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국외
1988-07-01 01:00
2021-08-03 15:04
211
제3세계 가톨릭 교회의 선교의식

온 세상에 가라

제3세계 가톨릭 교회의 선교의식

오메르 디그리스

 

머리말

통신매체들 덕분에 우리는 전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보다 미묘한 사건들에 있어서는 사태 진전이 너무나 빨라서, 우리가 다른 대륙들 안에서 발생해 온 일들을 오늘 겨우 알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는 보편교회의 생활에 해당되는 진실인데 특히 우리가 최근에 ‘제3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역교회들―즉,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대양주의 부분 교회들과 관련하여 그러하다. 우리는 이 지역의 교회를 오랜 연륜을 가진 동방교회 및 서방교회와 구별하여 제3교회라 부른다.1)

제3교회의 선교의식은 최근의 현상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제3세계 교회 안에서 일고 있는 선교의식은 언뜻 보아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연구서 안에 활용된 자료는 수많은 전거로부터 수집되어 온 것들이다. 그 가운데 몇몇 수치들은 근사치에 가까울 뿐이다. 출처들이 항상 신빙성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개괄은 가끔 2~3년 일찍 입증되었던 것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간혹 통계는 사건 발행 후 수년 동안만 유용하다. 이는 예컨대 〈교회통계 연감〉(Annuarium Statisticum Ecclesiae)에 해당된다. 결과적으로, 제3세계 교회의 선교실행은 이 연구서 안에 소묘된 것보다 훨씬 진척되어 있다.

수년 전에 발베르트 빌만(W. Buhlmann)의 저서 「제3교회의 도래」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2) 이 저서에서 저자는 비서방교회들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보편교회의 중심이 북쪽에서부터 남쪽 및 동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3교회는 보편교회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희망의 교회이다. 그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됨으로써 희망에 찬 교회임을 가장 명백하게 입증한다.

제3세계 교회들의 선교활동은 선교 분야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랜 연륜의 교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제3세계 교회들은 서구교회들로 하여금 자신감과 선교역량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제3세계 교회들은 서구교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쏟은 선교헌신의 결실이다. 오늘날 그 교회들은 서구교회를 복음화하려는 용의를 표명하고 있다. 복음의 선포가 모든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라는 것을 서구교회에 일깨워 준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서구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지상 과제인 것이다.3)

1984년 저자

 

주(註)

  1. 1. ‘제3세계 교회’ 또는 ‘제3교회’라는 용어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대양주의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나 제3세계와 온전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일본은 제3교회에 속하지만 제3세계에 속하지는 않는다. ‘젊은 교회’라는 용어는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대양주의 교회들을 지칭한다.
  2. 2.「제3교회의 도래: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분석」(메리놀, 뉴욕 오르비스 출판사, 1974).
  3. 3. 이 연구서는 가톨릭 교회 선교에 대한 개괄에 불과하다. 선교운동은 개신교(특히 복음주의 개신교)와 성공회의 젊은 교회들 안에서도 못지않게 활발하다.

 

제1장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태동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선교는 잘 정비된 서구 교회의 과업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것이 달라질 수 있었는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수세기 동안 신앙을 고백해 온 교회들이 파견한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북아프리카로부터 온 선교사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복음 선포자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에게로의 회두, 영혼 구령,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설립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선교사들은 자기들의 첫째 목표가 지역교회의 설립이고 또한 설립된 교회가 꾸준한 복음화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후원조직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던 시기 즉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에는 그러한 각성이 일어날 수 없었다. 1622년 포교성성이 설립됨으로써 교황들은 선교사업을 자극 후원하려 하였고 그 사업이 새 진로를 밟도록 애썼다. 유명한 훈령이 1659년에 삐에르 랑베르 드 라못트 주교, 프랑스와 빵뀌 주교, 그리고 이 주교들의 새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파리 외방 전교회의 선교사들에게 주어졌다.

이 훈령에 의하면 선교사들은 지역교회를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방인 사제들의 양성에 우선권 을 두어야만 하였다. 복음화된 민족의 문화적 종교적 전통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그 훈령은 명시하였다. 그 훈령은 선교방식에 있어서의 획기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교황청은 선교활동을 통제하고 새 방법들을 적용시키는 데에 있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당국과의 오랜 갈등을 겪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력이 약해진 19세기 동안에야 비로소 교황들이 선교 정책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의 출중한 선교 교황인 그레고리오 14세는 훈령(Neminem Profecto, 1845)을 통하여 선교사들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방인사제의 양성에 우선권을 두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19세기 중엽에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선교활동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선 교사들은 새로이 발견되는 지역들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지역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런데 그들의 주 목적은 여전히 ‘이교인들의 회두’ 성사의 집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설립이었다. 지역 출신 사제의 훈련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지역 교회의 설립은 아직도 상당히 요원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변화가 일어나려면 왕성한 활동력과 단호한 결의가 요구되었는데, 통찰력 있고 의욕적인 반 로숨(Van Rossum) 추기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두 교황이 각기 회칙을 반포하였다: 베네딕도 15세(Maximum Illud, 1919)와 비오 11세(Rerum Ecclesiae, 1926)이다. 이제 방인사제들의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에 우선권이 주어졌다. 비오 11세는 방인주교들의 임명과 지역교회의 설립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주교 150명이 참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에 있어서 전통적 견해로부터 새로운 시야에로 옮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회기 동안에 비로소 공의회 교부들은 선교가 더 이상 서구교회의 독점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과 젊은 교회들이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안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교대상이었던 젊은 교회들이 선교의 주체가 되었다. 이리하여 젊은 교회에 관한 장이 선교교령(3장)에 첨부되었다. 이는 전망에 있어서의 중요한 변화를 가리킨다. 선교사들의 임무를 이제 젊은 교회가 떠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령의 다른 장들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 장들 안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서구교회 선교단체들의 과업이다. 제6장은 선교협력을 대개 일방적인 활동으로 묘사한다.

 

왜 젊은 교회가 선교적이 되어야 하는가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특히 그 주요 발견들 중의 하나인 부분교회에 대한 공의회 가르침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하느님 백성이 메시아 백성으로 묘사되어 있다(교회헌장 9항). 몇몇 구절에 의하면 전체교회는 선교적이고 복음화는 하느님 백성의 기본임무이다(교회헌장 17항; 선교교령 35,36항). 그것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 교황과 주교들(선교교령 38항), 사제들(선교교령 39항), 수도자들(선교교령 40항), 평신도들(선교교령 41항)의 임무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선교적 차원을 발전시켜야 한다.

“쇄신의 은총은 각 공동체가 사랑의 광장을 땅 극변까지 넓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자기 공동체의 일원과 같이 배려될 때 그 공동체 안에 증가된다”(선교교령 37항).

「교회헌장」의 한 주요한 구절에 의하면 부분교회는 “전체교회의 모습대로 형성되었고, 이 교회들 안에서 또 이러한 개별교회들로부터 하나이며 유일한 가톨릭 교회가 성립되는 것이다”(23항). 부분교회들은 특정지역 안에 있는 보편교회이다. 따라서 보편교회와 마찬가지로 지역교회도 선교적이 되어야 한다. 선교는 지역교회의 존재 자체와 상관되는 것이다. 「선교교령」이 이 사실을 명확히 한다.

“이런 선교의 열의가 자기 국민들 사이에 번성하기 위해 아직 어린 교회라도 할 수 있는 한 속히―예컨대 그 자체 교역자의 부족에 시달릴지라도―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할 선교사들을 스스로 파견하여 교회의 일반적 선교활동에 실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극히 적절한 일이다. 아직 어린 교회도 다른 민족에의 선교활동에 활발히 참가할 때 전체교회와의 상통은 어느 의미에 있어서 완성될 것이다”(20항).

젊은 교회는 보편교회와의 친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아직 젊은 교회들은 전체교회와 항상 긴밀히 상통하면서 전체교회의 전승의 제요소를 고유의 문화와 결합시킬 것이며, 이로 인해 양자가 서로 힘을 유출, 교류시켜 신비체의 생명의 증대를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체교회와의 상통의 정신을 기르는 데 유익할 신학적 심리학적 및 인간적 제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19항).

젊은 교회들은 자립을 향하여 점차 성장해야 하고 또 다른 교회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아직 어린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구원의 빛나는 표지가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대한 생생하며 견고하고 유일한 증거를 해야 한다”(21항).

공의회는 교회가 비서구교회들 안에서 ‘강생’되어야 하고 더이상 ‘민족들’에게 생소한 교회가 되어서는 아니 됨을 거듭 천명하였다. 이리하여 보편교회 안에서의 다양성이 인정되었다. 새로운 통찰과 경험들은 복음이 다양한 문화들 안에서 강생된 결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젊은 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의 영적 가치들은 보편 교회를 부유하게 해준다.

“사랑의 전집단을 통할하는 베드로 좌의 수위권은 부동인 채 고유의 전통으로 풍부하게 된 새로운 부분교회들이 교회적 상통 중에 자기들의 자리를 발견할 것이다”(2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은 젊은 교회들을 그 변두리 위치, 그 “부차적 계층”의 자리에서부터 끌어올렸다. 그 교회들은 부분교회들을 전세계의 차원으로 일치시키는 전체교회 안에서 자주적이고 동동하며 책임있는 개별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부분교회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의 친교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초래하였다. 교황뿐 아니라 주교단 전체도 교황의 지도 아래 교회가 전세계 안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에 책임지고 있다.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이 전체 주교단, 모든 주교회의, 모든 주교, 따라서 모든 교회가 세계의 복음화에 책임을 맡고 있다고 천 명한다:

“모든 주교들은 사도단을 계승하는 주교단의 구성원으로서 다만 한 교구를 위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구원을 위해서도 축성되었다.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으로(마르 16,15) 베드로와 더불어 베드로 밑에 먼저 또 직접적으로 주교들에게 의무를 지운다.

거기서 복음 선포론 추진하기 위해 오늘날 대단히 필요로 하는 제교회들과의 상통과 협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 상통으로 말미암아 각 교회는 다른 모든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각자의 필요를 서로 알게 하며 각자 갖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눈다”(선교교령 38항; 교의헌장 23항 참조).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은 교회들이 서로를 보살펴주어야 함을 단언하며 또한 공의회는 이렇게 진술한다.

“교회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는 영적 재화와 사도직에 봉사하는 일꾼들과 물질적 원조에 관한 교류가 긴밀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교회헌장 13항; 주교교령 6항).

모든 교회가 자비를 베풀고 서로 상통하는 일에 불림을 받고 있다. 모든 교회가 각기 줄 것 과 받을 것을 갖고 있다. 그 자신 안에 칩거할 수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다. 온 세상을 향해 자신을 개방시키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 킨샤사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지역주교 와 그 공동체의 책임일 뿐 아니라 보편교회와 다른 지역교회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한편 킨샤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럽과 아시아 교회들의 요구에 무관심한 채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공의회의 교회론은 젊은 교회들로 하여금 이러한 통찰을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전망에 눈을 뜨도록 유도하며 또 자신의 선교의식을 고취하도록 자극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74년 주교 시노드의 영향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할 즈음에 누가 공의회의 가르침 안에 숨겨진 잠재력, 원동력―폭발적인 힘이라 말한 수는 없을지라도―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 교회가 다음 시대에 내적으로 성장하리라고 누가 예견하였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에 대한 가르침의 근본 측면들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로부터 십 년이 경과하였지만 선교적 안목에 대한 「선교교령」의 몇 가지 측면들은 오늘날 벌써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기의 나타나지 않았다. 1965년까지만 해도 아직 서구교회의 과제로 간주되었던 선교가 이제 전적으로 젊은 교회의 과업이 된 것이다. 서구교회의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뒷전으로 물러나 앉았다. 제3세계가 이 기간 동안 서방세계로부터 자주 독립하였던 것과 때를 맞추어 ‘선교하는 교회’도 서구교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세계의 지도와 세계 역사가 제3세계의 동장으로 말미암아 온통 수정되었던 것과 같이 보편교회의 모습 안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1973년 아프리카에는 170명의 주교가, 아시아에는 144명의 주교가 있었다. 그로부터 약 5년 후에는 432명의 아프리카 주교들 가운데서 271명이 아프리카인이었고, 467명의 아시아 주교들 중에 331명이 아시아인이었다. 진정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교회가 보편교회 내에 있어야 할 다양성의 적절한 균형에 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친 결실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공의회 이후에 진척된 일로서 아주 괄목한 만한 사건은 “현대 세계에 있어서의 복음선교” 문제를 다루었던 1974년의 주교 시노드였다. 이 시노드는 전세계를 위해, 그러나 특히 제3세계 교회들 안에서 훌륭히 준비되었다. 모든 지역교회, 모든 주교 협의회가 지역적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음화의 문제를 깊이 연구할 것을 요청받았다. 그때에 각 대륙은 자기 대륙에 대한 개괄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서구교회 주교들의 각 그룹은 각기 자신들의 종합적인 보고서를 시노드에 제출하였다.

몇 가지 점에 있어서 이 시노드는 교회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제3교회가 점차로 중요한 위치를 접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최초로 제3교회의 주교들이 타교회의 주교들보다 숫자가 많았을 뿐 아니라 보다 역동적 창조적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서구교회가 수적으로 열세가 되어버린 상황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제3세계 교회들은 보편교회 안에서 주 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교회들의 공헌이 없다면 더는 교회의 제반 문제가 탐구될 수 없었다. 진전은 계속되었고 1977년과 1980년의 주교 시노드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1979년의 시노드는 복음화를 광범위한 의미로, 교회의 범세계적 사명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런 전망 하에서 복음화는 모든 교회가 책임져야 할 사명이 되었다. 그것은 사목적이고 동시에 선교적인(으뜸가는) 복음화를 내포한다. 젊은 교회들에게는 이것이 교회설립, 신앙의 심화, 자기 복음화뿐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첫째가는 복음선포 즉 ‘민족들을 향한’ 선교까지 의미하는 것이다. ‘민족들을 복음화하는’ 문제에 대한 시노드의 논의는 지역적인 또 는 ‘내부로 향한’ 복음화뿐 아니라 전세계적 또는 ‘외부로 향한’ 복음화 문제까지 언급하였다. 젊은 교회의 주교들은 전세계를 복음화하는 보편교회의 과업에 기꺼이 동참한 것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외부로 향한 전세계적 복음화에 있어서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자신들의 충분한 능력을 가능한 한 빨리 갖추겠다는 원의를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교회의 인적 자원이 부족하지 않을지라도 외방 선교사들이 지역교회에 머물러 활동하는 것은 여전히 바람직하고 또 필요하다. 그음의 현존은 지역교회가 보편 교회에 개방되어 있고 친교를 누리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며 지역교회들 간의 연대성과 상호 상통을 촉진시킨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은 상호 의존의 정신으로 파견되어야 한다. 유럽, 북아프리카, 그리고 여타 지역의 교회들은 자기네들에게 오고 자기들과 협력하여 선교 사명을 수행할 사제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을 초청하려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모든 교회가 주고받아야 한다. “교회들 간에 여전히 지배적인 낡아 빠진 부자(父子) 관계는 청산되고 나이든 형제들과 나이어린 형제들 사이의 관계로 대치되어야 한다”(J. Sangu 주교). 이와 같이 P. 칼리롬베 주교도 발언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여러분에게 파견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가지지 않았지만 여러분 가운데 삶으로써 여러분들이 인격의 새로운 면들, 문제들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교회인식, 선교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시노드 폐막 때에 아프리카 주교들은 서로 합심으로 똑같은 의견을 발언하였다:

“일치의식, 공동 책임의식, 교회의 일치는 한 근본 실재의 동의어들입니다. 우리는 같은 가족의 구성원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개별적으로 또한 우리 모두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하느님의 교회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파카키 추기경(캘커타)은 “복음화된 교회로서 인도는 이제 세계의 모든 지역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1975년 12월 8일)는 주교 시노드의 반성의 결실로서 훌륭한 문헌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그것은 “금세기 복음화 과업의 대헌장”(1980년 1월 10일)이라 할 만하다. 이 문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에 대한 가르침을 더욱 발전시킨 결실이다. 「선교교령」이 선교에 대한 시대에 뒤진 이해와 연관하여 계속 언급하였던 내용이 「현대의 복음 선교」 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젊은 교회와 오랜 연륜의 교회 사이의 구별이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상호 관계가 모든 형태의 부성(父住)주의를 온전히 탈피하였다. 상호의존 관계가 예전의 일방적인 지침 하달의 상하관계를 대치하였다. 교회의 선교적 특성은 「선교교령」 안에서 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 “만일 복음선포가 교회가 받은 소명이고 은총이라 할진대 그것은 교회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고,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복음선포를 위해서이다”(14항). 복음화되어 가고 있는 모든 공동체가 복음화하는 공동체로 변신해야 한다.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구원의 공동체에 하나가 된 사람들은 역시 그것을 알리고 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13항). “그리스도를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언제나 교회의 근본 활동지침이 되어 왔다”(51항).

「현대의 복음선교」는 ‘복음선교’라는 용어를 보다 넓은 뜻으로 사용하며 ‘선교’라는 개념을 점차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현대의 복음선교」는 1974년의 시노드와 보조를 맞추면서, 교회가 기쁜 소식을 선포함(복음선교)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까지는 결코 쉴 줄을 모를 것이라 단언한다:

“오늘날에 와서 사도적 열의는 이미 소진되고 포교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이러한 때에 위에서 열거한 사실을 천명하는 것은 다행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시노드에 있어서도 포교는 힘없이 그만두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교회로서 자신의 사명 완수를 위해 추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표명하였다”(53항).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마르코 본문(16,15)은 사도들과 첫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49항). 「현대의 복음선교」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신의 선교활동을 제한시키려는 유혹에 굴복당하려 하고, 지치고 실망하며 위축되고 무기력해지고 또한 무엇보다도 기쁨과 희망을 온전히 포기하여 자신감을 잃은 복음선포자들을 호되게 꾸짖는다(49-50항, 80항). 「선교교령」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복음선교」도 주교, 사제, 수도자들에게 각자의 선교임무를 상기시킨다.

1974년의 주교 시노드와 「현대의 복음선교」 문헌은 제3세계 교회들 안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 문험들은 주교와 사제들에게 자기의 선교의무에 대하여 진지하게 숙고할 것을 권유한다.

1968년의 라틴 아메리카 주교 협의회는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상당히 중요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지침을 받은 주교들은 라틴 아메리카 상황 안에서의 교회 쇄신을 연구하였다.

인도의 교회쇄신은 1969년 뱅갈로에서 개최된 전인도 교회의 세미나 즉 인도 주교 협의회의 가장 중요한 총회의 중심 주제였다. 메델린 회의와 같이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축소판이었다. 주교들은 복음화의 문제들을 다루었지만 ‘내부로 향한’ 차원에서 주로 취급하였다. 제3세계 교회가 ‘외부로 향한’ 선교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쏟은 것은 비로소 1971년 주교 시노드를 준비할 때와 그 이후부터였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첫 총회는 1974년 4월에 타이베이에서 열렸는데 주교 시노드를 준비하면서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 주제를 논의하였다.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아시아는 그 자신의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오랜 연륜과 힘을 가진 몇몇 나라들은 보다 더 큰 요구를 가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사제와 수녀들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가 다른 대륙들에 선교사들을 파견할 날이 가까웠음(그 당시에 이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을 우리는 자각한다.”

바오로 6세는 1970년 11월에 마닐라를 방문하는 기회에 아시아의 주교들을 향하여 선교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범아프리카 주교회의(SECAM; 1968년에 설립된 아프리카와 마다카스카르 주교회의 심포지움)는 1975년 9월 로마에서 개최된 제4차 총회 동안 아프리카에서의 복음화 문제를 토의하였다. 이 총회는 ‘내부로 향한’, 그리고 ‘외부로 향한’ 민족 복음화의 시급함을 역설하였다.

바오로 6세는 1969년 캄팔라에서 아프리카 주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아프리카 교회의 선교 소명을 강조하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주교들은 ‘외부로 향한’ 복음 선교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국가 및 지역차원의 회합을 개회해 왔다. 많은 주교회의가 복음 전파를 위한 주교 특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라틴 아메리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 안에 지부를 두고 있으면서 수년 동안 선교단체들을 운영해 왔다.

복음화에 대한 반성이 제3세계 교회를 위한 축복임이 입증되어 왔다. 몇몇 방인 주교들과 사제들이 자기 동족 그리스도인을 보살피는 일에 국한하여 사목활동은 폄으로써 비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립체를 형성하고 자기 관할구역의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선포하는 일을 등한히 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었다. 그들에게는 외방 선교사들의 ‘투쟁’ 정신이 결핍되었다. 아직도 메꾸어져야 할 틈이 없지 않다. 측 젊은 교회들은 세계를 향하여 자신을 개방하고, 폐쇄되고 거저 받기만 하는 교회를 탈피하여 능동적이고 ‘주는’ 교회가 되어야만 하였다. 그 교회들은 ‘외부로 향한’ 선교에 적극 임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비해야 할 성숙과 활력의 불가결한 요소임을 깨달아야만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1974년의 시노드에 힘입어 제3세계 주교들이 선교와 관련된 획기적 의식변화를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사제의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주교들이 어떤 장소에든 가서 복음 전파하는 일에 몸소 뛰어드는 것이 이해될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1960년대 성모 성심회가 자기 회 소속 자이레 사제들을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 파견하려고 계획을 새웠을 때 방인 주교들과 사제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이는 우리에게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그 전 시기에는 똑같은 사고방식이 서구교회에 팽배해 있었다. 1911년 J. A. 월쉬 신부가 미국에서 외국 선교를 위한 교구사제들의 단체(메리놀회)를 설립하려 했을 때 주교들은 그의 계획을 시기상조라 판단하였다. 비오 11세(Rerum Ecclesiae 1926), 비오 12세(Fidei Donum 1957), 요한 23세(Princeps Pastorum 1959)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많은 주교들이 자기네 사제들 가운데서 선교 소명의식이 고취되는 데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비오 12세가 사제들이 부족한 교구일지라도 선교사업에 사제들을 보내어 후원해 주라고 요청했을 때에 이 요구에 응한 주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의 권유와 행위들이 제3세계 안에서 선교연징을 고취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쳐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두 교황은 순례하는 선교사가 되었고 젊은 교회들로 하여금 선교하는 교회로 변신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언은 꽤 인성적이다. 선교가 그에게 인마나 중요한 관심사인지를 표명한다:

“선교의 성공은 내 마음의 가장 큰 바람이고 매일의 관심사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직 도 소수 집단으로 머물러 있는 먼 나라들에 내가 여행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러한 심정의 표시 이다”(1982년 6월 28일의 연설).

