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회의 문헌
1986-04-15 00:00
2021-03-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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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에 관한 담화문 “민주화를 위한 시대적 소명” 및 김수환 추기경 강론

정의평화위원회 담화문

민주화를 위한 시대적 소명

 

정의를 위한 행동과 사회 개혁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구성 요소이며, 인간을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교회 사명의 일부인 것입니다(「세계 정의」, 6, 세계주교시노드 메시지, 1971.11.30.). 우리는 그 살아 있는 표지를 필리핀 교회에서 봅니다. 마르코스 20년 독재의 오랜 억압의 사슬을 끊고 국민이 단합해서 마침내 이룩하고야 만 민주화, 민주 정부 수립에 이르는 전 과정에 있어 주교와 사제, 그리고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보여 준 저 눈물겨운 복음적 사명에의 정열과 헌신을 우리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지켜보아 왔습니다. 우리는 필리핀 국민과 교회에 선망과 함께 경의와 축하, 그리고 순조로운 민주화의 앞날을 기원하는 우리의 뜻을 전하면서 민주화를 시대적 소명으로 안고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대해 냉정한 눈길을 돌리고자 합니다.

오늘 필리핀 국민이 자랑스럽듯이 일찍이 1960년의 4·19 혁명으로 민주화에의 민족적 가능성을 제시했을 때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러나 5·16 군사 쿠데타 이래의 군사 독재와 유신 독재, 그리고 그것은 연장으로서의 오늘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4반세기에 걸친 독재적 억압은 우리나라를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반민주의 동토로 남아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국민과 더불어 이 치욕을 함께 씻어 내고, 우리 정부와 국민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과 창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는 있는 힘과 성심을 다하여 정의와 화해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1.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반대와 비판의 자유 영역에 있어 우리의 현실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되고는 있었지만, 어제의 필리핀과 오늘 우리의 현실은 놀라우리만큼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족벌 정치와 부정부패, 부의 편중과 빈부 격차, 군의 정치 개입, 외채의 누증과 만성적인 사회 불안, 인권 탄압의 내용과 그 명분, 그리고 국민 투표라는 요식을 민주 제도 유린과 정권 연장의 명분으로 이용해 온 것 등, 그 발상과 내용과 형식과 나타난 현상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오늘 필리핀에서는 국민적 화합이 이루어지고, 민주적 대개혁이 진행되고 있으며, 군은 ‘자유의 투사’로 위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필리핀 민주화에 있어서는 오직 마르코스 한 사람만이 패배자일 뿐 모든 사람들이 승리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져야 할 민주화와 그것을 통한 화합은 그 어느 한 사람도 제외되거나 패배자가 되지 않는 것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특히 현 정권 당국에 호소하고자 합니다.

2. 2·12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는 평화적인 방법으로의 민주화 달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 체제의 정당성이나 정통성 문제는 일단 덮어 두더라도 그 그릇되고 반민주적인 제도와 법적 장치를 바로잡아 나가는 민주화, 광주 사태를 비롯하여 이른바 제5공화국의 출범 과정에서 빚어진 모든 문제의 발전적 수렴을 통해 현 정권 스스로가 회개하고 솔선하는 민주화를 국민은 요구하고 또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하는, 그러나 결코 잊을 수는 없는 광주 사태를 우리는 민주화의 발판으로 삼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총선 민의는 1년이 지나도록 거부되고 있으며, 민주화는 이른바 ‘큰 정치론’에 밀려나 가치의 축소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주권재민의 원리를 거부, 유보하는 것이 ‘큰 정치’라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1천 명을 헤아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치범의 숫자가 말하고 있듯이, 평화적인 민주화에의 전망이 차단당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파국적인 국면을 우리는 우려합니다. 전면적인 부정과 대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민주화에 대한 평화적인 대합의를 이룩할 것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과 민주 진영에 다 같이 당부하는 바입니다.

