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문헌
2019-06-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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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가정평의회] 복제: 친자 관계의 실종과 가정에 대한 거부



교황청 가정평의회

 

복제: 친자 관계의 실종과 가정에 대한 거부

 

인간 복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인간 복제가 지닌 문제점을 규명하려는 모든 시도를 적절하다고 보며, 국제 연합이 인간 생식 복제에 반대하는 국제 협정을 만드는 작업을 시급히 재개하리라 기대한다.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이 문서로 인간 복제의 문제점을 충분히 제시하고, 인간과 가정의 존엄에 위배되는 인간 복제의 부정적인 윤리적 측면들과 의미를 지적하고자 한다.1) 이 문서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복제의 몇 가지 측면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생명 과학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그러한 과학 기술을 인간의 출산에 적용하면서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이 표면화되었고,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인간학과 인간을 위한 가정의 역할에 대하여 새롭게 접근할 필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었다. 특히 인간을 복제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부모 자식의 의미와 인간 배아의 존엄, 인간 성(性)의 참 모습과 의미 등 가정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에 도전하여 왔다. 오늘날, 인간 생명의 개념과 실제로 생명이 시작되고 자라는 자연적 터전인 가정의 개념 사이에 서서히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열은 죽음의 문화가 가져온 가장 사악한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펴낸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은 이렇게 단언한다. “부부의 성적 일치와 사랑 속에 인격적인 인간 탄생이 수용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탄생은 그렇듯, 부부가 사랑이신 창조주의 사업에 주인이 아니라 봉사자로서 부부가 서로 협력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행위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격적인 인간의 기원은 주는 행위의 결과이다. 임신된 아이는 그 부모 사이에 존재하는 참된 사랑의 결과이어야 한다. 어떤 아이도 의학적 또는 생물학적 기술 조작의 산물로 계획되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저런 과학 기술은 인간을 한낱 그 과학 기술적 대상으로 그 가치를 전락시키게 되는 것이다.”2)

책임 있는 출산을 과학 기술로 대체하여 ‘생식’을 목적으로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자녀의 존엄성에 위배되며, 이는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생산된’ 인간 배아를 조작하고 실험한 다음 결국은 파기할 수 있도록 복제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연구 단체들의 집요한 요구이다. 이러한 사태는 생명의 존엄과 인간 출산의 존엄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가정의 근본적인 역할과 가치에 대한 개개인과 인류 전체의 인식을 심각히 약화시키고 있다.


I. 복제, 현대 생물학에 열린 가능성


‘복제’라는 말은 흔히 생물학에서 식물이나 동물의 세포와 미생물을 재생하는 데에 사용되는 기술을 말하며, 더욱 최근에는, 체계적으로 분류된 광범위한 핵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디옥시리보 핵산) 조각과 같은 생물학적 재료에 담겨 있는 유전 정보 배열을 재생하는 기술까지 포함한다. 복제 기술의 본질을 더욱 잘 파악하려면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하여 보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복제는 그 목적으로 볼 때, 재생을 위한 기술적인 절차이다. 이러한 재생을 통하여 (식물이나 동물의) 세포나 유기체의 유전 재료를 조작하여 본래의 것과 동일한 하나의 개체나 여러 개체를 얻는다. 복제가 비슷한 다른 기술과 다른 점은 성적인 결합 없이(무성 생식), 그리고 수정이나 배우자(配偶者) 결합 없이(무배우자 생식) 생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제는 핵 유전 형질을 제공한 제공자와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개체 집단을 만들어 내게 된다.

복제로 얻은 개체들은 복제 생물(클론)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각각의 모든 개체가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개체들은 그들의 원종(原種)에게서 내려오는 후손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 개체들의 원종의 유전적 성적 결합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3) 따라서 복제는 ─ (유성 생식하는) 동물의 종(種)에서 ─ 자연 수정이나 배우자(생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하는 세포) 결합을 인위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재생으로서, 이점도 있지만 결점과 위험도 따른다.

복제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고려할 때, 지극히 엄밀한 의미에서 ‘복제’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이른바 ‘핵 이식’으로 얻는 재생을 의미한다.4)

과학자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복제를 언급할 때, 그들이 말하는 복제는 일반적으로 핵 이식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제하고자 하는 개체의 체세포에서 추출한 세포핵이나 체세포 자체를 세포핵이 제거된 난세포, 다시 말해 모계 게놈이 없는 난세포와 ‘융합’시킴으로써 이른바 수정을 대체한다. 체세포의 세포핵은 유전 형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얻는 개체는 변이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핵 제공자와 똑같은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이처럼 핵 제공자와 본질적으로 유전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새 개체에서 핵 제공자의 체세포 복제나 복사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5)

핵 이식과 유사한 면이 있는 무성 생식과 무배우자 생식과 같은 더욱 광범위하고 적절치 못한 기술도 그 결과로 유전적으로 동일한 후손을 얻기 때문에 역시 ‘복제’(또는 반[半]복제나 다른 비슷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인위적인 단성(單性) 생식이나6) 배아 분열과7) 같은 기술이 여기에 해당된다.

인간이 아닌 종(種)의 표본을 (후손을 얻기 위하여) 복제하거나 생물학적 재료들을 (다양한 용도로 쓰려고) 복제하는 것은, 그러한 복제가 책임 있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윤리적으로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일찍이 고대부터 원예학에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더욱이 장점이 상당히 많은 이러한 기술에 윤리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물학에서도 복제 기술을 활용한다면 물론 매우 유익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축 번식 방법의 개선, 특정 종류의 육류 생산 비용의 절감, 멸종해 가는 종(種)의 보존을 위한 복제 기술의 활용, 약리학 실험과 연구 조건의 개선 등 이 모든 것이 복제 기술을 동물의 종(種)에 활용함으로써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복제 기술은 아직 시험 단계에 있으며 그 결과를 신중하게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복제 기술이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거나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위험한 유전적 변형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은가? 중장기적으로 볼 때 복제 기술이 생태학에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복제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의존이 새로운 질병과 기형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은가?