 

제3교회의 등장

제3세계 교회 안에서 선교의식이 고조되는 사실은 W. 뷜만의 멋진 저서의 제목인 ‘제3교회의 도래’라는 문맥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실과 통계가 보편교회 안에서 진전되어 온 중요한 변혁을 가리킨다. 교회 내의 중요한 자리가 서구교회로부터 급격하게 남쪽과 동쪽의 교회 즉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의 교회에 게로 옮아가고 있다.

제3세계 주교들이 다른 지역의 주교들보다 숫자가 많고 그들의 영향력이 계속 증대되고 있는, 주교단의 가장 최근의 형편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1960년대에 모든 가톨릭인들의 51%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에 살았다. 2000년 말에 가면 이 퍼센트는 불과 30%로 하락될 것이다. 다음 세기에 들어서면 가톨릭 전체 인구의 절반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때쯤에는 아프리카는 서구에 못지않게 많은 그리스도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교회의 1980년 통계 연감」(Annuarium Statisticum Ecclcsiae; 1982년 출판)에 의하면 1980년 말에 2,452개의 부분교회(교구 또는 그와 유사한 단위로 구분되어 있는 교회 관할구 역)가 있었다. 그 가운데 948개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에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주교들이 제3세계에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448명의 주교(상주 주교와 명의 주교)들 중 300명(67%)이 아프리카인이다. 535명의 아시아 주교들 가운데 약 400명(75%)이 아시아인이다. 101명의 대양주 주교들 중 60명(59%)이 그 지역 출신이다. 951명의 중‧남미 주교들 가운데 735명(77%)이 그곳 출신이다.

1963년 교황선출 추기경단의 80명 중 제3세계 추기경은 불과 13명이었는데 반하여 1978년 교황선출 회의 때에는 추기경 111명 중 52명이 비서구교회 추기경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피선은 비이탈리아인 교황 선출의 조짐을 입증하였다. 비서구인 교황 선출은 더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제3세계 출신의 성직자들이 갈수록 성청의 여러 기구 안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제3세계에서 온 수많은 신학생들과 사제들이 로마와 제1세계 중심지역들 안에 있는 교회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제들이 유럽과 북 아메리카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교회쇄신과 결부된 사고의 주류(일반 대중이 주축이 된 교회의 설립, 해방신학, 민간신심에 대한 존중, 전례쇄신 따위)가 제3세계 교회 안에서 연유하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서구문화와 연관된 신학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독점사업을 의문시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3세계 신학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교황청 전교원조회의 상급 평의회를 이루고 있는 현 회원들의 구성은 제3세계 교회의 위치 상승에 대한 범례이다. 과거에는 그 기구가 거의 절대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서구교회 출신의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보다 최근에는, 또한 젊은 교회들이 성숙한 결과로, 교황청 전교원조회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설립되었다.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로마에 있는 상급 평의회의 위원들이며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기금분배와 결부된 문제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 간여한다. 전에는 받기만 하였던 그들의 교회들은 이제 국제적 공동기금의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이 뽑힌 지도자들은 교황청 전교원조회의 정관에 명시된 바대로 그들의 첫 과업이 기금을 조성하는 일보다는 자신들의 지역교회 안에서 선교의식을 일깨우는 데에 있음을 자각한다.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의 지도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아주 적극적이 되었다.

국제적 수도단체 내의 진전은 교회의 내적 흐름이 북쪽에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또 다른 예이다. 여기서도 역시 중심자리가 제3세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현재에는 많은 수도회가 대부분 제3세계 나라의 지원자들로 인해 활력을 되찾고 있다. 미구에는 이러한 제3세계 회원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몇몇 장상 위원회는 비서구교회로부터 온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I.C.M., 히벌리, 벨지움)의 장상은 필리핀 태생이다.

1981년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는 예수회가 11개의 지부와 준지부들 안에 3,000여 명의 지역 출신의 회원들을 가졌는데 이는 미국의 예수회원 수 다음으로 큰 숫자이다. 란키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은 137명의 수련자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원자 숫자이다. 1981년 신언회가 운영하는 학교는 1,046명의 학생(철학과 신학 전공)을 가졌는데, 그들 중 716명이 제3세계에서 온 학생들이다(인도네시아인 191명; 필리핀인 159명; 인도인 139명). 1978년 그곳에서 서품받은 사제들은 90명이었는데 그들 중 아시아인은 47명, 브라질인은 3명, 아르헨티나인은 3명이고 아프리카인과 뉴질랜드인은 각각 1명씩이다. 1982년 성모 성심회의 300명 회원 중 200명이 40세 이하인데 이들은 비서구인이다.

다른 수도회들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몇몇 나라에서는 어떤 선교 수도회들의 선교사업이 방인 회원들에 의해 전직으로 운영되어 왔다. 예를 들면 인도와 베트남이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카푸친 수도회의 250명 사제들 중 150명이 그곳 출신이다. 마아스트리히트 형제 수도회(네덜란드)의 130명 회원들 중 100명이 인도네시아인인데 이들 가운데서 3명이 가나에서 일하고 있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의 네덜란드 수녀회는 1,000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데 320명이 인도네시아인이다.

많은 선교 수도회가 서구지역에서 극히 적은 수의 지원자들을 가진 반면에 제3세계에서는 많은 수련자들을 갖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 성모 성심회는 아주 적은 수의 유럽과 미국 출신 지원자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이레와 필리핀의 수련자들은 30명을 헤아린다.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는 벨지움에 5명의 지원자를 가진 데 비해 인도, 필리핀, 자이레에서는 30명이나 영입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제3세계 교회들과 그 선교 활동들이 보편교회 안에서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더해가고 있음을 입증한다.

제3세계 교회내에서 선교의식이 고취되는 것은 그 세계의 나라들 안에서 수도생활이 성숙하고 있는 사실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3교회내에서 수도생활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보다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나는 먼저 사제들과 신학생들의 숫자 통계를 제시할 것이다. 이 통계는 제3세계에서 발전하고 있는 선교운동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 통계

1980년대의 사제수

  • · 아프리카: 6, 052명의 교구사제와 11,294명의 수도사제들이 있는데 교구사제들 대부분이 아프리카인이고, 약 400명을 제외한 수도사제들은 비아프리카인이다. 이리하여 총 사제수의 약 3분의 2가 비아프리카인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제수 절반이 아프리카인이 될 것이다.
    · 아시아: 13,555명의 교구사제와 13,581명의 수도사제가 있다. 실제로 모든 교구사제, 그리고 대다수의 수도사제가 아시아인이다. 사제 총수의 3분의 2 이상이 아시아인이다.
    · 라틴 아메리카: 23,281명의 교구사제와 25,497명의 수도사제가 있는데 모든 사제의 약 절반이 라틴 아메리카인이다.
    · 대양주: 2,912명의 교구사제와 2,755명의 수도사제가 있다.
    · 유럽: 168,908명의 교구사제와 74,411명의 수도사제가 있다(폴란드는 15,157명의 교구사제와 4 358명의 수도사제를 가진 데 비해 이딸리아는 40,649명의 교구사제와 23,080명의 수도사제를 갖고 있다).
    · 북 아메리카: 42,701명의 교구사제와 28,653명의 수도사제가 있다.

전부 다 합치면, 교구 및 수도회 사제들은 413,600명인데 이들 중 24%인 98,927명이 제3세계에 상주한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 동안 사제 수효의 증감을 보면, 유럽에서는 4.6%, 북미에서는 0.5% 감소하고, 아프리카에서는 19%, 아시아에서는 11.5%,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1.6%, 남 아메리카에서는 1.8% 각각 증가하고 오세아니아에서는 1% 감소하였다. 그 기간 이후로 서구 세계에서는 계속 감소되어 온 반면에 제3세계에서는 계속 증가되어 왔다.

 

사제(교구) 서품자의 1975년과 1980년 대비(괄호 안의 숫자는 1975년도의 것)

  • 아프리카: 397명(284명)
    · 아시아: 562명(447명)
    · 라틴 아메리카: 528명(536명)
    · 대양주: 43명(71명)
    · 유럽: 1,682명(1,966명)
    · 북미: 648명(835명)

1975년에는 제3세계에서 1,338명, 서구교회에서 2,801명이 서품되었는데 1980년에는 제3세계에서 1,530명, 서구교회에서 2,330명이 서품되었다. 이와 같이 새 서품사제들의 3분의 1 이상이 제3세계 출신들이다. 대신학교의 수효는 제1세계에서보다 제3세계에서 훨씬 더 많이 사제 서품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다.

 

대신학생 수효의 1975년과 1980년 대비(괄호 안의 숫자는 1975년도의 것)

  • 아프리카: 5,448명(3,883명)의 교구신학생, 1,101명(512명)의 수도회 신학생.
    · 아시아: 7,421명(6,343명)의 교구신학생, 4,769명(3,971명)의 수도회 신학생.
    · 중·남미: 8, 896명(5,842명)의 교구신학생, 5,261명(3,878명)의 수도회 신학생.
    · 대양주: 526명(573명)의 교구신학생, 411명(446명)의 수도회 신학생.
    · 유럽: 16,438명(15,960명)의 교구신학생, 7,228명(8,223 명)의 수도회 신학생. 폴란드의 신학생 총수는 6,101명, 이딸리아는 5,076명이다.
    · 북미: 5,414명(6, 446명)의 교구신학생, 3,129명(4,065명)의 수도회 신학생.

합쳐보면, 제3세계의 신학생들은 33,833명이고, 제1세계는 32,209명이다. 실제로는 여기에 베트남과 중국의 통계가 빠져 있으므로 제3세계 신학생의 수효가 훨씬 더 많다. 제3세계가 장래 사제의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통계는 1980년 말의 것이다. 그 이후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신학생 수효가 계속 증가해 왔다.

 

사제들의 전세계 분포

성직자성성이 반포한 한 문헌 「지역교회들 상호간의 협력과 특히 성직자들의 전세계 분포를 위한 규범」(1980년 3월 25일)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 100,000명의 가톨릭인들 을 위하여 중·남미에서는 16명의 사제, 아프리카에서는 33명의 사제, 남부 및 동부 아시아에서는 43명의 사제, 유럽에서는 93명의 사제, 북미에서는 120명의 사제가 있다. 이는 모든 사 제 1명이 중·남미에서는 6,250명, 아프리카에 서는 3,030명, 아시아 전지역에서는 2,213명, 유럽에서는 1,075명, 북미에서는 833 명의 가톨릭 신도들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에서는 사제 2명, 아프리카에서는 4명, 중·남미에서는 13명, 대양주에서는 26명, 북미에서는 29명, 유럽에서는 31명이 100,000명의 국민을 맡고 있는 셈이다.

가톨릭 신도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유럽과 북미는 전체 사제수의 77%를 차지한다. 가톨릭 신도 전체의 45%를 헤아리는 중·남미와 필리핀은 전사제의 12.6%를 갖고 있다. 사제의 부족은 중남미와 필리핀에서는 심각하다(필리핀에는 한 명의 사제가 맡고 있는 가톨릭 신도는 무려 7,776명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대양주에서의 수도생활의 확산

수도생활을 지망하는 자들의 수효가(폴란드와 아일랜드를 제외한) 서구교회에서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수도성소가 착실히 늘어가고 있다. 절대수에 있이서는 서구교회에서보다 젊은 교회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수도자들이 아직도 적다. 젊은 교회가 어느 정도의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될 때에 비로소 수도생활이 확산되기 시작할 것임이 분명하다. 아시아에서보다 아프리카에서 수도 생활이 더 늦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아프리카 교회가 아시아 교회보다 수세기 더 어리기 때문이다.

1980년 말 교회 전체 남자 수도자들은 229,281명(수사 신부들은 156,191명이고 평수사들은 73,090명)이었다. 제3세계 교회의 수사 신부들의 수효는 극히 소수이다. 대략 1970년까지 포교성성(인류복음화성성)과 주교들은 수도 사제 생활의 확산을 억제시킴으로써 교구 사제들의 증가를 촉진시컸다. 이것이 현명한 처사인지는 의심스럽다. 교구사제와 수도회 사제 사이의 통상 비율은 65:35이다. 이 비율은 아시아에서 그렇다. 수도생활의 확산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수녀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다. 전세계의 수녀들은 960,991명이다.

  • 아프리카: 35,586명 중 14,000명이 아프리카인이다.
    · 아시아: 87,889명 중 76,000명 이상이 아시아인인데, 인도에만 49,500명이 있다.
    · 대양주: 16,072명
    · 중남미: 125,280명
    · 유럽: 527,707명
    · 북미: 168,457명

이와 같이 제3교회에는 귀화한 수녀들을 포함하여 264,827명이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남녀 수도자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젊은 수도자들의 놀라운 수효는 이미 언급하였다. 서구교회의 수도회에 남녀 수련자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 수효가 상당히 적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수련자들의 숫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수년간 교황청 전교원조회는 아프리카, 아시아, 대양주에 있는 첫해의 방인 수련자를 위해 일인당 연간 보조금(250불 가량)을 원조해 왔다. 이 지역들의 수도회들은 자기 수련자들의 수효를 정확히 보고해 준다.

1980년에 남자 수도회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첫해를 맞은 약 2,000명의 수련자들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수련소들은 수련자들로 꽉 차 있다. 아래의 통계는 첫해의 수련자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사도회는 케냐의 수련소에 36명의 수련자들을, 우간다의 수련소에는 32명을 보유하고 있다. 성모 성심회는 킨샤사의 수련소에 20명을, 성령 사제수도회는 나이지리아의 수련소에 14명을, 탄자니아의 수련소에는 10명을 갖고 있다. 특히 인도의 많은 지원자들은 아주 젊다. 예수회의 수련자들은 모두 137명을 헤아리며, 살레시오 수도 사제회는 네 곳의 수련소에 114명의 지원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우타 카문드의 수련소에는 46명이 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가르멜회(시로-말라바르)는 5개의 케말라 수련소에 61명의 지원자를 수용하고 있다.

여자 수련자들은 아직도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으며 약 5,000명이나 될 것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각 수련소가 첫해의 수련기를 맞은 지원자들을 20-30명씩 갖고 있는 것은 보통이다. 1980년에 오닛샤(나이지리아)에 있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성심수녀회는 41명의 수련자 률, 모시(탄자니아)에 있는 마리아의 복음전교 수녀회는 24명을, 킬리만자로의 우리 어머니 수녀회는 22명을, 타보라(탄자니아)에 있는 애덕의 딸 수녀회는 40명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특히 인도와 필리핀에는 아프리카에 필적한 만한 입회자들을 가진 수련소들이 몇 개 있다. 자이레에는 현재 방인 및 귀화한 여자 수도자들을 위한 수도원이 50개 있다. 수련소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실은 대체로 그들이 왜 보다 적은 입회자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1966년에 설립된 부활의 소(小) 수도회(부카부)는 99명의 서원 수녀들과 약 100명의 수련자 및 청원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선교 수도회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방인 여자 수도회를 많이 갖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교구 수도회들이다. 방인 남자 수도회의 숫자도 많다. 그런데 방인 사제 수도회는 너무나 적다. 인도에는 몇 개 있지만 아프리카에는 하나밖에 없다. 방인 수사 신부들은 기의 대부분 서구교회의 수도회에 속해 있다. 국제적 남녀 수도단체들은 주로 방인 지원자들로 인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많은 선교 수도회들은 이미 외국인들보다는 방인들을 더 많이 회원으로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보다 특징적인 선교 수도단체들 대부분이 수년 전에 토착화의 과정을 시작하였다. 예컨대 신언회, 성모 성심회, 콤보니아 사제수도회(베로나), 사베리오 사제수도회(빠르마), 꼰솔라따의 선교수도회(투린), 마리아의 프란치스꼬 수도회,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헤벌리) 등이 그렇다. 서원을 발하지 않는 몇몇 선교 수도회 특히 강한 국가적 유대를 가진 단체들―예컨대 파리 외방 전교회, 베들레헴 선교회(스위스), 메리놀 수도회(미국)―은 선교 지역의 사람들을 회원으로 영입하지 않는다. 지역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출 때까지 그 교회를 도와주는 것만이 그 자신들의 임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업이 성취되면 자신의 선교 임무는 끝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지역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선교단체들은 지역교회로 하여금 ‘외부로 향한’ 선교교회가 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신들이 그 교회에 봉사한다고 확신한다. 복음 선포의 분야에서 오랜 세월 동안 쌓은 자신들의 경험과 잘 구비된 선교역량으로부터 지역교회가 많은 도움을 받도록 그들을 배려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 기회들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도움을 베풀지 않는다. 이러한 방향으로 고찰함으로써, 예전에는 지역 사람들을 지원자로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지역교회 안에서 활력을 찾으려고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 몇몇 선교단체들은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예컨대 백인 사제수도회와 백인 수녀회가 있는데 후자는 20개의 아프리카 수도회를 설립하는 일을 처음으로 도와주었다. 1977년 백인 사제수도회는 아프리카인들을 지원자로 영입하여 활기를 되찾으려고 결정하였다. 그 수도회는 이제 가나, 우간다, 탄자니아, 자이레에서 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제3세계 교회들로부터 파견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국제적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확산은 보편적 특징을 초래하였다. 이리하여 다른 대륙들의 교회들과 젊은 교회들 간의 유대가 형성되었다. 인도의 예수회 회원들은 전대륙에서 일하고 있다. 필리핀의 성모 성심회와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의 회원들은 다른 아시아 나라와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일한다.

스리랑카의 봉헌수도회 사제들은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지아에서 선교임무를 수행한다. 국제적 선교회들이 여러 국적의 회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여러 나라 회원들로 구성된 선교팀들을 파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조직된 선교활동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불과 몇 세기를 경과해 온 선교역사는 복음화가 거의 절대적으로 수도단체 또는 서원을 발하지 않는 회원들로 구성된 선교단체의 과업이었음을 가르친다. ‘외부로 향한’ 선교 과업, 특히 개척정신의 선교활동에는 영적 후원과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훈련과 관련된 많은 것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단체의 중재를 통하여 선교활동이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점에 대하여 「선교교령」이 설명한다:

“선교활동 자체도 경험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개개인으로서는 완수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공통의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결속하여 한 회를 조직하고 거기서 각자가 협력하며 적당한 양성을 받아 교회의 이름으로 교계의 권위의 지시하에 실천될 수 있다”(27항).

이러한 단체활동은 서구교회들보다는 제3세계 교회들에게 더 권장할 만하다. 적어도 때가 되면, 제3세계는 훈련과 이에 수반되는 항목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몇몇 아시아와 아프리카 주교 협의회는 교구사제로 구성된 선교단체나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렇게 설립된 단체들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단체들은 서원을 발하거나 발하지 않거나 간에 독자적인 단체로 성장하지 않으면 별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구들 간에 교구사제들을 교류시키는 일이라든지 Fidei Donum 사제들을 파견하는 일이 과소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비오 12세는 회칙 「Fidei Donum」(1957년)을 통하여,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 부족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나 대륙에 있는 교구들에게 파견해 줄 것을 주교들에게 촉구하였다.

1977년에 Fidei Donum 소속 사제들은 약 2천 명이었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주교들은 선교에 대한 자기의 책임감을 직접 드러내며 교회들 상호간의 연대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파견되는 사제의 수효는 항상 적을 것인데, 이는 그러한 종류의 선교활동과 관련된 문제에서 기인되는 결과이다. 이러한 체계 안에 내포된 어려움들은 제1세계 교회의 사제들보다는 제3세계 교회의 사제들에게 더욱 심각하다.

제3세계 주교 협의회들은 사제가 부족한 교구에 사제들을 파견시키는 문제를 거듭 논의해 왔다. 실제로 많은 지역적 사정 때문에, 한 교구가 필요로 하는 사제의 적절한 수효는 같은 나라나 인근 나라의 타 교구에서 필요로 하는 사제의 숫자와 상당히 다르다. 많은 주교들이 서로를 도와주려는 열렬한 의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계획은 보통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사제들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회 사제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그들은 특정 교구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른 사제들보다 더욱 용이하게 교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교회가 선교활동을 확산시킬 때에 발생하였던 일들이 이제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외부로 향한 선교는 보다 광범위하게 수도자가 맡는 과업으로 존속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수도생활의 선교적 특성을 역설하였다(교회헌장 44항; 선교교령 40항; 수도생활교령 20항). 「현대의 복음선교」가 진술한다.

“수도자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 속에서 복음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또 복음화에 계속 지대한 공헌을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아낌없는 봉헌으로써 자유롭게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세상 극변까지 복음을 전하려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활동력, 창의력에 의한 선교활동은 참으로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들은 포교 최전선에서 건강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고하고 있다. 참으로 교회가 그들에게 힘입고 있는 것은 지대한 것이다”(69항).

그렇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항구히 충실하려면 수도단체들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지역교회와의 긴밀한 협력관계 속에서 일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 지역교회는 수도회 소속의 선교사들을 자기 자신의 선교사로, 죽 특징 지역에 있는 하느님 백성에 결합되어 있는 선교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장 아프리카 교회의 선교의식의 각성

일반적 개괄

내부 분열과 경제적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젊은 교회는 독자적으로 많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교회는 환력과 밝은 미래로 가득차 있으며 보편교회 내에서 갈수록 창조적이고 주요한 일익을 맡은 교회로 변해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가톨릭, 개신교, 독립교회)는 최근 수십 년간 놀랍게 성장하였다. 출생과 개종을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수적 증가는 200만 이상의 가톨릭 신도를 포함하면 연간 700만 명을 넘어선다. 가톨릭 신도의 수는 1950년과 1970년 사이에 세 배가 되었다. 1980년 말의 가톨릭인은 58, 676,000명이었다. 예비신자와 지망자들을 포함시키면 약 7000만 명에 육박한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만을 고려한다면 세례받은 가톨릭인은 아프리카 총인구(4억 6천 9백 5십 4만 3천 명)의 12.5% 내지는 15%이다. 이슬람교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화자들의 예견에 의하면 금세기말까지 아프리카 총인구의 50%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며 유럽의 그리스도인의 숫자만큼 되며 미국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D. 바렛트에 의하면 전체 그리스도인의 18%가 아프리카에 상주하게 될 것이다.

