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1984-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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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

― 제3회 인권주일에 즈음하여 ―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고,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신 강생의 신비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권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양보할 수 없는 것임을 가장 극명하게 일깨워주는 표지입니다. 교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옹호하고 신장하는 일을 으뜸가는 사명으로 삼아온 것도 여기에 연유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불법적인 여러 형태의 인권유린 사례에 대하여 항의하고, 또 그 시정을 요구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권 문제가 아직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인간 기본권의 핵심이라 할 생존권 문제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으므로 생명에 대한 권리가 있고 그 생명을 인간답게 보존할 수 있는 여건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 즉 생존권은 인간의 원초적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도 절실한 것입니다.

 

생존권에 대한 교회의 관심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명의 권리마저도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인공유산, 안락사의 인정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입법이 검토되는가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인 환경을 파괴하는 공해현상, 집단적 살상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군비 경쟁과 핵전쟁의 그림자는 인간의 생명을 전면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신장애자에 대한 국가 사회적 책임과 관심은 복지 사회에로의 지향과 구호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공적인 낙태, 공해, 핵무기의 개발과 배치 등운 반 생명현상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우리들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면서,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생존권과 신체의 보전 및 건강을 누릴 권리와 인간 품위에 알맞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향유할 권리, 즉 의식주, 생계수단, 그 밖에 생활 보장에 불가결한 것들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거듭 천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생존권의 문제에 목하 관심을 갖는 것은 첫째로, 같은 사회 같은 시대에 살면서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과 생계조차 위협받는 다수의 빈곤한 사람들이 병존한다는 것은 이 시대와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도덕적 수치이기 때문이요, 둘째로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이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다면, 그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며, 셋째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불만과 사회불안이 가중되므로, 그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마지막으로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관철할 수 없는 소외되고 힘없는 형제로서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발전과 생존권

경제활동은 인간의 본성적 필요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기 때문에 개발 활동의 시발점이며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있어서 경제개발이 국민으로 하여금 빈곤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한 점은 높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지표에만 구애된 나머지 국민경제의 자주적이요 자립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계층과 계층, 산업과 산업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키고 있는 현상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개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처음부터 진지한 물음과 성찰이 수반되지 못하였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발은 “인간답지 못한 생활조건에서 보다 나은 인간다운 조건으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인간답지 못한 조건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가난과 질병, 무지, 압제적인 사회구조로부터 파생되는 불의, 부패, 불공평, 부자유, 윤리적 및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연유된 이기심, 사유권 및 권력의 남용, 소외된 계층에 대한 무관심과 억압 및 착취 등등의 비인간적인 현상들입니다. 인간다운 조건이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생활에 필요한 기본재화의 획득, 사회악의 제거, 지식의 증대, 정신적 문화의 진보, 인권의 존중, 청빈에의 노력, 공동복리를 위한 협력과 평화의 소망 등입니다. 따라서 개발의 문제는 모든 인간이 참다운 인간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인간이 타인의 예속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모든 인간이 서로 주고받고 사는 사회, 그럼으로써 모든 인간이 한 형제가 되는 인간 공동 사회를 건설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 지나치게 물량적인 경제개발에의 집착과 그에 따른 외형적 성장 목표의 추구는 수출입국을 위한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명분으로 한 노동자에 대한 저임금정책, 그리고 그것을 밑받침할 저농산물 가격정책의 유지를 근간으로 하였고, 최근에 들어서는 임금인상 억제정책, 노동운동의 봉쇄, 쌀 수매가의 동결에 가까운 소폭인상, 외국산 농축산물의 과다한 도입 등으로 그 골격이 더욱 경직적으로 체질화함으로써, 노동자와 농민계층의 생존권의 위협을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효과를 위한 무리한 도시 개발은 사실상의 이농민인 도시 빈민이 다시 도시에시도 쫓겨나야 하는 심각한 국면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생존권의 보장

