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주교회의 문헌
198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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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C 제4차 총회 최종 보고서

□ 아시아 주교회의 □

FABC 제4차 총회 최종 보고서

1986년 9월 16-25일, 일본 도쿄

 

1.0 머리말

1.1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가 11,2) 예수님의 이 기도는 아시아의 심장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외침입니다. ― 아시아는 분열과 갈등의 각축장이며, 착취당하는 세계 시장이며, 고통받는 인류의 대륙입니다. 아시아는 또한 문화의 요람이고 위대한 종교의 발상지이며, 거대하고도 새로운 책임에 눈을 떠가는 대륙입니다.

1.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이 간청은 교회에 대한 소명이요 도전입니다.

1.3 아시아의 참혹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가난과 곤궁, 비참 그 자체가 인간성에 대한 부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아시아는 그 전존재를 해방시켜 주실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23 참조).

1.4 아시아의 가슴 깊숙이 예수님의 부활 신비가 새겨져 있고 현존하며 거듭 소생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고뇌, 죽음과 절망의 암흑에로의 침잠은 부활의 빛―그 희망, 정의, 사랑과 평화, 완전한 해방을 가져옵니다. 아버지께서 이를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믿습니다.

1.5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해방사업의 도구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부르심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하며, 우리는 오늘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신비 위에 그 토대를 둔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하느님의 도구가 되고 아시아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기쁜 소식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2.0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배경

2.1 그러므로, 우리 아시아의 주교들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제4차 총회를 위하여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과 더불어 일본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2.2 평신도들과 함께 모인 우리들의 이 회의는 1970년 마닐라에서 시작하였던 우리들의 공동 여정에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모임은 물론 1974년의 타이뻬이 회의에서, 우리는 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교회의 과업에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였습니다. 1978년 캘커타에서의 우리 모임은 이 대륙의 엄청난 도전들을 직시하는 데 있어서 기도와 내성이 불가결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으며, 1982년 방콕에서 모인 제3차 총회 때에는 우리가 신앙공동체로서 주님의 부르심에 함께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2.3 이번 제4차 총회는 우리에게 그 부르심의 절박성에 대한 한층 깊고도 새로운 각성을 일깨위 주었으며, 우리들의 참여를 가속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으며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위협을 체험해 온 까닭입니다. 아시아의 수많은 도전들 앞에서, 우리는 “아시아의 세계와 교회에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주제를 기도하며 반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보편 교회와의 심오한 친교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교황청과 다른 주교회의나 주교회의 연합회 대표들의 총회 참석은 우리가 이러한 친교를 심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2.4 아시아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무수한 평신도들의 공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 수세기의 역사를 통하여 신앙을 지켜온 평신도 자신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들의 마음속에 힘을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변화된 상황 아래서, 오늘날 아시아의 평신도들은 세상의 누룩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표지로서 교회의 사명에 열성적으로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남녀 평신도들은 또한 자기 나라만이 아니라 여러 대륙에서 선교사로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형언할 수 없는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협력자들인 평신도들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3.0 아시아의 도전

3.0.1 우리는 아시아의 심층에 있는 어두운 현실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절망의 슬픔과 비탄에 젖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대한 과업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들의 용기 있는 노력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의 궁극의 건설자이신 주님(시편 127 참조)께 우리의 희망을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3.0.2 근본 전제. 온전한 인간 생활을 위한 투쟁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확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대륙에서 여러 나라와 많은 문화를 세우고 성장 발전시키는 그 토대를 이루어온 위대한 종교적 전통들이 아시아에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 종교적 전통과의 연대성 안에서, 우리는 창조주를 흡족하게 해드리는(창세 1장 참조) 인간의 완전한 개화와 아시아 세계의 변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3.1 신앙인 공동체와 정치

3.1.1 오늘날 아시아의 현실에 미친 그릇된 이기주의적 권력 정치의 영향으로 드러난 다중의 빈곤과 피폐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아시아는 극심한 빈부 격차를 더욱 넓혀 가며 지상 자원에 대한 가난한 사람들의 공정하고도 정의로운 접근을 거부하는 정치 경제 관계 및 구조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억압과 탄압과 착취는 기득권을 가진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탐욕으로부터 비롯되는 실상들입니다. 폭력과 죽음과 파괴를 몰고 오는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갈등 또한 경제적 정치적 분열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많은 나라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그 불안감은 특별히 소수 집단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3.1.2 정치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그러한 “정치”에 참여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복음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인 사랑과 정의를 아시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속에 불어넣는 과업은 복음의 명령입니다. 참여와 관여는 복음과 하느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세속적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의무입니다.

3.1.3 평신도들의 정치 활동 참여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박은 자기 자신의 근원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가 세상의 누룩이 되어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고 더욱 광범위한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 공동체의 선익을 증진시키고 수호하고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가 아시아의 정치적 변혁의 요구를 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코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3.1.4 무관심하고도 냉담한 태도는 전횡의 정치 권력이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지배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불의를 용인하는 것입니다. 선의의 남녀들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까닭에, 죄악은 쉽게 만연되고 있습니다.

3.1.5 그러므로, 아시아 전역에서 평신도들의 정치 의식이 성숙되어 가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기쁨에 차 있습니다. 교회가 소수인 나라에서도, 평신도들은 점차 수세기 동안의 무관심을 걷어치우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와 정의를 위하여 조직된 항의 시위, 가두 행진, 철야 기도회, 국민 기구 등은 성숙되어 가는 이러한 정치적 각성의 상징들입니다. 금년 2월, 주님께 대한 신앙으로 고무된 능동적인 비폭력을 통하여 현저한 정치 변혁을 성취할 수 있었던 필리핀의 국민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반성을 하게 하였습니다.

3.1.6 역량과 기개를 지닌 평신도들이 정당 정치의 영역에 들어가 공동선을 위하여 복음의 빛 안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의 철학, 강령, 활동에 영향을 미치려면 아시아에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공공 생활의 이러한 영역에서 공헌해 온 평신도들에게 치하를 드립니다.