북부 아프리카는 회교도 블럭으로서 가톨릭 인들은 극소수이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몇몇 아프리카 나라에, 예컨대 회교도들의 구역에 살고 있는 가톨릭인들도 역시 소수이다. 다른 몇몇 나라에서는 가톨릭인이 국민 전체 인구의 약 50%를 차지하는데, 부룬디, 우간다, 가봉, 자이레 등이 그렇다. 킨샤샤에는 전주민 280만 명 중 58%가 가톨릭이고, 27%가 개신교이며 JO%가 아프 리카 토속종교 신봉자이다. 킨샤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세계 도시들 중 하나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그전에는, 이러한 급성장이 가톨릭 교회에 굉장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제들의 수효가 크게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외국 선교사들의 수효가 계속 감소되는 반면에 방인 사제들의 증가가 신도들의 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의 교회가 계속 증가되어 가는 신도들을 영적으로 보살펴 중 수 있는 충분한 사목자들을 확보할 수 있을까? 1980년에는 한 명의 아프리카 사제가 9,000명의 가톨릭인을 맡아야만 했다. 그런데 사태는 예견한 우려대로 진척되지는 않았다. 하느님의 영이 교회 내에 놀라운 진전을 초래하였는데, 사회학자들도 이류 예견할 수 없었다. 몇 나라들 안에서는 착실히 성소가 증가하였고 평신도들이 기초 공동체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자료에 비추어서 우리는 아프리카 안에서 성숙되어 가는 선교운동을 평가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거대한 문제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하는 대륙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1974년의 주교 시노드, 「현대의 복음선교」 문헌 따위가 아프리카 주교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 가운데서 선교의식을 일깨우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기에 넘치는 헌신이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선교소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바오로 6세가 캄팔라에서 발언한 예언적인 훌륭한 말(1969년)은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인 여러분은 자신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외국의 선교활동에 힘입어서 신앙에 부여된 충동에 만족하지 말고 아프리카 자체의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충동을 더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귀결입니다. 교회는 본성상 언제나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존속하는 것은 절대 필요한 일이라고 교황은 부연하였다. 그의 말은 아프리카에서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그 말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내적 변화를 겪어 왔다. 수많은 소그리스도교 공동체 덕분에 그 교회는 일반 대중에서부터 성장하고 있다. 즉 그 과업은 민중에 의해서 줄기차게 수행되고 있다. 성소 증가는 주로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강한 신앙과 활력에 힘입고 있다. 이 공동체들은 성소가 자연스레 증가할 수 있는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 공동체 둘은 갈수록 개방적이고 전진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교회의 보편적 차원, 타교회와의 친교, ‘외부로 향한’ 복음선교, 이 모두가 그 공동체들의 관심사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한 기회에 일깨워지고 있는 선교정신을 고취시키지 않윤 수 없었다. 그는 자이레(킨샤사, 1980년 5월 3일), 가나(쿠마시, 5월 9일), 아이보리코스트(아비단, 5월 11일)의 주교회의에서 연설을 통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는 바오로 6세의 유명한 말을 상기시켰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협력은 인원 부족을 메우고 교회의 보편성을 증거하고 교회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데에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자신의 선교사들입니다”라는 바오로 6세의 말이 부분적으로―즉 방인 선교사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수행되어 온 ‘내부로 향한’ 복음화와 관련하여―이미 사실로 판명되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복음화는 ‘외부로 향한’ 차원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는 부언하였다. 그는 자이레의 주교들에게 연설하였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자신의 선교사들입니다’라고 바오로 6세는 11년 전 캄팔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발언은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선포를 기다리고 있는 이 나라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둘 안에서 도 여러분이 이제 선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줄 줄 아는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축복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항상 자신보다 더 불쌍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제 및 수도 성소의 촉진에 관하여 말하고 나서 교황은 가나의 주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또 다른 차원에 관하여 진지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아프리카와 다른 모든 지역에 있는 자매교회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선교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사제들에 의하여 영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여러분 자신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요구와 관련된 여러분의 근심을 나는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너그러이 베푸는 자들에게 하느님은 조금도 지체 않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Fidei Donum이 제시한 형식에 따라서건 국제 선교단체와 결합됨으로 써건 간에 선교소명을 촉진시키는 일은 지역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의 은총에 더욱 신뢰하고 신앙의식을 심화시키도록 자극할 것입니다.”

교회가 선교적이 되려면 몇 명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러분의 교회 전체가 선교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 또한 공동체 자체도 자신의 개방적 태도와 증언의 삶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아직도 모르는 자들 가운데 명백하게 선포함으로써 선교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나라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 안에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1980년 5월 11일 아이보리코스트 주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프리카를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에도 다시 한 번 아프리카에서 선교의식을 심화시키는 데 대해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1982년 2월 11인 라고스에서 그는 아프리카가 떠맡고 착수한 선교활동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현하였다:

“여러분이 자신의 포도밭에 충분한 일꾼들을 가지기도 전에 다른 지역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기 시작해 온 데 대하여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제들이 시에라리온, 리베리아, 콩고, 잠비아, 그리고 아주 먼 곳인 그레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기뻐하고 있습니다. 케냐에 나이지리아 수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1977년에 방인 선교신학교를 설립한 것은 신앙을 전수하려는 여러분의 염원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또 다른 표지입니다.”

선교하는 아프리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결코 단념하지 아니할 꿈이다. 베닌의 꼬또누에서 1982년 2월 7일에 행한 강론에서 그는 자신의 선교열의를 재천명하였다:

“외국 선교사들이 여전히 여러분에게 값진 도움이 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그렇지만 교구를 바꿔가면서 베닌의 국민들과… 또한 국외의 다른 아프리카 국민들에게까지 복음은 선포하는 것은 베닌의 국민, 특히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임무로 점점 더 확산되어야 합니다.”

전에는 외국인 수도회 성소를 촉진시키기를 꺼려하였던 아프리카 주교들이 이제는 이 일에 훨씬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 영어들 사용하는 동부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선교소명의 촉진을 공공연하게 후원한다. 그들은 이제 수도생활의 성소를 촉진하는 것이 교구사제의 성소 증진에 해가 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자이레,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나이지리아 및 기타 여러 나라들에서는 성소가 급증해 왔다. 비가르드 기념 신학교(나이지리아의 에누구)는 1980 -1981년도 학기에 350명 가량의 대신학생들을 보유하였다. 1981년 8월에 69명의 새 사제가 서품되었다. 그 이듬해의 학기에 104명의 새 지원자들 중 몇 명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기숙사의 방이 부족하였다.

주교협의회는 ‘외부로 향한’ 복음화에 더욱더 관심을 쏟는 선교 특별위원회를 결성해 왔다. 부룬디의 주교들은 자국의 사제와 수녀들이 탄자니아, 자이레, 르완다, 우간다, 챠드, 카메룬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1972년 이래로 베네테레지야 수도회 수녀들이 챠드에서 일해 오고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두 개의 공동체들 갖고 있으며 지역 수도 단체를 설립하여 도움을 주고 있다. 부룬디 선교위원회의 의장인 주교 루후나(지테가)는 “만일 우리가 주지 않는다면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교회는 생명을 주고받는 심장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국이건 외국이건 상관없이 사제의 부족을 겪는 타교구에 사제들을 보내주고 있는 나이지리아 주교들을 칭찬하였다. 탄자니아의 주교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모시 교구는 (적극적 의미의) 선교적인 교구의 모범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체 인구의 절반(400, 000명)이 가톨릭인이다. 그 교구사제 110명 중 103명이 아프리 카인이다. 가톨릭 신도들이 너무나 많아서 심각한 사제 부족운 겪고 있다. 그럴지라도 주교는 자기 교구의 선교활동을 계속 지원한다. 약 20명의 교구사제가 탄자니아와 케냐의 타교구에서 일하고 있다. 13명의 사제가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리

카 선교수도회인 예수의 사도회는 주교의 전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수많은 젊은 평신도 외에도 몇 명의 교구사제와 대신학생들이 수도회에 가담하여 왔다. 예수의 사도회는 우루에 소신학교를 갖고 있다. 이 수도회의 여성 수도단체인 마리아의 선교자매회는 1977년에 창립되었으며 모시 교구에 첫 수련소를 개원하였다. 같은 교구에 카푸친 사제수도회는 118명의 신학생을 보유한 소신학교를 갖고 있다. 그곳에 역시, 탄자니아 대수도회 장상 연합회의 요청으로 카푸친회가 수도 선교사들을 위한 양성과정을 시작하였다. 킬리만자로의 성모 자매회는 모시 교구에서 설립되었는데 그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오늘날 그 수녀들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여러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주교들도 선교 열의에 차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에칸뎀 추기경(이코트 에크페네)의 끈질긴 요청으로 주교 협의회는 1976년에 이페루(예부-오데교구)에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선교교령 20항)와 바오로 6세의 호소에 응하였다. 이 신학교는 사제들을 필요로 하는 나이지리아 또는 다른 나라들의 교구에 파견될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다. 1982년에 이 신학교는 17개 교구에서 온 62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성 바오로 선교회의 이름으로 1979년에 ‘신심회’로 설립된 신학교는 선교 단체의 지위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교에 봉사하는 아프리카 수도자들

과거에는 주교들이 성직자의 수도생활을 장려하는 데에 반대하였다. 그런데 보다 최근에 그들의 태도가 변하였다. 이는 수도생활의 확산뿐 아니라 선교운동의 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왔다. 아프리카의 선교사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수련소를 개설해 온 대부분의 수도회―선교 수도회나 여타 수도회―들은 지원자들의 수효가 자꾸 증가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인들로 구성된 여러 수도단체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오로지 선교에만 전념하지 않는 수도회들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선교과업을 수행한다. 그들의 아프리카인 지원자들은 간혹 ‘외부로 향해’ 파견되며 또한 따라서 선교 훈련을 받고 있다. 오직 선교에만 전념하는 수도회들은 ‘외부로 향한’ 봉사에 대한 만반의 태세가 수도회 입회에 필수 항목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자이레에는 24개의 성직자 수도단체(모두가 외국에서 시작된 것이다)가 회원을 많이 영입하고 있다. 1980년 모든 수련자의 수효가 113명을 헤아린다(성모 성심회 20명; 봉헌회 16명; 예수회 15명; 노비틴회 9명; 살레시오회 5명). 그들은 146명의 철학과 학생들(성모 성심회 31명; 봉헌회 22명, 백인회 17명; 예수회 16명; 살레시오회 10명)과 60명의 신학과 학생들(성모 성심회 17명; 살레시오회 10명; 예수회 8명)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및 방인 수사 수도회들도 자이레에 많은 성소를 갖고 있다. 1981년 교구 대신학생은 1,377명(1년 전보다 200명이 더 많다)인데 이는 대단히 놀라운 수효다.

나이지리아, 특히 남부지방의 교구들 안에서는 자이레에서보다 더 많이 성소가 증가한다. 1981년에는 679명의 교구사제와 1,003명의 대신학생이(5개의 신학교 안에) 있었다. 방인 사 제의 수는 외국인 사제들보다 훨씬 많다. 1979 년에 7개의 성직자 수도회가 도합 68명의 수련자와 150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다(성령회 60명; 글라라회 36명; 라자로회 15명; 도미니꼬회 9명; 아우구스띠노회 6명; 베네딕도회 22명; 치스떼르치스회 2명).

현재 예수회의 아프리카 후원회는 아프리카에 2개의 지부와 3개의 준지부를 갖고 있다. 이미 회원의 4분의 1이 아프리카인이고 말라가시인이다. 1982년에 그들은 94명의 사제, 84명의 수사, 28명의 학생, 59명의 수련자(6개의 수련소에서)를 갖고 있었다. 그 회원들 중 대다수가 중앙 아프리카인(109명)이고 마다카스카르인(100명)이다. 새로 개원된 대부분의 수련소는 중앙 아프리카, 르완다의 챤구구에 있다(39명의 수련자).

자이레, 나이지리아, 그리고 기타 지역에 있는 수도회 소속의 아프리카인 사제와 수사들은 몇몇 아프리카 나라와 아프리카 밖에서 선교사업을 수행한다. 나이지리아와 탄자니아의 성령회 사제들은 잠비아에서, 나이지리아의 성령회 사제들은 감비아와 콩고에서 일한다. 자이레의 성모 성심회 사제들은 자국 외에도 즉 카메룬, 잠비아, 나이지리아와 브라질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하이티와 미국의 흑인들을 위해서도 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우리씨오회는 해외에서, 마다카스카르, 리우니언, 남부 아프리카, 브라질, 대만 그리고 기타 지역에서 일하는, 대부분 수사인 신부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수도회가 그곳에서 정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리카 교회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 현상이 아프리카 태생 수도회의 설립과 발전에 방해가 되고 또 수도생활의 아프리카 토착화에 장애가 될 수 있었다. 국제적 수도회가 간혹 소규모의 서구교구 수도회들보다도 토착화에 더 적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원자들이 입회에 적절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수련소의 개설이 정당시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자 수도생활보다는 여자 수도생활이 더 일찍 발전하였다. 그 결과 남자보다 여자 수도자들이 더 많은데 그들의 숫자가 약 14,000명을 헤아린다. 대부분의 수녀가 방인, 주로 교구 산하 수도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아프리카 수녀들은 서구의 수녀들보다 더 사목활동에 전념한다. 이 과업에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여러 양성소가 설립되었다. 갈수록, 수도생활의 아프리카식 표현양식, 아프리카 문화에의 적응, 그리고 아프리카 및 기타 지역에서의 과업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려는 국내 및 국제 규모의 회합을 아프리카 수녀들이 계획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12개의 나라에서 온, 아프리카 프란치스꼬의 마리아 선교회 회원들 이 이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하여 1981년 8원 18일부터 24일까지 디에부구(오트 볼타)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것은 그런 성격의 네 번째 회합이었다. 많은 아프리카 수녀들이 ‘내부’ 및 ‘외부’로 향한 복음화의 강렬한 선교정신을 성숙시키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성모 수녀회(1930년 모시에서 설립되었다)는 580명의 서원 수녀와 57명의 수련자(2년간의 수련기를 밟고 있는)와 30명의 청원자를 갖고 있다. 1981년 그들은 새로 서원한 28명의 회원을 가졌다. 그들은 탄자니아의 8개 교구와 캐냐의 2개 교구에서 일한다. 1931년 칼라바르(나이지리아)에서 창립된 어린 예수의 시녀회는 이코트 에크페네에 있는 2년간의 수련소에서 84명의 수련자와 233명의 수녀들을 갖고 있다. 수도회는 해외에서도 일한다. 다른 주요한 수도회로서는 (1931년 부룬디에서 설립된) 400명의 회원을 가진 베네테레지아회, (1919년 르완다에서 창립된) 400명의 회원을 가진 베네비키라회, (1909년 우간다에서 세워진) 700명의 회원을 가진 반나비키라회가 있다. 마리아의 순결한 성심 수녀회(1937년 오닛샤에서 설립)는 362명의 회원을 갖고 있으며 나이지리아 밖―시에라리온, 가나, 케냐―에서도 일하고 투린에 양로원을 운영한다.

확실히 선교의 대단한 잠재력은 이렇게 번성하고 있는 아프리카 여자 수도회들 안에서 성숙 되고 있다.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회(AMECEA) 소속 나라들―케냐, 말라위, 우간다, 탄자니아, 잠비아, 그리고 최근에는 에티오피아, 수단―에는 남녀 수도 및 사제성소가 급증하고 있는데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선두를 달린다. 방금 언급된 처음 5개 나라의 통합 통계(1981년)는 아래와 같다.

  • 62,146,900명의 주민 중 15,041,351명이 가톨릭인인데 (70개 교구에서) 24%이다.
    · 70명의 상주 주교 가운데 57명 이 아프리카인이다.
    · 4,201명의 사제 중 거의 절반이 아프리카인인데 아프리카인 교구사제는 1,902명, 수사 신부는 약 100명이다.
    · 1,835명의 대신학생(교구)이 있다.
    · 1,072명의 수사 중 599명이 아프리카인이다.
    · 9,011명의 수녀 가운데 6,525명이 아프리카인인데 72%에 해당된다.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회 회원들은 성소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지금 그곳들에서 선교 의식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다.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우리가 곧 다루려는 예수의 사도회의 설립이다.

 

예수의 사도회

예수의 사도회가 외국인 선교사들 즉 베로나의 골롬반 사제 수도회에 의해 창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아프리카 수도단체인데 이는 현재까지 특이한 일이다. 그것은 단기간 안에 급성장하였다. S. 마쫄디 주교(나중에 우간다의 모로토 주교가 되었음)와 G. 마렌고니 신부가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그 수도회를 창립하였는데 수단에서 추방당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선교의 장래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인 선교사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수도회는 가난한 선교교회들 안에서 사목활동을 전개하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8년에 설립되었다. 그 회는 성직자와 수사들을 다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다른 대륙들에 파견되기 위하여 회원들이 양성되고 있다.

최초의 수도원이 1969년 나디켓(모로토 교구)에서 개원되었다. 설립이 예기치 않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선교의식이 늘어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염원과 관련된 것임을 입증한다. 2년 후 6개 나라의 지원자가 142명을 헤아렸다. 평신도들뿐 아니라 대신학생과 교구사제들도 그 회에 입회하였다.

1981년까지 나디켓과 케냐의 랑가타, 나이로비에 각각 한 개씩 두 개의 수련소를 가졌는데 두 군데 모두 2년간의 수련소에 120명의 수련자가 있었다. 5개의 소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첫 번째(1970년)는 우간다의 알로콜람에, 두번째(1972년)는 탄자니아 주교의 요청으로 우루(모시 교구)에, 세번째(1973년)는 우간다 부킨다의 주교의 부탁으로, 네번째(1974년)는 오등가 추기경의 요청으로 나이로비 근처 커세리안에, 다섯번째(1981년)는 수단의 레자프에 각기 설립되었다.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수단, 르완다, 부룬디에서 온 신학생이 600명이나 된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주교들이 이 수도회를 후원하는지 특기할 만하다.

철학과 신학교는 나이로비 근처 랑가타와 모로토에 세워졌는데 학생 수는 모두 150명이다. 오퉁가 추기경의 제안으로 같은 장소에 200명의 학생으로써 신학과 신학교가 건립되었다. 신학 학부 학생들은 나이로비 대신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처음으로 1980년 7월에 두 명이 이듬해에는 10명이 사제 서품받았다.

1981년 현재, 마렌고니 신부가 여전히 장상이었고 그를 보좌하는 4명의 위원들은 아프리카인 인데 이들 중 둘은 수련소 지도자이며 나머지들은 소신학교 교장들이다.

수도회가 급속도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재정적 원조뿐 아니라 특히 양성과 상담을 위한 인적 자원이 필요하였다. 이런 인들을 받은 사람들이 15명의 골롬반회 신부들이며, 이들은 다른 남녀 수도회의 회원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수도회의 조직은 골롬반회의 조직에서 많은 요소를 따오고 있다. 골롬반회처럼 예수의 사도회는 오로지 선교에 전념하는 단체가 되려 한다. 그들의 양성에 역점을 두는 것은 기도, 청빈의 정신, 사목적 자질이다. 애초부터 도회는 국제적 특성을 띠었는데, 여러 나라 및 30개의 부족에서 모여온 젊은이들이 아프리카에서 용이한 일이 아닌 형제애를 다져야만 하였다.

수도회는 가능한 한 빨리 자급자족하려 한다. 모든 학생이 수공업으로써 학교 유지에 기여해야 한다. 복음화와 관련해서는 가난한 자들을 먼저 배려해야 하고 개척정신을 가져야 한다. ‘민족’ 복음화와 타대륙에서의 선교황동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수도회의 과제 안에는 아직도 더욱 분명히 해야 할 요소가 있을지 모른다. 수도회가 충분히 아프리카 문화 안에 토착화되었으며 이딸리아의 영향에서 충분히 벗이났는지 따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1981년 8월에 골롬반회 신부들이 아프리카인 선교사들의 양성 문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나이로비에서 회합을 가졌다.

 

마리아의 복음선교 자매회

예수의 사도회에 동조하는 수녀회인 마리아의 복음선교 자매회는 1977년에 창립되었다. 설립되기 전에 14명의 여자가 예수의 사도회 회원인 모시의 사목자를 만나러 가서 자기네들도 남자들처럼 선교사가 되어 가난한 자들과 소외당한 자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지를 상의하였다. 로마의 승인을 받고 한 수련소가 히모(모시의 교구)에 개원되었다.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세 군데에 각기 양성소가 이미 설립되어 있었다. 세 곳의 양성소에는 모두 200명의 지원자가 있다. 온가타 론가이 양성소(케냐)는 인가받은 부설학교이다. 1979년에 20명의 수련자가 첫 서원을 발하였고 1980년에는 16명이 서원하였다. 같은 해에 24명의 새 지원자가 입회하였다. 베로나의 수녀(Pie Madri della Nigrizia)들이 이 수도회를 돕고 있다. 

 

제3장 아시아 교회의 선교의식

일반적 개괄

1981년도 통계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59%가 아시아에 사는데 중국이 25%, 인도가 15%를 차지한다. 다음 세기가 되면 인류의 65%가 아시아인일 것이다(현재 전아시아인의 50%가 20세 미만이다). 아시아는 점차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 세기에 그리스도교의 운명은 근본적으로 아시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4세기 동안 집중적으로 복음화의 노력이 경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하찮은 것으로 머물러 있는 곳이 바로 아시아 대륙이다. 필리핀이 한때 스페인 식민지였던 관계로 아시아에서 유일한 그리스도교 나라다. 필리핀을 제외하면 아시아는 가톨릭인이 1% 미만이다. 필리핀을 포함시키면 2.4%가 된다. 6천 2백 7십만 명의 아시아인 가톨릭 신자들 중 4천5만 명이 필리핀에 살고 있다.

아시아는 비그리스도교 문화가 풍부한 대륙이다. 세계 3대 종교, 이슬람교와 불교와 힌두교의 고향이다.