3.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종적인 권리를 관철할 수 있는 길은 정치 공동체의 최고 규범인 헌법의 제정권과 개정권, 그리고 투표를 통한 참정권의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개헌 서명 운동에 대한 권력 당국의 법적 및 물리적 제재 조치는 국민에게 더 이상 자신이 주권자임과 민주 사회의 자유민임을 포기케 하는 반민주적인 폭력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법에 대한 국민의 의사 표시인 개헌 서명 운동은 주권자로서 국민이 갖는 기본 권리라는 엄연한 진리를 확인하는 바입니다.

4. 오늘날 국민의 개헌 요구는 단순히 대통령의 선출 방식이나 통치 구조에 대한 이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독재적 유신체제의 연장이라는 성격과 함께 제정 절차의 반민주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압의 체제를 반대하는 것은 민주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 그리고 절대다수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이 늦게나마 현행 헌법의 개정에 동의하는 것은 그 내용과 제정 절차에 있어서의 반민주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화를 향한 동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화 요구와 관련하여 투옥된 1천 명을 헤아리는 정치범의 석방과 사면·복권,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생존권의 보장이 동시에 모색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89년 개헌론은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 저의와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다 같이 민주적인 헌법으로의 개정이 이 시점 한국에서의 민주화의 시발이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개헌 논의의 진정한 의미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화적 정권 교체의 진정한 의미는 한 사람이 임기를 다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경쟁과 국민의 자유로운 정부 선택권 행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정권 교체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정권 담당자만의 교체는 비록 평화적이라 할지라도 정권의 승계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먼저 민주적 경쟁이 가능한 제도로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5.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배격합니다. 우리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있어 심대한 심리적 및 생활사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 제도적인 폭력, 억압하는 폭력 그 자체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개헌, 서명 운동과 관련하여 경찰력을 동원, 개인의 주거를 포위하고, 통신 수단을 차단하며,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사무소를 봉쇄한 것 등은 바로 공권력에 의한 엄청난 폭력이었습니다. 문화 활동에 대한 일상적인 압수·수색, 흔하게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연금과 보복적인 구류 처분의 남용, 출판사 및 정기 간행물에 대한 자의적인 취소와 출판물에 대한 판금 조치, 길거리에서의 검문·검색과 과잉 경비, 대학생들을 좌경 용공으로 매도하는 행위, 블랙리스트에 의한 노동자의 취업 제한과 폭행, 수사 기관에서의 조작과 고문 등 억압하는 폭력은 우리 사회의 전역에 걸쳐서 광범하게 행사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 정권의 정통성을 문제 삼고 그 비리를 고발하는 학생들의 평화적인 저항의 몸짓을 폭력으로 규정, 매도하고 억압하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과 항의의 몸짓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제도적 폭력은 법과 질서가 되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몸짓은 폭력이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제도적 폭력이나 억압이 없으면 저항도, 저항하는 몸짓도 자연히 없어집니다. 우리는 억압하는 폭력, 제도적인 폭력의 행사를 먼저 청산해 줄 것을 촉구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6. 학문의 자유와 학원의 존엄은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힘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학원의 주인인 학생과 교수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도서관의 이용과 야간 연구가 제한되며, 대학이 경찰의 불시 검색의 표적이 되고 있는 속에서 대학의 권위와 연구의 자유가 설 수 없습니다. 법원이 경찰의 경비로 구차한 체모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사법의 파탄에 다름 아닙니다. 집권 여당의 당사가 오직 경찰력으로만 안전할 수 있으며, 공영 방송과 텔레비전과 언론 매체가 무장 병력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는 현실은 당해 분야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저답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군(軍)의 사기가 후방의 국민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면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의 회복이 선결적 요체로, 그것은 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각 분야는 스스로의 존재가 국민 앞에 정당하게 비쳐질 수 있도록 제 모습을 찾기 위하여 새롭게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자기다워지기’를 위하여 분발해 줄 것을 절실하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7.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가 국민 경제의 활력과 균형적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국제 경제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맞고 있는 호전 국면을 정치적 민주화로 과감히 수렴함으로써만 현재의 경제적 난국도 수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까지의 불균형 성장 정책은 인구의 4분의 1이 살고 있고 생명 산업의 현장인 농촌사회를 파탄시켰고, 1천만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조건을 생존의 한계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농촌에서 이주한 이농민들은 다시 도시에서 쫓겨나는 끊임없는 뿌리 뽑힘을 반복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물러나고, 더 이상 몰릴 수 없는 벼랑에서 그들이 부르짖는 절규가 보다 절실하게, 보다 광범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과연 더불어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느냐는 도덕적인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은 앞으로 계속 더 크게, 더 확대되어 나타날 것이 충분히 예견됩니다. 이들의 절규와 항의를 오직 치안 차원에서만 다루고 처벌한다면 그들의 한계 상황에서 나오는 절망감과 분노가 보다 더 큰 사회 문제를 야기케 할 것임을 우리는 우려하고 또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본성과 양심과 도덕에 반하는 행동을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습니다. 법은 처벌이 두려워 지켜지기보다는 양심의 규준과 도덕적 규범에 합당하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법이 인간의 이성과 정의에 반하면, 그것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 됩니다. 인간은 법보다 양심의 규준과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최근 수배 중인 학생을 숨겨 준 교사와 동료가 구속되거나 보복당하며 교장이 직위 해제되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과연 도덕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인가에 대하여 같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의와 양심과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고발이 권장되는 사회는 분명 비뚤어지고 있는 사회인 것입니다. 법보다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존중되고 정당하게 평가되는 사회가 이룩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교회는 인간성에 기인한 도덕적 질서의 원리를 선언하고 확증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간곡한 뜻을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9. 인간이 보다 완전히, 보다 용이하게 자기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회의 생활 조건의 총체가 공동선이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제도가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는 인격의 권리와 의무가 보호되는 곳에서만 신장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끌어안고 무엇이 민주화의 장애이며, 어떻게 민주화를 이룩해 낼 수 있으며, 민족의 존엄과 권익을 지키며 통일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가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단편적인 논의가 용공 좌경의 징표로 제시되어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거니와,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고뇌의 결정이 용공 좌경으로 매도되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 대한 국가 보안법 적용을 극도로 자제해 줄 것을 정부 당국에 요구하면서 학생들에게도 자중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학생 여러분의 초조함이나 애국적 열정은 오늘의 현실에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이요, 그렇게 되게 한 책임은 오직 우리 기성인에게 있습니다. 결국 학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롯한 기성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용공 좌경으로 매도함은 결국 기성인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 보안법 적용에는 자제를, 학생들의 주장과 행동에는 자중을 간곡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누구보다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형제, 가난하고 버림받는 형제, 울고 있는 형제, 정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형제, 사람들의 화제에서 소외된 형제, 고통을 받아도 사람들이 몰라주는 형제들에게 우리의 위로와 격려와 일치의 뜻을 전하면서 용기를 잃지 말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다가올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에페 1,10) 하느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1986년도 정기 총회의 결의로 우리의 견해를 밝히는 바입니다.