II. ‘출산’ 또는 ‘치료’를 위한 인간 복제


현재, 복제 기술을 적용하여 인간을 ‘생산’하고, 연구 목적과 때에 따라서는 의학적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중 매체, 공상 과학 소설, 특정 유형의 대중 문학 등은, 복제가 현재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복제에 대한 그릇된 기대를 갖게 하는 데에 일조해 왔다. 그러나 어쨌든, 복제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할 목적으로 (과학적으로 다소 정확한) 연구와 가설들이 발전해 온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실이 공동선에 특별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 당국의 관심을 끌어 왔다.

오늘날 분명해지고 있듯이, 인간 배아 복제 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 곧 ‘출산’을 위한 복제와 ‘치료’를 위한(또는 학문 연구를 위한) 복제가 특히 두드러진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복제가 의도하는 목적에서 나타난다. ‘출산’을 위한 복제는 자궁 내 착상을 통한 배아의 완전한 발달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치료’ 목적의 복제는 착상 이전 단계에서 치료 목적으로 연구에 배아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복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후손을 얻기 위해서이며, 더욱 효과적으로 출산을 도와주는 기술을 개발하여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특정 부부들에게 더 크고 더 좋은 적용 가능성을 주려는 것이다(‘출산’을 위한 복제).

2. 복제 기술을 통하여 ‘합성’ 배아나 ‘세포군’이라고 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며(최초 단계에서 인간 배아의 모든 세포는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가 가능한8) 다기능9) 만능 세포이다.), 또 결과적으로 모태 안에 배아를 착상시키지 않고도 줄기 세포들을 추출한다.10) 추출된 줄기 세포들은, 정확히 확인을 해 보면, 신경 세포, 심장 세포, 근육 세포, 간장 세포와 같은 구체적인 세포들로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치료’ 목적의 복제 또는 학문 연구 목적의 복제).


III. 전 세계적으로 모든 인간 복제를
동시에 금지하려는 움직임


인간의 출산 영역에 과학을 적용하는 문제는 명백히 과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도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얼마 전부터 과학의 정당한 발전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그 적용의 윤리적 법적 한계를 단호하게 규정짓고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영국에서처럼) 연구와 치료 목적이라는 조건으로 지금까지 인간 복제에 대한 연구를 허용해 왔던 일부 국가에서도, 최근 ‘출산’ 목적의 인간 복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모든 종류의 복제가 금지되어 왔거나(독일), 모든 종류의 복제를 금지할 목적으로 의회 법안이 제출되어 왔다(미국).11)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높아지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제법 도구를 통해서도, 인간 복제를 금지하려는 노력들이 배가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출산을 위한 인간 복제를 금지한 결정이었다. 1993년 이래, 국제 생명 윤리 위원회가12) 이 문제에 관여하여 왔다. 유네스코(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총회가 승인하고, 1998년에 국제 연합 총회에서 채택한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세계 선언’은 출산 목적을 위한 복제가 인간 존엄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있다.13)

제56차 국제 연합 정기 총회(2001년 12월 12일)에서는 국제법과 구체적으로는 국제 협정을 통해서 복제를 금지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설치하여 활동을 확대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14) 처음에는 출산을 위한 복제 금지만이 고려되었지만, 2001년 8월에 독일과 프랑스가 코피 아난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게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인간 복제를 금지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하도록 요청하였다. 2001년 말에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일본, 브라질, 남아프리카를 포함한 24개국에서 출산을 목적으로 한 인간 복제가 금지되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국제 정세와 일부 국가의 움직임은 출산을 위한 복제의 금지(부분 금지)뿐만 아니라, 출산 목적과 연구와 치료 목적의 복제를 다 함께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금지하는 것(완전 금지)에 찬성하고 있으며, 이는 복제에 반대하는 국제 협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진행 중인 작업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15)

이와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복제를 완전히 금지하는 2003년 2월 27일자 미국법(현재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복제를 (지금처럼 부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금지하는 국제 활동을 장려하는 2003년 2월 7일자 독일 연방 의회 결의안, 복제를 완전히 금지하도록 할 생물의학법 개정을 위한 2003년 1월 30일자 프랑스 안(아직 논의 중이다.), 2003년 4월 10일자 유럽 의회의 복제 전면 금지 청원서(현재 유럽 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이 모든 움직임은 단순히 출산 목적의 복제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복제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몇 년 전의 분위기와는 다른 오늘날의 이러한 국제 분위기는 미국과 스페인이 후원하여 국제 연합에 상정된 안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 안의 목적은 모든 복제를 완전히 금지하는 국제 협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도 복제의 완전 금지를 목표로 삼았던 국제 협정들이 있었다. 파리 협정(1997년 1월 12일) 이후, 유럽 회의 차원에서 복제 반대 협정을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유럽 의회는 유럽 회의가 상정한 ‘모든 형태의 인간 복제에 대한 명시적 금지’안을 받아들이고 채택하였으며, 그 사이에 유럽 의회는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과 의사들에게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인간 복제 금지령이 시행되기 이전에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복제에 간여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16) ‘오비에도 협정’(Oviedo Convention)으로도 알려진 인권과 생물 공학 관련 유럽 협정과 그것에 첨부된 인간 복제 금지에 관한 의정서는 이러한 활동의 결실이며, 구체적으로 “연구 목적을 위한 인간 배아 생산”(제18조 1항)을 금지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미 1999년부터 ‘오비에도 협정’을 승인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의회는 2001년 11월 22일, 이번에는 모든 종류의 인간 복제를 전 세계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또 다른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생명 공학에 대한 보고서를 수정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유럽 의회는 “모든 성장 또는 발달 단계의 인간 복제에 대한 국제 연합 차원의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금지가 있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되풀이한다.” 이어서 유럽 의회는 유럽 위원회와 유럽 의회 소속 국가들에게 이러한 방향의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2002년 4월과 2003년 2월의 투표에서 드러났듯이, 의원들은 배아에서 줄기 세포를 추출하려는 목적의 복제를 금지하는 것에 찬성하였다. 독일 연방 의회는(2003년 2월) 독일 정부에 국제 연합에서 독일의 태도를 바꾸어 복제 완전 금지를 선택할 것을 요청하였다. 살아 있는 인간 배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출산 목적의 복제와 치료 목적의 복제 사이에 도덕상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복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IV. 출산 목적이든 치료 목적이든 인간 복제를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 바탕에는 매우 심각한 이유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면적으로 동시에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안을 도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은 이러한 염려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복제 계획들이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러한 계획들은 광범위한 집단(과학자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수 많은 환자들, 의사 협회 등)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가운데는 물론 다른 것들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있지만, 기술적 윤리적인 고려와 인간학적 이유에서 복제를 반대하는 의견들을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1. 출산 목적의 복제

