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문헌
2020-05-07 11:27
2020-05-0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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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긴급 상황에 대한 공지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긴급 상황에 대한 공지

전 세계적 질병 확산과 보편적 형제애


온 인류가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우리는 이례적이고 극적이며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삶의 계획들을 위태롭게 하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나날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연한 위협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생활 방식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순된 상황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곧, 이 질병의 극복을 위하여 우리는 서로를 격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격리되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금세 깨닫게 됩니다.

기술과 경영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던 우리 자신은 이러한 감염증 확산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여파를 깨닫고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확산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감염증 확산이 야기하고 있는 생존의 위협에 대하여, 저항은커녕 무방비 상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 앞에서 우리의 문화적 정치적 취약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위협은 과학과 치료 기기의 기술 영역 밖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며 잘못된 것입니다. 동시에 분명한 사실은, 인류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더욱 깊은 식견과 더욱 큰 책임감이 약과 백신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긴급히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공통된 인류애를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깊은 식견과 책임을 깨달아 화합과 일치, 협력과 형제애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인류애는 과학과 정부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기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더욱 지지하고 그들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에 대하여 마땅히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헌신은 분명히 이 시기를 통하여 굳건해지고 소중히 여겨질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류애를 최대한 추구하며 과학과 윤리학 사이의 협력을 증진하고 지원하는 일을 기관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교황청립 생명학술원은 본 학술원이 숙고한 바를 전하고자 합니다. 본 생명학술원은 사회적 관계를 돈독히 하며 인간을 돌보아야 하는 쇄신된 정신에 비추어 이 상황의 특정 요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인류 공동체의 형제애에 대한 도전이 되고 있는 이 이례적인 상황은, 결국 인류애의 정신이 평상시에도 개별 민족 안에서 그리고 민족들 사이의 조화로운 유대 안에서 제도적 문화에 영향을 주는 기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취약성과 한계 안에서 이루는 연대

먼저, 전 세계적 질병 확산으로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함께 우리 인간 조건의 근본적 특징인 불확실성이 강조됩니다.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가난 때문에 개인과 공동체는 이러한 삶의 불확실성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치료가 가능하여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식량이지만 그 식량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불확실한 영역이 꾸준히 줄어들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끄덕없다고 여기거나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현재 진행 중인 전 세계적 질병 확산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한 사회에서도 연구소와 의료 시설의 가용 능력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서,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전 세계적 질병 확산을 막을 수 있으며,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한 것처럼 상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진보가 가져온 놀라운 보호와 치료의 자원과 함께 우리 체계의 약점을 드러내는 부작용도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부작용들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 가슴 아프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과학도 그 한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학의 결론들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편의를 위해서나 다른 실질적 이유로 과학은 실재의 특정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부분은 간과하기에, 또는 잠정적이고 수정이 필요한 과학 이론의 본성 때문에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다루면서 경험하는 이 불확실함을 통하여 우리는 과학 지식이 지닌 점진성과 복합성을 다시금 명확히 깨닫고 있습니다. 과학 지식의 방법론과 타당성 입증에는 특별한 요구조건이 따릅니다. 또한 우리 이해의 불확실함과 한계는 전 세계적이고 실질적이며 공통된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가 우월하고, 편의에 따라 독자노선을 고수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문명이나 주권을 지지하는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상호 연계성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까워져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수단의 효용성이 아닌 우리의 취약함이 드러날 때에 더욱더 서로 연결됩니다. 감염병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너무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모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적절히 책임지지 못했던 것을 더욱더 직접적으로 명백히 보여 줍니다. 곧, 좋든 나쁘든 우리 행동의 결과는 언제나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인의 행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각 개인과 공동체, 사회, 인구 중심지에 적용됩니다. 무분별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모든 이에게 위협이 됩니다. 실제로 행위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모두의 안전이 서로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분명히 인간 역사에서 감염병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그 위협의 특징들을 숨길 수 없으며, 이는 현재의 우리 생활 방식 안에 너무나 잘 침투될 수 있으며 방어 조치들을 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교통 수단과 전달망으로 우리의 발전 모형이 이끌어낸 결과들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발전 모형들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보존된 삼림 지대를 착취하였으며, 그곳에서 인간의 면역 체계에는 생소한 미생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위협이 장기적으로 주도면밀하게 그 위력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구원과 건강을 동일시하는 사회적 모형을 강조하는 이념을 피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과학적 구조적 자원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분명 과학 기술의 발전은 늘 우리를 들뜨게 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 때문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심오한 사랑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질병과 죽음을 과학과 기술의 패배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의로움과 깨질 수 없는 사랑의 유대를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을 완성할 능력이 없음을 받아들여야 할지라도 그러한 사랑의 감정과 유대는 우리 자신 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유한하지만, 생명을 품고있는 사랑의 신비는 유한하지 않다는 희망을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실질적 상호 연결에서 연대의 선택으로