3.1.7 과거에는 교회가 종교 자유, 가정, 교육에 관한 자신의 이익 보호에만 급급했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는 인간 기본권, 자유, 노동, 직업, 건강, 여성, 군비 경쟁, 국제 질서에 관한 문제들 그리고 아시아의 백성들 특히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정의와 평화에 관한 여러 가지 광범위한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3.1.8 우리가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불의의 만연에 응답하기를 희망한다면, 아시아의 현실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그 본질상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응답은 신앙인들의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창조적이고도 변혁시키는 힘을 분명하게 보여 줄 것입니다.

3.1.9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앙 부흥운동과 근본주의의 현상 또한 하나의 도전입니다. 신앙 부흥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신앙의 철저한 쇄신을 촉구하는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교조주의와 근본주의, 편협한 수계로 기울어지는 그러한 현상의 부정적인 측면은 폭력과 심각한 갈등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3.1.10 그 긍정적인 측면은 실재에 대한 경건한 견해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종교 문화는 인간과 사회와 전우주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호의존적인 것으로 인식합니다. 분열과 분할은 이러한 관념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평화와 정의와 완전을 향한 투쟁을 아시아의 고대 종교가 제시하는 이러한 신성 관념 안에 어떻게 하여 그 토대를 놓을 수 있겠습니까? 종교적 근본주의의 부정직인 측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극히 복합적이고 선동적인 격화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의 철저한 사랑을 증거하고 여러 집단들 가운데서 일치와 친교의 도구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3.1.11 모든 상황 안에서, 교회 전체는 다른 교회의 그리스도인 형제들, 수십억의 다른 종교인들, 여러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과 더불어 삶의 대화를 나누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날마다 직접 접촉하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평신도들은 바로 이러한 삶의 대화, 특별히 공동체의 생활을 침해하는 공동의 문제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도록 부름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1.12 그러한 문제들 가운데는 인간 기본권과 부족이나 기타 소수 집단의 권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발전의 문제, 정의와 평화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방과 지역의 차원 그리고 국제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3.2 아시아의 젊은이들

3.2.1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바로 아시아의 거울입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15-24세의 젊은이들입니다. 그 젊은이들의 생활은 아시아의 여러 가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교육적 문 제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3.2.2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생활상의 한 측면은 분명히 부정적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악한 상황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무지와 문맹의 예속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하고, 부적절한 기술과 지식으로 인하여 극히 한정된 생활의 질곡에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으며, 빈곤과 불의로부터의 해방을 내세우는 여러 가지 이념에 희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흔히 교육의 기회가 폐쇄되어 있는 까닭에, 극도의 빈곤 상황으로 인하여 이미 부식되어버린 사회적 소속감마저 극히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교육의 혜택은 받았지만 불완전 취업이나 실업의 처지에 놓인 젊은이들, 또는 학교에서 가르쳤던 것과 사회가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 사이에서 모순을 인식하는 젊은이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은 그릇된 장소에서 흔히 그들과 똑같이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아리들 가운데 받아들여지고 또 거기서 위안을 찾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현재의 절망, 소외와 여러 억압들이 젊은이로 하여금 약물, 알콜, 자살, 비행, 혼전 성관계, 범죄 등과 같은 파괴적인 대용물에서 그 도피처를 찾게 합니다.

3.2.3 아시아의 우리 젊은이들의 삶에는 또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총회를 통하여 현재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젊은이들이 그 실질적인 주역을 떠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국민들의 의식을 각성시키고,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단체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며, 공동체의 보건 의료진으로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교리교사로서 사목진의 조직자나 그 구성원으로서 봉사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증거하고 있으며, 목적 의식이 없고 성숙하지 못한 향락주의자들의 생활과는 다른 정반대편에 맞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이상, 그들의 역량, 열정, 결단과 투신―이 모든 것은 젊은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입니다. 세상의 누룩이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은 아시아의 젊은이들 가슴 속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울려나오고 있습니다.

3.2.4 하느님 백성의 다른 구성원들이 보내는 완전한 지지와 인정, 신뢰와 신임, 참여와 활용은 분명코 젊은이들에게 자기 동년배들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어른들 가운데서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 속에서 복음화의 역군이 되고 하느님의 도구요 사자들이 될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젊은이들에 대한 불안정과 지지의 결여는 그 이상의 소외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절망이나 반역 만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3.2.5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바로 오늘의 아시아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해방을 향한 투쟁의 요구는 젊은이들의 성장의 고통 속에서, 새로운 세상과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이들의 심원한 열망 안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젊은이들의 대륙, 아시아의 모습”을 변혁시키려고 한다면, 아시아에 사는 하느님의 백성은 어떤 의미에서 젊은이들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아시아 주교회의, 1970년 마닐라, 참조).

 

3.3 아시아 여인의 곤경과 평신도

3.3.1 국제적인 언론 매체들은 관광 위락 산업이 어떻게 하여 아시아의 여인들을 착취하고 타락시키고 비인간화시켜 왔는가를 조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아시아의 여인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여인들을 차별하는 전통 사회로 인하여 그리고 새로운 산업 및 경제 상황 때문에, 여인들 위에 쌓여진 불의는 헤아린 수 없이 많습니다. 결혼 지참금, 강제 결혼, 아내 학대, 여아 낙태 등이 여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자살의 지경에까지 몰아넣고 있습니다. 현대 산업은 여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의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의 건설 공사장이나 채석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여인들에게 지급되는 하찮은 임금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고용 정책에 있어서도 여인들은 차별 대우를 받고, 가사 노동에도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사회는 여인들을 열등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변혁은 부르짖고 있는 아시아 여인들이 지닌 비극적 현실의 일부입니다.

