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성체대회
198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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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 경과(주교회의 회보 제40호)

□ 서울 세계성체대회 □

준비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제44차 세계성체대회(서울) 준비를 위임받은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1986년 11월 21일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을 아래와 같이 임명하였다.

김옥균 주교(서울대교구 부교구장), 강우일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 박희봉 신부(서울대교구 절두산 순교기념관장), 김정수 신부(서울대교구 잠실 성당 주임), 김병도 신부(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장익 신부(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장), 송광섭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함세웅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이기정 신부(서울대교구 교육국장), 박신언 신부(서울대교구 관리국장), 정은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정한채 신부(남자 선교수도회 장상연합회장), 김안젤라 수녀(여자 수도회 장상연합회장), 김태봉 위원(한국 가톨릭 문화연구소장), 한용희 위원(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홍성철 위원(한국 천주교 교포사목 후원회장), 장덕진 위원(사회발전연구소 회장), 전병식 위원(국립 공업 시험원장), 정달영 위원(서울 저널리스트 클럽 회장).

준비위원장 김수환 추기경은 12월 30일자로 다음과 같이 상임위원을 추가 임명하였다. 백민관 신부(가톨릭대학장), 박정훈 위원(교포사목후원회 부회장), 권경수 위원(이화여대 총장 비서).

준비위원장 김수환 추기경은 3월 9일자로 다음과 같이 상임위원을 또 추가 임명하였다.

나원균 신부(서월 대교구 교육국장), 반예문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 이관진 위원(한국가톨릭 실업인회 회장, 재정분과 부위원장). *

 

서울 새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상임위원회 제1차 회의

1986년 12월 1일 서울대교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상임위원회 제1차 회의에는 준비위원장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김옥균 주교, 강우일 주교, 박희봉 신부, 김정수 신부, 김병도 신부, 장익 신부, 송광섭 신부, 박신언 신부, 정은규 신부, 정한채 신부, 김안젤라 수녀, 김태봉 위원, 한용희 위원, 홍성철 위원, 장덕진 위원, 정달영 위원이 참석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개회기도에 이어 김옥균 주교의 상임위원 소개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인사 말씀을 통해 서운 개최 결정 경위, 한국 개최의 의의, 성체대회 주제 등을 설명하였다.

준비위원회 기구표를 바탕으로 강우일 주교가 조직에 관한 설명을 한 다음, 김옥균 주교의 사회로 토의에 들어가, 아래와 같이 결정하였다.

1. 상임위원회는 준비위원회의 중추적인 부서로서 집행 부서인 각 분과위원회의 활동 업무를 보고받고 전체 진행 상황을 점검, 평가하는 기구이다. 상임위원회 회의는 앞으로 매월 1회(월요일) 소집하기로 하였다. 단, 제2차 회의는 1일 피정을 겸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1987년 1월 12일에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준비 개시 미사를 봉헌하며, 성체대회의 성공을 기원하고, 상임위원의 영적 준비와 성체대회 기도문 작성을 위한 묵상을 겸하기로 하였다.

2. 상임위원을 추가로 보강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인사들을 추천하기로 하였다.

3. 기구표의 “신심분과위원회” 명칭을 정신분과위원회 또는 신앙쇄신분과위원회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더 적합한 명칭이 드러날 때까지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4. 주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의 그리스도 다음에 “,” 또는 “는”을 삽입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으나,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본 다음 추후 결정키로 하였다.

 

임원 명단

대회장―교황 특사

준비위원장―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

부위원장―서울대교구 부교구장 김옥균 주교

고문단―주교단

상임위원회―김옥균 주교, 강우일 주교, 박희봉 신부, 김정수 신부, 김병도 신부, 장익 신부, 송광섭 신부, 함세웅 신부, 이기정 신부, 박신언 신부, 정은규 신부, 정한채 신부, 김안젤라 수녀, 김태봉 위원, 한용희 위원, 홍성철 위원, 장덕진 위원, 전병식 위원, 정달영 위원.

