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체대회
2011-11-16 00:00
2020-09-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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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차 세계성체대회 기조문 소개 연설

교황청 세계성체대회위원회 총회

아일랜드 수좌 더블린 대교구장 디어미드 마틴 대주교의
2012년 세계 성체 대회 기조문 소개 연설


(로마, 2010년 11월 10일)


아일랜드에는 세계 성체 대회를 왜 더블린에서 개최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필이면 왜 성체 대회냐고 묻습니다. 많은 이에게 세계 성체 대회는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은 성체 대회를 승리주의적 축제의 의미와 관련지어 생각합니다. 아일랜드에서 이는 특히 1932년 더블린에서 개최되었던 세계 성체 대회의 기억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그 당시의 상황과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성체 대회를 돌아봅니다.

그 당시의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의 신심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1932년 세계 성체 대회는 당시 아일랜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종교가 사회 언저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도 그러한 시위 방식으로 공공의 영역을 침해하는 종교적 축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때까지 아일랜드에서 거행된 것 중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였던 1932년 성체 대회는 참가자들의 기억에 남아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자녀와 손자들에게 성체 대회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대회는 위대한 종교적 성취였습니다. 이 대회는 당시 사람들이 느끼던 신심의 필요에 부응한 행사였습니다. 그 성체 대회는 신생 독립국인 아일랜드에서 나아갈 길을 찾는 가톨릭 공동체의 자기 확인 요구에 부응한 행사였습니다.

오늘날 아일랜드 사회는 변화해 왔고 아일랜드인의 신심 역시 변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신앙의 공개적 선언에서 어떤 환희를 느끼는 것을 주저합니다. 사람들은 좀 더 내밀한 신심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실제로 개인주의적 신심, 곧 현재의 ‘자기 욕구’에 부합하는 일종의 맞춤 영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심은 하느님 말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인격적 신앙의 길이 아닌 개인적 위안의 영역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때로는 개인주의적 영성의 한계를 깨달아, 영적 욕구의 뿌리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다른 이들과 작은 모임을 이루며 거기에 관련된 신심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신앙 경축을 위한 대규모 외부 집회라는 개념은 여러 모로 그러한 두 관점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의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대규모 집회는 그들이 어찌 할 수 없는 그저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행사가 될 뿐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정서적 반응이 기만적일 수 있고, 결국 공허한 실망만이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32년 대회를 돌이켜 보면서, 그들은 그와 유사한 축제가 현대의 영성에 알맞지 않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시대에 대한 이해나 공의회가 주창한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 부합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걱정합니다.

교회가 대규모 집회를 여는 시대는 - 세계 청년 대회는 예외로 한다 해도 - 끝났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러한 행사 비용을 아일랜드가 당면한 힘든 경제 상황에 대처하는 데 사용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직접 도와주는 데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곤 합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세계 성체 대회의 거행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우리는 분명, 마치 이것이 부정적 논쟁거리에 이끌리는 사람들의 말인 것처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의견들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이 1932년 세계 성체 대회 거행의 모범을 현대적 신심, 그리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는 이질적인 것으로 여기며 너무도 흔히 그 대회가 가져온 흥미로운 사회적 결과들을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1920년대 초반에 아일랜드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둘러싸고 잔인하고 대립적인 내전을 겪었습니다. 영국과 맺은 조약이 아일랜드에 참된 독립을 가져다줄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해결책을 위하여 무장 투쟁이나 정치 투쟁을 계속해야만 하는지에 관하여 날카롭고 심각한 분열이 있었습니다.

내전은 수도 더블린을 포함하여 아일랜드의 국민을 근본적으로 분열시켰습니다. 이 분열은 세대를 이어 지속되어 오늘날도 여전히 정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932년 성체 대회는 내전으로 대립된 두 세력이 새로운 아일랜드 정부가 개최하는 첫 번째 국제 행사의 조직과 거행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하여 협력하게 된 첫 번째 주요 국제 행사였습니다. 사실상 이 대회는 화해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광범위하고도 공식적인 조직으로 강력한 행사를 거행하여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일치의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감사 기도’ 제2양식에서 기도하는 대로, 오직 성찬례만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으로 나누는 모든 이가 성령을 통한 일치로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해 줍니다.

더블린의 2012년 세계 성체 대회는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교회의 역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순간에 개최됩니다. 아일랜드 교회는 여러 모로 상처를 입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교회입니다. 많은 유럽 국가들처럼 아일랜드도 최근 들어 사회적 격변을 겪었습니다. 오늘날의 아일랜드는 매우 세속화된 사회입니다.

아일랜드는 종교 문화의 대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외부인들은 아일랜드가 전통적인 가톨릭 정신을 무조건 옹호하는 보루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블린의 많은 본당의 주일 미사 참석율이 5% 남짓이고, 어떤 경우에는, 특히 더블린 변두리의 가난한 본당에서는 2% 이하까지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니다. 문제는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교회의 많은 이들이 현재의 문화적 변화의 전모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여전히 가톨릭이 지배하는 문화 안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계속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에 여전히 대중적인 가톨릭 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노크에 있는 성모 순례지는 기네스 박물관에 이어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곳입니다! 올해 7월 마지막 주일에 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파트리치오 성인을 공경하며 참회의 순례로 험준한 크로패트릭 산을 등반하였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 다수는 자녀들이 세례 받기를 원하고, 그리스도교 장례식을 원합니다.