1986년 3월 3일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민주화는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

정의와 평화를 간구하는 9일기도 메시지

 

+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조국은 과거의 숱한 대립의 역사를 짊어진 채 또 새로운 대립의 아픔을 빚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의 극한적인 대립, 안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어떤 희생을 치르고도 백성의 주권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이들의 대립, 법질서만을 중시하는 이들과 현행법의 도덕성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는 이들의 대립이 그칠 줄 모르고 상승일로에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결말이 어떠한 것인지는 우리 모두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이러한 불행을 초래하지 않고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의 길은 화해입니다. 비록 분단의 상처를 깊숙이 지니고는 있지만 오늘난 우리 국민이 민족적 자의식을 갖고 우리 고유의 문화적 긍지를 유산삼아 세계를 향해서 당당히 얼굴을 쳐들 수 있는 백의민족으로 성장해 온 것은 우리 선열들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의 열매입니다. 지난날 시대의 장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어 온 대륙의 침략과 압박을 끝내 버티어낸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대가는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일제 치하로부터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치른 우리 선조들의 시련과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또 이 민족의 반을 삼켜버린 공산주의로부터 나머지 반만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흘린 우리 동포들의 피는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습니까? 뿐만 아니라 이 민족 백성을 우롱하고 압박하는 독재로부터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바친 희생은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이었습니까!