아시아의 복음화는 할일이 태산 같다. 과거에는 외국 선교사들이 전적으로 선교를 맡았는데 오늘날에는 이 과업이 아시아인들의 손에 주로 맡겨지고 있다. 토착화는 아프리카에서보다 아시아에서 더 많이 진척되어 왔다. 오늘날 아시아의 복음화는 아시아 교회 자신이 책임진 과제라고 아시아 교회는 주장한다. 또한 동시에 세계 복음화에 대한 그들의 책임 의식도 증진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은 ‘외부로 향한’ 선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시아 교회는 아프리카 교회보다도 더 일찍 ‘외부로 향한’ 복음화를 시작하였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편 그들 자신의 복음화가 수세기 일찍 시작되었고 또 다른 편으로는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가 제3세계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선교 대륙이 되리라고 우리는 예견할 수 있다.

1970년 바오로 6세가 마닐라를 방문할 즈음에 그곳에서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가 설립된 것은 아주 주요한 사건이다. 아시아 교회가 전형적인 아시아 교회로서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고 또 아시아의 현실에 직합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1974년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FABC의 첫 총회는 그것을 아주 평이하게 표명하였다. 새로운 선교전략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들이 분명히 개진되었다. 복음화는 토착화, 종교들 상호간의 대화, 정의 실현을 위한 투신 및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와 병행되어야 한다. 아시아 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을 계속 필요로 할지라도 그 자신의 손으로 아시아의 복음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들도 ‘외부로 향한’ 선교의 문제를 언급하였는데 총회의 결론으로 그들은 선언하였다:

“오늘날 우리 아시아 땅의 대부분이 다른 지역교회들의 선교사들을 계속 필요로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서 우리 땅으로 오는 그들을 환영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진정 지역교회의 부분이 되고 민족과 진정 하나가 되어줄 것만을 요청하는 바이다. 우리가 확신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의 지역교회는 아시아 및 다른 대륙의 자매교회에 봉사할 가장 훌륭한 우리의 아들딸들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결의문 39항).

아시아 교회가 해야 할 과제가 방대할지라도 주교들은 아시아에서의 복음의 미래에 대하여 상당히 희망 차 있고 낙관적이다. 아시아는 그 자신의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해 줄 복음을 애절히 갈망하고 있다. FABC의 사무총장인 M. 가비올라 주교(마닐라)는 아시아 주교들의 1974년 주교 시노드에서의 참석과 관련하여 진술하였다:

“여러분은 오늘날 세계의 몇몇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가끔 나타나는 저 무서운 ‘무기력’, 비관주의나 패배주의의 정신을 아시아 주교들에게서 찾아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신비체인 교회가 자기 백성들의 미래에 속해 있고, 아시아의 장래에 속해 있다는 굳은 확신에 차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낙관론과 희망,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말씀에 대한 이같이 훌륭하고 기쁨 넘치는 신뢰는 우리가 제3세계의 한구석에 위치한 아시아로부터 이 시대의 보편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 복음은 더이상 새로운 것도 훌륭한 것도 아니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시아 교회는 그와 같이 공헌할 것입니다.”

FABC가 타이베이에서 논의한 주제들이 서울(1976년 7월 22~25일)과 동경(1979년 3월 26~29일)에서 개최된 지역회의 동안에 보다 자세히 검토되었다.

FABC는 아시아 복음화 전략의 긴급 사항들을 연구하기 위한 세 개의 분과를 가지고 있다: BISA(사회 주교 연수회); BIMA(선교 주교 연수회); BIRA(타종교 문제 주교 연수회). BIMA에 소속된 주교들은 아시아의 복음화에 관해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전문가들과 함께, 처음에는 바기오(필리핀, 1978년 7월 12~17일), 뽄무디(인도, 1980년 11월 20~30일), 챠후아(대만, 1982년 8월)에시 모임을 가졌다. 아시아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복음화돼 어야 하지만 동시에 ‘외부로 향한’ 복음화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26명의 주교, 24명의 성직자와 수도자, 5명의 평신도가 참석한 제3차 BIMA 회의는 평신도의 선교책임을 역설하였다. 평신도의 참여 없이는 아시아의 복음화는 불가능하다.

마닐라에서 아시아 주교들에게 행한 연설(1970년 11월 28일) 중에 바오로 6세는 아시아 교회 자신의 선교책임에 관해 언급하였다. “아시아인보다 아시아인에게 더 훌륭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한 교황은 부언하였다:

“여러분의 개별교회들 안에서 선교성소가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는 분명히 성숙의 근본 요소가 결여될 것입니다. 아시아인 형제들의 첫 사도가 되어야 할 사람은 아시아의 주교들, 사제들, 남녀 수도자들 및 사도직에 참여한 평신도들입니다.”

세계 전교주일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아시아의 몇 나라 안에서 선교의식이 고취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10월은 선교 정보와 의식화의 달로 제정되었다. 1981년 대만과 홍콩의 주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목서한을 발송하였다.

아시아의 수도단체들은 아프리카의 수도회처럼 선교 활동을 위한 주요 기관들이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수사 신부들의 3분의 2가 아시아인(13,581명)이고 87,889명의 수녀 대다수 (86%: 76,000명)가 아시아인들이다. 1980년도 말 전대 다수의 방인 수녀를 가진 나라들을 보면, 인도가 50,936명 중 약 49,500명, 필리핀이 8,069명 중 6,855명, 한국이 3,165명 중 3,000명, 일본이 7,258명 중 6,026명, 인도네시아가 4,118명 중 2,801명이고 베트남은 대략 6,000명이다.

아시아 남자 수도자들, 그리고 아시아 남녀 수도회 장상 협의회가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1972년 이래로 수녀들이 AMOR(아시아 수도자 모임)의 주최로 홍콩(1972년), 마닐라(1974년), 교 (1975년), 봄베이(1977년), 콜롬보(1980년)에서 범아시아 회의를 개최해 왔다. 이 회의 전부가 아시아의 문화와 사회‧경제 상황 안에서 수도생활을 토착화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복음화와 관련하여 수도자들은 주교들이 선택한 같은 과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기도, 관상생활, 그리고 사회를 책임진 교회의 선봉자가 되려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인도이다.

 

필리핀

금세기의 초기에 필리핀의 교회는 무기력하였고 소멸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 덕분에 그 교회는 한 세기도 못가서 기력을 되찾았고 수많은 내적 자원을 활용할 줄 아는 역동적이며 번창하는 교회가 되었다. 가톨릭인이 급증하기 때문에 필리핀에서의 사제 부족은 세계에서 가장 심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필리핀 교회가 선교대상의 교회에서 탈피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발돋움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총인구 4천8백4만 명 중 4천5만 명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아시아 대륙에서 가톨릭교의 전진기지가 되고 있다. 전아시아 가톨릭인의 64.5%를 차지하고 있는 필리핀은 가톨릭 인구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56명의 상주주교와 46명의 명의주교 가운데 2명의 추기경을 포함한 85명이 필리핀인이다. 65개의 교구(교회 행정구역)에 2,763명의 교구 사제가 있는데 그 대부분이 방인이고 2,201명의 수사 신부들 중 대다수가 역시 방인이다. 모두 합쳐서 사제의 75% 이상이 필리핀인이다. 8,069명의 수녀들 중 85%인 6,855명이 필리핀 사람이다. 증가 추세에 있는 대신학생의 수가 교구 신학생 2,370명과 수도회 신학생 1,600명을 헤아린다.

비오 11세는 1939년 1월 18일에 행한 연설에서 필리핀의 선교소명에 관해 언급하였다. 바오로 6세는 이 주제를, 마닐라를 떠나기 전 1970년 11월 29일 필리핀 주교들에게 하신 연설 중에 다시 거론하였다:

“이 순간에 우리는 필리핀 국민의 주요한 성소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산 위의 도시’, ‘등잔 위의 등불’(마태 5,14-16)로 불리움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나라는 오래되었고 고상한 아시아 문화 가운데서 찬란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더욱 명백하게 이 선교소명을 재확인하였다. 1981년 2월 17일 마닐라에서 필리핀 주교들에게 행한 연설 중에 교황은 필리핀의 교회가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특별한 선교성소를 받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바오로 6세께서 방문 동안 이곳과 다른 곳에서 거듭 여러분의 이런 선교사명을 확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점에서 여러분은 진정 선교적 교회가 되도록 불리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2월 22일에 바기오에서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였다. 필리핀 교회가 활기에 넘쳐 있음에 대하여 경의를 표명한 다음에 ‘외부로 향한’ 선교확산에 관하여 말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나의 특별한 염원에 대하여 죽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주요한 선교교회가 되리라는 희망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주님께서 이 지역에 있는 교회의 선교노력에 있어 탁월한 역할을 하도록 사명을 여러분에게 말기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이제 교회의 선교노력의 전초기지에서 특히 아시아에 있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사명을 다하리라는 것이 나의 뜨거운 열망이고 열렬한 기원입니다.”

나중에 로마에서의 알현(1981년 3월 3일) 중에 그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였다. 그는 연설 중에 필리핀 주교들이 선교단체를 설립하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음에 대하여 칭찬하였고 또 동부, 중앙 및 남부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에 12개 국어로 방송을 보내고 있는 〈라디오 베리따스〉가 수행하는 아주 주요한 선교과업을 지적하였다.

 

선교단체

듀마궤트 주교의 제안으로 필리핀 주교회의는 교구사제들로 이루어진 단체인 필리핀 선교회를 시작하기로 1965년에 결정하였다. 1978년 이 단체는 12명의 사제와 19명의 대신학생을 보유하였다. 이들 중 6명의 사제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까닭은 아마도 그 단체가 주교의 관장 하에 있어서 독자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사실에 있을 것이다.

필리핀이 선교하는 나라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은 특히 국제 수도회의 경로를 통해서이다. 방인 회원들로 거의 구성되어 있는 이런 수도회들은 세계 전역에 필리핀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있다.

1972년에는 약 400명의 필리핀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다. 10년 후 그들의 수효(사제, 수사, 수녀, 평신도 등)는 배로 늘어났다. 그들 가운데 사제가 115명이다. 상당 규모의 선교사들(사제와 수사)을 보내고 있는 남자 수도회는 신언회(58명), 성모 성심회(33명), 예수회(21명), 봉헌회(19명), 살레시오회(15명) 등이다. 1981년 소르소곤의 주교는 미국에 상주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일할 선교사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필리핀 선교사들은 필리핀 밖의 60개 교구에서 일하고 있다. ‘외부에서’ 봉사할 선교사들을 양성시키는 훈련원은 타가이타이(이무스 교구)에서 개원되었다.

800명의 선교사들 중에 수녀들은 410명이다: 마리아의 프란치스꼬 선교회(54명), 애덕의 딸 수녀회(45명),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히벌리, 40명), 착한 목자의 수녀회(33명), 메리놀 수녀회(30명),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30명) 등이다.

평신도 선교단체인 필리핀 평신도 선교 자원회는 1976년에 설립되었다. 세 개의 선교팀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필리핀의 10개 구역에서 봉사하고 있다. 메리놀회 사제들이 이 단체를 후원해 준다.

이러한 선교단체들의 국제적 성격 덕분에 필리핀 선교사들은 벌써 세계 전지역에 퍼져 있다. 성모 성심회 필리핀 사제들은 잠비아, 나이지리아(이곳에서 한 명이 살해되었다), 대만, 인도네시아, 일본, 도미니카 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과테말라(이곳에서 한 명이 정부요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에서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인 신언회 선교사들은 인도네시아, 대만, 가나, 뉴기니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에서 일하고 있다. 필리핀인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은 홍콩, 대만, 인도, 부룬디, 자이레, 카메룬, 아이티, 카리브군도, 과테말라, 브라질, 미국, 유럽 등이다. 1982년 4명의 필리핀 예수회원이 한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떠났다. 애덕의 딸 수녀회의 필리핀 수녀 한 명이 한국에 파견되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5명의 인도 회원과 함께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오늘과 내일의 선교가 어떻게 국제적이고 초국가적인 특성을 띠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역교회’란 ‘파견하는 교회’를 뜻한다

아시아와 특히 필리핀이 복음화와 관련하여 겪은 한 중대한 사건은 1979년 12월 2일부터 7일까지 마닐라에서 개최된 선교에 관한 국제회합이었다. 그 모임은 “아시아 국민들을 위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사람은 그 당시 마닐라의 보좌주교였고 교황청 전교원조 후원회의 국내 책임자였던 G. 로살레스 주교이다.

200명의 참석자 중 89명이 아시아 35개국에서 온 공식 대표들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복음화에 대한 그들의 반성은 아주 치밀하였다. 아시아의 상황에 대한 분석은 그 대륙이 처한 실제 상황에 적합한 복음화의 긴급 과제들을 결정짓는 데에 시발점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아시아 교회 자신이 아시아의 복음화에 책임지고 있음을 그들은 강조하였지만 동시에 세계의 복 음화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도 표명하였다. 외국 선교사들은 언제든지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표지로서뿐 아니라 또한 그들이 다른 그리스도교적 문화 배경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역교회를 부유하게 하며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환대받는다.

그 회합은 아시아의 교회가 그 역사의 전환점에 이르렀으며 또한 새로운 선교시기가 시작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이리하여 회합의 최종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선포되었다:

”이 ‘새 선교시대’의 참신성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선교’가 더 이상 ‘오래된 교회’로부터 ‘젊은 교회’에로,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의 교회로부터 식민지역의 교회에로의 일방통행적인 움직임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실제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명백하게 또 힘차게 단언한 바와 같이 이제는 모든 지역교회가 선교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지역교회는 자기 주변에 복음을 선포하고 또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받고 있다. 이것이 모든 교회에 맡겨진 으뜸가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견하는 교회’와 ‘받는 교회’라는 용어와 개념을 탈피한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신비체의 살아 있는 공동체로서 파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또한 동시에(그것이 지상에서는 교회의 전적인 성취가 아니므로) 받는 교회임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회가 자기의 선교에 책임지고 있으며 자기의 모든 자매교회의 선교에 공동으로 책임맡고 있다. 모든 교회는 자신의 가능한 능력에 따라서, 다른 교회의 요구를 위하여, 전인류를 위한 선교를 위하여, 세계의 생존을 위하여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제3세계의 선교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에 이르렀다. 과거에로의 복귀, 과거 선교이론이나 지나간 선교방법이나 케케묵은 선교목적에로의 복귀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필리핀 교회와 관련하여 그 회합의 의장인 로살레스 주교는 자기 나름대로 진술하였다:

“그리스도 신앙은 약 460년 전에 우리 땅에 심어졌다; ‘겨자씨’가 무수한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로 자랐다… 우리의 교회가 아직은 연약하지만 강한 힘을 길렀다. 즉 복음화의 과제를 떠맡은 교회로 성장하였다.”

1980년 7원 주교회의 때 그 주교는 발언하였다:

“우리의 현재 사제 부족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형편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 국민은 선교 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재정적으로 그들을 후원해야 한다. 필리핀은 그 풍부한 사도적 잠재력 때문에 아시아를 복음화하는 데에 소명을 받고 있다. 필리핀 선교사들은 이 과업에 상당히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방의 정신을 이해하고 여하한 식민주의적인 유대 없이 어느 곳에든 갈 수 있으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들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생활방식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인도는 미래 세계의 사건들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맡는 데에 불리움받고 있다. 1980년에 인도는 6억 8천3백8십만 명의 인구로서 아프리카 인구(4억 6천9백5십만 명)보다도, 북미의 전체 인구(6억 1천6백8십만 명)보다도 많고 중남미의 인구(3억 6천 5백만 명)보다 두 배나 되는 인구를 갖고 있다. 이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15%이다. 금세기 말까지는 전세계 인구 6명 중 한 명이 인도인이 될 것이다. 인도 국민은 동적이고, 풍부한 문화와 유명한 종교들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나 인도는 가난이 널리 퍼져 있고 사회불의가 무섭게 만연된 나라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나라에 활력 넘치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양에서뿐 아니라 질에서도 엄청난 사 도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학교, 신학자, 신학 학부, 사목 연 구소, 신학 및 사목 관계 잡지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 교회는 기쁜 소식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또 자기 자신의 사명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도 국민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부를 활용할 수 있다. 베트남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인도만큼 자기 자신의 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젊은 교회는 하나도 없다. 다른 어느 젊은 교회보다도 인도 교회는 자기 자신의 인적 자원과 영적 가치들의 부를 다른 교회들과 훨씬 많이 나눌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이 교회는 보편교회의 여러 기둥들 중 하나가 원 것이다.

 

교회통계

최근 (1980년)의 통계에 의하면 인도의 가톨릭인은 1천1백30만 명으로 전체 인구 6억8천4백만 명의 1.7%이다. 세계 그리스도교 인구 중 인도 그리스도인은 2.6%를 차지한다. 이 비율 이 아주 적을지라도 그리스도교는 인도 종교들 중에서 세번째로 많은 신자를 갖고 있는데 힌두교(82%)와 이슬람교(12%) 다음이며, 시아파교(2%)와 불 (0.7%)보다는 많다. 가톨릭인의 81%가 남부 및 서부 인도에 거주한다. 북부 인도는 아직도 방대한 선교 지역이다.

  • 110개의 인도 교구에 126명의 주교가 있고 이들 중 3명만 비인도인이다. 41명의 수도회 주 교 대부분이 복음화가 거의 시작되지 아니한 북부인도에 상주한다.
    · 11,733명의 사제들 가운데 교구사제는 6,828명, 수도회 사제는 4,905명(41%)이다. 841명의 사제만이 외국인이다. 수도회 신부들은 39개의 다른 회의 회원들이며 이 수도회들 중 11개는 인도에서 창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8개는 동방예식을 거행한다.
    · 2,994명의 수사들 중 1,300명 이상이 남자 수도회에만 소속되어 있는데 11개 수도회가 인도에서 기원된 것이다. 수사들 가운데 비인도인은 136명뿐이다.
    · 50,936명의 수녀가 166개의 수도회에 속해 있는데 이 중 64개가 인도에서 창설되었으며 외국인 수녀들은 1,213명뿐이다.
    · 4,995명의 대신학생 중 교구 소속은 2,916명이고 수도회 소속은 2,079명이다. 미국, 이딸리아, 폴란드 다음으로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학생을 갖고 있다. 교구 및 수도회 신학교를 포함하여 30개의 대신학교가 있는데 그 중 7개가 신학연구소이다.
    · 도합 3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14개의 재속 단체가 인도에서 각기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데 그 중 6개가 인도에서 생겨난 단체이다.

 

케랄라 지방의 교회

인도의 국내 교회내에서 특별히 언급될 만한 교회는 케랄라의 지역교회이다. 인도교회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약 400만 명의 가톨릭인이 케랄라주에 산다. 그들 가운데 동방예식―시로-말라바르와 시로-말랑카르―의 가톨릭인이 대다수(270만 명)이다. 이들은 성 토마 그리스도인들의 후손들이다. 이들 중 시로-말랑카르인(1930년 로마에 결합되었다)은 소수이다. 동방예식의 가톨릭인은 인도의 전체 가톨릭인의 25%이고 34%의 사제를 갖고 있다. 그들의 10개 방인 남자 수도회는 인도의 전체 남자 수도자의 35%에 해당되는 2,218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23개의 방인 수녀회는 인도의 모든 수녀의 40%인 18,977명의 수녀들을 갖고 있다. 케랄라는 라틴예식의 남녀 수도자 5,000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동방예식과 라틴예식의 사제 수녀들을 합치면 사제 50% 수도자 60%가 케랄라 출신이다. 케랄라에는 가톨릭인 70명 중에서 한 명이 사제, 수사, 수녀 성소를 받는 셈이 된다(빨라이 교구에서는 32명 중 한 명이 성소를 받는 셈이다).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인은 두 개의 대신학교를 가졌는데 하나는 453명의 학생을 보유한 알웨이예 신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324명을 가진 코타얌 신학교이다. 그리고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가르멜회는 방갈로르에 신학 양성 센터를 갖고 있다.

케랄라의 교회는 성소가 상당히 풍부한 교회일 뿐 아니라 확실한 선교교회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교회는 그 자신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 그 이상의 사제, 수사, 수녀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 사제들 중 45%와 수녀들 중 65%가 인도의 타지방에서 활동한다. 결과적으로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인은 온 지방에 퍼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예식을 고집하므로 라틴 예식의 교구에서 일할 때에 몇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북부 인도의 구역들은 그들이 맡아서 일한다. 챤다와 북부 지방의 7개 교구가 동방예식을 거행하는 교구가 되었다. 그 가운데 5개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가르멜희, 1개는 사도 성 토마의 선교회, 다른 한 개는 빈첸시오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교구들의 가톨릭인은 소수이므로 가톨릭의 선교지역이다.

시로-말라바르 사제와 수녀들이 ‘외부로’ 파견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항상 진정한 선교정신에 투철하다는 것, 즉 새로운 선교방식들(토착화, 종교간의 대화, 발전과 해방에의 투신)에 따른 비그리스도인들의 직접 선교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는 케랄라 지역의 사제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인도 사제들이 아직도 자기네들의 전통적인 방법들에 얽매여 있거나 그리스도교 폐쇄집단을 형성하는 데에 만족하고 있다. 인도, 그리고 특히 남부에서는 사제들과 수도자들 사이에 ‘내부로 향한’ 복음화, 더욱이 ‘외부로 향한’ 복음선교를 위한 투철한 선교 정신을 함양시켜야 할 여지가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1947년 케랄라에서 선교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소화(小花) 선교연맹(1968년의 회원수는 30만 명)이 설립되었다. 1968년에 사도 성 토마의 선교회(빨라이)가 세워졌다. 1977년에 이 단체는 사제 30명, 소신학생 81명과 대신학생 100명을 보유하였다. 이 단체에 우제인 교구가 떠맡겨졌다.

1855년에 설립된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가르멜회는 번성 중에 있는 시로-말라바르 남자 수도회이다. 이 회는 886명의 사제를 포함하여 1,415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회가 맡아 있는 교구는 5개이다. 다른 남자 수도회로는 1927년에 창립된 빈첸시오회(114명의 사제를 포함한 244명의 회원)와 1947년에 설립된 소화 수도회(사제 80명, 수사 30명, 학생 68명, 수련자 20명)가 있다.

