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1983-12-01 00:00
770

제2회 인권 주일에 즈음하여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1982년에 대림 제2주일을 우리 교회가 정하는 인권 주일로 선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우리의 숭고한 소망을 천명하였읍니다. 또한 이 땅의 인권 문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에 알맞게 올바로 개선되도록 함께 노력해 줄 것을 정부 당국과 사회에 호소하였읍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인권 상황이 아직껏 뚜렷하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사회의 인권 신장과 인간 존엄의 확인을 위해 계속적인 기도와 노력을 거듭 호소하는 바입니다.

인간 생명에의 위협

오늘의 세계에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생명의 권리가 도처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읍니다. 특히 경제 성장에 대한 유혹을 강하게 받고 있는 소위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일부 강대 부국의 간섭으로 인하여 인간 출산과 태아의 생명권에 큰 위협이 가해지고, 우리는 이미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입장을 누차 밝힌 바 있지만 그 심각한 비인도성과 반윤리성을 고려하여 또 다시 인공 유산 및 공직자의 진급, 아파트 입주, 세제, 의료보험, 자녀 교육 등에 있어서의 차별로써 불임 수술을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바이며 아울러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악법의 출현에 대하여도 우리의 우려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위의 문제 외에도 경제 발전이란 명목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의 파괴가 가속화되어 자연과 인간 생명이 위협받는가 하면 세계와 인류에게 짐을 지우고, 보다 집단적인 생명의 파괴를 몰고 올지도 모르는 군비 경쟁과 전쟁의 위험이 곳곳에서 고조되고 있읍니다. 지상의 생명 전체에 파괴의 위협을 주고 있는 핵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읍니다. 최근에 우리가 겪은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과 버마 사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비인간화된 경직된 제제에 의하여 거부, 유린되고 있는 이 시대의 표지를 일깨워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미움과 보복과 대결만으로는 평화는 결코 오지 아니할 것이며, 인간의 생명과 존엄도 회복될 수 없읍니다. 경직된 대결에 모든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안전책도 아니려니와 그로써 이루어지는 힘의 균형도 사실은 확실하고 진실한 평화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경직된 체제 아래서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파괴. 유린하는 집단의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형제가 되고자 한다면 손에서 무기를 버리라1)는 인간적 호소를 전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가장 유효하고도 최선의 길은 우리 스스로가 사랑과 화해를 이루고 나아가 그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그들 속에 심고 또 그 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이 숨쉬고 보장되는 민주 사회를 건설하여 국민 스스로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공동체 안에서 더 불어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의 길입니다.

보다 완전한 민주주의 형태를 추구함에 있어 우리 교회는 인간 존엄성,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는 가장 숭고하고,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선포할 사명을 띠고 있읍니다. 이는 힘찬 외침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는 이때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울려나와 이 세상 끝까지 퍼지게 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2)

법과 인권

우리 교회는 잉태된 태아가 가지고 있는 신성 불가침한 생명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유린이 법이나 국가 권력에 의해 정책적으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현상에 개탄과 함께 반대의 뜻을 명백히 합니다. 인구 증가의 억제라는 명목으로 가족수에 따른 납세와 의료보험 등에 있어서의 법적, 정책적인 차별은 단호하게 배척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결코 인구 억제라는 수량적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공공연한 인명 경시의 풍조와 함께 예견되는 기아(棄兒) 등 도덕과 사회 윤리의 타락 현상을 결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법은 한때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형벌을 규정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들을 사랑과 관용으로 포용할 수 있는 시대적 도덕성의 표상으로 제정되고 또 운영되어야 합니다. 법이 오직 범법자에 대한 가혹한 보복적 처벌과 사회로부터의 격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제정되고, 운영된다면 법은 정의가 아닌 칼이 됩니다. 가혹한 형벌과 격리가 인간을 회개 개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형제애와 관용만이 그들을 인간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읍니다.

더우기 본인의 의사 또는 사상과는 관계 없이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제척(除斥)되게 하는 국가보안법의 적용은 지극히 신중해야 하며, 수사에서 수형 생활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고문과 차별 대우는 조속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인권의 문제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결이 보장되고, 언론의 자유를 통한 사회안에서의 안전 장치가 제도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그 작동이 가능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제약하는 반민주적 법률은 개정되어야 합니다. 법이 인권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권 탄압의 여지가 있는 그릇된 법률을 개폐하는 것은 인권 문제에 대한 이 시대의 의지를 관철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반대와 비판의 자유