이 끔찍한 비상 상황만큼이나 우리가 삶의 기본이 되는 상호 관계를 깨닫도록 요청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모든 삶은 공통된 하나의 삶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며 생명은 ‘타인’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 생명을 그저 하나의 생물학적 사실로 여기지 않는 공동체의 자원은 보살핌에 필요한 다른 모든 활동을 책임감 있게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산이 됩니다. 이와 같은 때에 변화를 가져오는 이러한 자산을 우리는 생각 없이 허비해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관계의 가치를 너무나 심각하게 경시했었는지 모릅니다. 이 관계의 가치는, 생물학적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너무나 필수적인 것으로, 정서적 유대와 공동체 정신이 심각한 시험에 놓여 있을 때에,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말할 때, 공통의 준거점이 되고 있는 피상적인 두 가지 사고방식이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나의 자유는 끝이 난다.”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위험하게도 애매모호한 이러한 공식은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단언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좋든 싫든 우리의 자유는 언제나 얽히고설켜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염증은 다른 이를 멀리해야 하는 ‘전염성을 지닌’ 위협으로, 나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적으로 보는 경향을 더욱 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고, 그 대신 우리는 우리 자유를 공동선을 위한 협력에 내어놓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두 번째는 “나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일부이며 인류는 우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존성을 받아들이며 우리가 인류에 속하여 주인공 역할을 하도록 하는 책임감을 소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공존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탁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돌봄의 관계가 함께하는 인간 삶을 위한 근본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실질적 상호 의존성에서 연대의 선택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책임 있는 행동과 형제애의 실천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다양한 표징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온 힘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때로는 자기 목숨이나 건강의 위험도 감수하는 보건 종사자들의 헌신적 노력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의 직업 정신은 계약 의무라는 한계를 넘어, 노동이 값을 매겨 교환하는 ‘거래’나 ‘매매’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표현과 의미와 가치의 차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타인에게 봉사하는 연구원과 과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결단을 통하여, 연구소들은 약품의 안정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연구 협약들을 위한 연구소 관계망을 이루어 신속한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형제애를 수호하고 증진하는 많은 이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바로 한 가정의 부모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 젊은이입니다. 명백히 힘든 상황에서도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봉사를 계속 이어나가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도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제들의 이야기에서 드러났듯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에게 봉사하는 종교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현 상황은 정치적 차원에서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국제 관계에서 (또한 유럽 연합 회원국 사이의 관계에서도)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대응하려는 시도는 근시안적이고 허황된 논리입니다. 정치적, 상업적, 이념적, 관계적으로 야기되는 불가피한 저항에 효과적인 협력과 효율적인 조율로써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물론 매우 심각하고 어려운 결정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열린 시야와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열린 시야와 선택은 개개인의 즉각적 요구를 늘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두드러진 세계적 파급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자국 국경 안으로만 제한된 대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과 의학과 정치: 사회적 유대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분명 정치적 결정들은 과학적 자료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차원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 현상들을 경험 과학의 범주에만 근거하여 해석한다는 것은 기술 차원에서만 대책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생물 정치학(biopolitics)이 가르쳐 온 위험한 길을 따라, 생물학적 과정들이 정치적 선택의 결정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로 귀결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단일한 기술-과학 방식으로 인간 현상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문화들 사이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강, 질병, 죽음, 보건 의료 체계가 부여하는 각기 다른 함축된 의미는 모두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과학과 인도주의 사이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과학과 인도주의는 통합되어야 하며 서로 분리되거나 심지어 서로 적대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같은 긴급 상황은 무엇보다 연대라는 항체로써 극복됩니다. 봉쇄를 위한 기술적 임상적 수단들은 더욱 깊고 넓은 공동선 추구 안에서 통합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특혜받는 사람들의 직접적 이익을 추구하며 시민권 유무, 소득 여하, 정치 역학이나 연령을 따져 약한 이들을 무시하는 세태에 맞서 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임상 실험과 직결되는 정책들을 포함하여 모든 ‘치료 정책’의 선택에도 해당됩니다.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긴급 상황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제한된 자원들의 할당제와 관련하여, 의사들이 마음 아프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게끔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조직적 차원에서 그러한 할당제를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강구한 뒤에 이루어지는 결정이 인간 생명의 가치와 모든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차별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면서 그러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과 존엄은 언제나 동등하며 귀중한 것입니다. 그 결정은 오히려 환자의 필요에 따라 최선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치료법의 활용에 관한 결정이어야 합니다. 곧 병의 경중과 치료의 필요성, 그 예후로 보아 치료 가능한 임상 효과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선택을 좌우하는 유일하고 정당한 기준으로 나이만을 고려할 수 없습니다. 나이만을 고려하는 일은 노약자에 대한 차별적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재난 의학이 알려주듯이, 어떠한 경우라도 긴급 상황에서 임의적이고 임시변통적 대처를 막으려면 최대한 합의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할당제는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 대안으로 정의의 틀 안에서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은 가능한 모든 치료법 모색, 자원의 공유, 환자의 이송 등이 있습니다. 또한 역경 아래에서도 특별한 필요에 맞갖은 해결책이 창조적으로 마련되어 왔습니다. 다수의 환자들에게 동일한 산소 호흡기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결코 아픈 이들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을 때조차 이들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말기의 고통 완화 치료, 통증 관리와 개인적으로 함께해 주는 일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공중 보건의 측면에서도, 비록 이 시련이 사그라들 미래에야 해결되겠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경험은 우리를 중대한 시험대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건강과 권리는 공중 보건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방적 접근과 치료적 접근의 균형, 개별 치료와 공동체 차원의 균형의 문제입니다. 이는 교육이나 환경 보호와 같은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보건의 역할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면서 의학 자체가 추구할 수 있는 목표와 더욱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위기에 놓인 다양한 차원들과 문제들의 세계적 파장을 고려하는 전 지구적인 생명윤리 시각이 맺는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생명과 건강과 돌봄에 대한 개인주의적이고 환원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 질병 확산의 위험, 책임의 맥락에서 보건 의료 체계에서 국제적 공조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조 수준은 진단 속도, 대응의 신속성, 적절한 봉쇄 조처, 알맞은 조직, 자료와 정보의 공유와 등록 체계 등에 있어 가장 느슨한 고리에서 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긴급 상황들에 포괄적으로 대처하고 결정을 내리며 의사소통을 조율할 수 있는 권위는, 부정확한 자료와 단편적 소식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커뮤니케이션 홍수인 이른바 ‘정보 감염증’(infordemia: 잘못된 정보가 감염병처럼 퍼지는 현상)을 방지하는 준거도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를 보호할 의무: 복음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힘없는 이들, 특히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하면, 이 감염증 확산의 치사율은 감염 국가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가용 자원, 보건 의료 체계의 질과 조직, 국민의 생활 여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상의 특징을 알고 이해하며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이미 일상생활에서 단순한 기초 의료 보장도 받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없는 이들이 당면한 더 큰 부정적 여파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이 역사적 위기 속에서 하느님의 활동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성 ‘모독’(lèse-majesté)에 따르는 하느님의 ‘거룩한 응징’(sacred reprisal)이라고 끼워 맞추려는 얄팍한 계획을 좇아서는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 곧 그분께서 가장 아끼시고 당신과 동일시하시는 이들(마태 25,40-45 참조)이 고통의 희생자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로도 그러한 얄팍한 계획이 반증됩니다. 성경에 귀 기울이고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그 약속의 성취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대로 생명의 편에 서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인류애의 몸짓으로 구체화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최근 이러한 인류애의 몸짓들이 전혀 부족하지 않음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관심의 모든 형태, 자선의 모든 표현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이며, 이를 증언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또한 이는 언제나 모든 이를 향한 책임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시점에도 우리는 난민과 이민은 물론 분쟁과 전쟁과 기아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민족들처럼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다른 재앙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구 기도