오늘날 우리나라 노동자의 수는 800만을 헤아리고 그 가족까지를 합하면 전체 국민 가운데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서고, 농민은 계속 감소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 있으나 그래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며, 도시빈민의 숫자는 정확한 통계가 없으나 이농민, 일용노동자를 합하여 전체 인구의 5-10%를 차지한다고 생각됩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전체 국민소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로서의 이들은 성장의 주역이면서도 그 결실에의 참여에는 소외되거나, 오히려 성장 자체의 희생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사회화하는 현대 국가에 있어서 노동자의 사회적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기본권(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헌법상의 중심적 권리로 되고 있고, 또 우리의 헌법도 그것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문제와 관련한 법령체계나 현실적인 여건은 노동기본권을 축소, 제한하는 역행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수단인 취업금지자 명단의 존재와 그에 의한 취업기회의 박탈은 보복적인 생존권 유린 현상으로서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노동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교회는 노동관계법 개정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저임금제를 위시하여 노동자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하는 확실한 징표를 보여줄 것을 온 교회의 이름으로 정부에 촉구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우리는 이땅의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생존권의 위협이 자신들의 게으름이나 무지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출혈과 희생을 강요하는 저농산물 가격정책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외국 농축산물의 방만한 도입, 그리고 세제 및 농가교역조건의 상대적 불리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농민은 언제나 적자영농과 거기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농가부채로 허덕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인에서 연유하는 농민의 생존권 문제는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립적이요 균형있는 경제정책으로의 전환에서, 그리고 농협을 농민의 자주적 협동조직으로 되물려줌으로써 올바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재벌에 대한 금융상의 정책적 특혜와 편중의 10분의 1만이라도 농어촌지역에 배려된다면, 농어민의 생활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바입니다.

개발의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나타나거나 또는 전시효과적인 도시개발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생존환경의 파괴나 주거의 철거는, 그 시기, 보상문제 등에 있어 지역주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필연적으로 생존권과 재산권의 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수용, 사용 또는 제한에 있어, 그 정당성과 공익성에 대한 문제까지를 포함하여 지역주민과의 협의의 원칙이 준수되지 않는다면, 다수의 생존권을 물리적인 힘으로 위협하는 결과로 되어 보다 직접적이고도 첨예한 정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올림픽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도시빈민, 노점상 등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가 화합 속에서 생활조건의 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보다 우리 자신을 떳떳이 내보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시적으로, 그리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이웃형제의 삶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서 나 자신을 내보이는 당당한 자세라고는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발전의 권리

정치 및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므로,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익을 옹호하고 발양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협동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대와 협동운동이 자연스럽게 생성, 발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민중 속에 쌓이고 응고된 한을 민주적으로 수렴, 확산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강요된 침묵이나, 분명히 실재하는 항의와 간청의 소리를 묵살하는 것은 민중의 한을 안으로 축적케 하여 더 큰 사회불안을 예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자와 농민 및 도시의 빈민 등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협동과 연대운동에 대한 법적, 현실적 제약과 탄압이 없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불만을 복음의 메시지로 순화, 그 정의로운 해결방향을 모색하는 데 공헌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회의 활동을 고의적으로 비방하는 정치적 사회적 시각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거듭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리스도교회의 현장선교 활동은 공산주의의 침투를 방지하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불만의 폭발 등 사회불안에 대한 안전판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하려는 복음 실천적 노력의 일환임을 인식하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철거민 등의 정당한 주장이나 건의, 항의나 호소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함으로써만 이들의 생존권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맺는 말

우리 교회의 인권 문제, 특히 생존권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누구를 비판하고 질타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국가와 사회 공동체 성원 전체의 화해와 일치를 촉구하는 간곡한 호소와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고 짓눌리고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인간의 권리를 빼앗긴 채 자신의 목소리마저 잃어가는 노동자, 농민들의 편에 서서, 우리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존엄성을 존중받을 사회를 끝까지 지향하는 것은 산업사회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이땅에서의 천주교의 수용이 인간의 존엄과 인간 평등사상의 전파와 확립이라는 역동적 사건이었음에 유의하면서, 보편적 교회의 진리를 터득하고 수용한 순교선열들의 뜻을 오늘의 이 땅에 다시 펴고자 하는 바입니다.

1984년 12월 9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담당주교: 윤공희 대주교
회장: 유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