘들다. 단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법률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시정을 할 의지가 지금 요청되고 있으며 시급히 시정 혹은 개정되어야 할 것부터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1983년 12월 14일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