3.3.2 한편으로, 아시아인들은 여인의 심오한 진가를 인정합니다. 여인은 가정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위기의 시간에,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그 어깨에 의지할 수 있는 힘있는 사람입니다. 여인들이 의사, 법률가, 경영인, 회계사, 정치 지도자, 교사 등의 전문직에서 이룩한 공헌과 그 진출은, 전통적으로 그 길에 놓여진 장애들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인들은 교육, 의료, 교리교육, 조직 등 다양한 직무를 통하여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목진의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에서, 우리는 여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였으며, 아시아에 있어서 여인들의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사실과 진실들을 한층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3.3.3 한 여인은 하나의 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녀가 어떤 인종, 부족, 계층, 종교에 속해 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인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된 세계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는 하느님의 소명(창세 1,27) 또한 여인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이러한 모습이 일그러지고 발아래 짓밟힌다는 것, 그리고 여인이 여러 가지로 지배를 당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여인들은 주님께 해방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심오한 열망을 토로했던 바로 그 여인들로부터 이 통절한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은 우리에게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한 여인 마리아는 유일무이하게 예수님과 협력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다가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인정을 받고 그 존엄성이 회복되어야 하며 세계와 교회 안에서 그 올바른 역할의 수행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복음의 명령입니다.

3.3.4 평신도는 그러므로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직업, 교육, 언론, 정치, 공공 봉사 등에서 여인의 존엄성을 옹호해야 할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여인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로 이어지는 인습과 관행, 정책과 법률들을 개선시켜야 할 책임이 평신도들에게 있습니다.

3.3.5 그러나 여인의 완전한 인간성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안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여인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가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여인들이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나 세말 공동체의 상징이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여인들은 교회의 직무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3.3.6 그러할 때,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사회와 세계 안에서 여인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상징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그러할 때 아시아 여인들의 곤경에 관하여 강력하게 발언할 수 있으며, 다른 어떠한 발언과도 달리 교회의 목소리는 권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3.4 평신도와 가정

3.4.1 아시아에 있어서 교회에 대한 가장 커다란 도전은 아마도 아시아의 가정이 제기하는 도전인 것입니다. 아시아의 가정은 빈곤과 억압, 착취와 타락, 분열과 갈등 등 아시아의 모든 문제들을 응축시켜 놓은 세포입니다. 가정은 아시아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의하여 그리고 여성, 건강, 노동. 직업, 교 육 동과 관련된 문제들로 인하여 직접적인 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3.4.2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들이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들을 복음에 비추어 반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혼자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일반적인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정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나그넷길을 걸어가는 까닭입니다.

3.4.3 오늘날 아시아의 가정들이 직면해 있는 역경의 상황들은 심각하고도 수없이 많습니다. 어머니들과 어린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힘든 노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야 하거나 때로는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야만 합니다. 생존을 위한 희망이 없는 몸부림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미혼모들과 자녀 유기를 양산해 내며, 매음과 낙태의 만연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도덕적 종교적 감각을 상실해버린 피임 사고와 인구 조절 정책은 조직적인 단산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의 결과로서, 가정 생활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으며 전통적 가정의 가치들은 점차 붕괴되고 있습니다.

3.4.4 그러나 우리는 가정이 사회의 단위로서 신성하고도 중대한 보화라고 계속하여 믿습니다. 대부분의 전통과 법률, 신앙과 실천은 가정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긴밀한 가족 관계, 효도, 노인들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아시아의 뿌리깊은 문화적 가치들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와 전통은 아시아의 가정들이 사랑과 친교의 생활을 위한 그들의 소명을 심화시키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입니다.

3.4.5 은총은 본성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중심을 이루는 혼인성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리스도교적인 분위기 또한 봉헌된 생활, 사제직, 선교회나 사도적 생활을 위한 성소자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들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가치들을 깨닫고 존중하도록 이웃들에게 영향을 미쳐 왔으며, 자신들의 직업과 일터에서 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배출하여 왔습니다.

3.4.6 교회와 세계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복음을 들으며, 평신도들은 스스로 그 사명을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을 가정 안에서 찾을 것입니다.

3.4.7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되라는 최초의 부르심은 보통으로 가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가정 공동체 15.39.49항 참조). 그 부르심을 본당에서 듣기 전이라도,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 성숙하라는 소명에 관한 교리교육에 마음을 열기 전에, 어린이는 이미 가정에서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는 실재를 보고 듣고 체험해 온 것입니다.

3.4.8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가정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옳습니다. 거기서 가족들은 서로를 도와 일상의 생활사와 환경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생활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가정의 환경 안에서, 거저 주며 살아가는 일상사 안에서, 평신도는 타고난 본성으로 손쉽게 문화와 더불어 신앙을 내면화시킵니다. 가정의 작은 교회 안에서, 공동체의 커다란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며, 서로 용서하고 희생하는 가운데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3.4.9 아시아 세계의 복음화에 필요한 가치와 덕목들은 먼저 가정 안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랑, 정의, 평화, 진리, 자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하느님께 대한 신앙,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에 대한 희망, 책임감, 자기 희생, 그밖에 복음의 여러 가치들은 가정 안에서 훈계와 표양으로 먼저 배우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복음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사랑의 문화”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화된 아시아인의 가정은 다른 가정과 공동체들에 다가가 그들을 복음화시킬 수 있으며, 그들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3.4.10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느님의 공동체 안에서 평신도가 맡은 가장 직접적인 당면 과업 은 복음화되고 복음화시키는 이러한 양면의 사건을 가정 안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은총입니다.

 

3.5 교육계의 평신도

3.5.1 아시아 교육 현장에서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즉시 우리 눈에 띄었습니다. 즉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문맹자들이라는 점과 특히 비그리스도교 지역에 있어서 가톨릭 교육기관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명도와 명성입니다. 이 요인들은 교육에 관한 평신도들의 역할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역할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3.5.2 여러 가지 주요한 부정적 견해들 가운데서 그 두 가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 가톨릭 학교들이 주로 중산층이나 부유층에 영합하고 변혁의 전달 수단으로서 행동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체제나 가치를 지지하는 것 같다는 견해입니다. 그러한 견해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 변혁을 위한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정기적인 가치 평가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비판을 한갓 사실무근의 부당한 소리로 제쳐둘 수는 없습니다.