 

선교정신의 고취

1969년의 인도 전체 세미나에서 합의된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사제들 사이에서 선교정신이 함양되어야 한다; 선교학이 신학교의 모든 학과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교과서에는 인도의 복음화 방법론이 삽입되어야 한다; 더 많은 수녀들이 직접 복음화를 위해 양성되어야 한다: 인도 교회는 더욱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또 다른 합의사항은 사제가 부족하지 아니한 남부 지방의 교회는 북부의 선교교구들을 인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가톨릭인과 사제들을 가진 남부의 교구들이 한층 더 보수적이고 선교정신이 희박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교정신은 북부, 예컨대 케랄라 다음으로 인도 교회의 새 역동적 기둥이 되어가고 있는 란키 구역의 북부지방에 상당히 생생하다.

1974년 타밀 나두의 13명의 주교가 북부 인도에서 일할 사제들을 양성시키는 초교구적인 신 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신학교, 사베리오 선교원이 코타르의 교구에 개원되었다. 1981년의 학생수는 86명이었다.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FABC 회합에서 한 인도 주교가 남부의 한 사제가 북부의 생활에 적응하기는 외국 선교사의 입장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하였다.

어떤 교구들은 피데이 도눔 사제들을 타대륙에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고아 대교구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는 교구사제들의 팀을 갖고 있다. 봄베이 대교구도 중남미에 사제들을 파견하고 있다.

인도는 수년 동안 자기 자신의 선교단체를 보유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그 단체들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미 시로-말라바르 수도회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라틴예식의 두 선 교회가 붑부 인도에 창립되었다. 필라(Pilar) 선 교회로 알려지기도 한 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선교회는 1887년 고아에서 설립되었다. 그것은 1939년에 재조직되고 나서 명실상부 선교단체가 되었다. 그 회원들은 인도의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7년 이 회의 회원 수는 사제 105명, 수사 27명, 학생 48명, 수련자 7명이었다. 가스팔핀토 신부에 의해 1943년 바라나시(베나레스)에서 창립된 인도 선교회는 또 다른 선교단체이다. 이 회는 인도의 9개 교구 와 피지 군도에서 선교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단체가 최근에 위기를 겪었지만 1980년에는 48명의 사제, 22명의 수사, 69명의 신학생, 15명의 수련자들을 갖고 있었다.

최근의 여러 활빌한 움직임은 선교정신이 인도 전역에 걸쳐 얼마나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나라는 꽤 가치있는 신학잡지, Indian Theological Studies(방갈로르), Vidyajyoti(델리), Jeevadhara(코타얌, 케랄라), Word and Worship(방갈로르)을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들의 상당히 많은 기사가 인도 복음화의 여러 문제를 다룬다. 탁월한 신학자 D.S. 아말로르파바다쓰에 의해 수년 동안 운영되어 온, 방갈로르의 국내 성서‧교리‧전례 센터는 인도의 신학적 반성과 사목적 쇄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인도는 늘어나는 유명한 신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신학과 선교학에 있어서 끼친 공적은 인도 바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1976년 9월에 신언회 사제들이 이쉬반 켄드라(푸나 교구)에 선교연구 및 선교조직을 위한 센터를 개원하였다. 1977 년에 사도 성 토마의 선교회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를 위한 복음화에 파견할 시로-말라바르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카메드에 양성소를 시작하였다. 1979년 살레시오회 사제들은 귀중한 선교잡지 Indian Missiological Review(쉴봉)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 방갈로르의 성 베드로 성청 신학교는 2년 과정의 선교학을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인도에서 최초로 시작된 이런 종류의 교과과정은 나중에 모든 분야의 선교활동을 계획하고 협력하며 효과있게 수행하게 될 학생들에게, 인도와 특별히 관련한 선교과목들을 제공해 준다. 사목 연구소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신학교가 자기 교과목에 선교론 강좌를 갖고 있다.

 

수도단체

‘외부로 향한’ 선교에의 충동은 인도에 지부를 두고 있는 국제 수도회들에 의해 주로 촉진되었다. 그들의 관구들은 많은 인도인 회원을 갖고 있다. 어떤 수도회들은 한 개 이상의 관구 둘로 나뉘어 있으며 많은 성소를 갖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회는 11개의 관구 및 준관구에 3,000여 명의 지역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다(회원 77% 가 인도와 스리랑카 출신이다). 1980년 살레시오회(4관구)의 회원수는 서원한 자가 1,350명이고 수련자가 121명이었다. 1981년 신언회의 회원은 267명(서원한 회원수)인데 그 중 224명이 인도인이며 사제는 181명이다.

인도는 총 166개의 여자 수도회를 갖고 있다. 대체로 방인 수도회는 많은 회원을 보유한다. 어떤 회의 수녀들은 유럽이나 북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세계 신문이 일종의 ‘소녀들의 매매’에 관한 뉴스를 퍼뜨렸는데, 이는 텅 빈 수련소에 인원을 보충하려고 혈안이 된 서구의 수도회들에 지원자들 또는 가짜 지원자들을 공급해 준 케말라의 몇몇 신부가 저지른 소행이었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이러한 선정적인 뉴스는 건전치 못한 치사의 은폐에서 생겨났었다.

상당수의 수녀들이 사목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수많은 수녀들이 사목 및 신 학 연구소 또는 대학교에서 과정을 밟고 있다. 특별히 수녀들을 위한 몇 개의 사목양성소가 설립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수녀들의 수효가 가장 많은 데가 케랄라이다. 1866년에 창립되었고 몇몇 수도회의 통합으로 말미암아 1969년에 재조직된 가르멜 어머니 수도회는 1977년에 3,961명의 서원수녀들과 91명의 수련자들을 보유하였다. 대부분의 국제 수녀회는 상당수의 인도 회원들을 갖고 있다, 마리아의 성 프란치스꼬 선교회(인도에서 설립되었음)는 5개의 관 구에 1,226명의 인도 회원과 21명의 수련자를 갖고 있다. 1909년 루체른에서 창립된 성 안나 수녀회는 인도에서 455명의 회원들과 77명의 지원자를 가진 데 반하여 스위스에서는 286명 의 회원과 2명의 지원자를 갖고 있다(1980년). 성 십자가의 딸 수도회(벨기에, 리에제)는 거의가 방인인 324명의 서원한 회원과 16명의 수련자를 보유하고 있다.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히벌리)의 회원수는 인도인 175명이고 수련자 23명이다. 틸돈크의 우술라회(벨기에)의 회원은 서원자 380명이고 수련자 23명이다. 애덕의 수녀회(벨기에, 겐트)는 서원자 220명(대부분 인도인이다)과 수련자 22명을 갖고 있다.

 

외부로 향한 복음선교

인도의 선교활동이 성숙되었고 또 그 영향력이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는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수도회로써, 1950년에 창립된 사랑의 선교 수녀회와 1963년에 세워진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있다. 이 수도회들이 창립된 사실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1980년에 그들은 1,800명의 수녀와 500명의 수사와 남녀 354명의 수련자와 150개의 분원을 갖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제외하고는, 마더 데레사만큼 복음화 노력을 훌륭히 증거해 주는 사람이 교회내에는 아무도 없다. 마더 데레사의 ‘기적’ 및 그녀의 수도회 창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데 아주 적절한 나라가 인도 이외에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다.

‘외부로 향한’ 선교는 인도에서 결정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에는 ‘외부로’ 파견되는 인도 선교사들이 인도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 선교사들의 수효보다 많다. 통계에 의하면 2,000명 이상의 인도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도는 받기보다는 오히려 주고 있다.

인도의 남녀 선교사들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타대륙의 수많은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인도의 예수회원은 파키스탄, 네팔, 부탄, 피지 군도, 영국령 가이아나, 마우리씨오, 케냐, 탄자니 아, 수단, 자이레에서 활동하고 있다. 30명의 예수회원이 네팔에서, 또 다른 30명이 동부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있다. 1980년 15명의 살레시오회원이 캐냐, 탄자니아, 수단 등지의 아프리카로 떠났다. 성모 성심 전교 수녀회의 인도 수녀들은 브라질, 카리브군도, 유럽에서 일하고 있다. 사도들의 여왕 선교 수녀회(봄베이) 소속 20명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갔다.

인도는 제3세계 교회 중 가장 주요한 선교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구에는 인도가 가장 주요한 선교 나라들 중 하나가 되리라고 우리는 예견할 수 있다. 인도의 가톨릭 교회의 사도적 잠재력은 제3세계 교회의 어느 나라의 것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그 교회는 인도 국민의 역동적 힘과 영적 부를 스스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에는 인적 자원이 부족한 주교들 특히 아프리카 주교들이 폴란드의 주교들과 수도단체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폴란드는 갈수록 선교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교회는 매년 100여 명의 새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견한다. 그 교회는 그러한 능력을 지닌 유일한 서구교회이다. 그렇지만 폴란드가 모든 요구를 다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선교사들의 파견을 위하여 주교들이 인도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한국

한국에서의 교회 창립(1784년)은 교회 역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특유한 사건이다. 그것은,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기회마다 그리스도교를 알려고 하였으며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평신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이다. 자주 특히 19세기 동안 박해를 견뎌왔다. 1984년 이 교회는 200주년을 장엄하게 기념하였다.

한국 교회는 거의 독자적으로 자신의 자원에 의지하여 최근에 번창하고 활력 넘치는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인권을 옹호하는 데에 주력하므로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1980년 말의 통계에 의하면:

  • 130만 명의 가톨릭인은 전인구의 3.3%로서 아시아에서 필리핀, 베트남, 스리랑카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35,000명의 예비신자와 통신교리를 수강하는 10,000명의 세례지망자가 있다.
    · 19명의 주교 중 4명이 비한국인이다.
    · 797명의 교구사제와 310명의 수도회 신부 총합계 1,107명의 사제 중 259명만 외국인이다.
    . 201명의 수사들 중 외국인은 45명이다.
    · 3,165명의 수녀들 중 외국인은 169명이다.
    · 교구소속 569명과 수도회 소속 89명, 도합 658명의 대신학생이 있다.

사제성소가 많다. 1982년 3개의 대신학교 중 2개가 신학생들을 수용하기에도 비좁을 지경이 다: 서울 대신학교(333명) 광주 대신학교(370명). 소신학교는 없다. 많은 신학생이 대학과정을 밟으며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친다.

최근 2년 이상의 기간 중 50만 명의 가톨릭인이 늘어났다. 가톨릭인의 수적 증가(6%)는 인구 증가(1.8%)를 능가한다. 개신교 신자의 수적 증가는 대단히 놀랍다. 1974년 이후 400만 명이 늘어났다. 모두 그리스도인은 약 650만 명이 있다. 필리핀 다음으로 한국이 아시아에서 신도가 가장 많은 그리스도교 나라가 되었다.

이와 같이 놀라운 개종운동이 지속된다면 금세기 말에 남한 인구의 절반이 그리스도인이 될지도 모른다. 유명인사의 영세가 가끔 있다. 전직 장관 5명, 국회의원 3명, 전 공군 참모총장 1명 등 14명의 유명인사가 함께 세례받은 적이 있었다. 그들을 교리반에 인도하고 가르친 사람은 스스로 개종한 전 국무총리 장면 박사였다.

박해와 외세 점령 때문에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어쩔 수 없이 제한된 교회로 존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스스로 깨달았다. ‘내부로 향한’ 복음화에 맹렬히 투신하며 ‘외부로 향한’ 선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75년 최재선 주교가 한 선교단체, 한국 외방 선교회를 설립하는 데에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200년 동안 우리는 보편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 이제 우리가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주교는 말하였다. 수년 안에 그는 주교회의의 후원을 받았다. 1978년 이 선교단체의 운영권이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에게 넘겨졌다. 1981년 이 회는 8명의 사제와 23명의 신학생을 가졌다. 1981년 11월에 4명의 선교사가 처음으로 뉴기니아에 파견되었다. 한 후원회가 선교단체와 선교과업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그 회원 수가 500명을 헤아린다. 외방 선교가 한국 교회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주교들은 4년 동안 1984년 200주년의 장엄한 기념에 신도들을 대비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81년의 사목서한에서 그들은 신도들에게 결정적인 선교활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매년 그들은 깊이 생각해야 할 주제를 제시하였다. ‘이웃의 복음화’가 1981년의 주제였다. 모든 신도가 각자의 주변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에 87,350명의 성인을 포함한 118,485명이 세례를 받았다. 주교들의 독려가 진정한 회개운동을 초래하였다. 1984년 한국 교회 전체가 선교의 상태에 돌입하였다.

 

일본

일본은 16, 17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쉽게 그리스도교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불행한 사태가 박해를 불러일으켜 그리스도교를 조직적으로 근절시켰던 것이다. 교회가 그 자신의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더라면 생존하였을지도 모른다. 선교과업이 재개될 수 있었던 때는 겨우 한 세기 전이었다. 교회가 제2차 세계대전 말에 겪었던 번창기는 그 후 어느 정도 쇠퇴하고 말았다.

1980년 말에는 1억 1천7백만 명의 전인구 중 1% 미만인 398,000명의 가톨릭인(1981년 말에는 411,451명)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인 총수는 약 110만 명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300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한다는 것이 공식조사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에 큰 관심을 쏟을지라도 교회에 속하려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가톨릭인의 숫자에 비하여 일본의 사제(사제 한 명이 맡고 있는 가톨릭인은 198명이다)와 수녀(신도 56명에 수녀 한 명 꼴이다)는 많지만 사제 한 명이 맡아야 할 일본인은 59,000명이 다. 결과적으로 외국의 도움이 절실한 처지이다.

1981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 16명의 상주주교(모두가 일본인이다)가 있다.
    · 교구 소속 508명, 수도회 소속 376명, 총 방인 사제 884명이며 외국인 사제는 1,013명이다.
    · 방인 수녀 5,988명, 외국인 수녀 692명으로 가톨릭 여성신자 33명 중 한 명이 수녀인 셈이다.
    · 216명의 수사들과 142명의 비일본인 수사가 있다.,179명의 대신학생 중 교구 소속은 84명이고 수도회 소속은 95명이다.

성소 증가는 그 이후 정지된 상태에 있다.

‘외부로 향한’ 선교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서는 아직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 사제와 수녀의 수효가 가톨릭인의 숫자에 비례하여 대단히 높지만, 비그리스도인들의 엄청난 수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일에 관심이 적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일본 주교들은 1974년의 주교 시노드와 「현대의 복음선교」 문헌, FABC가 유발시킨 선교충동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1977년 그들은 일본의 외방 선교회를 세우려는 계획을 연구하였다. 1979년 10월 회합에 모여 일본에서의 복음화 주제를 논의하였다.

1982년의 기록에 의하면 215명의 일본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58명, 중남미에서 110명, 아프리카와 근동 아시아에서 20명, 유럽에서 27명이 활동한다. 그들은 주로 외국에서 사는 일본인들 가운데서 일하는데 특히 브라질에는 69명의 선교사가 있다. 마리아의 순결한 성심 수녀회(나가사키)는 아마존강 유역에 6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일본에서보다 브라질에 일본 가톨릭인이 더 많지만(약 90만 명), 브라질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깊은 신앙심이 없는 가톨릭인들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 선교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들에서 활동하는데, 예를 돌면 일본의 노트르담 수도회(나무르) 수녀들과 일본의 예수회 회원들이 네팔에서 봉사하고 있다. 마리아의 프란치스꼬 선교회는 364명의 일본인 회원을 갖고 있다. 이들 중 43명이 국외에서 활동한다(아프리카의 8개국에서 11명, 아시아 4개국에서 6명, 브라질에서 9명이 일한다). 일본 선교사들은 자기네 주교들로부터 파견받지 않았다. 자기네 수도회로부터 파견되었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의 주도권에 의해 스스로 파견하였던 것이다.

 

베트남

베트남의 교회는 빛나는 과거를 갖고 있다. 역사가 경과해 오는 동안에 끊임없는 시련과 가끔 유혈의 박해를 견디어 내야만 하였다. 19세기 하반기 동안에만 115명의 1베트남 사제, 수백 명의 수녀와 교리교사, 1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살해당하였다. 교희는 이러한 박해들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박해들로 인하여 더욱 강해졌다. 이것은 주로, 다른 어떤 지역교회보다도 이 교회가 상당수의 방인 사제, 수녀, 교리교사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교회는 계속 시련에 봉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필리핀과 스리랑카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나라이다(스리랑카의 가톨릭인의 비율은 약간 높다). 제3세계의 어느 교회보다도 이 교회는 자신의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

베트남을 둘로 분할하였던 1954년 7월 21일의 제네바 협정 이후 수많은 가톨릭인(60만 명)과 사제들이 월남으로 이주하였다. 그래서 남쪽(월남)의 교회가 가장 활력에 넘친다(인구 10%가 가톨릭인이다). 월맹의 침입과 1975년 4월 20일의 사이공 함락 이후―다시 말해서 국가의 통합과 독립 이래로―교회는 전적으로 자신의 자원에만 의존해 왔다. 오늘날 이 교회는 또다시 격렬한 압박을 받고 있다. 미미하지만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이 교회가 능히 그 억압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의 교회처럼 공산치하에서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힘과 저력을 기를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베트남은 ‘아시아의 폴란드’라 불리울 수 있겠다.

거듭되는 환난과 전쟁은 베트남 교회를 고립시켰고 교회로 하여금 그 자신의 학자들과 신학자들을 양성시키지 못하게 막았다. ‘외부로 향한’ 영향력은 극히 미약하다. 그렇지만 선교의식은 오래 전에 일깨워져 있었다. 참으로 베트남 교회는 대단히 활동적이었고 활용할 만한 자원을 많이 가졌었다.

도미니끄 마리 트란 딘 티 신부가 1953년 부이쿠 교구(월맹)에 한 선교단체인 공동 구속자 마리아의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이 회는 베트남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의 선교를 담당하였다. 이 회는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공산군의 하노이 점령(1954년), 월남으로의 피신, 1974년의 베트콩 침입. 1975년 이 수도회의 사제는 11명, 신학생은 110명, 수련자는 30명을 헤아렸다. 월맹이 침입하기 전에 166명의 회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70년 주교들은 복음화를 위한 국내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게다가, 각 주교가 교구 선교 위원회와 함께 그와 유사한 교구 위원회를 결성하도록 요청받았다. 모든 주교가 교황청 전교원조회의 선교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교구 기금을 조성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1973년 주교들은 베트남 선교단체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단체의 감독권은 샤를르 드 후꼬의 작은 형제회 소속 늬옌 킴 디엔(후예) 대주교에게 맡겨졌다. 파리 외방 선교회가 이 회의 전문 분야를 돌보아주었다. 시작은 참 훌륭하였다. 1975년의 회원수는 사제 6명, 신학생 6명이었다. 그 이후로 사정이 어떻게 되어 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베트남(남:북 합계)에 관한 몇 가지 통계에 의하면:

  • 5,270만 명의 총인구 중 6.6% 350만 명이 가톨릭인이다.
    · 교구 25개
    · 사제 2,200명, 대신학생 1,000명, 수녀 6, 520명

더욱더 최근의 비공식 통계 (1981년)에 의하면 주교 43명, 신부 2,500명, 수녀 7,000명이다.

폴란드의 교회처럼 베트남의 교회는 갈등의 상황에 처해 있다. 폴란드의 이러한 상황은 성공적인 선교를 위한 길을 터놓았던 정화와 쇄신된 활력을 초래하였다. 아마도 역사는 베트남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교회는 인근국 인도의 교회와 아주 유사한 홍미 있는 역사를 갖고 있다. 가봅릭 인의 높은 백분윤(6. 8%) 덕분에 그 교회가 국 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온 인도 교회보다도 더 크다. 아시아의 국가들 중 필리핀 다음으로 그 리고 베트남과 더붕어 스리랑카는 가톨릭인의 백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1981년의 통계를 보면:

. 인구 1,490만 명
· 가톨릭인은 1,009,577명(6.8%)이다. 개신교 신도의 수는 약 300,000명이다. 따라서 총 그리스도인의 백분윤은 8.8%이다.
· 9개의 교구에 스리랑카인 주교는 13명이다.
· 사제 570명: 교구 소속 346명이고 수도회 소속 224명이다(90% 이상이 스리랑카인인데 이들의 수효는 증가 추세에 있으나 그 속도는 아주 느리다. 1974년의 교구사제는 338명이었다).
· 대신학생 220명: 교구 193명, 수도회 27명(1974년의 총수는 192명)
· 수사 325명
· 수녀 2,375명: 90% 이상이 방인이다.

스리랑카 교회는, 전에 제 뜻대로 활용할 수 있고 상당히 동양적이며 사제들로 구성된 많은 수도회를 보유하였고 또한 자신에 충실하였었는데 최근 수십 년 동안에 큰 타격을 입었다. 1960년에 학교들은 국유화되었다. 1971년에 교회는 특히 스리랑카 젊은 층으로 구성된 초국가적 서클들과 공산주의자와 새 좌익 정부로무터 강한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사태는 교회로 하여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일기 시작한 자기 비판을 고조시키도록 유도하였다. 교회는 변하였다. 아죠르나멘또(교회의 현대세계에의 적응)는 아직은 완전히 극복되지 아니한 가혹한 내적 위기와 동시에 일어났다. 교회는 국민의 문화에 더욱더 자신을 정착시키며 타종교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불교는 전인구의 69%, 힌두교는 15.5%, 이슬람교는 7.6%이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 민족들의 인권을 옹호해 준다. 교회, 또는 적어도 진보 세력의 신자들은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다. 1970년 콜롬보에서 창립된 유명한 종교 및 사회 문제 연구소는 그러한 진보적 방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간혹 힘든 인종 및 사회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 교회는 수행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갖게 된다.

교회의 내적 쇄신과 큰 영향력 행사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개종자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통계에 의하면 스리랑카 교회는 아주 높은 율의 방인 인적 자원을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강한 교회이고, 또한 역동적 국민의 교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선교운동이 수년 동안 즉 1968년 이래로 발전해 왔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리랑카의 선교단체들은 자기네 방인 회원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스리랑카는 가톨릭인 1,771명 및 주민 26,000명 에 사제 한 명 꼴인데도 선교국가가 되었다.

1982년에 110명의 선교사들이 아시아인의 다른 나라(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한국),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일하였다. 파키스탄만 해도 스리랑카의 사제 18명, 수사 21명, 수녀 36명을 보유하고 있다.