출산을 목적으로 인간을 복제하려는 시도들과 관련하여 예상할 수 있는 학문적 장애만 하더라도 매우 심각해서, 많은 전문가가 이와 관련된 실제의 연구 계획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하여 강한 의구심을 나타낼 정도이다. 최근에 다소 놀랄 만한 소식이 언론에서 보도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아무 의심 없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제로 과학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다. 더 나아가, 그러한 시도들이 앞으로 성공할 것 같아 보이더라도, 질병이나 유전적 결함, 또는 기형 등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매우 심각한 위험을 고려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핵 이식 기술은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배아를 만들어 낸 것 말고는 별다른 결실이 없다.17) 드물게 출산에 성공한 경우에도, 동물들은 흔히 질병에 시달리고 때로는 갖가지 괴물 같은 기형이 태어나, 조기 사망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18) 이것은 핵 이식의 유전자 ‘재프로그래밍’의 결함 때문인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출산’을 목적으로 한 복제를 인간에게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각한 위험이 따르며, 사망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19)

출산 목적의 복제가 지니는 부도덕성이 실제의 기술적 상황에서부터 예상된다면, 출산 목적의 인간 복제에 대한 윤리적 장벽은 그 자체가 넘을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의 윤리적 상식과 명백히 모순된다.20)

1980년대에 이미 철학자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인간 복제로 제기될 윤리적 문제점들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복제는 요나스가 말하는 ‘무지의 권리’의 상실을 뜻한다. 무지의 권리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복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주관적 권리이며, 미래에 펼쳐질 상황들(예를 들어, 미래의 질병이나 심리 발달,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의 순간 등)을 몰라도 될 개인의 권리를 말한다. 요나스가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무지’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 자유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이고, 무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성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것과 같다. 복제 인간은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의 복제품이라는 것을 앎으로써 잔인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불확실성은 자유롭게 선택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요나스에 따르면,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복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모든 행동과 질병을 예상할 것이고, 자신을 자신의 ‘원종’(原種)과 분리시키고자 끊임없이 절망적으로 노력하며 자신의 미래의 심리적 태도를 바꾸고자 할 것이다. 복제 인간에게 ‘원종’은 언제 어디에나 따라다니는 그림자이고 모형이며, 또 그가 따르거나 피하지 않으면 안 될 궤도가 될 것이다. 복제 인간에게 ‘복사품이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과 자기 존재, 자의식의 본질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삶을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발견으로, 기본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발견으로 살아야 할 인간의 권리는 상처받게 될 것이다.21) 결과적으로 복제 인간의 인생길은 비인간적이고 인간 소외적인 ‘제어 프로그램’을 힘겹게 실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요나스가 생각하듯이 복제 ‘방법’이야말로 “가장 전제적인 동시에 타인을 예속화하는 형태의 유전자 조작이다. 복제의 목적은 모든 유전 형질을 임의로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임의로 고착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22)

인종을 ‘개량’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특성만을 선택하고자 (출산 목적이든 치료 목적이든) 복제를 우생학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은 (그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3월 12일자 복제에 대한 결의안에서 유럽 의회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는 어떠한 국가 사회도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 복제를 정당화하거나 용인하여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다. 실험이 목적이든, 불임 치료가 목적이든, 조직 이식을 위한 사전 진단이 목적이든, 그 어떤 목적에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 복제는 인간 종(種)에 대하여 우생학적 그리고 인종 차별적인 선별을 허용함으로써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인간 평등의 원칙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인간 복제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공격이며, 나아가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B). 1998년 1월 15일자 인간 복제에 대한 두 번째 결의안에서 유럽 의회는 진단이나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한 실험에서도 인간 복제를 금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인간 복제를 ‘반윤리적’이며 ‘부도덕’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B).

2. 치료 목적의 복제

치료 목적의 인간 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간 복제는 현대 의학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들에 대한 치유책으로서 유전적 치료에 도움을 줄 돌파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또한 기본적으로 복제 자체의 도덕적 성격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출산 목적의 복제와 치료 목적의 복제 사이에는 긴밀하고 객관적인 연속성이 있다. 이 두 가지 복제에서 모두 인간 배아가 ‘생산되지만’, 치료 목적의 복제는 치료에 사용하려고 배아 줄기 세포나 생물학적 재료를 추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배아를 파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치료 목적의 복제의 기술적 측면을 둘러싸고 많은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복제가 배아 줄기 세포의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배아 줄기 세포는 분화되지 않았고, 또 그 풍부한 ‘적응성’ 때문에 생물학적 관점에서 관심을 끌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제된 배아의 불안정한 상태나, 배아 줄기 세포를 공급받을 환자에게서 갖가지 신생물(新生物: 암과 종양)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충분히 고려하지는 않는다. 많은 연구원들이 성체 줄기 세포 연구가 배아 줄기 세포의 활용에 따르는 윤리적 제약 없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23)