3.5.3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의 학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인 선택을 반영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이 문제는 지혜와 복음적인 용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찰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3.5.4 분명코, 아시아에 있는 우리의 학교들은 무지와 문맹의 퇴치에 크게 공헌해 왔으며, 수많은 인재들을 사회에 배출하고 그들의 직업을 통하여 공동선에 기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 분야에서 사제, 수녀, 수사들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평신도들의 커다란 공헌을 인정하고 또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초중등 학교의 수많은 여교사들은 어떤 의미에서 “어머니요 교사”(Mater et Magistra)인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평신도들은 공적인 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는 근본 과업에 있어서 그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평신도들의 교육 사도직은 기본적인 세례성사의 참여로부터, 특히 예언자요 봉사자인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참여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3.5.5 학교 교육이 사회 변혁의 전달 수단으로서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되자면, 교사들의 올바르고도 참된 비전과 영성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전은 교사의 직무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셨던 예수의 교사직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명이라는 인식, 그리고 가르친다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한층 더 중대한 가치 형성이라는 인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비전으로부터 희생, 이타심, 관심, 사랑, 정의 등 복음 가치를 내포하는 영성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교리교육에 있어서도,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그 가르침을 증거하는 사람이 더 많은 효과를 거둡니다(현대의 교리교육 참조).

3.5.6 학교는 서로 다른 신앙, 인종, 배경, 사회 계층 부족들에 속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학교는 또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광범한 사회를 진정한 공동체로 변혁시키는 데에 필요한 가치들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형성되고 나누어지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공동체는 교사들과 가정의 협력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비그리스도교적인 환경 속에서, 그러한 학교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의 표지가 되고 있습니다.

3.5.7 우리는 공적인 교육 제도 그 너머를 바라보며,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도시나 시골 지역의 젊은이들을 위하여 평신도들이 어떻게 하면 교사 직무를 수행해 낼 수 있겠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공식 교육을 통한 어문 학습, 기술 훈련, 지도자 교육 등에서 그 발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교육 사업들은 참으로 올바른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평신도들은 그 주역을 맡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과업 안에서, 우리는 평신도 교육자들을 위한 혁신적인 교육 계획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3.5.8 신성한 교육을 위한 평신도 교사들을 양성하는 몇 가지 창조적인 계획들, 즉 그리스도인 성장 교육 세미나, 교사직에 관한 토론회 등이 현재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양성 계획이 평신도 교육자들로 하여금 스승이시요 종이신 당신의 직무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소명에 더욱더 효과적으로 응답케 하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3.6 평신도와 언론

3.6.1 바로 이 시간, 아시아의 평신도들은 현대 기술이 창조해 낸 강력한 대중 매체 수단들을 통하여 자신의 영역을 복음화시키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대중 매체가 차지하는 역할의 증대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 자체의 변화에 미치는 그 영향”(노동 헌장 반포 80주년을 맞이하여 20항)에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3.6.2 재정과 언론은 국가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며, 사실 재정은 그 목적을 위하여 언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중 매체의 가능성들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여론을 날조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하여 언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 사회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척도는 곧 언론이 누리는 자율성의 정도입니다.

3.6.3 오늘날 아시아의 언론들은 권위주의적 정부나 경제 및 정치의 소수 권력자들에 의하여 극심한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시아의 대다수 민중들은 피동적인 수용자에 머물고 있습니다. 교회가 후원하는 매체가 아시아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이 주목되어 왔습니다. 소비 사회가 그 물질주의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대중 매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반면에, 아시아에 있는 교회는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아시아의 민중들에게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들을 이용하는 데에는 아직도 뒷전에 처져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미디어의 특색이나 그 영향력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3.6.4 그렇지만, 우리는 교회가 직접 운영하고 있거나 평신도들을 통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디어의 발전을 기꺼이 주목하는 바입니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의 매스 미디어 센터 설립, 미디어의 복합성과 그 영향력에 관하여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 노력, 이러한 특수 사도직 종사자들에 대한 훈련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세속의 미디어에 종사하는 많은 평신도들은 복음의 가치들을 충실히 따르고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동료들과 그 수용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직업 생활에서 복음을 충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부분의 짐을 지고 있는 평신도들과 더불어, 하느님 백성의 협력에 대한 하나의 경탄한 만한 모범은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향한 투쟁에 있어서 라디오 베리따스가 수행하고 있는 중대한 역할입니다.

3.6.5 문화의 다원성 안에서 미디어의 힘을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아시아 교회는 그러한 환경 속에 복음의 가치를 불어넣는 일을 그 첫째 과업으로 삼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더욱 분명하게 이끌어내야 합니다. 대중 매체를 통해, 교회는 복음의 가치들을 전하여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공동선을 향해 이루어지는 협력과 일치와 친교의 모든 노력이 그러한 가치를 지니게 해야 할 것입니다.

3.6.6 이러한 전망은 하느님의 백성 특히 그 지도자들이 언론계에서 커다란 책임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적극 지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사회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우리 아시아의 상황에 비추어 사목적인 우선권을 지니는 중대사입니다.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은 종교간의 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3.7 노동계의 평신도

3.7.1 노동 세계에 우리의 관심을 돌려볼 때에, 온갖 종류의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세계에 대한 변혁과 재창조의 지속적인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방대한 아시아 민중들의 열망, 죄악과 그 결과로부터 벗어나려는 해방을 향한 심오한 열망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3.7.2 그러나 우리는 또한 완전한 해방을 향한 이러한 꿈과 노력이 복합적이고도 강경한 세력 들에 의하여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력들은 흔히 노동자들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다국적 기업과 그 지역 대기업의 전통 산업에 대한 지배, 농업에 대한 대기업의 유입, 값싼 노동력이나 소지주의 토지 착취, 노동조합의 결성과 파업 금지, 그리고 정당한 저항의 탄압, 도시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당하는 농민들의 이농과 도시 빈민지역의 팽창, 방대한 도시 노동자들과 소지주 및 소작농들을 후원하는 조직의 결여, 장시간의 노동과 고통, 불안전한 노동과 사고 위험, 건강의 악화, 불완전 고용과 실업 등으로 인하여 해방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습니다. 확실히 정치적 경제적 구조와 농업 체계가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들을 생산 기계의 이름 없는 한 부품으로 전락시켰으며, 그다지 필요치 않은 그들의 노동은 오직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3.7.3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숙고하며, 우리는 노동의 존엄성과 천부의 가치, 노동자들의 기 본권과 책임 등 노동에 관한 교회의 풍부한 사회 교리를 상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회의에 참석한 평신도들은 흔히 소홀히 여겨왔던 영역인 노동의 영성에 우리들의 관심을 향하게 하였습니다.