 

제4장 라틴 아메리카의 선교의식

19세기에 침체되어 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는 외부로부터의 원조 덕분에 금세기 시초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부터 중남미 교회는 활력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중남미 교회의 긴급한 상황을 지적하면서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유럽과 북미의 교회들에게 시급한 원조를 호소하였다. 하느님의 영이 중남미 교회 안에서 매우 활발하게 역사하셨다. 짧은 기간 내에 젊고 활력 넘치며 예언적인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거대한 가톨릭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다음 세기에 가서는 이 대륙이 전세 계 가톨릭인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대륙의 나라들 안에서는 종교와 문화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 교회의 쇄신은 중남미 민족들의 깊은 종교심에 의해서 야기되었다.

중남미 교회는 다른 모든 교회가 그 전에 저질러 왔던 잘못을 최초로 시정하려고 몸부림쳐 온 교회이다. 이 교회는 자신의 강하고 부유한 계층들과 결별하고 가난하며 억압받는 군중의 편으로 돌아섰다. “가난한 자를 위하여, 가난한 자와 함께, 가난한 자와 똑같이" 있으려는 노력으로써 이 교회는 교회 쇄신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어왔다. 복음에 신실하려는 태도에 있어서 이 교회의 모범은 다른 교회들로 하여금 적절한 방식1으로 양심을 성찰하도록 자극을 준다. 중남미 교회는 여전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식민주의의 여파에서 탈피하려고 투쟁하고 있기도 하다.

중남미의 교회는 그 자신의 예언자적인 활동으로 말미암아 압박과 박해를 받고 있다. 이리하여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며 구세주와 더욱더 동화되어 가고 있다. 복음은 걸림돌과 모순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교회 안에서 입증되고 있다.

교회쇄신의 모델들을 바로 중남미의 교회가 제시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다른 교회들이 갈수록 인정하고 있다. 사목분야의 쇄신을 반성하고 추구하려는 현대의 강한 흐름이 중남미에서 연유하였다. 일반대중으로 구성된 교회의 설립, 해방신학, 민중 신심의 재평가 따위는 중남미에서 기원되었다. 중남미 교회는 가난한 자와 함께 함으로써 희망의 교회, 영성적으로 부유하고 젊으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다.

 

‘외부로 향한’ 선교활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중남미 교회에게는 축복이었다. 1968년 9월에 메델린에서 개최된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 총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회의는 공의회와 공동 보조를 맞추면서 중남미 교회쇄신의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것은 중남미에게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복음화”라는 주제를 내걸고 멕시코의 푸에블라에서 개최된 CELAM 회의(1979년 1월 27일~2월 13일)는 전체 교회를 위하여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부터 모든 교회가 중남미에서 진척되고 있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중남미 교회의 쇄신은 CELAM의 절대적 영향을 받아왔다. CELAM은 1955년에 창설되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의 주교회의들의 창립을 위한 모델이 되어왔다.

중남미 교회의 쇄신이 얼마나 성공하였으며 어떠한 문제점들을 야기했느냐 하는 문제 전반을 지적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사제 부족이라는 교회의 한 중대 문제가 점차적으로 해결되어 가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뿐이다. 과거 수년 동안 사제들의 수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이 통계로 밝혀졌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5년 동안, 중남미의 대신학생 숫자는 아르헨티나가 636명에서 1,373명, 브라질이 2,667명에서 4,283명, 칠레가 442명에서 663명, 콜롬비아가 1,259명에서 1,857명, 페루가 402명에서 693명, 도미니카 공화국이 129명에서 286명, 아이티가 87명에서 139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1971년에는 산티아고(칠레)에 대신학생이 한 명도 없었으나 1981년에는 121명이 있었다. 코르도바(아르헨티나)에 1970년에 12명의 신학생이 있었으나 1981년에는 150명이 되었다. 1964년부터 1970년 사이에 상파울로(브라질)에 두 명의 사제 서품자가 있었으나 1980년과 1981년 동안에 64명의 새 사제가 서품되었다. 이는 부흥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수효가 늘어나지 않았다.

교회가 백성 가까이에로 나아가는 나라, 교회의 과업이 기초 공동체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나라들에서 성장이 눈에 띈다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 근본 바탕으로서 사제 및 수도 성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0년 7월 2일 리오데자네 이로에서 발언하였다:

“사제성소가 공동체의 성숙의 표지, 평신도들에게 직분을 맡긴 결실, 건전한 교육 및 가정 사목직분의 결과이어야 한다.”

메델린 회의 이래로 복음화 주제가 중남미에서 자주 논의되어 왔다. 최근에까지 복음화가 거의 절대적으로 ‘내부로 향한’ 선교에 국한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부로 향한’ 요구들이 너무나 시급하였으므로 ‘외부로 향한’ 복음화를 위한 인적 후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오늘날의 사정은 변하였다. 중남미 교회는 그 자신도 세계 복음화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의 많은 지부를 두고 있는 CELAM 선교부는 새로운 선교의식을 일깨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국내 주교 선교위원회들은 갈수록 ‘외부로 향한’ 1복음화의 문제에 관하여 관심을 더해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다른 많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230개의 교구를 갖고 있는 브라질의 주교회의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CELAM에 힘입고 있는 중남미가 각국 주교회의들간의 긴밀하고도 잘 조직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대륙이다. CLAR(중남미 수도자 협의회) 덕분에 이 대륙보다도 수도단체들간의 긴밀한 협력이 훌륭히 이루어지는 대륙은 없다. 더욱이 CELAM과 CLAR의 상호협조는 뛰어나다. 중남미 사제의 과반수가 수사신부(25,497명; 교구사제는 23, 281명)이므로 이 협력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중남미에는 상호협력의 정신, 협동숙의, 협력활동이 훌륭하다. 교회들간의 협력이 다른 대륙보다 훨씬 용이하게 중남미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그들의 상황과 제반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1대부분의 나라에서 두 언어들―또한 이들과 같은 어원의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을 때 문이다.

이러한 협조정신은 선교정신(‘외부로 향한’ 선교)의 촉진에서 드러나고 있다. CELAM 선교부는 교황청 전교원조회와 수도회의 국내 지도자들과 긴밀한 협력 아래에서 일한다. 많은 일이 협력 하에 추진되고 있다. 중남미에서 교황청 전교원조회의 국내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첫 과제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선교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 있음을 파악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 나라가 국내 선교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데 이는 갈수록 성공적이다. 1977년 11월에 토레온에서 멕시코의 제7차 국내 선교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그 폐막 회의 때에는 20,000명 의 평신도, 3,000명의 수녀, 1,000명의 사제, 100명의 주교가 참석하였다. 1982년 10월에 콜롬비아가 제3차 국내 선교회의를 개최하였다.

에콰도르는 1982년 3월에 7,000명의 젊은이가 참석한 국내 선교회합을 가졌다. 1983년 멕시코에서 중남미 대륙의 선교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1년 및 1982년 국내 선교회의가 개최되었다; 아르헨티나(1981년), 볼리비아(1981년), 페루(1982년)의 국내 선교회의들도 같은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선교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목활동을 위해서도 대륙 차원에서의 논의와 협력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었다. CELAM 선교부, 교황청 전교원조회, 선교 수도회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1980년 8월에 틀락스칼라(멕시코)에서 선교논의 및 실천방안을 위한 제1차 국제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선교에 관한 푸에블라 논의를 추진하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선교활동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고, 교리교수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교리교수에 선교적 차원을 첨부시키고, 교회의 기초 공동체들 안에 선교정신을 배양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들은 COMLA(라틴 아메리카 선교협의회)를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틀락스칼라의 교구장이며 CELAM 선교부의 의장인 L. 무니베 에스코바르 주교가 발언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가난, 요구, 문제에 너무 몰두해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주려면 먼저 소유해야 하며 또한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는 아직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는 생각에 우리가 너무 집착해 있다. 여기서 나는 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 그리고 1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베풀 수 있는 봉사와 원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는 것’이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답변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교회라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으로부터 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외부로 향한’ 우리의 선교과업은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복음화의 결실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 반대도 맞는 말이다. ‘외부로 향한’ 선교활동은 라틴 아메리카의 ‘내부로 향한’ 복음화가 신빙성 있고 또 타당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주교회의의 대표들이 CELAM을 위한 정기 회합에 또한 수도회의 대표들이 CLAR를 위한 정기 회합에 참석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선교에 책임 맡은 사람들도 중남미 선교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틀락스칼라에서, 1983년 5월 17일부터 22일까지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선교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회의는 아주 면밀하게 준비되었다. 그 목적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교회들 안에서 선교정신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최근에 4개의 센터가 선교사 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의 발현 성지 가까이에,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에, 스페인어 사용의 남미를 위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세워졌다. 그리고 ‘외부로 향한’ 선교에 교구 사제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국제 센터가 1981년 리마에 설립되었다.

 

멕시코

중남미에서 선교운동이 활발해지는 데에 있어서 멕시코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30년 이상 동안 멕시코는 그 자신의 선교단체를 보유해 왔었는데, 그것은 곧 과달루페 성모의 외방 선교회이다. 1949년에 창립된 이 회는 메리놀 선교사들의 특별한 원조에 의존할 수 있었다. 이 회는 오랫동안 주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일본, 한국, 케냐, 홍콩, 앙골라 등지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1977년 루안다(앙골라)의 대주교는 자기 교구의 대신학교를 말아 운영해 줄 것을 이 회에 요청하였다. 20명의 회원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몇몇 신학생들은 그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게 될 나라에서 예컨대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한 선교 수녀회, 즉 거룩한 성사의 청빈 글라라회가 1951년 쿠에르나비카에서 창립되었는데 회원수가 벌써 400명에 이른다. 이 회는 일본,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코스타 리카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노보 레돈도(앙골라)의 주교의 요청으로 17명의 수녀가 1978년에 그 교구에 분원을 설립하기 위하여 멕시코 본원을 떠났다.

 

콜롬비아

50년 이상 동안아나 콜롬비아는 ‘외부로 향한’ 선교에 관심을 보여왔다.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회인 야루말의 사베리오 선교회가 1927년 이곳에서 창립되었다. 안젤로 부일레스 주교(산타 로사 데 모소스의 교구장)가 이 수도회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내놓았을 때 다른 주교들은 지역적 요구가 사제들과 수녀들의 해외 파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에도 여전히 그 입장을 고수하였다. 오늘날 회원이 168명을 헤아리는데 그 중 사제가 115명이다. 회원들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콜롬비아의 선교 교구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예컨대 자이레의 마하기 교구)에서도 일하고 있다. 부일레스 주교는 여자 선교회, 성녀 데레사의 선교 수녀회도 설립하였다.

격월 선교잡지 Revista de Misiones가 주교회의 및 방금 언급된 두 선교 수도회의 협조로 교황청 전교원조회에 의해 간행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남녀 선교사들은 일본, 중국, 필리핀,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몇 명의 콜롬비아 예수회원은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메델린의 대주교는 4명의 자기 동료 주교들의 후원으로 선교지역에서 일할 피데이 도눔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중남미의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황청 전교원조회가 더욱더 훌륭히 조직되어 가고 있으며 교구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의 선교운동에 있이서 능동적 역할을 맡기 시작하고 있다.

 

브라질

브라질에서도 선교에 관하여 열띤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브라질 자체 안에―북부 지방의 교구들과 아마존 유익의 44개 대리감목구 안에―거대한 선교지역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4,500만 명의 원시 브라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도직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선교과업인 것이다. ‘내부로 향한’ 선교에 관심이 치중되고 있다. 1977년 이래로 주교회의가 브라질의 선교상황을 의제로 택하여 정기적으로 논의해 왔다. 더욱더 많은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한층 더 나은 방편을 활용할 수 있는 남부의 교구들은 여전히 선교 대상구역으로 남아 있는 ‘가난한’ 교구들을 도와주기로 전정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제까지 약 50개 사례의 교구들간의 ‘자매결연’이 있었다.

1978년 주교들은 브라질의 선교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였으며 또 ‘외부로 향한’ 선교에 책임을지기로 합의하였다. 주교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선교의식을 고양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주교 선교위원회는 상당히 활동적이다. 1981년에는 학교에 있어서의 선교교육에 관한 문헌을 반포하였다.

주교회의에 의해 설립된 국내 선교 평의회는 교황청 전교원조회, 선교 수도회 및 다른 선교 단체들간의 상호협력과 반성의 기관이다. 그들은 브라질에서의 선교활동을 협의하였다. 선교과업은 국내 사목계획 안에 아주 훌륭히 통합되었다. 국내 선교 평의회 외에도 지역 선교 평의회가 있다.

몇 개 교구는 정기적으로 선교회합을 개최한다. 1981년과 1982년에는 COMLA 의 제2차 총회를 염두에 두고 선교회합이 개최되었다.

교황청 전교원조회는 유럽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교주일의 기념행사가 신중히 준비되고 있으며 해마다 선교 주제가 정해지고 있다. 홍보물이 큰 규모로 제작 배포되고 있다: 5백만 개의 그림, 포스터, 달력, 카드, 시청각 교육 보조 재료 등.

범아프리카 주교회의의 대표가 아프리카와 브라질 교회들간의 교류를 확립하기 위하여 1977년 4월에 브라질 주교회의와 만났다. 이 때에 그들은 선교사들의 교류에 관해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브라질 선교사들은 지금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있다. 전인구의 17%가 흑인인 브라질은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일하기에 적합한 선교지역이다.

갈수록 ‘외부로 향한’ 선교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브라질은 선교하는 나라가 되려는 강한 의향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국제 수도회 소속 아니면 브라질 수도회 소속이었으므로 자기의 지역 교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회원수 1,300명을 헤아리는 브라질의 유명한 수도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의 선교 수녀회는 1977년 이래로 앙골라와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견해 왔다. 공동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앙골 라와 모잠비크는 브라질인들이 선교활동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교황청 전교원조회가 외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수효에 대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600명 이상이나 되며 매년 30명이 더 파견되고 있다. 교황청 전교원조회는 이들과 접촉하고 또 선교사들과 이들의 출신교구 사이의 접촉을 확립해 주려고 애쓰고 있다. 브라질리아에는 외부로 향해 파견된 선교사들을 준비시키는 양성소가 설립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브라질을 방문한 동안에 브라질과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의 선교성소에 관해 언급하였다. 1980년 7월 2일 리오데자네이로에서 CELAM 대표자들에게 행한 연설 중에 말하였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타대륙에도 선교사들을 널리 파견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7월 10일에 마나우스를 방문하는 동안 ‘두드러진 선교지역’인 아마존 지방의 지역 교회를 언급하면서 부연하였다:

“주님, 당신의 선교적 교회 앞에서 저는 특별한 방법으로 선교과업과 선교사들 전체, 즉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을 칭송하나이다…

이 선교교회 안에서 나는 주님의 은ᅟᅵᆯ한 뜻에 의하여 내게 위임된 교황직으로 말미암아 내가 선교활동에 최초의 책임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선교의식을 고취시키고 여러분이 선교활동에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싶습니다… 참 복음선포자가 되십시오.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내가 명백히 밝혔듯이 진정한 복음화는 근본적으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뚜렷한 선포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의 선언입니다.”

교황은 주교들과 그의 협조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또 지역교회에 적합한 복음선포를 추진하고 있음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

1981년 콤보니아회 사제들이 에콰도르 퀴토에 선교정보 및 의식함양을 위한 센터를 열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 세워진 선교 센터가 선교 의식의 고취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수년 전부 터 아르헨티나는 선교잡지 Anales de la Propagación de la Fe를 간행해 오고 있다.

페루의 선교사 협회가 1975년에 설립되었는데 이 회의 몇 명이 사제와 수녀들이지만 대부분이 평신도들이다. 이들의 첫 공식 과업은 안데스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외부로 향한’ 선교에 관해서도 계획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중남미 선교사들이 타대륙에서 일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통계자료도 상당히 부족한 형편이다. 최근에 와서야 ‘외부로 향한’ 선교에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중남미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있다. 대개 그들은 국제 수도회의 회원으로 그곳에 갔다. 509명(10개국에서 온)의 회원을 가진 마리아의 프란치스꼬 선교회는 아프리카에 몇 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우루과이 선교사들이 앙골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푸에블라 회의의 역할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화가 신중히 논의되었던 때는 메델린 회의였다. 푸에블라 CELAM 회의는 ‘외부로 향한’ 복음화를 거론하였다. 복음화가 그 넓은 의미로 고찰되었다. 다시 말해서 메델린 회의와 푸에블라 회의 사이에 선교에 관한 사유에 있어서 발전이 있었는데 이는 메델린의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교회론에 의하여 준비되어 왔던 것이다. 푸에블라는 중남미 교회들 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들처럼 선교받기보다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중남미 교회는 보편교회 안에서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 의식하게 되었다. 그의 선교책임이 세계적 차원을 띠게 되었다. 새 선교시대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푸에블라는 ‘내부로 향한’ 복음화와 ‘외부로 향한’ 복음화를 논의하였다. 첫째 문제는 중남미 선교상황 자체의 분석에 근거하여 취급되었다. 중남미에는 복음선교의 성취가 아직도 요원한 인종집단이 많다는 것이, 즉 몇몇 집단에게는 시작도 되지 않았음이 판명되었다. 이 종족들은 아메리카 인디안족(3,600만 명),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족(적게 잡아 7,500만 명이고, 혹시 9,500만 명일지도 모른다), 아시아계 아메리카족(500만 명) 등이다.

그런데 ‘내부로 향한’ 복음화는 ‘외부로 향한’ 복음화와 병행되어야 한다. 푸에블라의 최종 문헌은 진술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깊이 전향할수록 우리는 구원에 대한 그분의 보편적 갈망에 더욱 강력하게 이끌리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교회가 활력에 넘칠수록 더욱더 보편교회를 가시적 방식으로 현존케 하며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로 향한 선교적 태도가 강해질 것이다.”

다른 구절은 더욱 명확하게 ‘외부로 향한’ 선교과업을 언급한다:

”라틴 아메리카가 지역교회들간의 상호 봉사의 과업을 강화하고 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민족들에게로’ 그 과업을 확대시켜야 할 때가 왔다. 사실 우리 자신들에게 선교사들이 부족하지만 우리 자신의 가난으로부터 줄 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독특하고도 중요한 요소들을 소유하고 있다: 구원과 해방에 대한 인식, 풍부한 민중 신 심, 교회 기초 공동체의 체험, 번창하는 다양한 직분들, 신앙에 뿌리를 둔 희망과 기쁨 등이다. 우리는 이미 선교노력을 경주해 왔는데 이 노력들은 이제 심화될 수 있으며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는 보편교회 및 우리 자매교회의 너그러운 도움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특히 본국의 사목 역군들을 양성시키는 과업에 있어서 우리와 함께 일해 주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더욱더 보편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과제에 더욱 충실한 자가 될 것이다.”

또한 푸에블라는 실천적 방안까지 제시하였다:

“우리는 이같은 세분화된 목적을 위하여 연구소나 신학교의 설립을 계획하면서 선교성소를 계발하고 촉진하며 유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푸에블라는 ‘외부로 향한’ 선교의 획기적인 도약을 아주 분명하게 역설한다. 사실상 중남미의 교회는 자신감에 차있으며 진정한 교회이고 생기에 넘쳐 있으므로 다른 교회들과 함께 자기의 생명력을 나누어 가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교회는 모든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이 선교의식에 충분히 젖어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리마 문헌

일단의 주교, 사제, 수도자들이 선교와 관련한 푸에블라의 선언문들을 더욱더 깊이 숙고하기 위하여 1981년 2월 4일부터 6일까지 리마에서 회합을 가졌다. 이 회합의 최종 문헌은 중남미 교회의 몇몇 선교지향 단체가 지닌 견해를 요약한다. 문헌을 요약해서 살펴본다면:

· 상황분석은 ‘내부로 향한’ 복음화가 여전히 시급하고 아주 중대한 과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 보편교회 및 세계 복음화에 있어서 개별교회가 맡고 있는 공동책임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 의회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중남미의 교회가 세계 선교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재촉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부로 향한’ 복음화에만 전념해서는 아니되고 ‘외부로 향한’ 복음선교에 뛰어들어야 한다.

금세기 말까지 세계 인구의 80%가 비그리스도인이 뛸 것이다. 현재 중남미 교회는 전체 가톨릭인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금세기 말에는 50%에 육박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 복음화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계속 증대될 것이다. 우리의 기여는 우리 자신의 지역교회를 위한 축복 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교회는 자기 활력을 위축시키고 상실케 하는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계로 향한 개방적 테도가 결핍되면 성소의 부족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된다. 교회가 성숙되고 역동적이 되려면 반드시 복음을 해외로 전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외국 선교사들을 영입하는 것과 자신의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견하는 것 사이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 이제까지 중남미는 ‘외부로 향한’ 선교에 대한 선교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한다. 해외에 파견된 소수의 선교사들은 알려지지 않았고 또 변두리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었다. 평신도가 사제보다도 선교정신을 더 용이하게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기초 공동체들 안에서 선교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중대한 일이다.

선교의식의 부족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인원이나 방편에 있어서 엄청난 규모의 외부 원조를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긍지에 대하여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수십 년간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시급한 문제이긴 하지만 ‘내부로 향한’ 복음화에만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외부로 향한’ 선교를 소홀히 하였다. 더욱이 그 전에는 복음화가 너무 피상적이어서 선교정신이 최대한 발전될 수가 없었다. 결국 실질적으로 중남미의 모든 선교지역이 외국 선교사들의 손에 떠맡겨져 있었으므로 우리 자신의 주교, 사제, 수도자들 사이에서 선교의식이 성숙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이 상황이 바뀌고 있다.

· 우리 교구들 안에서 나타나는 사목활동과 선교활동 사이의 분리는 선교의식의 전반적인 확산을 가로막은 장애요소이기도 했다. 선교의 사목직이 교구의 사목직과 전혀 융합되지 않고 있다. 교황청 전교원조회의 활동들과 수도회의 활동들이 지역교회의 생활 안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않고 있다. ‘내부로 향한’ 복음화와 ‘외부로 향한’ 복음화는 우리의 공존하는 그리스도교적 삶 안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후자는 전자와 공존해야 하는, 분리될 수 없는 항목이다. 둘 다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즉 가난한 자들 중의 가장 가난한 자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이들에게로 가려는 갈망,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남미 특유의 체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열의를 둘 다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열의는 교구의 사목직분의 정상적 차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모든 계층 안에 스며들어야 한다.