다른 한편, 이러한 배아 줄기 세포들의 면역 거부 반응이 일으킬 여러 가지 실질적인 어려움들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인간 복제가 그러한 연구에서 정당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더욱더 약화시킨다. 배아를 복제함으로써 배아 줄기 세포의 면역 거부 반응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 배아를 극도로 착취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몽포트(Elisabeth Monfort)가 강조하듯이 “배아 줄기 세포의 활용은 조직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하여 반드시 치료 목적의 복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복제는 거부하면서 배아 줄기 세포의 활용은 받아들이는 것은 …… 아직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자 의도된 무책임하고 위선적이기까지 한 태도임이 확실하다.”24)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한 치료 목적의 복제는 배아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배아를 조작하고 뒤이어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성장 단계에 있든 인간을 여분의 ‘재료’의 저장소나, ‘예비 부품’처럼 조직과 장기의 공급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복제를 통하여 생산하고 조작하며 파괴하는 것이 ‘사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복제의 도덕적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직시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복제 인간을 생산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배아의 처지에 서 보는 것이다(우리도 한때 배아였다). 우리는 물론 부모의 결합으로 생긴 열매이기를 바라지 실험실에서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또 ‘결함이 있다.’고 버려지는 수십 수백의 우리 쌍둥이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예를 들어 신장과 같은) ‘부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계획되는 것도, 또한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생산되는’ 고통스러운 탄생 뒤에 곧장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더욱더 내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세포 치료를 위한 줄기 세포의 활용은 오늘날 매우 흥미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여러 가지 유익한 일련의 연구들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위한 배아 줄기 세포의 (그리고 결과적으로 배아 줄기 세포를 얻으려는 치료 목적의 복제의) 활용은 신뢰할 수 없고 까다로우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과학적 절차임이 입증되어 왔다. 반면에, 윤리적 관점에서나 기술적 관점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성체 줄기 세포에 관한 연구가 당당하고 책임 있게 이루어지고 윤리 기준에도 맞는다면, 그것은 계속 밀고 나가야 할 길이며 특별한 윤리적 반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미래의 희망이다.25)

3. 인간 복제를 반대하는 기술적, 윤리적, 인간학적 이유

복제의 부도덕성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게 하는 일부 주장들은 ‘출산 목적’의 복제와 ‘치료 목적’의 복제 사이에 윤리적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주장들은 인간 배아의 존재론적 존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합리적 윤리적 측면들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이면서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측면들은 상호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복잡한 문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배아의 인간학적 윤리적 지위와도 관련이 있다. 26)

가. 얻어진 배아도 인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반박할 수 없는 가능성

출산을 위해서든 치료와 연구를 위해서든, 복제를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얻는 것은 대신 수많은 다른 배아를 파기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복제 양 돌리를 얻기 위하여 수백 개의 배아가 ‘버려졌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복제 기술에 수반되는 질병이나 기형을 유전시킬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치료 목적’의 복제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배아 줄기 세포들을 얻으려면 배아의 생산(과 뒤이은 파기)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많은 연구원 스스로가 더 이상 배아를 ‘세포들의 축적물’이라고 정의하려고 고집하지 않는다. ‘세포들의 축적물’이란 용어는 배아가 제기하는 인간학적 문제, 결과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회피하려고 만들어 낸 말이다. 사실 연구원들은 복제 기술이 이른바 ‘초기 배아’, 곧 시작 단계의 배아를 생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곧 이 배아는 무엇인가? 배아의 윤리적 법률적 지위는 무엇인가? 이 의문은 그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인간 배아의 지위는 무엇인가?

인간은 임신[受精]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인격체로 대우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 배아의 정체성과 지위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생명 공학의 발달로 제기되는 문제들 때문에, 태아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적 의무를 공식화하는 것이 매우 절실해졌다.”27)

‘전(前) 배아’라는 표현은 바로 배아의 지위와 관련한 중요한 인간학적 윤리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28)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문제는 시작 단계의 배아가 개인적 특성도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작 단계의 배아는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직은 그 안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인간 개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배아(여기서는 이른바 ‘전[前] 배아’를 일컫는다.)는 하나의 존재이다. 이 ‘존재’라는 말은 실존하는, 살아 있는 실재를 의미한다. 곧 그 자체로 생물학적 발달이 가능하고, 분화되어 있으며, 그 자신의 생존과 자율적인 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적절하고 필수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다(배아는 그 자체 안에 성장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특히 배아는 자신의 생명과 무관한 ‘역할’은 전혀 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하여 발달한다. 세포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세포의 발달은 그 세포가 이루는 전체의 발달 가운데 일부분이다. 반면, 배아는 어떤 전체의 한 부분이 아니다. 배아는 모체의 (생물학적) 생명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실험실에서 배아를 ‘재생산한다’ 하더라도, 배아를 여성의 자궁 안에 착상시켜 출생까지 이어지는 생물학적 주기를 지속시키거나, 또는 이와 동일한 목적으로 임신 기간이 끝날 때가지 배아를 실험실에 두지 않는다면, 생산된 배아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다. 한편, 생산된 배아를 이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배아가 ‘버려지고’ ‘파기되며’ 말 그대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이러한 말들은 모두 같은 뜻이다.29)

사실, 배아와 관련된 질문을 인간학적 윤리적으로 명확히 하려면,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윤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 질문이 하나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야 한다. 그것은 곧 ‘무엇이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는 그렇게 생겨난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복제 기술의 산물인 인간일 수 있다는(현재의 어떤 연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동물인지 인간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그림자를 보고 총을 쏜 사람은 살인죄를 범한 것이 분명하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그는 그 그림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여야 할 도덕적이고도 엄중한 의무가 있다. 인간 배아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해서 생명의 첫 단계에 있는 배아를 생산하고 파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 관행에서는 이 윤리 원칙이 무너진 것 같다.

