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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7 14:15
2021-07-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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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1년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가칭)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1년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2021년 7월 25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는 벗인 노인 여러분,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조부모와 노인 여러분에게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건네고 계십니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은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로마 주교이자 여러분처럼 노인인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온 교회는 여러분 곁에, 우리 곁에 있으며 여러분에게 마음을 쓰고 있고 여러분을 사랑하며 여러분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합니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예측하지 못한 맹렬한 풍랑처럼 우리를 휩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에게 이 담화가 전달될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우리 노인들에게 어려운 시기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병들고,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을 떠나거나 배우자나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고, 또 다른 이들은 오랜 시간 고립되어 홀로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시기에 겪고 있는 모든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고립되어 홀로 있다고 느끼는 이들 곁에,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에 그러한 감정들을 극심히 느끼는 이들 곁에 계십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외조부인 요아킴 성인은 자녀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그의 삶은 아내인 안나의 삶과 마찬가지로 무익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위로하셨습니다. 요아킴 성인이 성문 밖에 앉아 슬픈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주님의 전령이 그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요아킴아, 요아킴아! 주님께서 너의 끈질긴 기도를 들어주셨다.”1) 화가 조토(Giotto)는 그의 유명한 프레스코화 작품2)의 배경을 한밤중으로, 우리 대부분에게 익숙한 기억과 걱정과 바람으로 채워진 그 잠 못 드는 수많은 밤 중에 하나로 설정한 듯합니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같은 가장 어두운 순간조차도 주님께서는 계속 천사들을 보내시어 우리의 외로움을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거듭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장기간의 고립이 끝나고 사회생활이 서서히 재개되는 이 특별한 해에 제가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기념하고자 했던 뜻입니다.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고 모든 노인이, 특히 우리 가운데 가장 외로운 이들이 천사의 방문을 받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그 천사들은 우리 손주들의 얼굴을 할 것이고 때로는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나 오랜 벗의 얼굴을 할 것이며, 우리가 서로를 얼싸안아주고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때인 이 어려운 시기에 알게 된 사람의 얼굴을 할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저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당신의 전령을 보내십니다. 날마다 복음을 읽고 시편 기도를 바치며 예언서를 읽도록 노력합시다! 주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는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 요청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루의 모든 시간마다(마태 20,1-16 참조), 삶의 모든 계절마다 당신의 포도밭으로 계속해서 일꾼들을 보내십니다. 제가 로마의 주교로 부름받았을 때, 사실 말하자면 퇴임할 나이였고, 그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참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위로로 우리 곁에 계시며 한결같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영원하시고 결코 일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으십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우리의 소명이 우리 자신의 뿌리를 지키고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며 작은 이들을 돌보는 것임을 우리는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귀 기울여 봅시다. 지금 우리 나이에 우리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뿌리를 지키는 것,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 작은 이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나이가 몇인지, 일하고 있는지 아닌지, 혼자인지 가족이 있는지, 젊은 나이에 또는 나이 들어서 조부모가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자립하는지 도움이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손주들에게 전통을 전하는 과업에서 물러나는 나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길을 나서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이 결정적인 시기에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소명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궁금해할지 모릅니다. ‘이 소명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나는 기력이 떨어지고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몸에 익었는데 어떻게 내가 다르게 행동해볼 수 있겠어? 이미 가족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복잡한데 어떻게 내가 더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할 수 있겠어? 살고 있는 곳을 떠날 수 없는데 어떻게 내가 시야를 넓힐 수 있겠어? 이미 나는 내 고독으로도 충분히 버겁지 않은가?’ 여러분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나는 내 고독으로도 충분히 버겁지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몸소 이와 비슷한 질문을 니코데모에게서 들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요한 3,4) 주님께서는, 불고 싶은 데로 부시는 성령의 활동에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응답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자유로운 분으로 바라시는 곳 어디로든 가시며 바라시는 일 무엇이든 이루십니다.
 