· 중남미의 교회는 복음화의 과업을 위한 예외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 교회가 기여한 것과는 달리 라틴 아메리카의 공헌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결탁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그리고 가난한 방편에 의존한 가난한 나라들의 선교가 될 것이다. 중남미의 선교사들은 여하한 권력과 시도, 여하한 우월감도 없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향해 떠날 수 있다. 그들은 그 자신의 중남미 체험에 의존하여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가운데 특유한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정의와 해방과 형제애에 대한 투신, 민중 문화에 대한 존중, 문화와 종교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민중 신심으로 형성된 민중교회의 모델 제시 따위로 그들은 타 교회에 봉사할 수 있다. ‘내부로 향한’ 중남미식의 복음화는, 예컨대 비그리스도교 종교돔들과의 대화와 관련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어서 ‘외부로 향한’ 복음화를 위한 모델이 되고 있다. 장래에 중남미 선교사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위해 가장 적합한 복음전파자들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 우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의 스페인어 사용지역에 선교사들을 파견할 수 있다. 이 지역들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아직도 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우리가 신학적 통찰 및 사목 경험과 관련하여 제공해 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우리가 인적 자원을 제공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 선교운동이 자기 국민으로부터 시련과 박해를 받은 교회들 안에서 가끔 발생하였음을 교회역사는 가르친다. 이것은 불란서 혁명 이후의 유럽의 경우이다(또한 우리가 부언한다면, 오늘날 폴란드의 경우도 그렇다). 중남미 교회는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갈등 덕분에 ‘외부로 향해’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는 준비태세에 있다.

·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우리 교회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유도하는 한 그들의 활동은 위축되고 지속성이 없는 것으로 되어버릴 것이다. 선교사들은 지역교회의 성장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그 지역에 파견되고 활동해야 한다. 선교는 그 본성상 ‘순례’의 과업이다.

· 선교가 성직자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과제이다. 일반 대중이 선교적이 되어야 하고 선교를 지원해야 한다. 선교성소는 평신도들 가운데서 증진되어야 한다.

선교가 너무 독점적으로 선교 수도회에 맡겨져 왔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관심사이어야 한다. 주교들을 위시하여 그들의 사제, 수도자들이 그들의 양 떼와 더불어 선교에 책임지고 있다. 교황청 전교원조회와 선교 수도회들은 그들의 수단이지 그들을 대신하는 기구들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는 것은 각자의 성소를 따르기 위 해서뿐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에 의해 불림을 받고 파견된 자로서 그 공동체의 선교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5장 최종적 고찰

지금까지 개괄적인 고찰을 해왔지만 여기서도 나는 몇 가지 고려사항을 더 첨부하고 또 이러한 고찰이 선교, 선교사들, 선교단체를 위하여 초래할지도 모를 결과들을 지적하려고 한다.

 

새로운 발견

제3세계에서의 선교성소

제3세계 젊은이들의 선교지망에 관한 통계에 의하면, 서구교회보다 제3세계 교회가 더 많은 젊은 선교사들을 파견하게 될 때가 가까웠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십 년 안에 서구교회의 선교사들이 비서구 선교사들의 수효에 더 이상 못 미치게 될 것이다.

선교충동이 서구의 젊은층 사이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래에 서구교회가 자신의 내적 위기와 선교 고충을 극복해 내리라는 확신을 가져도 좋을 이유들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교회내의 중심 위치가 제3세계 교회를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서구교회의 선교적 독점이나 우세는 틀림없이 끝장날 것이다.

이재부터 복음화가 모든 교회에 의하여 추진되는 과업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히 다행스럽고 희망찬 징조이다. 전체교회가 최초의 수 세기 동안에 그러했던 것처럼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발베르트 뷜만이 서술한다:

“우리가 선교위기에 관하여 말할 때에―우리들 가운데서 선교성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이것은 서구교회의 현상이라는 점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전체로서의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선교적이다. 우리의 선교위기가 우리의 선교독점을 종식하고 모든 교회에 기회를 주고 선교활동을 진척시키려는 충동을 일으키기 위한 섭리적 필연이었음을 나는 감히 말하는 것이다”(「제3세계의 복음화」, 1981년. p. 18).

제3세계 교회는 지금 많은 선교인원을 제공하고 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마르 16,15)는 주님의 명령을, 우리는 너무 쉽게 불가능한 과제, 유토피아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소수에 머물러 있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하였다. 우리는 복음의 양적 확산보다는 질적 확산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이러한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이용되는 논증들은 더욱 빈번히 신학적이기보다는 사회학적인 것이었다. 이런 태도가 복음의 강한 힘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임을 미래는 입증할지 모른다. 세계 복음화는 인간의 일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도 하다. 사실 제3세계 교회는 우리 교회보다도 나라를 복음화시키는 가능성에 대하여 더 낙관적이다. 점차로 가톨릭인의 수효에 육박하고 있는 이슬람교도의 확산은 우리로 하여금 신중히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만일 이슬람교인들이 자기 신앙의 확산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다면, 가톨릭인들도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민족’ 복음화는 미완결된 과제가 되었다. 7억8천4백만 명의 가톨릭인은 세계 인구1(44억)의 18%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전부는 28%이다. 이 비율은 감퇴되어 가고 있다, 금세기 말에는 세계 인구(60억)의 불과 4분의 1 내지는 그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인구폭발은 비그리스도교 대륙 아시아에서 높은 비율에 달한다.

전체교회가 복음화에 투신할 때에 더욱더 많은 인적 자원이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선교를 위한 밝은 미래를 가리켜주는 다른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제3세계 복음화의 이점

최근 선교역사상 최초로 우리는 식민주의적 지배와의 모든 유대를 불식한 선교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세기에 그리스도교는 식민주의자들의 종교였다.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복음화는 식민지 지배와 병행하였다. 계획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선교활동은 서구세계의 정치적 문화적 지배와 연관되었다.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에서―예컨대 일본과 중국에서―그러한 연관 때문에 선교가 의혹을 샀었다. 그것은 개종을 위하여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 때때로 그것은 혹독한 박해를 불러일으켰다.

식민주의로부터의 탈피는 아직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이 악몽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선교를 해방시켰다. 식민주의는 신식민주의라는 가지를 갖고 있다. 서구세계는 오늘날에도 서구 교회의 선교적 현존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계속 드리우고 있는 경제적, 기술적, 군사적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

제3세계의 선교사들은 여하한 우월권을 과시하지도, 어떠한 우월감도 갖지 않고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 제3세계의 국가들 사이에는 서구의 지배에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강한 연대감이 일고 있다. 따라서 제3세계 선교사들은 서구의 선교사들보다 더욱 믿음직스럽게 영입될 수 있다.

오늘날과 내일의 선교에 유익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금세기에 처음으로 복음이 그 서구 문명의 형식을 벗어버린 채 선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는 그 이질적 특징 때문에 수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배척받았다. 개종은 소외를 뜻했다. 과거에는 선교사들이 식민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확신하였다. 그들은 ‘문맹’ 비그리스도교 민족들로 하여금 서구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해줌으로써 자신들이 저들에게 큰 봉사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교는 서구문명과 더불어 이식되었다. 복음화는 종교들 상호간에 또는 문화·들 상호간의 대화 없이 추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대화는 복음화의 한 근본 측면이다. 복음화는 강생을 암시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러한 통찰을 갖게 된 것은 젊은 교회들의 공헌 덕분일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문화 및 종교와 통합시키는 것은, 복음의 강생이 벌써 진척되고 있는 제3세계 교회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하여 실현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3세계 선교사들이 복음화의 과업에 전적으로 동참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교를 외국종교, ‘백인들의 종교’ 또는 소외시키는 종교로 매도하는 일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복음이 온 민족을 위한 것이며 또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그들은 입증할 것이다.

 

토착화

문화적응, 정착화, 지역화는 복음화의 필수적 측면들이다. 그것들은 제3세계의 선교사들뿐 아니라 서구의 선교사들에게도 부과되는 의무다. 타민족의 생활 및 사고 세계에 스스로 통합되는 것, 그 언어와 관습에 동화되는 것, 그 민족의 요구에 동참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또한 ‘캐노시스’(자기비하, 자기포기, 자기낮춤)와 가난과 수용의 정신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서구 선교사들의 과거 접근 방식을 향하여 통상 가해지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서구문명의 확산과 더불어 서구의 교회 모델, 전례, 교리교수, 윤리, 사목방법 등을 이식하였다. 복음화의 방향은 그들의 시대에 유포되었던 정신과 교회론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문화에의 적응, 종교 상호간의 대화 및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투신 을 참작하여 기쁜 소식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복음은 삶의 전반적인 문맥과 관련하여 선포되어야 한다. 하느님과 인류는 복음화의 양극이다.

공의회 이후의 시대에, 대부분의 서구 선교사들이 공의회의 가르침을 기꺼이 채택하고 복음을 강생시키며 자신들의 교회를 지역에 맞도록 적응시키는 데에 열성을 다한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은 가끔 방인 사제들보다 더 진보적이다.

그러나 적응과 봉합에는 한계가 있다. 한 서구인이 비서구적 감정 및 사고 방식에 온전히 젖 어드는 것은 적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지라도 굉장히 힘든 일일 것이다. 아프리카인들1만이 아프리카 전례와 아프리카 그리스도교를 성공리에 창조해 낼 것이다. 인도인들만이 힌두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이 그 안에서 편안히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서구인뚱이 몽합되기문 원하는 지 몰라도 그들은 행동방식, 판단, 활동방식에 있어서 여전히 서구인인 것이다. 그들은 쉽사 리 자기의 충족감, 조직의식, 진서의식, 시간 관념을 번형시키지 못한다.

서구 선교사들은 세속화되고 비신성시된 세계를 떠나, 종교와 문화와 일상생활이 밀접히 뒤얽혀 있는 종교적 사회에로 옮아간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몸담아 있던 세계는 그 안에 종교와 생활,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 있는 세계이다. 과거에 그들은 이 이원론을 무의식적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대양주에 이식시켰다. 제3세계 백성들은 선교사들이 이런 잘못들 범하였다고 비난해 왔다. 그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종교심, 거룩한 예식과 상징들, 감정과 신체적 표현들 존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종교와 생활의 일치를 존중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포, 자기들의 전반적인 삶에 호소하는 복음선포에 응답한다.

그리스도교가 민중의 특성을 지니지 못하면 복음화는 온전히 성공할 수 없다. 16세기와 17세기의 스폐인과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식민주의 통치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종교와 생활을 하나가 되어 있던 즉 종교가 여전히 전적으로 대중적인 특성을 띠고 있었던 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자들로서 그들은 중남미에서 민중적 그리스도교의 탄생을 촉진시켰다. 중남미의 민중 신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선교방식에 있어서의 변천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19세기와 20세기의 선교사들은 종교의 대중적 특성에 극히 미미한 관심만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과오는 그토록 많은 독립된 그리스도교 교회와 분파들이 특히 1,500만 명의 추종자를 헤아리는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데 대한 부분적 설명이 된다.

제3세계의 선교사들은 자신의 종교적 배경에 힘입어 민중적 그리스도교를 발전시키고, 인간 의 전반적인 실재 안에 복음을 통합시키는 데에 쉽사리 투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종교적 전통과 요구들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가치있는 요소들을 기꺼이 존중할 것이다. 토착화는 엄밀히 문화적인 실재들을 평가하는 것으로 그치는 작업이 아니며 종교와 문화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종교적 가치들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선교분야에 있어서 제3세계 선교사들이 자기의 백성을 전혀 돌보지 아니하며, 그들 자신의 견해와 관습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 자신의 지역적인 사목방법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전에 듣고 받아들이며 백성의 사회적 상황을 알려는 데에 전혀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남미의 선교사들은 자기 자신의 지역교회 모델과 사목방법을 거저 이식시키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간혹 폴란드의 젊은 선교사들도 똑같은 비난을 받는다.

최근에 와서야 ‘외부로 향한’ 선교를 시작해 온 제3세계 교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시급한 과제인 복음화와 관련하여 밀도있는 체험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맡을 과업에 그들을 훈련시키는 최상의 방법이 가끔 결여되어 있다. 이것이 국제 선교 수도회의 회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은 수도회의 오랜 경험에 의존하여 적절히 준비태세를 갖추고 선교분야에서 적합한 조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데이 도눔 사제들과 평신도 선교사들은 대체로 그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제3세계 선교사들은 복음화 대상의 사람들과 한층 더 밀집한 관계를 맺는 한에 있어서 서구 선교사들과 비교하여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 들은 제3세계의 문화, 종교전통, 요구를 더 잘 이해한다. 실제로 그들은 발전도상의 국가 출신으로서 자신의 사회 경제적 처지와 관련하여 대중들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들은 서구의 선교사들보다도 가난의 문제에 익숙해 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또한 ‘과 함께’ 있을 뿐 아니라 가난한 자‘로서’ 살며 그들을 위한 사회정의의 구현에 투신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가? 이것은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그 중요성이 크게 인정되므로 그것은 망각되어서는 아니 된다. 대부분의 제3세계 백성들이 가난하고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소외되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가난한 자의 교회,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선포의 우선,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에 대하여 말한다. 중남미의 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최근에 수도회의 총칙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 관하여 길게 언급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제3세계 국가들의 성직자 가운데에서 가난의 선언과 가난의 실천 사이에 가끔 큰 괴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자신들의 주변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볼 것 같으면 교회 지도자들, 사제들, 수도자들은 가끔 부르조아, 지식계층, 부유층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 대중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서구에서 지배적이었다.

물론 가난한 자들 편에 서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엘리트들을 위한 사목 직분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교회가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예언자적 교회가 되이야 한다. 이것은 복음적 애덕의 요구이고 그 넓은 의미의 토착화의 요구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전통 및 좁은 의미의 문화와 동화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있어서 그들과 하나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그 나름의 문화를 갖고 있다.

특히 중남미에서 얼마나 많은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정의의 구현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과 동화되려고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수도자들은 자기 성소의 은사적 특징에 충실하려면 예언자적 교회의 선봉자가 되어야 한다. 수도회 및 재속 수도회 성성이 1980년 8월 12일의 훈령에서 이 점을 아주 명백히 밝혔다.

‘가난한 자의 교회’는 ‘가난한 자의 수도자’를 필요로 한다. 제3세계의 수도자와 선교사들은 가난한 자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관련하여 양심성찰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스런 진단에로 이끌지도 모른다.

이것은 제3세계의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 수도회에게 아주 실제적인 문제이다. 보통으로 이 수도회의 장상들은 회원들 사이에서의 온갖 유형의 차별, 예컨대 복장, 음식, 숙박, 장비, 공부, 기타에 있어서의 차선들을 피하려고 한다. 그 결과 모든 회원들이 서구의 생활방식을 채택한다. 이것은 너무나 간혹 제3세계 출신의 회원들이 주장하지는 않지만 바라는 사항이다. 탄자니아의 수도회 의장 율리오 니예레레는 그 자신 아프리카인으로서 모든 사제와 선교사들에게, 복음은 그들로 하여금 백성과 가까이 살며 또한 가능한 한 이들과 닮을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백인들인 국제 수도회의 장상들은 그러한 요구를 거의 하지 못한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백인 선교사들이 자기의 서구적 생활방식을 가끔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갈수록 많은 제3세계 사제, 수도자, 선교사들이 자기들의 훈련, 영성, 생활방식은 백성들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사회 경제적 가난과 악, 복음적 가난과 복음적 요구웅 각각 구별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 없다. 그러나 복음적 가난의 실천은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들의 운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들의 인간 해방과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견해가 점차 제3세계에 기반을 확보해 가고 있다.

나는 북부 인도로부터 몇 개의 증언을 택하였다. 중남미 역시 그런 많은 증언을 제공할 수 있다(레오나르도 보프, 「세계 중심에 있는 하느님의 중인들」 참조).

1981년과 1982년 힌디 지역의 주교들과 대신 학교 학장들이 신학생 양성 문제를 거듭 다루었다. 가난은 그들의 주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들은 아래의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단순히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를 수년 동안 괴롭혀 왔던 의문은 우리가 말하는 바가 진심에 서 우러나온 말인지 아닌지 미심쩍다는 것이다. 인도처럼 수백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나라에서 진실로 가난한 자의 교회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유형의 신학교들을 가질 형편이 되는가? 이러한 신학교들은 우리가 부유한 자들의 교회라는 것을 입증하는 기념물이 아닌가? 우리는 안락하게 살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몇 가지 종류의 구호활동을 벌이는 로타리 클럽이나 라이온즈 클럽과 같은 종류의 회원들이 아닌가? 우리가 안일하게 건물들을 짓고 새 장비를 구입하고 연구를 위한 여행을 설계하고 온갖 종류의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들이 곧 우리가 선포하고 있는 모든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무한정의 기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생활로써 가난한 자에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장학금, 연구비, 효력의 기준들, 문화와 여가에 대한 개념들은 우리가 풍요로운 나라들로부터 취해온 개념들이 아닌가? 만일 한 사제가 ‘사목적 연민의 인간’이 되기를 기대한다면 그는 자기 백성들의 고초에 동참해야 하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제단의 분위기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거대한 구조, 안락한 방, 자기의 충분한 용돈 따위에 익숙해 있는 신학생들이 시골에서 일하는 데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고 어려워한다면 이는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S. 아난드, 「북부 인도에 적합한 사제들의 양성」; Vidyajyoti 1982년 1월호, pp. 32-44).

인도의 북부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예수회 인도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젊은 선교사들을 양성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위와 똑같은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이러한 양성은 수도생활에 관한 신학적 원칙들에 의해서뿐 아니라 선교사들이 일하게 될 지역의 백성문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의해서도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문화적 엘리트와 엘리트 사회의 기준에 따라 살도록 훈련받아 왔던 것이다. 이 같은 ‘엘리트화(化)’는 그들을 그 자신의 가족, 백성, 문화로부터 소외시켜 왔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들의 생활방식은 서구적이다. 따라서 양성소에서의 생활방식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들이 봉사하려는 백성들의 사회상황에 적합한 자들로 훈련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기도생활은 일반대중들의 고통받는 실재에 별다른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한 자들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아니하다. 이러한 엘리트군의 형성은 서구의 재정적 원조에 힘입어 지탱될 수가 있다.

아프리카에서처럼 인도에서도 수많은 지원자들이 수공업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수공업은 백성의 평범한 생활에 동참하고 그들 자신의 생계유지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방편이다. 수도회 장상들의 회의 중에 인도 주교 J. 사우핀(달동간즈)이 천명하였다:

“끊임없이 나의 마음과 정신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교회 사람들의 인격형성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는 여러 가지 양성소들과 우리의 젊은 일꾼들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주시할 때에 … 우리가 취하는 생활 패턴과 그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생활 패턴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을 나는 갖는다. 우리가 운영하는 교육기관과 교육기술과 교육계획예 있어서 우리가 진척시키고 있는 일이 우리의 젊은 수도자들에게 상류사회 계층의 정신을 불어넣고 있지나 않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우리의 수련소에 오게 되면 우리의 모든 편익을 그들에게 제공하게 되어 그들을, 시골의 가난과 전혀 동떨어진 문화 계층으로 만들어버린다. 가령 우리가 그들을 시골의 가난한 환경에 다시 보내는 교육의 실험을 해본다고 치자. 그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뜨는 꾸준한 자각이 일어나겠는가? 나는 진실로 이에 대해의 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J. 벤람군넬, 「북부 인도 외 상황에 있어 수도자의 교육 및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 Vidyajyoti, 44(1980년): 323).

수도생활의 토착화는 물론이고 신학의 토착화도 복음전파자들이 가난한 민중의 문화 안에 자신들과 자신의 메시지를 통합시킬 것을 요구한다. 너무나 자주 토착화가 엘리트의 문화에로 통합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가난한 대중들이 민중문화의 진정한 창시자들이고 실친자들이다. 토착화 신학은 엘리트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지게 된 경험으로부터 생겨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A. 피어리스(스리랑카, 예수회 신부)가 기술한다:

“이 마지막 진술이 타당하다면 즉 우리의 상황에 있어서의 토착화 신학이 아시아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체험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면, 엘리트 문화 안에서 교육반은 아시아의 (해방) 신학자들이나 교회의 성직 지도층들은 결코 토착화 신학의 실행자라고 자처할 수 없다. 실제로 교회의 성직계층처럼 이러한 신학자들 역시 가난한 사람에 대하여 제3자로서 말한다! 이는 그들이 참으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아직도 진정으로 복음화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따라서 아시아의 해방신학을 이해할 입장에 있지 아니하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들은 (아직도) 가난하지 않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아직도) 신학자가 아니다. 이 딜레마는 지역교회들 안에서만, 즉 신학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상호 복음화의 과정을 통하여 문화적으로 화합되는 일반 대중들의 공동체들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SEDOS, 1982년 4월 1일 pp. 104·105).

우리는 여가서 ‘아프리카의 정의와 복음화’를 다루었던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 제6차 심포지움(1981년 6월 29일~7월 5일)의 최종 선언문의 한 구절을 언급할 수 있겠다:

“우리가 우리의 일반대중들이 구비하고 있는 능력들을 훨씬 초과하는 외국의 모델들을 부러 위하고 따르려 한다면, 어떻게 나라의 엘리트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 적합한 절도있는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미묘한 문제이다. 제3세계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서구의 생활방식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고 감당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여하한 유형의 차별을 피하려고 애쓰는 국제 수도단체들은 우애와 연대의식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자기들의 생활방식과 영성생활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획일화를 옹호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과의 동화를 도모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은 강제로 부과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제3세계 수도자들은, 자기 국민들에게 충실하려면 자기네 서구 회원들의 생활방식과 다른 생활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몇몇의 국제 수도회는 제3세계의 몇몇 젊은 지원자들을 유럽이나 북미에 보내어 그곳에서 교육받도록 배려한다. 그들은 해외에서의 교육이 자신의 신원을 이미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성숙단계에 도달한 회원들에게만 허용되어야 하지 않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선교에 대한 깊고도 새로운 견해

각 대륙의 공헌이 교회의 선교에 대한 균형있고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이 1974년의 주교 시노드 이후부터 명백해졌다. 서로 다른 통찰력들은 상호 보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복음선교」 문헌의 교회와 선교에 대한 견해가 그전에 반포된 선교에 관한 큰 회칙들의 견해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 모든 문화, 종교, 인간적 상황들이 복음과 접해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복음이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온전하게 파악될 것이다.