나. 인간 배아의 존엄

수정의 결과 ‘접합체’로 불리는, 새로우면서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가 가능하며, 단세포로 되어 있는 생물학적 개체가 생겨난다. 복제는 수정의 결과와 전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유전적인 문제가 있지만, 복제가 접합체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러므로 수정과 복제 사이에 밀접한 유사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복제를 통하여 얻은 배아에게 부여하는 권리가 인공 수정으로 얻은 배아에게 부여하는 권리, 그리고 더욱 정당하게는 인간의 수정이라는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서 얻는 모든 배아에 부여하는 권리와 똑같을 수는 없다고 주장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 또한 주목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배아 세포 구조가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때, 이들 배아들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어디 있겠는가?

배아의 발달은 인간 개체의 첫 단계이다. 안젤로 세라 신부는, C.H. 와딩톤이 ‘일종의 선행 단계들의 지속적인 출현’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 인간의 점진적인 과정을 특징짓는 세 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다시 말하여 1) 통합: “배우자 융합 또는 ‘배우자 결합’에서부터 14일째나 그 후에 배반엽이 출현하기까지의 배아 발달은 새로운 게놈의 통제 아래 분자와 세포 활동의 연속적인 통합과 상호 활동을 보여 주는 과정이다.” 이러한 특성은 발달하고 있는 주체의 엄격한 단일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한 개체이다. 2) 연속성: 배우자 결합으로 새로운 생명의 주기가 시작된다.30) “모든 것이, 접합체 단계에서 시작되는 엄격하게 규정된 단일 프로그램에 따라서 매우 구체적인 한 인간 개체의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이러한 연속성의 특성은 새 인간의 독자성을 의미하고 확립한다. 3) 점진성: 최종적인 형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재하는 점진적 형성의 법칙 때문에 접합체 단계에서부터 최종 형태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러한 성장을 향해 나아간다. 모든 인간 배아는 고유한 정체성과 개인적 특성 그리고 유일성을 가지고 있다. 배우자 결합으로 생기는 살아 있는 배아는 단지 쓸모 있는 세포들의 축적물이 아니라, 발달하고 있는 실제의 한 인간 개체이다. 그렇다. 생겨난 바로 그 순간부터 배아는 한 명의 아기인 것이다! 배아는 한 인간 개체이다. 전(前) 배아라는 말을 마구 쓰는 것은 양심을 속이고, 착상이 끝날 때까지, 말하자면, 사람의 경우 수정이 일어난 지 약 14일까지 실험을 허용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이런 식으로, 수정 후 첫 두 주 동안 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리한 결론이 내려졌던 것이다.31)

다. 배아는 단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출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든 배아에서 배아 줄기 세포를 얻기 위한 것이든) 복제를 통하여 얻은 발달 초기 배아의 인간적 지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 배아의 인간학적 윤리적 지위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들 배아의 개별적 특성이 무시되고 이들 배아는 ‘인간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단순히 (소멸 중에 있는) ‘분할된 난세포’가 아닌 배아를 다루고 있다면, 그 배아는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 개체이다. (최초의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며 현재 출산 목적의 인간 복제에는 확고히 반대하지만, 치료 목적의 복제는 분명히 찬성하고 있는) 이안 윌머트 연구원은 “배아가 생겨나면, 자동 조종 장치가 배아의 초기 발달을 책임진다.”고 인정한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배아가 ‘세포 덩어리’라면, 배아가 자체의 ‘자동 조종 장치’를 가지고 있을 리 없고, 배아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명히 입증되고 있는 자율성이나 그 자체의 단일한 목적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수정을 통하여 임신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배아는 즉각적으로 발달을 시작하며 점진적이고 지속적이며 조화롭게 성장하는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모든 배아 세포가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통합하고 협력하는 것은 이러한 성장의 일환이다. 배아는 자체의 게놈 안에 집약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중단 없이 발달하는 유기체이다. 그러므로 외부의 간섭이 없다면 배아는 연속하여 차례로 접합체, 상실배(桑實胚), 배반포(胚盤胞), 착상된 배아, 태아, 아기, 청소년, 성인이 되어 간다.32) 자연적인 수정을 통해서 배아가 이런 식으로 발달한다면, 복제되었다 해서 왜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복제의 결과가 수정의 결과와 같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다. 앞에서 언급한 그릇된 구별, 이른바 ‘전(前) 배아’와 배아를 구분하는 잘못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이러한 구별(복제된 배아와 수정된 배아)은 실제로 배아의 인간적 지위를 인정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33) 복제된 인간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떠한 동물 종(種)에 속한단 말인가? 인간 게놈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여기서 이러한 부인이 담고 있는 모순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그 자체의 유기 조직을 부여받은 인간 개체로 합리적인 인정을 받은 인간 배아는 그 자체의 고유한 존엄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러한 ‘존엄’은 외부에서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스스로 그 존재 안에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배아가 실제로 의식이 없다는 구실로 배아의 인간 존엄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면, 잠들어 있거나 혼수상태인 사람의 존엄 또한 부인되어야 한다. 배아의 존엄이 부인된다면, 아기의 존엄 또한 부인될 수 있다.34)

인간은 경제적, 육체적, 지적 조건에 상관없이 수단이나 대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본 원칙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것은 인간이 부당한 공격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을 때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언젠가는 그 자신도 똑같은 식으로 취급받는 데에 동의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 배아의 생산과 파기를 통하여 얻은 줄기 세포를 치료에 활용하는 것이 분명히 입증된다 하더라도(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도덕과 상식,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반대할 것이다.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악을 행할 수는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명제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준다. 철학자 J. 산타야나가 말하였듯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되풀이하도록 되어 있다.”

라. 배아의 인격

그러므로 인간 복제의 도덕적인 평가는 본질적으로 복제의 목적이나 목표에 달려 있지, 근본적으로 그러한 복제 기술을 사용하는 주관적인 목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복제 기술로 생산된 것의 인간적 본질에 대한 불확실성 자체가 그것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의무를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을 생산하지 않아야 할 엄격한 도덕적 의무 외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얻은 배아들을 그들의 인간 존엄에 걸맞게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배아들이 처음에는 조작되고 파기되지만 그래도 인간이라고 주장할 만한 여러 가지 중대한 이유가 있다.

