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198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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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에 대한 성명서(정의평화위원회 1985년 8월 23일 임시총회 후속)

시국에 대한 성명서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1985년 8월 23일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교회가 언제나 어디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며,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사목 헌장, 76항)라는 가르침에 따라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한 교회의 견해를 천명하기로 하였는 바, 이에 우리의 뜻을 밝히는 바입니다.

 

1. 무릇 인간의 본성에 합치되고, 공동선의 추구를 목적으로 해야 하는 정치 공동체는 민주주의의 실현, 즉 민주화를 지향하도록 소명받고 있고, 지난 2·12 총선거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거역, 첨예한 대립과 탄압의 계속 등 반대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화의 의지와 방법이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것만이 평화적인 문제 해결의 길임을 믿고 그 실현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2.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사회 각 분야의 자율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과 함수 관계가 있습니다. 정치가 정치답고, 군인이 군인다우며, 법원이 법과 정의의 수호자답고,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을 때 모든 문제가 사회 안에서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원은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그 권위를 손상시키고 있으며, 언론은 위촉되고 언론인은 연행되고 있고, 각종 대형 비위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우리 사회가 과연 올바로 가고 있느냐에 대한 심각한 의문과 위기감을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본모습을 되찾아 다양한 활력을 회복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학원 문제를 비롯하여, 반민주적 정치 질서에서 연유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반인권적 법의 제정 또는 정치 보복적인 법률 운용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원 안정법의 유보가 무절제한 국가 보안법의 적용으로 치닫게 하는 결과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또한 학원과 학생에 대한 집중적인 성토와 불신감 조성, 좌경 의식화를 일반적 현상으로 규정하는 일, 학원에 대한 경찰력의 개방 등 학원과 학생에 대해 죄인시하는 풍토의 시정을 국민 화해의 입장에서 요망하는 바입니다.

4. 출판물에 대한 압수 수색과 출판인에 대한 연행, 잡지 및 출판사에 대한 등록 취소 조치, 민중 예술에 대한 일방적인 단정과 탄압, ‘민중 교육지에 기고 또는 좌담에 참여한 교사들을 획일적으로 파면 조치한 것 등 표현과 출판의 자유에 대한 계속적인 위협은 우리 시대가 문화적 암흑 시대화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명백한 시행착오임과 반민주적 성격의 악법임이 입증된 언론 기본법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5. 우리는 금년 들어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노동 운동과 관련하여 투옥하고 있는 데 대하여 당국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 분규가 노사 간에 자율적인 해결 또는 그 전망이 보이고 있는 데도 노동자를 대량 구속하는 것은 노동 자율을 해칠 뿐만 아니라 노동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의 대량 해고 사태는 노동자의 불만을 안으로 축적하게 하여 보다 더 큰 노사 문제를 야기케 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노동 문제의 본질과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혁으로 노동 문제를 풀어 나가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1. 6. 우리는 농민의 소 값 피해 보상 운동이 농업 및 축산 정책에 대한 쌓였던 불만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경제 개발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지속된 농민의 상대적 희생이 그 한계에 도달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농민의 쌓였던 불만을 물리적 힘으로 억압하기보다는 국민 경제의 균형 발전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농정의 획기적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 어디서 파국적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는 불안한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한 사회가 그릇되기 쉬워도 바로잡아 개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방향임이 명백한 경직된 조치와 발상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우리 모두가 하루속히 해방되기를 위하여 기도 바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의 충정을 밝히는 바입니다.

1985년 9월 14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