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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05-01 00:00
2021-02-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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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석방에 관한 정의평화위원회 건의문

정의평화위원회 건의문

한국 정의평화위원회(담당 윤공희 대주교, 회장 유현석)는 1985년 4월 11일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을 관계당국에 건의하였다. 다음은 그 건의문의 전문이다.

 

  1.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양심범 석방의 건의를 거듭하여 왔거니와, 최근 이에 관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겪어온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비롯된 양심법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해결하여야 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범 ‧ 양심범이 다시는 생겨날 수 없도록 하는 정치사회 환경의 조성 또한 시급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지난 총선에 나타난 민의의 수렴과 국민화합이라는 차원에서 양심범이라 불리울 수 있는 사람들이 하루속히 정치적 결단으로 석방되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누차에 걸쳐서 석방을 건의한 바 있는 양심범들에 대하여 거듭 우리들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정치범 또는 양심범을 집권 세력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한 까닭에, 무실(無實)하게 유죄 판결을 받거나 부당한 죄명이 적용되거나 또는 과중한 형벌이 가해진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용된 법률이나 죄명이 비록 국가 보안법이든 다른 형사 법규든 그것이 정치 보복의 형태로 적용된 경우, 이들을 양심범 또는 정치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2. 과거 유신 체제 이래 반공법, 국가 보안법 등에 의한 처단이 정치 탄압의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그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옥중에 남아 있는 경우를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81년의 민주 노동 운동 및 민학련 사건과 관련하여 무기 징역의 형을 확정받아 복역 중에 있는 이태복(이 사건의 나머지 관련자는 여러 차례에 걸친 화합 조치로 모두 석방되었음), 82년 부산에서 광주 사태와 나라의 비민주화에 항의하는 바탕에서 야기된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자 중 그동안의 석방 조치에서 제외된 김현장, 문부식, 김은숙, 이미옥, 최인순, 김지희, 그리고 반정부적인 언동과 4·19 기념식을 독자적으로 가진 전북 군산 제일고등학교 교사 등을 반국가 단체 구성죄로 몰아 처단한 이른바 오송회 사건의 이광웅, 박정식, 전성원, 황윤태, 이옥렬, 조성용 등과 이에 준하는 사건 관련자들이 이에 포함됩니다.

3. 유신 체제의 말기적 증상과 관련하여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일부 과격한 행동으로 빚어졌던 남민전 사건의 남아 있는 관련자들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 자신이 피해자일 뿐 아니라, 그동안의 수감 생활을 통하여 충분한 자기반성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여러 차례에 걸친 석방의 은전이 있었던 만큼, 나머지 관련자들에게도 관용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들의 바람입니다. 이와 아울러 17년 전인 1968년의 통혁당 사건으로 아직껏 수감 중인 세 사람(오별철, 신영복, 이재학)은 모두 60년대의 일류 대학 준재들로서 일시의 과오로 지나치게 오랜 수형 생활을 하고 있으나, 모두가 모범수로서 귀휴의 은전을 받은 바도 있으며, 또한 관련자 중 정부의 관용으로 석방된 사람도 있으니만큼 각별한 배려가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 바입니다.

4. 재일 교포 정치범 사건 가운데는, 재일 2세, 3세 교포들이 조총련 계열의 민족애를 내세운 포섭 공작에 넘어가 간첩 활동 등으로 처벌된 경우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일본에서의 민족 차별에 분개하여 분단 현실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 없이 똑같이 조국이라는 생각으로 범죄 의식 없이 북한에 갔다 온 경우도 있고, 실제로 범죄 행위라는 것이 지극히 경미한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재일 교포 정치범의 경우 일반적인 것은, 첫째로 일본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사상과 의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남북한 간의 첨예한 대치의 안보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하에서 범죄 의식 없이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둘째로 민족 차별의 저항감에서 고국을 그리는 애국적 동기가 범행의 발단이 되어 있는 데다 유신 체제 아래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유린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범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경우가 많으며, 셋째로 이들은 손쉽게 일본에 귀화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긍지와 조국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에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들은 사상보다는 민족의 동질성을 더 굳게 믿고 있으며, 왕왕 교도소 내에서 전향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상 때문이 아니라, 전향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폭행, 전향 여부에 따른 교도소 내에서 차별 대우에 대한 저항, 위헌적인 사회 안전법 자체에 대한 거부 의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하여는 민족 분단이란 역사적 비극을 우리 스스로 수렴, 청산하려는 차원 높은 민족적 도량으로, 중형으로 장기 격리시키기보다는 가능한 한 관대한 조치로 민족 화합을 도모하고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고 사료되는 바입니다.

5. 우리는 우선 학원 사태와 관련한 학생들에 대한 전반적인 석방을 건의합니다. 이들은 학원의 자율화와 민주 사회를 갈구하는 성급함이 동기가 되어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관련자들에 대하여 석방 또는 감형 조치를 부분적으로 취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간곡한 건의는 해로운 요청이 아니라 그러한 관용 조치의 계속으로서 보다 선명한 화합 조치를 갈망하는 요청인 것입니다.

6. 끝으로 우리는 정치적 탄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제5공화국 출범 당시의 확고한 결의의 보다 분명한 확인을 위해 완전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김대중 씨를 비롯한 정치인, 문익환 씨를 비롯한 종교인, 박현채 씨를 비롯한 지식인, 그리고 학생 사건 관련자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사면과 복권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진정한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아울러 기도하는 마음으로 건의하는 바입니다.

 

1985년 4월 11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