마. 세포 핵 치환으로 만들어진(이른바 ‘치료 목적’의 복제) 배아의 생산과 뒤이은 파기가 지닌 비인간성

이른바 ‘치료 목적의 복제’의 찬성론자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출산 목적’의 복제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 배아를 발달 초기에 파기하는 것이라고 늘 주장한다. (출판물과 대중 매체, 정치 연설 등을 통하여 널리 보도된)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출산 목적의 복제는 윤리에 어긋나지만, 치료 목적의 복제는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출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간 복제는 부도덕한 방법을 통한 인위적인 출산이라고 판단하여야 한다.35) ‘치료 목적의 복제’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고의적으로 중단된다. 인간 배아를 임의로 만들고, 거기에서 배아 줄기 세포를 추출하기 위하여 그것을 곧 파괴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과정은 더 나쁘다. 치료 목적의 복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종(種)과 다른 종들이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P. Singer). 다른 인간 생명을 치료하기 위하여 다른 한 인간 생명을 죽일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은 특별히 종교적인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논증과 논거의 힘, 이치에 맞는 인간학과 인간 중심의 생명 윤리의 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바. 인간 복제는 생명과 출산의 존엄에 위배된다

배아를 만든 다음, 그것을 자궁에 착상시키거나(출산 목적) 배아의 줄기 세포를 추출한 다음 배아를 파기할(치료 또는 연구 목적의 복제) 목적으로 복제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과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권리와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 생명과 성(性)과 출산의 도덕적 가치에도 위배된다. 인간의 성이 출산을 지향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부수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며, 출산을 바라는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인 성향으로 드러난다. 반면 복제 기술은 인간의 성에 내포된 출산의 측면을 성의 결합적 측면과 분리시키기 때문에 성과 출산의 존엄에 위배된다.

복제 기술은 그 자체가 언제나 ‘출산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경험들 또한 인간 복제가 엄청난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여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문제는 인간 생명의 존엄과 배아를 이기적으로 이용한 다음 결국 파기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특수한 방식, 엄밀히 말해 성적인 방식과도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출산은 나름의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복제 기술은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

사. 인간 배아의 복제는 가정의 존엄에 위배된다

흔히 간과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윤리적 요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생명으로 열려 있는 인간의 성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부부애의 실재 안에 성과 출산이 조화롭게 융합된다는 맥락에서 볼 때, 인간 안에서 성과 출산의 역동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혼인 안에서 사랑과 책임이 생명 개방으로 모아지며, 이는 부모가 최대한의 관심으로 자녀를 보살피는 교육 임무를 통하여 지속된다.

인간 복제는 이러한 전체적인 역동성을 단절시킨다. 복제에서는 생명이 가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요소로 보인다. 말하자면 배아는 성뿐만 아니라 혈통과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간은 ─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 부모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태어나고,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선물로 받아들여지고 양육받을 권리가 있다. 임신된 인간을 조작하고 배아를 마음대로 실험한 다음, 일단 원하는 세포나 생물학적 지식을 얻고 나면 곧장 파기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때,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식과 어머니, 아버지 관계의 개념이며 가정의 개념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V. 결 론


최근의 과학 발달은 인간 복제가, 많은 기술적 어려움과 윤리적 인간학적으로 거센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 복제는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있다. 법률이나 국제 협정들을 통하여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고 복제야말로 인간에 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는 다양한 노력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진보와 과학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중대하고 분별력 있는 윤리적 동기와, 인간과 성과 가정에 대한 명확히 정의된 인간학적 개념이다. 국가 당국과 의회, 국제단체들은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여야 한다. 이는 인류의 미래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건강, 행복을 증진하려는 노력과 과학 연구의 존엄성 수호를 위해서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위대한 인류 가족을 구성하는 민족들의 공동체가 적절한 수단을 채택하는 것을 정당화해 준다.
 


교황청 가정평의회
의장 알폰소 로페즈 트루히요 추기경

 

<원문 Cloning: The Disappearance of Direct Parenthood and Denial of The Family>

 