우리 민족의 오늘의 삶이란 이렇게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차르며 우리보다 앞서 간 분들이 마련해 주신 유산입니다. 이 유산을 오늘 우리는 스스로의 욕심과 고집, 편견과 독선 때문에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귀한 유산을 지켜야 합니다. 가꾸고 꽃피워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지워주는 근엄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대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화해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화해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 인간 사이의 화해가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화해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오늘 사도 바오로는 독서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불의를 저지른 이들은 그 불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로운 삶을 택해야 합니다. 고문과 폭력으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법조문을 절대시하고 무분별하게 적용하여 모든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의사표시의 자유, 결사의 자유조차 마음대로 제한하는 이들은 모든 법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법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이지, 인간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우리 정부는 모든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을 뛰어넘어서 우선 인간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지녀야 할 경외심을 가지고 이러한 오류를 한시 바삐 정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려 온 민주화, 즉 모든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주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대의 요청이요, 우리 국민 모두의 소리요, 하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민주화는 바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먼저 하느님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립세력과의 정치적 대화를 아무리 반복하여도 그 결과는 끊임없는 분쟁과 반목과 보복의 악순환일 뿐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최근 극단적으로 대립 양상을 보이는 여당과 야당의 움직임을 보면서 여당도, 야당도 참으로 나라를 위한다면, 당리당략보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하여 참된 대화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흔히 “대화”, “대화” 하면서 나의 이야기만을 앞세우고 남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며, 이렇게 대치된 상태는 결코 화해도, 평화의 상태도 아닙니다.