3.7.4 노동은 흔히 종교적인 의미가 없는 현세적이고도 세속적인 그 무엇으로 여겨져,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장애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노동이 끝나는 그때에 비로소 기도와 영성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동계에 있는 평신도의 근본 사명은 창조주의 사업에 참여하는 인간의 창조성의 표현인 인간 노동의 종교적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비인간적인 현 상황을 변혁시키는 과업은 노동자가 하루하루 노동의 단조로운 일상에 물음을 던지고 생활 체험 전체를 문제삼을 때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왜 노동하는가? 노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해방, 행복한 삶을 향한 깊은 열망을 드러내는 이러한 물음은 바로 종교의 근본 문제입니다.

3.7.5 하느님의 영 안에 뿌리박고 있는 이러한 열망들은 어떠한 노동 구조에서도 억눌릴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진정한 영성생활에 더욱 맞갖은 노동 구조를 창조하기 위하여 투쟁할 때에, 그들의 노력은 복음에 비추어 참으로 종교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노동하는 인간 24-27항 참조). 모든 노력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시고 변혁시키시고 구원하시는 활동에 인간 노동윤 참여케 하는 역동적 운동 안으로 그러한 행동이 의식적으로 들어갈 때에, 그것은 특별히 종교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3.7.6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영성의 맥락 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수호하고 증진시키 는 활동들을 직시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 가운데는 노동조합이나 농민 단체의 형성,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려는 노력, 농업 비료의 가격 인하를 위한 단체 행동 등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그러한 노동의 영성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입니다.

3.7.7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최우선적인 선택에 비추어, 우리의 관심은 더 나아가 아시아 노동자들의 특정 영역에로 향하고 있습니다. 상점, 식당, 농장 등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어린이들,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과 생활 환 속에서 일하며 흔히 성적 고통을 당해야 하는 시골 충신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 남의 나라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자들, 시골에서 도시나 타국으로 나와 삶의 뿌리가 뽑힌 채 지극히 열악한 조건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이주민들, 실업과 불완전 고용에 머물러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우리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3.7.8 온 교회는 가난하고 궁핍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연민으로 경청하여야 하며, 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사목적 관심사와 계획들을-주도하여야 합니다. 지역적 국제적 차원의 다른 사회 집단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협력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협력을 통하여, 기존의 착취와 억압의 노동 구조는 변모될 수 있습니다.

 

3.8 기업계의 사회적 책임

3.8.1 또한 노동 과정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변혁은 노동자들만의 과업이 아니라 기업인들, 경영자들, 정부 관리들, 정책 입안자들의 사명입니다. 사회 여러 분야의 협력이 절대 필요합니다.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협력이란 이 세상의 자원은 인류 가족 전체에 속하는 것이며 그 사회적 책임은 이 세계의 재화에 대한 관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믿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3.8.2 아시아의 국가들은 자유 기업 체제나 중앙통제의 경제 개발 체제를 따라왔습니다. 그 어떠한 체제도 순수하거나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존의 체제는 모두 창조적이고도 의식적인 노동환경의 조성을 가로막는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 기업 또는 자본주의는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동 조직의 가능성과 현대의 기술적 창의력 발휘의 가능성을 입증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기업인이나 경영자 계층을 현저히 해방시켰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한 노동 계층을 대체 상품의 존재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천명하신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원칙”(노동하는 인간 12항)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8.3 반대로, 중앙 계획 경제 또는 사회주의는 경제를 창출하는 사람이 바로 노동자라는 사실을 정당하게 강조해 왔지만, 노동자들의 통제와 연대는 중앙집권 국가를 통하여 배타적으로 중개되어 왔습니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지배, 즉 국가의 지배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 공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생산 과정 전체의 사회적 구성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3.8.4 우리들이 보기에, 협동 운동의 쇄신에서부터 사기업이나 혼합 기업에서의 노동자들의 협력에 이르기까지, 산업에 있어서 선구적인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의 참여에 미래는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소수의 손아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주는 적절한 기술의 형성을 의미하며, 그 기술이 노동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노동을 위한 봉사에 사용되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모델이란 노동자들이 적어도 하나의 협동체를 이루어 소유하고 다스릴 수 있는 소규모의 기술 개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8.5 이러한 맥락 안에서, 기업계에 속해 있는 평신도들은 복음의 가치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기업 안에서 수많은 선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가치를 단순히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더욱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참여, 한층 분별력있는 소비 안내, 더 책임있는 정부의 개입, 더욱더 공정한 사회를 향한 사회 구조 전체의 변혁에 이르는 적극적인 참여를 포함하는것입니다.

3.8.6 기업인들이 자신들의 거래가 복음적 가치에 젖어들게 할 수 있도록, 기업 윤리법과 같은 그 무엇, 즉 기업행위를 지도하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3.9 평신도와 보건사업

3.9.1 우리들의 모임에서, 평신도들은 보건 세계에 대한 관심사들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질병과의 투쟁에서 인간의 노력과 그 창의력이 거둔 결실인 의학의 놀라운 진보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현대 의학의 적용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그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엄청나게 높은 의료 수가, 보건 의료 체제의 지나친 도시 집중, 부적절한 예방 의료 등이 문제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절박한 생명 윤리의 문제들입니다. 그 정도만이 아니라 증대되고 있는 그 복잡성 또한 심각합니다. 이 모든 깃은 교회 전체가 특히 의료 봉사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들입니다.

3.9.2 극히 중대한 도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낙태, 자연적 가족 계획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인공 피임의 남용, 안락사에 관한 윤리 규범의 혼란,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서의 자살 사고의 증가, 알콜이나 약물 중독, 생의학의 진보 특히 유전학의 발달로 야기되는 여러 도덕 문제들입니다. 보건사업 분야에서 일하는 평신도들, 가톨릭이나 비가톨릭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원, 기타 의료원들은 날이면 날마다 이러한 생명 윤리의 문제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전체가 그들을 지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3.9.3 직업적인 역량을 초월하여, 그들은 현대 의학과 그 실천의 도덕적 차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보건 의료 세계를 건전하게 변혁시키는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전하도록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3.9.4 그들은 복음에 따라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가를 식별할 수 있게 되도록, 도덕 교육에 대한 필요와 열망을 표명하였습니다. 모든 보건사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의 진정한 도덕 교육이 절실합니다.