1.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지침들을 실행함으로써 가정 사목과 가정과 관련된 특수 사도직에 대한 사목을 증진할 임무가 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 가정이 그 소명인 교육과 복음화, 사도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 나)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가정 문제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에 전념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이 교리교육을 통하여 그리고 학문적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하게 알려지고 올바르게 제시될 수 있도록 한다.  …… 다)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책임 있는 부모 됨의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사목 활동을 증진하고 조정한다. …… 마)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임신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전 생애에 걸쳐 인간 생명의 수호를 위한 노력들을 권장하고 뒷받침하고 조정한다. 바)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신학과 사목 등) 전문화된 학문 연구소들의 활동을 통하여, 가정 관련 주제들에 관한 신학과 인문 과학을 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연구들을 장려함으로써, 선의의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요한 바오로 2세, 자의 교서 Familia a Deo Instituta, 1981.3.9., 3, V,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bvatore Romano], 영어판, 1981.6.1., 1.10면).
2.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 1987.2.22., II. 부부 간 인공 수정, 4, (3),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영어판, 1987.3.16., 6면.
3. 영국의 유전학자이며 생리학자인 J.B.S. 홀데인이 사용하였던 ‘복제 생물’이라는 말은(Biological Possibilities for the Human Species of the Next Ten-Thousand Years, 1963), 본래 식물학에서 유래하였다. 곧 “무성 생식의 방법을 통하여, 다시 말해 성(性)의 개입 없이 하나의 동일한 원종(原種)에서 유래한 유기체군(群)”을 말한다(Herbert John Webber, 1903).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 ‘colonia, coloniae’(동사는 ‘colo, is, colui, coltum’)이며 이것은 또 ‘이식할 새싹’을 뜻하는 그리스어 ‘klwn, klwnV’(klon, klon쉝)에서 나왔으며, 가지 일부를 꺾꽂이함으로써 번식이 가능한 장미 덤불과 같은 일부 식물의 자연적인 무성 생식을 통한 번식을 암시한다. H.J. Weber, New Horticultural and Agricultural Terms, Science 28(1903), pp. 501-503; A.A. Diamandopoulos and P.C. Goudas, Cloning’s not a new idea:  the Greeks had a word for it centuries ago, in Nature 6815/408, 2000.12.21-28, 905면 참조.
4. 러브 (J. Loeb)는 1894년에 성게의 단성(單性) 생식을 인위적으로 유도하였는데, 1914년 도롱뇽 세포에 핵을 이식하는 작업에 성공한 사람은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인 슈페만(H. Spemann)으로서, 1938년 포유동물 세포에 핵을 이식하는 작업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 이 기술은 시간이 가면서 상당히 발전하여 1981년에는 쥐를 대상으로, 1986년에는 양과 소를 대상으로 한 핵 이식 작업에 성공하였다. 1997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안 윌머트는 세계 최초로 유명한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5. 교황청 생명학술원, 「인간 복제에 관한 성찰」(Riflessioni sulla Clonazione), 1997.7.1.,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97.7.9., 10면. D. Tettamanzi, ed. M Doldi, “Cloning”, Dizionario di Bioetica, Casale Monferrato: Piemme, 2002.; L. Ciccone, Bioetica. Storia, Principi, Questioni, Milan: Ares, 2003, 143-176면; I. Wilmut et al., Viable offspring derived from fetal and adult mammalian cells, in Nature 385(997), 810-813면 참조.
6. 자연적 단성(單性) 생식은 수컷 생식체(정자)의 개입 없이 암컷 생식체(난모 세포)에서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 현상은 사전 수정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배아를 생산하는 암컷이나(포유동물이 아닌, 일부 무척추 동물의 종[種]에서), (서로 다른 종[種]의) 이종 교배를 통하여 생겨난 생물학적 개체에서 일어난다. 재결합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은 단일 원종(原種)의 동일한 복제품, 곧 자연 복제 생물이다.
7. 배아 분열은 배아에서 몇몇 세포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똑같은 유전 형질을 완비한 채 결과적으로 분리된 세포 하나하나에서 이런 식으로 하나의 완전한 성체가 발달한다.
 8. 세포의 분화 전능성은, (상황이 만족스러운 경우) 개체의 발달을 포함하여, 완전한 유기체의 모든 세포와 조직을 생성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모든 배아 세포는 수정 뒤 며칠 동안은 어느 조직으로도 분화가 가능하다. 동형 접합체 발생(일란성 쌍둥이 현상)은 초기 발달 단계의 배아를 구성하는 분화 전능성 세포들의 우연한 배아 분열의 결과이다.
 9. 세포의 다기능성은, 유기체의 모든 부분이나 각 부분 또는 완전한 개체가 아니라 부분들을 이루는 분화된 세포들과 조직을 생성하는 세포의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인간의 다기능성은 각각의 배아층, 곧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에서 나오는 세포주(株)와 분화된 조직을 생성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줄기 세포는 분화되지 않은 세포로서, 무한한 수의 똑같은 복사품을 만들 수 있다.
10. 줄기 세포는 심근, 뇌나 간 조직, 골수 등과 같은 유기체 조직의 분화된 세포들을 생산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줄기 세포를 시험관 안에서 무한대로 살아 있게 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분화된 세포들을 생산하는 법도 알기 시작하였다.
11. 미국 하원 의회, HR 534, 2003.2. 참조.
12. 이것은 유네스코(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안에 설립된 국제 연합 기관이다.
13. 결의안(Resolution) 53/192 참조.
14. 출산 목적의 인간 복제에 반대하는 국제 협정 특별 위원회.
15. “치료 목적의 복제도 금지하지 않는다면,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 복제의 효력을 억제하기 어렵다. …… 부분적인 금지는 출산을 목적으로 한 은밀한 복제를 성행하게 하고 난세포의 불법 거래를 부추길 수도 있다. …… 법적인 예방 원칙은 가장 힘없는 편(이 경우에는 인간 배아이다.)에 대한 보호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 동물 복제를 통하여 축적된 경험은 복제에 사용된 기술들을 신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배아의 불구와 기형의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드러내 왔다. …… 인간 복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과학의 진보나 유전 연구의 발전을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복제는 재생 의학의 발전을 위한 유일한 연구 방법이 아니다. …… 성체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를 전반적으로 인정한다면, 성체 줄기 세포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효율성을 입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Memorandum Contro la Clonazione Terapuetica in Spanish Delegation to the United Nations, 2002.2.).
16. 1997년 3월 12일자 유럽 의회 결의안, 2항과 11항.