제가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 예전대로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부디 더 이상 …… 우리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던 또 하나의 되풀이된 심각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 인공호흡기 부족으로 세상을 떠난 노인들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큰 슬픔을 헛되지 않게 하고, 우리가 새로운 생활 방식을 향하여 도약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빚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 인류 가족이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35항). 그 누구도 혼자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빚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내일의 세상, 곧 풍랑이 잠잠해지고 난 다음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과 함께 살아갈 세상을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통하여 만들어가는 데에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 입은 사회를 되살리고 지원하는 데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77항). 이 새로운 체계를 지탱해 주는 기둥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세 기둥을 세우는 데에 여러분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기둥은 꿈, 기억,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은 모든 이에게,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이들에게도, 꿈과 기억과 기도의 길을 따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데에 필요한 힘을 줄 것입니다.
 
요엘 예언자는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노인들은 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 세상의 미래는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하는 이러한 약속에 달려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노인들의 꿈을 이어받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계속 꿈을 꾸어야 합니다. 정의라는 우리의 꿈, 평화라는 우리의 꿈, 연대라는 우리의 꿈은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미래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고난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저는 분명 여러분들이 한 번쯤 이러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살아오면서 어려움들을 수없이 겪었지만, 다 헤쳐 나갔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이러한 경험을 살려 봅시다.
 
그래서 꿈은 기억과 한데 엮여 있습니다. 저는 전쟁의 아픈 기억과, 그 기억의 중요성이 젊은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전쟁의 고통을 겪은 분들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는 것은 나이 든 모든 이의 참된 사명입니다. 바로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그 기억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유다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에디트 브루츠크(Edith Bruck)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자그마한 양심에도 빛을 비추는 일조차도 이미 벌어진 일을 생생히 기억해야 하는 노고를 들이고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기억은 삶입니다.”3)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저는, 오늘날도 계속해서 많은 이들이 이주하고 있는 것처럼, 저의 조부모님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이주해야 하였고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를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더욱 인간적이고 환대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는 마치 토대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삶의 토대는 기억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입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지신 어른으로 교회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일하시는 저의 전임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인들의 기도는 세상을 보호할 수 있고, 다른 많은 이들의 노고보다 어쩌면 더 통찰력 있게 세상을 도울 수 있습니다.”4) 베네딕토 교황님께서는 교황 직무를 거의 정리하시던 2012년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아름다운 것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매우 소중한 자원입니다. 곧 여러분의 기도는 빼앗겨서는 안 되는 교회와 세상의 허파입니다(「복음의 기쁨」, 262항 참조). 특히 우리 인류 가족에게 시련을 주는 이 시기에,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동안 세상과 교회를 위한 여러분의 전구는 큰 가치를 지닙니다. 여러분의 전구는 우리가 곧 정박할 수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을 모든 이에게 불어 넣어 줍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사랑하는 할아버지, 사랑하는 벗인 노인 여러분, 이 담화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곧 성인이 될 샤를 드 푸코 복자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샤를 드 푸코 복자는 알제리에서 은수자로 살아가며 “모든 인간을 형제로 느끼고 싶은 자신의 열망”(「모든 형제들」, 287항)을 증언했습니다. 복자의 생애에는 자기 자신의 광야에서는 고독할지라도, 이 세상의 가난한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참으로 모든 이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복자의 모범을 통해서도 우리가 모두 마음을 열어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세심하게 헤아리며 그들이 필요한 것을 위하여 전구할 수 있기를 저는 주님께 청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위로의 말을 우리 저마다가 모든 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다시 말해 줄 수 있는 법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1년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프란치스코

1) 야고보 원복음서의 이야기.
2)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로고로 선정된 그림.
3) 에디트 브루츠크, “기억은 삶이고, 글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다”(La memoria é vita, la scrittura é respiro).,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2021.1.26.
4) 베네딕토 16세, 성 에지디오 공동체가 운영하는 노인의 집 공동체 방문에서 하신 말씀, 201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