3.9.5 우리의 의학 교육기관들은 의료 윤리를 가르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가톨릭 의사들은 훌륭한 생명 윤리인이 되도록 적극적인 도움과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생명 윤리 연구소들은 우리 가톨릭의 고등 교육 기관들에서 특히 신학교에서 우선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연구소들은 보건사업 분야에서 일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자원 동원 체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보건사업에 있어서, 그러한 가톨릭 기관들이 어디에 존재하든, 우리는 적극적인 후원과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 필요가 있으며, 생명 윤리 분야의 지침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3.9.6 그러나 전통적인 의료기관들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더 큰 우리의 관심사는 가난 때문에 적절한 의료 봉사를 받지 못하고 흔히 현대 의학의 기본적인 혜택을 입지 못하는 시골 지역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3.9.7 용서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치유 능력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특별히 보건 사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들은 이처럼 빈민굴에 사는 노동자들과 땅이 없는 농민들에게 다가가 자신들을 통하여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는 보건사업에 있어서, 공동체를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로 향하는 계획으로 교회의 자원이 투입되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이 절실한 필요에 응답하는 아시아 교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기꺼이 주목하는 바입니다.

 

4.0 공동체로서의 전진

4.0.1 아시아의 도전들은 바로 아시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식별해 내야 하는 “시대의 징표”들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도전에 응답하며, 아시아의 구원을 위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식별하고 발견할 것입니다.

 

4.1 예수님과의 친교

4.1.1 아시아의 다종교적 문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진정하고도 구체적인 자리를 찾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아의 해방자로서 또한 그분의 교회를 그 해방의 도구요 종으로서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4.1.2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내리시어, 우리 내부로부터 해방을 향한 갈망이 솟아오르게 하십니다.

4.1.3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부르심은 해방자이신 예수께 온전히 투신하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그러한 투신은 교회를, 성직 자이든 평신도이든, 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여 일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우리 자신들 가운데서의 그러한 친교는 결코 아시아의 민중들 과 그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소외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아시아의 민중들과 연대하여 우리 백성들 가운데 깊이 뿌리박은 진정한 아시아 교회가 될 때에, 우리의 친교는 굳건해질 것입니다.

 

4.2 해방의 공동체

4.2.1 해방의 공동체는, 우리 자신들 가운데서 모든 정신적 물질적 선물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적으로 고요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의 생활을 역동적으로 펴가며 교회 밖의 강력한 도전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4.2.2 이러한 역동성은 교회 안에서 우리 자신들 가운데서 우리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존엄과 자유, 은사와 능력, 권리와 책임을 지니는 성숙한 인간 주체라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역동적인 친교가 손상되고, 해방을 향한 우리들의 열정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4.3 메시아 사명

4.3.1 해방의 실질적인 역군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니게 된 영성적인 특성과 그 직무를 상기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해방을 향한 여정에서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 나가시는 예수님은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사명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안목을 지니고 그분의 인격에 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걷는 이 해방의 여정을 위하여 우리 교회 안에 있는 그분의 성사를 통해 끊임없이 그분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자양분을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여정에서 만나는 현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례로써 부여받은 삼중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4.3.2 우리가 진지한 의식을 지니고 해방의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단순히 내부 지향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한, 우리는 외부 지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내부 지향적인 교회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우리들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는 외부 지향의 교회로서 우리의 여정을 걸어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교회의 모든 역량을 재정비하고 그 우선순위를 재정립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4 메시아 직무

4.4.1 나그넷길을 걷는 우리의 지도자이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우리의 메시아 직무를 구현하여야 합니다.

4.4.2 사제 직무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현실 그 자체가 우리 교회의 모든 신앙인들이 이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직무 또는 품계 사제직에 대한 우리의 적절한 관심, 즉 사제의 자질 향상과 사제수의 증가, 사제 양성 문제 등에 관한 관심은 모든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에 관한 관심을 결코 위축시킬 수 없습니다. 공통 사제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생활의 진정한 사제직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 안에 그 기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서 모든 구원의 신비 즉 고통과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그 신비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직무 사제직은 오로지 공통 사제직과의 관계 안에서 그 온전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성사적으로 성찬의 희생 제사를 바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의 공통 사제직을 구현하여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4.4.3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은 교계의 교도 직무에 국한될 수 없습니다. 예언직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 진리에 대한 전공동체의 증거요 봉사여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의 신앙 의식 또는 신앙 감각은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선물입니다. 지도자들은 신앙 공동체의 예언과 그 정신을 소홀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민중 안에서 하느님의 영과 지혜를 찾기 위해서는 하느님 백성의 얘기를 마땅히 귀담아듣고 그들과 협의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 안에서의 생활과 거기에 따르는 문제들에 있어서 그러해야 합니다.

4.4.4 왕다운 사제직에 연결되어 있는 왕직은 우리 인간 역사의 배경 안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을 실현시켜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왕직은 단순히 우리 지도자들의 지배와 통치를 위한 근거로 인식될 수 없습니다. 평신도들 또한 그 나름대로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평신도들의 활동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건설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70항 참조). 이러한 이해는 세계 안에서 평신도의 직무와 사도직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하게 할 것입니다.

