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198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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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안정법 철회 촉구 강론과 성명서

김수환 추기경 학원안정법 철회 촉구

김수환 추가경은 8월 1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모승천 대축일을 겸한 광복 40주년 기념 특별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현재 정부 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학원안정법은 학원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대학생들의 극렬화와 좌경화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극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 추기경은 “현정국은 학원안정법의 입법을 놓고 정부 여당의 초강경 자세와 야당의 결사 저지 입장으로 극과 극으로 대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추기경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원내에도 일부 좌경화된 학생들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추진 중인 학원안정법은 학생둔을 더욱 극렬하게 만들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또 “해방 40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진리와 정의 사랑의 실천으로 이 난국을 극복해 가자”고 강조하고 “이 정국의 문제해결은 결코 힘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며 소수 극렬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없다”고 말했다. *


학원안정법 제정을 반대한다

 

우리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학원 안정법의 시안을 보고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 법의 제정은 대화를 통한 민주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사회에 극한적인 대치와 증오, 분열과 적대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며 학원 안정을 방지하여 학생 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데 대하여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인권의 수호를 사명으로 하고 있는 우리 신·구 교회는 광범위한 인권 탄압 입법인 학원 안정법의 제정을 단호히 반대하면서, 그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이다.

 

1. 학원 안정법은 그 입법 의도가 불순하다

현 정부가 학원 안정법 제정의 구실로 내세운 것은 “좌경·용공적 학생운동”을 예방하기 위하여라는 것이다.

그러나 밝혀진 법안 내용을 보면 이 법은 좌경·용공적 학생 운동을 막기 위하여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법안에 의하면 소위 선도 교육의 실시는 국가 보안법 위반자뿐만 아니라 형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자 등 용공, 좌경 행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학생들도 모두 통틀어 그 대상에 넣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모두 적용되는 벌칙 조항에는 허위 사실을 날조 유포하는 행위, 사실을 왜곡, 전파하는 행위 등을 특별히 용공, 좌경 행위와 관련이 없더라도 모두 중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공, 좌경적 학생 운동을 예방하기 위함이라는 표면적인 구실 뒤에 숨어 있는 이 법안의 참된 저의는 바로 이 정권에 대한 모든 정치적 비판 세력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임이 명백하다.

 

2.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보안 처분은 허용될 수 없다

이 법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학생들을 검사의 일방적인 판정만으로 아무런 재판 절차도 거침없이 “선도 교육”이라는 이름의 강제 수용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정부 측은 헌법 제11조의 보안 처분 규정에 의하여 이러한 입법이 가능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만 만들면 보안 처분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유린할 수 있다는 발상처럼 무지하고 위험한 것은 없다.

마약 중독자나 정신병자 등에 대한 격리와 보호, 개선 조치로서나 사용되어야 할 보안 처분 제도가 정치적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합법화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범법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는 오로지 적법한 형사 소송 절차에 따른 법원의 판단으로 확정되어야 할 문제이지 검사의 일방적,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질 사항이 아니며, 보안 처분이 아니라 그 어떠한 이름 아래서도 이 같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조치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3. 폭력에 의한 ‘선도 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다

6개월간에 걸친 강제적 이념 교육으로 대학생들의 정치적 견해와 신념을 변경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현 정부가 “선도 교육”에서 기대하는 것은 대화와 설득을 통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폭력과 굴욕, 온갖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 학생들의 민주적 신념을 꺾어 버리려는 것으로써 저 악명 높은 “삼청 교육”을 연상시킬 뿐이며, 이것은 이 법안이 대학이 아닌 별도의 선도 교육 기관의 설치와 선도 교육에 있어서의 “관계 기관과 협조”에 관한 규정만을 두고 교육 실시의 구체적인 내용과 교육 장소에 대하여는 전혀 밝히지 아니한 채 전적으로 대통령에 위임하고 있는 것에만 비추어 보아도 명백하다.

이처럼 국가 권력을 빙자한 폭력이 인간의 내면적 양심과 신조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겨누어지는 사태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인 것이며 더욱이 순결무구한 젊은 학생들이 이 같은 야만적인 폭력 앞에 세워져 좌절과 증오와 정신적 황폐화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 사태를 우리는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4.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을 시도하는 학원 안정법은 국민 주권과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다

학원 안정법은 학생들에 의한 일제의 비판적 집회나 시위를 탄압할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반국가 단체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 또는 교육하는 행위, 그 사상이나 이념이 표현된 문서 등을 제작, 인쇄,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급하는 행위, “허위 사실을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 전파”하는 행위, 심지어는 반국가적 사상, 이념 교육에 단순히 참가하는 행위까지도 처벌하며 구성원의 일부를 학생으로 하는 학외 단체의 활동도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것은 일찍이 유신 치하의 저 혹독한 긴급 조치에서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국민의 의사 표현의 자유와 종교 활동에 대한 유례 없는 전면적인 탄압 가능성을 선언한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하여 여하한 종류의 비판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시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른바 “반국가 단체의 사상이나 이념 전파”라든지 “허위 사실의 날조, 유포”라든지 “사실의 왜곡, 전파”라든지 하는 무한히 신축자재한 포괄적 개념으로 얼버무려진 처벌의 법망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형벌 법규의 의미의 구체성, 명확성을 요구하는 죄형 법정주의의 대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체의 비판적 언동을 자의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학원 안정법은 결국 금후 일체의 정부 비판과 비판적 여론 형성을 허용하지 아니하고 국민을 주권자의 자리로부터 끌어내려 절대 권력의 노예로 전락시키겠다는 국민 주권과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그 저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언한다.

1985년 8월 17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 유현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조용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