17. 복제 양 돌리의 ‘아버지’ 이안 윌머트는 루돌프 제니스와 함께 미국 상원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8. 이에 관한 학술 참고서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서적들을 보라. D. Humpherys, K. Eggan, H. Akutsu, K. Ochedlinger, W.M. Rideout, D. Biniszkiewicz, R. Yanagimachi, R. Jaenisch, Epigenic Instability in ES Cells and Cloned Mice, in Science 293(5527), 2000.7.6., pp. 95-97; D. Bourchis, D. Le Bourhis, D. Patin, A. Niveleau, P. Comizzoli, J.-P. Renard, E. Viegas-Péquignot, Delayed and incomplete reprogramming of chromosome methylation patterns in bovine cloned embryos, in Current Biology, 2001.10.2., Vol. 11, n. 19; Y-K. Kang, D-B Koo, J-S. Park, Y-H. Choi, A-S. Chung, K-K. Lewe, Y-M. Han, Aberrant methylation of donor genome in cloned bovine embryos, in Nature Genetics, 2001.6., Vol. 28,  n. 2, 173-177면.
19. ‘출산’ 목적의 복제에 대한 이러한 의견은 ‘치료’ 목적의 복제에 대한 반대와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있다. 복제된 배아에서 얻은 줄기 세포를 임상 분야에서 출산 목적의 복제에 활용하는 것은, 줄잡아 말하더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미덥지 못하다. 이들 배아의 세포들은 심각한 유전적 결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비정상적인 배아 줄기 세포를 인간에게 이식하려는 계획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20. 앨빈 토플러의 저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 1970)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기상천외한 미래의 인간상을 묘사하며(“인간은 자기 자신을 생물학적으로 복사할 수 있을 것이다.”), 복제 기술이 가져올 미래상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따른 염려를 학문적으로 성찰한다. Lee M. Silver, What are clones? They’re not what you think they are, in Nature, 2001.7.5, Vol. 412, n. 6842, 21면 참조.
21. Hans Jonas, Das Prinzip Verantwortung(The Main Responsibility), ed.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84 참조.
22. Hans Jonas, Cloniamo un uomo: dall’eugenetica all’ingegneria genetica, in Technica, Medicina ed Etica, ed. Einaudi Turin, 1997, 136면.
23. Natalía López Moratalla, Las células adultas llevan clara ventaja a las embrionarias, in Palabra, 2002.12. 참조.
24. Elisabeth Montfort, La bioéthique, entre confusion et responsabilité, in AAVV(under the direction of Elisabeth Montfort, Bioéthique. Entre confusion et responsabilité. Actes du Colloque de Paris. Assemblée nationale, 2001.10.1., Three-monthly review), in Liberté politique, ed. Francois-Xavier de Guibert, Paris, 2003, 27-28면.
25. 교황청 생명학술원, 「인간 배아 줄기 세포의 생산과 과학적 치료적 활용에 관한 선언」(Dichiarazione sulla produzione e sull’uso scientifico e terapeutico delle cellule staminale), 2000.8.25. 참조.
26. D. Tettamanzi, Nuova bioetica cristiana, Casale Monferrato: Piemme, 2000, 235-268면; L. Ciccone, Bioetica. Storia, Principi, Questioni, Milan: Ares, 2003, 61-80면; R.C. Barra, Status giuridico dell’embrione umano, in Lexicon. Famiglia, vita e questioni etiche, Bologna: EDB, 2003; E. Sgreccia, Manuale di Bioetica, Vol.I, in Vita e pensiero, Milan, 1998, 361-422면; C. Caffarra, Il problema morale dell’aborto, in AAVV(ed. A. Fiori-E. Sgreccia),    in L’aborto, Vita e pensiero, Milan, 1975, 313-320면 참조.
27. I. Carrasco de Paula, Il rispetto dovuto all’embrione umano:  prospettiva storico-dottrinale, in Pontifical Academy for Life, Identitá e statuto dell’embrione umano, Libr. ed. Vaticana, 1988, 31면.
28. ‘전(前) 배아’라는 표현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인데다가 낙태를 지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A. Serra, Lo stato biologico dell’embrione umano. Quando comincia l’essere umano?, in Pontfical Academy for Life, Commento interdisciplinare all’ Evangelium Vitae, Libr. ed. Vaticana, 1997 참조.
29. R.C. Barra, Status giuridico dell’embrione umano, in Lexicon. Famiglia, vita e questioni etiche, Bologna: EDB, 2003 참조.
30. ‘배우자 합체’는 형성된 두 개의 생식핵의 염색체 내용을 결합시킬 목적으로,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시작되는 과정인 수정의 한 부분을 의미한다(amfimixis).
31. Angelo Serra, L’uomo-embrione. Il grande misconosciuto, ed Cantagalli, Siena, 2003, 41-52면 참조. 또한 ‘인간 배아의 존엄’과 ‘배아 선택과 감수 분열’이라는 항목은 Lexicon. Termini ambigui e discussi su famigia, vita e questioni etiche, ed. the Pontifical Council for the Family, Bologna: EDB, 2003 참조.
32. 접합체, 상실배(桑實胚), 배반포(胚盤胞) 등과 같은 기술적인 표현들은, 조직학적 생리학적 기준에 따라서, 배아의 발달 단계를 바탕으로 배아를 설명한 것이다.
33. ‘전(前) 배아’라는 현혹적인 개념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워녹 위원회(Warnock Committee)가 만들어낸 말인데,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져 곳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A. Serra, Pari dignit all’embrione umano, in Pontifical Council for the Family, I figli: famiglia e societá nel nuovo Millennio. Atti del Congresso Internazionale Teologico-Pastorale. Vatican City, 2000.10.11-13., Libr. ed. Vaticana, 2001, 313-320면; R. Colombo, La famiglia e gli studi sul genoma umano, op. cit., 321-325면; A. Serra, R. Colombo, Identitá e statuto del’embrione umano: il contributo della biologia, in Pontifical Academy for Life, Identitá e statuto dell’embrione umano, Libr. ed. Vaticana, 1988, 157면; D. Tettamanzi, Nuova bioethica cristiana, Casale Monferato: Piemme, 2000, 235-268면; L. Ciccone, Bioetica. Storia, Principi, Questioni, Milan: Ares, 2003, 61-80면; R. C. Barra, Status giuridico dell’embrione umano, in Lexicon. Famiglia, vita e questioni etiche, Bologna: EDB, 2003; Ph. Caspar, La probélmatique de l’animation de l’embryon. Survoi historique et enjeux dogmatiques, in Nouvelle Revue Thélogique, 1991, n. 123.
34. H.T. 엔젤하트나 P. 싱어와 같은 저자들에 따르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합리성, 양심, 자율성 등이다. H.T. Engelhardt, The Foundations of Bioethic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Manuale di bioetica, Milan: Mondadori, 1991; Practical Eth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L. Palazzani, Il concetto di persona tra bioetica e diritto, Giappichelli: Turin, 1996 참조.
35. 「생명의 선물」, I, 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