 

4.5 구조의 쇄신: 친교, 단체성, 공동 책임

4.5.1 아시아 현실의 도전에 신앙으로 응답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에 있어서,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힘을 얻고 그 인도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공의회는 단체성, 친교, 공동 책임의 토대 위에서 내부 구조의 쇄신을 촉구하였으며,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주체성과 성숙, 존엄성과 자유의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공의회는 그 역점을 변화시켜 우리 교회의 평신도들을 그 고유의 재능과 은사,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는 완전히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4.5.2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하는 친교, 단체성, 공동 책임의 원리들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구조를 그 목적에 비추어 재검토하고, 최대의 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이를 재구성하고 활성화시키도록 요청합니다. 교회 내부 구조의 쇄신은 기존의 본당 또는 교구 조직들을 확대 강화시키거나 새로운 기구들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구조의 쇄신이란 평신도들의 참여와 활동, 그 창의력을 한층 더 적극적이고 완전하게 발휘하도록 친교와 단체성, 공동 책임의 올바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4.6 평신도 사도직

4.6.1 우리의 요구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하여도, 일부 평신도 조직과 그 활동 방향이 변화되지 않고 있어, 결국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정신이나 조직이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과 국제기구들과 관련하여, 그러한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4.6.2 우리 교회의 평신도 사도직은 아직도 근본적으로 본당 차원에 머물러 있고 내부 지향적이며, 성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시아 상황의 요구에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추구하는 세계 지향적이고 하느님 나라 지향적인 사도직이 점차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직은 더욱더 평신도들의 창의력과 결정 권한을 포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민중들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여야 합니다. 서품을 받은 지도자는 그 교회의 현실 상황과 관련되는 새로운 형태의 평신도 사도직이나 직무를 출범시키는 데에 있어서, 법률적인 문제에 지나친 관심을 지니거나 두려움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성직자들은 평신도 스스로 주도하고 지도하는 한층 더 강력하고도 세계 지향적인 사도직 형태를 격려하고 증진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평신도들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거기에 따라 교회 전체가 아시아 선교를 위해 더욱 적절하고도 실질적이게 될 것입니다.

 

4.7 사목적 관심사

4.7.0 우리는 이러한 도전들과 신학적 반성에 비추어, 아시아에 있는 우리 지역 교회들이 특별히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 사목 활동에 착수하도록 촉구하는 바입니다.

4.7.1 성직자-평신도 관계

4.7.1.1 성직자 또는 평신도의 일방적인 쇄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친교의 교회 안에서, 성직자는 물론 평신도들인 우리는 서로 관련되어 있어 서로를 결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정신의 기본적인 교환 요구를 느끼고 있습니다.

4.7.1.2 억압과 차별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하는 친교의 교회 안에는 단체성과 공동 책임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배와 차별의 언행으로 우리들의 친교를 파괴시킬 수 없습니다. 이해의 관대한 정신과 타인의 은사에 대한 인식이 증진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직자인 지도자들은 평신도들의 참여를 강화시키고 부각되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인정하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4.7.2 평신도를 위한 평신도의 교육

4.7.2.0 교육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빚어내는 판박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의 성령과 더불어 적절한 조직을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협력입니다. 아시아의 도전들과 신학적 반성에 비추어, 교육의 세 가지 차원이 필연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4.7.2.1 가) 교회 전체 특히 평신도의 일반 교육. 이것은 설교, 강론, 교리교육, 성인 교육 등을 통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전망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교회와 세계에 있어서 그들의 소명과 사명을 깨닫도록 하는 의식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4.7.2.2 나) 우리 교회, 즉 평신도 사도직 단체, 본당 및 교구 단체, 특수 전문 분야(노동, 교육, 보건 사업 등)의 지도자들로 뽑힌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특수 교육이 필요합니다. 연수회, 주말 또는 단기 교육 과정 등은 그 교육계획의 주요 형태일 수 있습니다. 주교들은 이미 그러한 형태의 교육을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각성에 대한 만족감에서 그러한 집단에 신학교의 단기 신학 과정을 제공하는 것은 삼가야 하며, 오히려 그들의 평신도 상황에 적합한 교육 과정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4.7.2.3 다) 지속적인 교회 봉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직무 교육이 필요합니다. 세계 안에서의 그들의 사명과 그리스도 교회의 선익을 풍요롭게 하는 이러한 은사들을 북돋아 주고 환영하고 도와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성직자들은 그 필요에 따라 지원을 하여야 합니다. 평신도의 특성을 감안하여, 세상의 현실에 대한 평신도 자신들의 체험을 토대로 하는 교육이 이루이져야 합니다. 세속적인 상황 안에서의 직업 교육이 권장되어야 합니다.

4.7.2.4 라) 교육 계획은 지역 교회의 후원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직자들을 양성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교육 기관에서 대단한 금액의 돈을 지출하면서도, 특정한 평신도 단체나 평신도 봉사자들에 대한 교육을 등한시할 수는 없습니다. 서구의 우리 자매 교회들로부터 받는 원조는 고맙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도 평신도 교육 계획의 진가를 인정하고 이를 후원하도록 권장되어야 합니다. 평신도들의 지속적인 봉사에 대한 보수는 정의와 사랑의 요구를 존중하여야 합니다. 평신도 교육 계획 안에서 인재와 자원의 교류를 통하여 많은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4.8 평신도의 영성

4.8.1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시아에서 직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여러 도전들을 숙고하고,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신학적인 반성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전망으로부터 나오는 일부 사목적인 관심사들을 고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에서, 평신도들은 성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오래된 질문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제기하였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마태 19,16). 예수님의 답변은 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분은 실제로 부자 청년에게 철저한 추종을 요구하셨습니다.

4.8.2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그분을 따르는 것이 바로 그 영원한 물음에 대한 간단한 대답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근본성”은 예수님 자신의 생애가 보여 주는 근본성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이 평신도의 영성에 관하여 우리와 더불어 나누었던 반성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4.8.3 아시아에서의 제자 생활은 아시아의 현실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육화되어야 합니다. 죄악과 그 귀결, 분쟁과 불의의 파괴력에 맞서 투쟁하는 끊임없는 긴장 가운데서 그 영성은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며, 해방자이신 예수님의 성령이 이끄시는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성령이 주시는 생명”(로마 8,1-17 참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시대의 현실 속에 육화되어 죽음에 이르는 현실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현실을 성령 안에서 분별해내는 그 역동적인 과정을 통하여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루가 4,1 등 참조), 성령에 충만하셨습니다(예: 루가 4,14).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성은 하루하루의 생활과 투쟁이라는 현실 상황 속에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재현시키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분별해내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현세의 사건과 활동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움직임을 식별해 내는 아시아인들이 지닌 관상적 차원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러한 기도의 자세가 생활 속에 젖어들어 있습니다.