각 교회는 신앙에 대한 자신의 반성을 타교회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 전에는 다른 나라의 교회들이, 심지어 같은 나라의 교회들조차도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아주 미미한 교류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보편교회는 두 영역으로 구분되었다. 오랜 연륜의 잘 조직된 교회들과 ‘풋내기’ 또는 선교대상의 교회들로 나뉘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로 하여금 지역교회들이 동동한 위치에서 전세계적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교회관을 가지도록 가르쳤다. 지역교회는 긴밀한 친교, 협력, 교류의 유대 안에 살면서 서로의 기쁨과 요구들을 함께 나누며 교회의 선교에 공동으로 책임윤 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보편성, 연대성, 상호관계가 교회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의 떼일 수 없는 차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대성은 갈수록 더 더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세계 안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이 세계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독립, 문화들간의 교류 및 상호 접촉들이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다.

중남미 교회에서 진척되고 있는 사목적 반성은 아프리카에서 설립되고 있는 교회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아프리카인들은 자기들의 복음화 방식에 있어서 드러나는 어떤 약점들, 예컨대 가난한 자들을 먼저 돌보는 문제에 있어서의 부적절한 방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대양주, 서구의 교회 모두가 서로간에 배울 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대륙들간의 수평적인 교류는 빈약한 편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교들이 얼마나 많이 중남미 교회의 문제들과 교회쇄신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그 반대의 의문도 마찬가지로 제기될 수 있겠다. 교류의 방향은 항상 수직적이다.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제3세계로부터 서구 및 로마에로 향하여 있다.

다행스럽게도 수평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주교 시노드는 교회 상호간의 반성과 교제의 뛰어난 수단이다. 다른 협의기구나 단체들, 예컨대 제3세계 신학자들의 에큐메니칼 연맹(EAT­WOT), 국제기구 협의회 따위는 교회간의 대화를 촉진시킨다.

분명히 국제 선교단체들은 교회 상호간의 교류와 봉사를 증진시키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 할을 맡을 수 있다. 그것들은 지역교회들이 자기의 좁은 테두리 안에 머물려는 경향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단체들의 회원이 국제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한 지역교회와 몇 개의 타지역교회들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단체들은 인적자원과 영적가치들의 교류를 자극시킨다. 이리하여 교회는 서로서로를 복음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의 일방통행적 선교가 ‘상호교류의 선교’로 대치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제 선교수도회들은 교회들간의 상호관계를 촉진시켜 주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다른 나라들, 문화들, 대륙들로부터 회원들을 모집함으로써 국제 수도회들은 자신들을 풍요롭게 만든다. 동서남북 각국으로부터 모여온 회원들은 자기의 신앙이해와 체험, 영성, 선교 방법들에 관한 견해, 심지어 자기의 사고방식, 특징들, 활동방식 등을 함께 나눈다. 이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결점들과 함께 서로를 부유하게 하며 서로를 도와줄 수 있다. 제3세계 수도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활동에 관하여 숙고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채 계속 일한다. 간혹 그들은 신중하지 못하고 그들의 활동은 전혀 능률을 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서구의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방식 역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죽 감정과 직관을 소홀히 하고, 비현실적인 이론들을 정립하고, 다만 구별되어야 할 것을 분리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이며 동일한 실재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문제가 전혀 없는 곳에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신앙과 생활, 기도와 활동, 복음화와 인간발전, 신학과 영성 사이의 일치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제3세계의 정신보다 서구의 정신이 더 어려움을 겪는다. 제3세계가 인격과 인간의 자유를 간과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나 강한 공동체 정신 덕분에 서구적 개인주의의 폐습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서구인들이 비서구인들과 공존하고 협력하게 되면 공동체 정신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을 받으며 또한 비서구인들도 개인의 인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뭔 것이다.

서구의 선교사들은 모든 지역에서 줄어들고 있다. 어떤 지역들의 주교들과 사제들은 서구의 선교사가 한 명도 없어지게 될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에 다른 지역들의 주교와 사제들은 지역교회의 인적 자원이 충분할지라도 서구인을 포함하여 외국인 선교사들이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교회들은 충분한 숫자의 선교사들을 계속 파견해야 한다. 젊은 교회들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신앙에 대한 반성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서구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서구 선교사들의 현존은 변함없이 제3세계 교회를 위한 축복이 될 것이다.

 

선교 인원의 국제화

백성들, 국가들, 교회들 간의 교류가 갈수록 심화되며 보편화되고 있는 세계에서는, 선교 역시 교회 상호간의 활발한 교유 속에서 국가를 초월하는 범세계적 차원으로 발전해야 한다.

‘국가적’ 선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죽 정치적 이유들로 말미암아 식민 통치 국가의 선 교사들이 선교지역들을 담당해 왔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벨기에령 콩고의 선교는 벨기에 선교사들, 불란서령 식민지역의 선교는 불란서의 선교사들이 맡았었다. 베네딕도 15세와 비오 11세는 선교에 관한 회칙들을 통하여 몇몇 선교사들의 과장된 국수주의를 여러 번 비난해야만 하였다. 이제 식민주의는 끝장났다. 아주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는 신식민주의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비오 12세는 선교의 초국가적 특성을 거듭 지적하였다. 간혹 선교사들도 연루되었던 국수주의는 이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선교사들은 세계시민, 보편교회의 일꾼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동시에 자기 지역교회의 사절들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예전의 ‘위임법’(jus commissionis)은 오늘날의 교회상황에서 무의미해졌다. 과거에는 이 법에 따라서 어떤 지역의 복음화가 한 특정 선교단체에만 독점적으로 맡겨졌던 것이다.

정치적 여건이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 나라에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파견되어야 한다. 이들의 다양성은 복합 형태를 띤 보편교회의 단일성의 생생한 표지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인류복음화성성의 선교정책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선교 인원과 재정적 지원의 효율적인 확산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성성과 국제 선교 수도회들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 수도회들은 선교사들을 국제적 수준에서 지역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으로서 선교에 초국가적 특성을 부여해 준다.

선교수도회들은 갈수록 국제적 팀을 이루어 활동해 나가고 있는데 이런 팀은 그리스도 안에 서 이루어지는 보편적 친교, 복음의 보편성, 모든 인종과 문화에 대한 교회의 존중과 보편성을 드러내는 상징들이다. 예수회, 백인 성직자 수도회, 그리고 다른 수도회들이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추진해 왔다.

예전에 간혹 국가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서구의 선교와는 달리 제3세계 선교는 애초부터 국제적 성격을 띠어왔다. 제3세계 선교사들은 여러 나라에 파견될 뿐 아니라 대개의 경우에 국제적 팀을 이루어 활동하기도 한다.

모든 국적의 선교사들을 전세계에 확산시키고 교류시키는 일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오랜 연륜을 가진 수도회는 아마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일 것이다. 9,056명의 회원 중에 유럽인은 4,818명. 아시아인은 2,706명, 북미인은 662명, 중남미인은 509명, 아프리카인은 265명, 오스트레일리아인은 96명이다. 회원들의 지역적 분포는 아래와 같다:

  • 아프리카에는 18개국의 수녀 908명이 활동 중이다. 이 회의 아프리카 수녀들은 12개 나라 출신으로 265명인데 이들 중 26명이 아프리카 밖에서 일한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908명의 수녀들 중에서 유럽인은 588명, 아프리카인은 239명, 아시아인은 37명, 북미인은 32명, 대양 주인은 7명, 중남미인은 5명이다.
  • 아시아에는 18개국의 수녀 2,965명이 있는데 여기에는 2,562명의 아시아인이 포함되었다(인도인 1,226명; 일본인 364명; 필리핀 인 241명; 중국인 211명; 스리랑카인 106명; 베트남인 58명; 다른 나라 사람 356명). 2,706명의 아시아 회원들 중 144명은 다른 대륙에서 일하고 있다. 아시아 수녀들의 통계 숫자를 보면 이 수도회의 장래가 이 대륙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된다. 아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2,965명의 수녀들은 340명의 유럽인, 6명의 아프리카인, 43명의 북미인, 10명의 대양주인, 4명의 중남미인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아시아인이다.
  • 중남미에는 966명의 수녀가 있다. 10개국 출신의 509명 중남미 수녀들 중 21명이 이 대륙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남미 밖의 지역에서 일하는 수녀들은 중남미인 483명, 유럽인 440명, 북미인 18명, 아프리카인 2명, 아시아 인 21명, 대양주인 2명이다.

. 대양주에는 144명의 수녀들이 일한다. 그 지역 출신 수녀는 96명인데 모두가 오스트레일리아인이다. 이들 중 20명은 타대륙에서 일한다. 71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수녀들 외에 45명의 유럽인, 12명의 아시아인, 16명의 북미인이 이 대륙에서 활동 중이다.

  • 유럽에 있는 이 회의 수녀들은 3,459명이다. 22개국의 4,818명 유럽인들 중 1,468명이 타대륙에서 일하고 있다. 유럽인 외에도 타대륙 출신의 수녀들이 이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다.
  • 북미에서는 여러 대륙 출신의 수녀 614 이 일하고 있다. 662명의 북미인들 중 125명이 미국과 캐나다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이 거의 대부분 각국 출신들로서 뒤섞여 활동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회원들은 문화를 초월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장차 일하게 된 나라의 문화에 적응되고 또 다른 여러 국가와 문화의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살려면 자기 자신의 문화를 초월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비하는 것은 모든 회원들, 자기 출신 나라에서 일하게 되는 회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영성의 주요 부분이다. 언어, 문화, 풍습에 있어서의 상이성은 같은 대륙 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컨대 한 아시아인은 다른 아시아 대륙 안에서 서구인이 느끼는 것 못지않게 이방인으로 처신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적 팀을 이루어 인원을 확산시키는 일이 회원들의 인격성장에 장애가 되어서도 아니 되고 동포들과의 접촉 결여로 인하여 고립되는 지경에로 나아가서도 아니 된다. 잦은 이동은 한 선교사가 활동지역의 언어, 문화, 풍습, 인구 문제를 전혀 알지 못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국제화도 그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다.

국제 선교수도회가 자기 회원들간의 국제적 정신을 촉진시켜야 함은 두말할 것 없다. 모든 회원이 수도회 안에서 자기 집처럼 편안합을 느 끼고 그 회의 보편적 사명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모든 회원이 평등하다. 차별과 인종적 편견은 마땅히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몇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서구의 국제 선교회들 온 서구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데에 익숙해 있으며 그 방식이 그대로 몸에 배인 채 제3세계에서 활동한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평등이라는 명분 아래 서구의 생활방식에 따라 모든 회원을 훈련시키고 몸에 익숙케 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위험은 각 수도회의 표준 모델을 추구하고 전파시키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모델은 의심없이 서구적인 것이다.

수도회들의 국제화는 보편교회내에서의 다양화 및 토착화의 과정에 적용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교회가 발전해 감에 따라 각 대륙의 경제적 사회 문화적 상황에 적합한 사제, 수도자, 선교사의 모델도 발전해야 한다. 국제 수도회들의 회원들이 ‘국제적’ 자각을 갖기 전에 ‘국가적’ 사고, 감정, 생활방식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우선 자기 동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형적인 아프리카인과 전형적 인도인 선교사들을 필요로 한다. 같은 회의 아프리카인은 불란서인과, 인도인과, 유럽인과도 다를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회원들이 각 수도회의 영성, 생활방식, 활동방법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므로 국제 선교회들은 변신하여야 한다. 그들의 영성, 규칙, 활동방식들은, 제3세계 교회들의 회원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신원을 자각하고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소명에 충실할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 거의 서구적인 특성을 탈피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아확립은 복수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최소한의 케노시스(자기비하, 포기) 없이는, 보편적 개방 없이는 국제적 공동체 안에 살기가 불가능하다.

오늘날 국제 수도회 전체가 미래 지향적이 되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그들은 국적들과 관련 하여 수도회의 조직이 어떻게 되어야 앞으로 수십 년간 진화할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만일 필수적인 결론들을 이끌어낼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변신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국제 선교회와 지역 선교회

앞 장에서 종종 언급된 것처럼, 제3세계의 교회 안에서 ‘외부로 향한’ 선교활동에 주로 전념하고 있는 수도회들은 국제 선교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지역 선교단체들의 설립에 장애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실제로 국제 선교회들은, 콤보니아회 사제들이 동부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파리 외방 전교회 사제들이 베트남과 다른 지역들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 선 교회들의 설립을 촉진시켜야 한다. 교회와 그 선교의 선익을 위하여 서원을 발하건 발하지 않건 상관없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방인 선교회들이 설립될 필요가 있다. 이들 나름대로 국제적 선교회가 될 수 있다. 마더 데레사의 남녀 수도회는 이 점에 있어서 본보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선교회가 젊은 교회들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회원들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젊은 교회들로 하여금 자신의 오랜 선교경험과 잘 조직된 활동의 이점들로부터 혜택을 누리도록 해줌으로써 국제 선교회들은 그 교회들이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외부로 향한’ 선교교회가 되게 도와준다. 이렇게 되면 젊은 교회들의 선교투신이 처음부터 보편적 차원을 지니게 된다. 몇몇 나라에서는 국제 선교회들이 벌써 자신의 서구적 외양을 떨쳐버리고 지역교회의 절대 다수 회원들 덕분에 토착화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그런 예가 있다.

‘외부로 향한’ 선교를 위하여 설립된, 선교를 주로 맡은 수도회들은 ‘내부로 향한’ 복음화를 위해 회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제3세계 교회의 선교의식에 관한 나의 이 연구서에 의하면 그들은 ‘외부로 향한’ 선교를 새롭고도 특수한 과업으로 간주하며 그 과업에 보편적 특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교회에 파견된 자들만이 ‘선교사’라 고 불리운다. 제3세게 교회들은 자기 선교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 그들은 전에는 자신이 케케묵은 것이고 탐탁지 아니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를 ‘선교사’ 호칭을 이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선교에 전념하는 수도회들은 ‘외부로 향한’ 선교와 관련하여, ‘외부에서’ 봉사하게 될 회원들만 받아들임으로써 제3세계 교회들을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처럼 보여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수도회들은 자기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을 위한’ 선교는 보통 외부로 향한 파견을 내포하는데, 이 파견은 수도회 및 때로는 문화를 초월하는 과업을 의미한다. 이 과업은 특별한 의지, 고유한 영성, 적절한 교육, 적합한 방식들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항상 특별한 성소이다.

최근에, 그리고 선교적 상황에서의 중요한 변화와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결과로, 어떤 선교회들은 자기의 목적과 활동분야를 결정함에 있어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그들은 복음화를 ‘6개 대륙에서의 선교’로 이해하는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는 견해를 방침으로 삼아야 하는가? 비그리스도교화 되어가고 있는 서구의 대중들을 재복음화하는 것이 선교단체들이 맡아야 할 과제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끝없는 토의의 주제들이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간에 이렇게 결론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예전처럼 ‘민족을 위한’ 선교와 ‘외부로 향한’ 선교를 우선 과제로 삼는, 또한 이 선교들을 자신의 특별한 성소로 여기는 사람들과 단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필요하다.

 

오렌 역사의 교회에 의한 복음화는 불필요한 것인가?

선교회들의 과업이 끝나버렸는가 하는 의문이 최근에 와서 가끔 제기되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젊은 교회들이 복음화의 과업을 수행한 자신의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이상 외국 선교사들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주장해 왔다. 결과적으로 선교회들이 서구의 나라들에서 새 회원들을 계속 확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의 교회의 사명은 완수되었다는 생각이다. 분명히, 이러한 견해의 파급은 선교소명의 촉진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에 의하면 모든 지역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선교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선교적 활력의 상실은 위기 또는 병폐의 징후이다. ‘외부를 향해’ 선교적이 되는 것이 교회가 진정 복음적이며 내적 생활이 충만해 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제3세계의 교회가 이제 선교하는 교회가 됨으로써 그들이 이 진리를 파악하였음을 입증한 다. 서구교회 자신들의 선교활동 결실인 교회가 이제 그들의 꾸준한 선교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구교회로서는 참으로 창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항상 변함없이 ‘외부로 향해’ 선교해야 하는 서구교회의 선교의식을 보전하는 일이나 다시 일깨우는 일은 선교회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선교의식화에 있어서 제3세계 선교사들이 적극 동참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민족을 위한’ 선교는 끝이 없는 과업이다.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복음화는 방금 시작되었으며 지역의 인적 자원은 아직도 상당한 열세에 있다. 인류의 3분의 2 이상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 세계의 복음화는 서구교회의 도움 없이 제3세계 교회 단독으로 수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의 과업이 끝나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선교회들은 오늘날에도 자신의 역할이 예전에 못지않게 중대하며 미래에 더욱 중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제3세계 교회 지역 출신의 젊은 회원들에 힘입어 현재 겪고 있는 활력회복은 그 자신들이 다시금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전체 하느님 백성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본 자료에 의해서 아주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제3세계 교회가 복음화를 하느님 백성 전체에 맡겨진 과제로 전환시키는 데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성직자, 수도자에게뿐 아니라 일반대중, 평신도에게도 맡겨진 사명인 것이다.

몇 개국에서 주교회의가 ‘외부로 향한’ 선교에 대해서 말한 첫 발언자라는 것과 주교들 자신이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려는 주도권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세계 복음화에 있어서 주교단이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가르친 결과이다. 예전 시대에는 선교가 교황과 수도회에 의해 추진되었다. 새 선교회들이나 선교기관들은 각자 나름대로 활동하는 사제들, 평신도들, 주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러한 새 선교단체들의 기원은 그들이 받은 은사에 있었다. 이제는 성직 계층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실정이다.

주교들은 차기 교회가 선교적이고 또 복음전파자들―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해외로 파견되기를 원한다. 그들 대부분이 수도회는 물론이고 국제 수도회에도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선교회가 자신의 선교과업을 수행하는 훌륭한 수단이라 생각한다. 묵은 교회론에 의하면, 교구가 피데이 도눔 사제들을 파견함으로써 선교를 담당한 반면에 선교회들이 교황에게 봉사하였으므로 교황 홀로 세계 선교를 책임 맡았다. 오늘날 이 선교 책임은 교황과 주교단이 협력하여 맡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선교회들은 주교들 및 주교회의에 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이리하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 선교회들은 그 자신이 또한 지역적 ‘국가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 자신의 상대적인 자주성과 은사적 특성을 상실하지 아니한 채 지역교회의 주교들과 주교 회의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선교교령」(37항)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선교사들은 자기 출신의 공동체에 의해 파견되었음을 자각하고 그 공동체와의 밀접한 교류를 유지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들간에 또한 수도회들간에 유대를 강화하였다(교회헌장 44-45항; 주교교령 33-35항; 선교교령 31.32.38항; 수도생활교령 23항; 또한 Eccl. Sanctae III. 6.10.11을 보라). 보다 최근의 문헌들도, 예를 들면 포교성성의 훈령 Relationes in Territoriis Missionum(선교지역에서의 관계들; 1969년 2월 24일), 주교성성과 수도자성성의 공동훈령 Mutuae Relationes(상호관계: 1978년 5월 14일)도 유대를 재강조한다. 「선교교령」(33항)은 주교회의와 수도자 장상 협의회간의 긴밀한 협력을 역설한다. 라틴 아메리카가 그러한 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이미 보았다.

회칙 피데이 도눔(1957년 4월 21일) 반포 이래로 선교가 더 이상 선교회의 독점이 아니다. 주교들이 인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교회에 자기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을 파견하는 데에 주도권을 갖고 있다. 교황 비오 12세 및 그 후계자들이 그렇게 하도록 주교들을 독려하였다. 이리하여 주교들과 지역교회가 특별히 선교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 강조된 것이다. 또한 교회들간의 연대성과 상호 봉사가 촉진되었다.

그렇지만 이마 언급된 대로 피데이 도눔 성소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음을 경험이 밝혀주었다. 준비, 영적 지도, 재정적 후원이 부족할 때에 실망과 실패가 실제로 상당히 발생되는 위험이 따른다.

제3세계 주교들은 또한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서구교회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필요한 준비와 대비책을 강구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 들은 현명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적어도 때가 이르면 선교사들의 제도적 활동은 언제나 가장 적절한 형태의 투신이 될 것이다.

 

결론

제3세계 주교들은 1974년 주교 시노드에 참가하여 자기 대륙에 있어서의 복음의 미래에 관하여 열렬한 발언을 하였다. 그들은 “복음화의 주역”(현대의 복음선교 75항)이신 성령의 능력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증언하였다. 그들은 복음화와 관련하여 희망에 차 있었다:

“우리는 오늘 성령께서 특별히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시기에 살고 있다… 성령께서 적극 활동하시는 분야는 교회의 복음선교인 것이다”(현대의 복음선교 75항).

복음이 여전히 전적으로 그 새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젊은 교회들 안에서 다시금 거듭 사도행전이 실천되고 있다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주교들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주교들도 희망에 찬 표현으로 선교의 미래에 관하여 발언하였다. 그들은 서구의 많은 교회가 안고 있는 어려움, 자신감의 결핍을 지적하였다. 서구교회는 복음에 너무 익숙해버렸으므로 더 이상 복음의 새로움과 그 영원한 젊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지적하면서 제3세계 주교들은 서구교회에 자신감을 되찾아주기를 원한다.

이 연구서에서 나는 제3세계 교회에 대해서 희망찬 말투로 이야기해 왔다. 분명히 그들은 자신의 문제점들과 약점을 안고 있다. 그들이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들이 선교적 교회가 되려는 의지 안에 표현된 그들의 신앙과 희망과 활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이 내가 역설하려 했던 점이다.

제3세계 교회들 덕분에 보편교회와 그 선교 사명은 큰 희망을 갖고 미래를 주시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발베르트 뷜만의 말을 우리의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는 교회내의 위기에 관하여 너무나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에 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의 과정 중에 기회가 항상 시련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교회가 존속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현 시대의 두드러진 기회는 내가 즐겨 ‘제3의 교회’라 부르는 교회 즉 동부와 서부의 교회와 구별되는 남부의 교회의 도래인 것이다. 이 도래는 그리스도의 한 교회 안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획기적 사건이다”(「제3교회의 도래」, 메리놀, 뉴욕, 1976년 p.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