인간은 누구나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인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양심에 따라 생각한 자유와 생각한 것을 말할 자유로부터 출발되는 것이며, 인간의 그와 같은 자유는 그 자신의 의견, 특히 정치 권력의 그것과는 다론 의견을 갖고, 표현하는 권리에 의해서 먼저 보장되어야 합니다. ‘아니오’라고 말할 권리가 발탁되면 그 사회는 침묵과 굴종의 사회가 됩니다. ‘아니오’라고 말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렇소’라고 외쳐지는 지지나 긍정은 한낱 헛된 구호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찬성의 소리와 권리가 정당화되기 위하여는 먼저 반대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서의 시민적 자유는 이론(異論)에 대한 관용에 기초를 두고 있읍니다. 반대의 소리와 권리가 봉쇄되고, 억압되며 양심에 따라 ‘아니오’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처벌되는 사회는 획일화된 사회요, 인권이 유린되는 사회이며, 정치적 탄압이 있는 사회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죄목으로 처벌되든, 그들은 양심범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찬성과 반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가 다 같이 허용되고, 거기서 참다운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풍토의 조성을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양심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가 고통을 당하는 청년 학생을 비롯한 모든 정치범과 직장과 학원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의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정부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 화해를 모색하여 모든 속박과 규제와 권리의 제한에 대한 사면을 통하여 원상으로의 복귀를 이루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부(富)의 편재와 생존권

지구상의 모든 재물은 어떤 개인의 사용(私用)이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용도와 민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원리가 준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화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에게 독점되거나 집중되는 것은 사회 정의의 옳은 규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상대적 빈곤과 소외와 생존권에의 위험을 더해 줍니다. 거대한 재산이 소수 사람들 수중에 쌓여갈 때 노동자들은 점차로 더욱 심한 곤궁에 몰려감을 깨닫게 됩니다. 4)

우리 교회는 소수의 재벌이 국민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고 극소수의 부유층이 국내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극도의 경제 집중과 부의 편중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읍니다. 5)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이 보여주는 바 가진 사항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이와 같은 현격한 불균형은 국민 내부의 화해를 위해서도 조속히 시정되이야 할 것입니다. 6)

이제 우리 국민경제 문제는 얼마나 어떻게 외형적 부를 축적했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창출된 부를 어떻게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같이 사용하고 나누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성장의 주역이면서 그 성장의 결실과 혜택에서 제외된 노동자와 농민 등 소외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소수의 기업에게는 방만한 자율을 허용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임금과 수매 가격을 책정하는 데 지나치게 인색함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며 균형과 화해의 정신에도 어긋납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자신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하며, 스스로의 목소리로 발언할 수 있는 생존권을 위한 자유가 허용되어야 합니다. 이들의 활동과 발언의 제한이 정치 권력에 의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사회적인 문제에 있이서 정치 귄력의 간섭 목적은 그 사회 단체 구성원들을 도우려는 것이어야지 파괴하거나 흡수해 버리려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7) 우리 교회는 그들이 헌신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자구적(自救的)인 노력을 지원하고 격려할 것입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참여의 결핍을 방치해 두고서는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시민권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8)

평화와 권리는 서로 원인과 결과로서의 밀접한 인과 관계를 가진 두 가지의 은혜입니다. 인권이 전혀 존중되지 않고, 따라서 옹호도 신장도 되지 않는 곳에는 결코 평화란 있을 수 없읍니다. 교회로 하여금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신장할 책임을 떠맡게 하는 이 사랑의 신앙은 우리 각자로 하여금, 우리의 형제들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원만하게 성숙하도록 도와줄 짐을 스스로 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신앙입니다. 9) 우리들의 신앙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위한 결단과 투신으로서만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읍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써 증거한 분들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적 결단, 즉 사랑의 실천은 무엇보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적 존엄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의 기도와 함께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 있으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읍니다. 10) 우리 모두 인권이 존중되는 희망의 사회를 위해 나아갑시다.

1983년 12월 4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주교회의 회보 제14호 14면 수록)
  1.  

1) 유엔총회에서의 연설, 바오로 6세, 1965.10.4.

2) 성탄절 메시지, 비오 12세, 1944.12.24.

3) 마태오 복음 5,37 참조.

4) 어머니와 교사, 13항, 요한 23세의 회칙, 1961.5.15.

5)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국내의 10대 재벌의 매출액이 국민 총생산의 44%를, 30대 재벌이 66%를 점하며 전체 국민의 0.3%에 해 당하는 소수가 한국 전체 자산의 45%를 지배한다고 한다.

6) 저소득층 40%의 소득 비중이 65년에 19.3% 였던 것이 80년에는 16.1%로 낮아지고, 고소득층 20%의 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에 41.8%에서 45.4%로 높아졌다.

7) 행동에의 부름 46항, 레룸노바룸 반포 8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 바오로 6세 서한, 1971.5.14.

8) 세계 안의 정의 9항, 제2차 세계 주교 시노드 메시지, 1971.11.30.

9) 교회와 인권 71항,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1974.12.10.

10) 요한복음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