사무처―사무총장 강우일 주교, 사무차장 장익 신부. *

 

상임위원 피정

1987년 1월 12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개최된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상임위원 피정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김옥균 주교, 강우일 주교, 박희봉 신부, 김정수 신부, 장익 신부, 송광섭 신부, 함세웅 신부, 이기정 신부, 박신언 신부, 정은규 신부, 정한채 신부, 김 안젤라 수녀, 김태봉 위원, 홍성철 위원, 장덕진 위원, 정달영 위원이 참석하였다.

1. 김수환 추기경의 인사 말씀에 이이 두봉 주교의 “성찬의 이해”라는 주제의 강연을 청취하였다.

2. 장익 신부의 서울 세계성체대회 기조문 설명 후 기조문에 대한 질의 응답이 있었다.

3. 김옥균 주교의 주례로 성체조배가 있었다.

4. 5개 그룹으로 나뉘어 기도문 초안을 각각 작성, 제출하여 전체 회의에서 검토하고, 종합 정리를 사무처에 위촉하였다.

5. 강우일 주교의 “성체대회의 의미”라는 주제의 강연을 청취하였다.

6. 노래와 상징 마크 제작 문제를 논의한 후 김수환 추기경 주례의 미사로써 이날 피정을 마쳤다. 노래와 상징 마크 제작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사무처에서 그 방안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

 

상임위원회 제2차 회의

1987년 2월 9일 서울대교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상임위원회 제2차 회의에는 준비위원장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김옥균 주교, 강우일 주교, 박희봉 신부, 백민관 신부, 김정수 신부, 신부, 장익 신부, 함세웅 신부, 이기정 신부, 박신언 신부, 정은규 신부, 정한채 신부, 김 안젤라 수녀, 김태봉 위원, 홍성철 위원, 장덕진 위원, 한용희 위원, 정달영 위원, 전병식 위원, 권경수 위원, 박정훈 위원이 참석하였다.

1. 준비위원회 부위원장 김옥균 주교는 추가로 임명된 상임위원들을 소개하고,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을 다음과 같이 임명, 발표하였다.

신심분과위원회: 위원장 송광섭 신부, 부위원장 김태봉 위원.
행사분과위원회: 위원장 박신언 신부, 부위원장 장덕진 위원.
기획분과위원회: 위원장 장익 신부, 부위원장 박정훈 위원.
홍보분과위원회: 위원장 함세웅 신부, 부위원장 정달영 위원.
섭외분과위원회: 위원장 김병도 신부, 부위원장 홍성철 위원.
재정분과위원회: 위원장 박희봉 신부, 부위원장(미정).
각 분과위원장 및 부위원장은 준비위원회 사무처와 협의하여 각 분과위원회를 구성토록 하였다.

2. 1987년 1월 12일 상임위원 피정 때 5개 그룹으로 나뉘어 작성했던 기도문 초안들을 준비위원회 사무차장 장익 신부가 종합 정리한 단일 초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 결과 상임위원들의 여러 가지 지적 사항을 바탕으로 강우일 주교, 백민관 신부, 장익 신부에게 재수정을 일임하여 다음 상임위원회 회의까지 제출토록 하였다.

노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문가에게 의뢰하였음을 보고하였다. 가사(구상 씨), 아동용 가사(박홍근 씨), 외국인용 작곡 및 작사(반예문 신부).

상징 마크는 서울대학교 최종태 교수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최 레지나 수녀에게 의뢰하여 현재 작업 중임을 보고하고, 이미 작성된 일부분을 소개하였다.

  1. 3. 준비위원회 사무총장 강우일 주교의 제안으로, 앞으로 각 교구별 대표들이 임명되면 성체대회의 성공적 준비를 위하여 그들과 상임위원들이 함께 참석하는 연수회 겸 피정을 갖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금년 9월 중순 이후 2박 3일의 일정으로 갖되 가급적이면 국 내 신학대학 교수 혹은 Leonard Boff 신부나 Adolf Nicolas 신부의 강연을 듣기로 하였다.