오늘날 개헌논의와 관련된 주장이 꼭 그리합니다. 서로가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자기 주장만 내놓고 있지, 대화의 여백, 화해의 여백을 남겨 놓지 않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86년이 되었든, 89년이 되었든 현행 헌법을 개헌하자는 데 우리는 모처럼 일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현행 헌법이 어딘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모처럼 잘못된 것임을 확인했다면 그것을 고치는 것은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늦추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제가 어느 쪽이 옳냐고 편들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 정치적 위기의 가장 큰 핵심이 개헌과 관련해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개헌하자는 것이 현행 헌법의 개헌 절차에 따르자는 것이므로, 개헌 자체에 피해의식이나 적대감을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모든 국민의 화합을 위한 화해의 핵심과 그 방법이 바로 이 개헌에 있습니다. 합의에 의한 개헌을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에 우리 모두의 존망, 우리 국운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개헌의 방향과 그 내용 및 시기에 정부와 여당, 야당과 민주세력 사이의 대합의가, 사리사욕을 떠나고 당리당략을 떠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대합의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와 우리 교회는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현 대통령께서는 현행 헌법이 규정한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시겠다고 계속 다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임기 전에 개헌을 해서 그 헌법에 의한 선거절차를 마친 다음,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는 것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단임정신을 관철하는 하나의 축제 행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현 대통령께서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기틀을 바로잡아 주신 분으로 역사에 빛날 것이고, 아울러 현 집권당에게 국민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민주화의 일정이 지금이라도 뚜렷이 내다 보인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학원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사회도 안정되며, 오늘의 난국을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의 올림픽도 참으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기쁨의 축제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이렇게 국민을 화해와 일치로 이끌고 민주화로 이끄는 것이 큰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만, 저명인사나 국회의원 혹은 성직자가 개헌 서명을 할 때는 괜찮고, 오직 학생들만은 서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개헌 서명운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권장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학생들이 제발 공부에만 열중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끔 학원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참으로 명랑하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도, 어떤 학생도 매일같이 데모를 하지 않았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왜 학생만이 이 국민의 기본권 행사와 관련하여 학원에서 처벌되고, 또 법적으로도 처벌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결코 적이 아닙니다. 우리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런 학생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키워주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그런 학생들이 결코 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부당국이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 이 학생들을, 청년들을 정부의 뜻에 거슬린다 해서 적대시하지 말고, 그들을 감싸주는 아량을 가져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히 지금 구속되어 있는 많은 학생들을 비롯한 노동청년들, 또 모든 정치범들에게 이런 큰 마음이, 아량이 베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는 이 점에 있어서 오늘 방금 들은 복음에서 탕자를 용서하고 받아 줄 뿐 아니라, 죽었던 아들이 다사 살아 왔다고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 그 아버지의 사랑, 곧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위정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이가, 기성세대가 이렇게 넓은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대립과 불목이 빚고 있는 모든 문제가 봄에 눈이 녹듯 해소되고, 우리는 진정 한 겨레로서, 한 핏줄의 한 겨레로서 결코 미워해야 할 서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할 서로라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때마침 내일 3월 10일은 ‘근로자의 날’이기에 그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2천불임을 자랑하고 한강의 기적을 구가합니다. 이같은 경제발전이 있기까지에는 지금 1천만을 헤아리는 근로자들의 공이 막중하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들의 피와 땀이 모여서 오늘의 발전이 이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그 발전의 열매를 맛보는 기쁨을 이분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찌해서 부익부 · 빈익빈의 현상이 오히려 늘어나고 많은 근로자들이 아직도 생계의 위협 앞에서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왜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해서 탄압을 받아야 합니까? 근로자들의 기본권인 노동삼권은 우리나라의 건전한 산업발전을 위해서, 또 사회의 안전과 나아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최근 들어서 많은 이들이 우리 현실을 필리핀과 비교합니다. 물론 필리핀은 자랑스러운 민주화를 이룩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나라가 결코 필리핀과 같지 않다고 봅니다. 비록 필리핀이 민주화의 큰 길에 서 있지만, 우리 역시 그같은 방법으로 민주화를 모색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국민의 거대한 힘이 마르코스 20년 독재를 무너뜨렸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무너지는 권력도, 우리가 미워하는 권력도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하며,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민주화가 결코 적대와 투쟁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화해와 합의의 산물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바라고, 필리핀의 민주화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만, 필리핀처럼 특정한 사람들이 버림받는 그런 민주화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 정권이 왜 필리핀과 같으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분들은 먼저 필리핀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합니다. 즉, 여기는 필리핀과는 달리 족벌정치는 그림자도 없고, 부정부패가 없고, 부의 편중과 빈부의 격차, 고문과 불법 체포, 감금 등 인권탄압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필리핀과는 달리 여기서는 언론의 자유가 있고, 누구도 두려움 없이 자유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자유 대한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인간을 위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운 삶이 유린되는 사회와 개인을 구원해서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은지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때문에 불의를 보고 분노하며 자신의 개인적 안락과 미래까지도 포기하면서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우는 이들도 이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이 민족 사회가 결코 미움과 대립의 사회가 되지 않고 화해와 사랑의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분들도 먼저 하느님과 화해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못박히셨을 때 자신을 못박는 그 원수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하고 하느님께 기도하셨듯이, 성의를 위해서 싸우는 이들도 불의를 저지른 이들, 박해하는 이들에 대한 모든 미움과 원한, 편견과 저주를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의를 취하고, 자비와 회개를 택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고, 이웃과도 쉽게 화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위치가 어떠한 것이든 하느님의 자녀로서 시급히 하느님과 화해합시다. 오늘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하느님께로 돌아갑시다. 오늘 복음의 탕자와 같이 우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것만이 이 민족이 당면한 대립의 악순환에서 우리 모두를, 우리 겨레를, 나라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1986년 3월 9일
서울대교구 추기경 김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