더블린에서 활동하는 신부들의 헌신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친절하며 신자들의 존경과 지지와 사랑을 받습니다. 그들은 아일랜드 사회에서 신앙의 역할에 관한 토론이 종종 논쟁적, 이념적으로 흘러가는 풍토 속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더욱 선정적이 되어 가는 대중 매체는 추문과 이례적인 일에 집중합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 몇 가지 예외적인 일을 빼고는 - 교회의 잘못과 사제의 어린이 성추행 추문에 집요하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사제와 수도자가 저지른 어린이 성추행 추문이 매체의 조작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추문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모든 세대의 신자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이 끔찍한 성추행 사실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교회 권위자들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추문은 많은 이들의 믿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믿음을 빼앗겼다고 여기고 교회에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는 많은 성추행 피해자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영적 쇄신이 그 치유 과정의 본질적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일랜드가 세속화되면서, 형식적으로 종교 가치가 깊이 배인 문화도 어쩔 수 없이 세속 종교의 형태로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원주의적인 아일랜드는 필연적으로 세속주의적 아일랜드라는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교회는 사람들이 세속화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나누고 기쁨과 슬픔과 두려움 같은 좀 더 심오한 인간 체험을 표현하는 예식을 찾을 수 있는 고유한 공간을 계속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누구든지 모여서 하느님과 무관하게 단지 인간적인 체험을 기리는 장소가 된다면, 이러한 세속 종교는 결국 공허한 것이 되고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일랜드의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 사명에 부응하지 못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많은 이들은 교회 밖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거나 실제로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 생활 안에서 많은 이들의 영적 욕구를 채워 줄 내밀한 친교의 여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일랜드 교회는 2012년 세계 성체 대회의 주제를 “성체성사: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라고 정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찬례에 참여할 때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게 된다는 사실을 개인과 사회에 상기시켜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 동시에 우리 서로가 친교를 이룹니다.

이번 세계 성체 대회는, 성체성사가 교회의 모든 활동의 정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찬 모임에 참가하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시기에, 이 대회를 통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교회는 적극적인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회비를 내고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단순한 단체나 조직이 아닙니다. 세계 성체 대회 문서 ‘제50차 세계 성체 대회 준비를 위한 신학적 사목적 성찰’은 친교라는 주제가 우리의 그리스도인다운 정체성과 사명의 핵심을 밝혀 준다고 설명합니다(16항 참조). 이는 전통적 인간 관계와 사회적 유대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말하는 대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을 결합시키고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표징과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성체 대회 문서는 “성찬례에서 우리는 교회 정체성의 핵심에 있는 친교라는 유전자 정보를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는 친교의 와해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큰 타격을 입힌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합니다(17항).

초대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부터 모임을 통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사도 2,42). 따라서 성체 대회 문서가 지적한 대로, 교회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체험한 제자들로 세워진 메시아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곧 사랑, 자유, 진리, 평등, 호혜의 특징을 지닌 관계를 서로 맺었습니다(8항 참조).

성찬례는 공동체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신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12항 참조). 교회는 거룩한 것들의 나눔을 바탕으로 한 친교입니다. 교회는 우리 자신이 설계한 구조물이 아니고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친교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성체 대회 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스스로의 친교 생활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사회가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교회의 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러한 실패의 예에는 파벌주의, 지위 남용, 제도주의나 편향된 사고의 행태들이 있습니다”(17항).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 교회는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성찬례는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가운데서 기념합니다.

친교와 참여는 서로 짝이 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교회의 전례 생활에 참여하는 것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체 대회 문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을 인용합니다(37항 참조). “환상을 갖지 맙시다. 우리가 이러한 영성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외적인 친교 조직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외적인 조직들은 친교를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영혼이 없는 장치, 친교의 ‘가면’이 될 것입니다.”

2012년 세계 성체 대회를 별도의 행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준비 기간은 대회 거행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이 대회는 더블린의 지역 행사 또는 아일랜드인만을 위한 행사가 아닙니다. 이 대회는 온 교회의 행사로 교회 전체가 연대하여야 합니다. 성체 신심을 한층 고양하고 친교의 영성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순례하는 온 교회의 쇄신의 길이 준비 기간에 포함됩니다. 또한 이는 친교의 신학과 복음화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 성체 대회 문서는 교회가 복음화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47항 참조). 친교와 복음화는 서로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우리를 선교하는 친교로 이끕니다. 또한 선교 활동은 특히 세속주의가 교회의 선교 활동을 약화시킨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새로운 복음화에 헌신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진정한 성찬 공동체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성찬례에서 예수님과 친교를 이루는 기쁨으로 우리는 그 체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게 됩니다.