복음적으로 다가서는 데에 물리적 제약이 있거나 적대적 저항에 부닥치는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 바탕을 둔 전구 기도가 지속적이고도 결정적인 힘을 지닙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하느님 은총에 맞갖은 삶을 일구어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해도 그렇습니다(탈출 32,9-13 참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지만, 믿는 이들이 큰소리로 드리는 전구 기도는 우리가 죽음의 비극적 신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 존재를 하나의 위대한 통과의례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 존재를 에워싸고 있는 껍질은 나비의 해방을 기다리는 누에고치와 같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말하듯, 모든 피조물은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비추어, 기도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기도는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전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과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언제나 이 사람들을 우리에게 데려다 주십니다. 또한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 안에서 고통을 체험하는 방법을 예수님께 배우는 시간입니다. 또한 하느님과 나누는 이 대화는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게 해 줄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현실은 이 세상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게 해 줍니다. 이 현실이 일깨워 주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책임을 다하고 우리 자신을 회개에 열게 해 주는 내적인 힘을 기도에서 발견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감염증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곳 가운데 하나인 베르가모 교구장 프란체스코 베스키(Francesco Beschi) 주교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기도는 마법의 주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마치 마법처럼 우리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모든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특히 이 악을 봉쇄하고 극복하라고 부름받은 이들이 그 임무를 실천해 나갈 내적 힘을 줍니다.”

우리와 함께 이러한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 이들도 최상의 인간 조건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정표를 이 보편 형제애의 증언을 통하여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류애는 언제나 변함없이 공동선인 생명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함께 노력하는 현장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모든 이가 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류애는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2020년 3월 30일

교황청립 생명학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