4.8.4 현실에 휩싸여 현실과 구별되지 않은 채, 제자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한 몸을 이룸으로써 그 영성은 드러나는 것이며, 성세성사와 견진성사 안에서 표현되고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분의 고통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개인적인 참여로부터 공동체에 의해서 구현되는 빠스카 신비로 나아갑니다. 공동체는 죄악을 거슬러 투쟁하며, 민중들의 고뇌와 고통으로 수난을 당하고, 새로운 생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박는다는 것은 그분과 더불어 그분의 백성과 친교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4.8.5

그리스도와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행동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성서적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또한 우리를 함께 모아 줍니다. 성서 안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과 사건들 안에서 삶의 얼거리 속에서 말씀을 경청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가 예수님 자신의 표양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이 요구되는 곳입니다. 이것은 바로 육화된 “타자성”의 영성이며, “이웃 사랑”이라는 그 단순한 말이 뜻하는 모든 것입니다.

4.8.6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기억하게 하는 그 신분은 또한 교회의 성사들을 그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입문 성사로서 성세성사와 견진성사를 언급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성사로써,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증거자가 되라는 운명을 부여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사 생활의 핵심에, 따라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에는, 예수님의 빠스카 신비를 우리들의 삶 속에 성사적으로 현존케 하는 성체성사가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성사적 질서의 절정이 있고 그 능력과 활동의 원천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세상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내어 주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 가운데 성사적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4.8.7 예수님께 대한 기억은 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교회헌장 31항 참조)를 추구하게 합니다. 그 기억은 가난한 사람이 되어 정의를 목말라하고, 어린아이처럼 아버지께 전적으로 신뢰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시아 세계의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 안에서 그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충만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아시아에서 충만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은 곧 하느님 나라의 추구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세상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아시아 현실의 원천으로 들어가 거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침잠입니다. 친교, 연대, 정의, 자비, 사랑은 제자 영성의 기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아버지와 화해시키시려고 오셨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분열을 없애시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화해하여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예수님의 성령으로부터 받는 이러한 충동은 하느님 백성의 영성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4.8.8 육화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 성서적이고 성사적이며,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하느님 백성의 영성은 예수님의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나그넷길입니다. 그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의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의 길이며, 사랑과 봉사의 나그넷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근본적으로 오직 하나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즉 그 영성은 평신도이든 성직자이든, 사제이든 주교이든, 수도자이든, 예수님의 교회 안에 있는 그분의 모든 제자들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무수한 평신도 영성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 고유의 신분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여기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이 지니는 세속적 특성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은사와 직무를 통하여 평신도들이 오늘날 점차적으로 교회의 내적 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증거와 행동의 고유한 특성을 흐리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평신도들은 지상의 현실과 인간 사회 속에 복음의 가치를 불어 넣도록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행동은 그들 생활의 여러 차원에, 가정, 사회, 직업, 정치에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영에 따라 그들의 소명과 사명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응답을 한다는 것이 바로 평신도 그리스도인 영성의 전부입니다.

4.8.9 우리가 이번 총회에서 경청하였던 실천적인 제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성세 서약 및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친교를 심화시키고, 의미를 새기고 영감을 받아 성서를 읽음으로써 영성을 성숙시키고,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 생활을 인도하는 완전한 규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일치와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로 이루어지는 깊이 있는 생활로부터 화해의 사명을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위기와 고통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다운 감성을 갖추도록 마음과 정신을 다져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에 관대하고도 용기 있게 응답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과 연대하여 온 삶을 내걸고 투쟁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참하여야 합니다. 삶의 자세와 가치를 변혁시키고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기도의 방법을 발견하며, 민중의 종교심으로부터 나오는 전통적인 관습과 신심을 참여의 영성으로 통합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생활과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투쟁의 기본 도식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곧 빠스카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의 현실 속에서 예수님께 대한 기억을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하는 성사의 참여를 더욱더 존중하고, 저 분명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4.8.10. 충만한 생명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지만, 또한 하느님의 백성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과업입니다. 그것은 아시아 현실의 변혁에 참여하는 도전적인 과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적이고 인간적인 이 두 가지 차원은 서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상호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우리 평신도들에게 더욱더 역동적인 영성을 현명하게 제공하는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결의를 거듭 새롭게 하는 바입니다.

4.8.11 이것은 한충 더 심오한 평신도 양성을 포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상호 의존성과 봉사, 공동 사목을 위한 성직자 교육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아시아의 민중들에 대한 우리 교회의 더 나은 봉사를 위하여 사제 직무와 평신도 봉사의 한충 더 깊은 통합이 이루어지리라고, 우리는 희망에 차 있습니다.

 

5.0 맺음말

5.1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제 우리는 여러분과 더불어 우리의 나눔을 끝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신 성령께 감사드리며, 이 며칠 동안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과 더불어 아시아의 기쁨과 번뇌, 그 고통과 희망에 대한 체험을 서로 나누게 하신 성령께 감사드립니다(사목헌장 1항 참조). 용기와 희망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그 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빠스카 신비와 같은 그 길을 우리 모두가 따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에보다 더욱더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걷는 모든 나그넷길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분, “자기들이 찌른 사람”(요한 19,37; 즈가 12,10; 묵시 1,8 참조)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5.2 우리는 당신의 나라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하느님께서 어두움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빠스카의 신비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일 뿐 아니라 또한 죽음을 쳐 이긴 승리입니다. 그분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요한 6,20).

5.3. 우리들의 총회에서 평신도들과 수도자들, 사제들과 우리 동료 주교들이 우리들에게 말을 할 때, 그것은 마치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 우리는 오직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32). 아시아의 도전들을 맞받아 싸우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는 확신에 넘쳐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분발케 합시다.

5.4 이 위대한 아시아 대륙의 전역에서 그 민중들 가운데서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며, 우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요 이 순례의 길잡이이신 마리아 안에 우리의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 아시아의 교회를 의탁하며, 그분이 최초의 제자 공동체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사도 1,14),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동방의 빛, 결코 지지 않는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과 찬미를 받으소서. 그 나라가 임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