이러한 복음화는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성체 대회 문서에서 “성찬 신비는 우리가 복음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에 눈 뜨게 해 준다.”고 알려 줍니다(47항).그 문서는 성찬례가 어떻게 “적극적인 이웃 사랑의 학교”가 되는지에 관하여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교서 「주님의 만찬」(Dominicae Cenae)에 나온 말을 떠올립니다. 성찬례 참여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재현하는 성찬례의 바로 그 본질이,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신 예수님을 철저하게 증언하려는 우리의 열의를 더욱 드높일 수 있습니다. 성찬례의 영성은 우리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욱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희생하시고 돌아가심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우리가 단순히 상대에 대한 봉사의 차원에서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꺼이 형제자매로 받아들인 모든 이의 고유한 존엄을 인식하며 친교 안에서 더욱 깊은 만남을 이루도록 합니다. 친교인 성찬례는 현대 문화의 여러 측면에 강하게 존재하는, 심지어 보육 분야에까지 깃들어 있는 개인주의를 허뭅니다. 이러한 개인주의 때문에 인간은 참으로 간절히 친교를 바라지만 고독하고 고립됩니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인간의 본질적 차원인 관계의 근본적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심지어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성적인 영역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혼인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이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친교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진정한 치유는 결코 개인적인 치유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치유에는 늘 어느 모로 공동체 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포함됩니다.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봉사뿐 아니라 친교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키우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고뇌와 불안에 가득 찬 채 버림받은 사람들의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 소외의 뿌리가 있습니다. 친교의 영성이 그 불안의 뿌리를 밝혀 내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성체 대회 문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들의 이야기를 강조합니다(50항 참조). 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행복한 시절이 끝나 버렸다는 좌절감과 불안이 그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이러한 고뇌와 불안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특징입니다. 오늘날 아일랜드와 같은 경우에, 그리스도 신자들이 자기 교회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를 만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미처 당신을 알아보기도 전에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슬픔을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슬픔으로 닫힌 마음을 열어 주시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일이 어떻게 종말의 어둠이 아니라 사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늘 보여 주신 애정 어린 보살핌의 정점이 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게 하셨고 그들의 마음이 고립감이 아닌 기대와 희망으로 불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풀이해 주시어 당신과 친교를 이루는 새로운 길을 손수 열어 주셨습니다. 이 친교의 길은 빵을 떼어 나누는 것으로 그 정점에 이릅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일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몸을 쪼개어 주신 구원자 예수님의 현존과 이루는 친교입니다. 혼자 고립되지 않은 우리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쪼개어진 그 빵을 함께 나누며 이러한 친교를 이룹니다.

성체 대회 문서의 제2부는 성체 대회 주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미사의 여러 부분을 제시합니다. 이 제2부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은 성찬례, 그리고 성체성사와 삶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교리교육의 기초 자료입니다. 성체성사에 관한 새로운 교리교육 계획의 여러 단계에서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찬례는 회중이 모인 상황에서 거행되어야 합니다. 회중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59항 참조). 실제로 성찬례를 일컫는 고대 명칭 가운데 ‘시낙시스’(synaxis), 곧 회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서는 다음과 같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을 되새깁니다. “그리스도인 혼자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신자들의 친교와 무관하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극복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혼자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곧 성찬 공동체에 속합니다. 성체 대회의 주제, 곧 “성체성사: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를 말할 때에,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가 바로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의 수준을 인증하고 올바로 밝혀 준다는 데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와 그 특징을 정의할 때에 교회 생활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정확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는 바로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의 참된 본질을 결정합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그분과 똑같이 죽음과 부활의 길, 곧 우리 자신과 세상의 지배 가치에서 우리가 죽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저는 개최지 아일랜드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2012년 더블린 세계 성체 대회 기조 문서의 근본 취지를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아일랜드 교회가 상처 받은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상처 받은 교회를 언급할 때에, 저는 분명히 새로운 성체 영성을 통한 치유의 길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성체 대회의 주제가 강조하는, 우리 서로가 이루는 친교는 여러분과 여러분이 대표하는 지역 교회들에도 도움이 되는 호소입니다. 아일랜드 교회는 여러 세대를 걸쳐 세계 곳곳에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저는 현 상황에서 세계 여러 지역 교회가, 특별한 연대 의식을 지니고, 이제 쇄신의 길에 나선 상처 입은 아일랜드 교회에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교회가 교회의 연대를 위한 이러한 호소에 응답하고 지지하여, 2012년 더블린 세계 성체 대회를 보편 교회의 참된 쇄신의 기회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이 대회에서 교회가 성체성사를 통한 쇄신으로 사회와 세상 안에서 그 참된 자리를 다시 찾으리라 믿고,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원문: Plenary Assembly of the Pontifical Committee for International Eucharistic Congresses, “The Basic Text of the Dublin Eucharistic Congress”, Speaking Notes of Most Rev. Diarmuid Martin, Archbishop of Dublin Primate of Ireland, Rome, 20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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