4. 서울대교구청 A동 2층에 준비위원회 사무처 임시 사무실을 개설하였음을 보고하였다. *

 

서울 세계성체대회 주제 및 부제

― 주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 부제 1)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2) “너희는 이를 행하라” 3)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주제와 이를 부연하는 세 부제는, 그 선택과 표현에 있어, 한편으로는 우리가 놓인 상황과 이어지면서도 동시에 범세계적으로 절실한 것으로 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성찬의 성서 전승과 전례 생활의 핵심을 오늘 새삼 말해 주는 것으로 삼도록 노력하였다.

그 결과 대주제를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4)로 하고 이 주제의 뜻을 세 차원에서 드러내 줄 소제 또는 부제로는,1)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성찬 전례문), 2) “너희는 이를 행하라”(성찬 전례문), 그리고 3)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루가 24,29)를 각각 택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어떻게 하여 우리 모두의 평화가 되어 주셨으며, 우리는 또한 어떻게 해야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를 이 땅과 온 세상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가를, 바로 성찬의 신비 안에서 함께 1) 깨닫고, 2) 다짐하고, 3) 기념하면서 기원하자는 것이다.

1. 그러므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첫 소제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자체를, 성찬에서 이처럼 밝히신 예수의 의도에 입각하여, 더욱 깊이 깨닫자는 것으로, 주로 성서적이고 교의적인 신앙의 차원에 놓인다.

주님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신 것은(요한 14,27), 가이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다 내주신 당신 삶·수난·죽음·부활의 열매로서였다(루가 24,36.40; 요한 16,33). 십자가의 피로써(골로 1,20) 하느님과 천지만물 사이에 화해를 이루고(골로 1,20; 로마 5,1), 우리 서로를 성령 안에 한 몸으로 묶어준 저 평화(에페 4,3), 세속과 병고와 죄악과 죽음을 이긴(루가 7,50; 8,4; 24,36), 이 세상이 못 주는(요한 14,27; 루가 12,51) 참 평화는, 다름 아니라 바로 성찬에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온 세상의 생명을 위한 음식으로(요한 6,51). 자기를 다 내줌으로써 만민의 주님이 되신(루가 10,36) 그리스도 자신이신 것이다.

2. 그다음 이러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 사랑의 영속적 실현인 성찬에 우리가 진실로 참여한다 함은, 바로 예수께서 행하신 바를 우리 또한 실행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차원에서는 1) 우리가 오늘 놓인 상황의 파악·평가와 2)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모색이라는 사목 실천의 구체적 두 측면이 주축을 이룬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역사 안에서의 교회의 존재 양상과 현세 안에서 부활을 증거하는 평신도 사도직과 직결되기도 한다. 즉, “너희는 이를 행하라”는 주님의 명운 받들어 자신을 다 내주는 삶 전체의 표출로서 성찬례를 행함을 뜻하는 것이다.

또 그런 삶만이 참다운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진정한 길이기도 하다.

3. 끝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라는 엠마우스 제자들의 간원은, 애급에서 구출되어 사막을 가던 이스라엘의 경우처럼(출애 33,14-17), 주님께서 길의 끝까지 우리와 함께 안하신다면, 우리만으로는 빵을 쪼개 주실 때 알아뵈온 주님의 명을 다할 수 없음을 표현하는 완세적인 차원의 소제이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거듭거듭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20) 하고 하느님 나라의 내림을 염원하면서, 주님을 기념하고 또 기념함으로써 그 은혜를 구하여 입는, 성찬의 전례적·성사적·영성적 차원인 것이다.

신앙공동체의 성찬 거행과 우리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성체께 대한 신심 역시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더 옳고 깊게 생활화된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안으로 서로 이어지는 세 차원의 맥락을 따라, 오늘을 사는 신앙공동체인 우리는, 그 자체 무궁한 신비를 사는 데 있어 온 인류의 염원이자 희망인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로서 살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

 

서울 세계성체대회 기조문 초안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평화! 평화는 누구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절실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갈수록 손에 안 잡히는 것이 참 평화인가 합니다.” “분단된 한반도의 안타까움과 아픔은 서로 믿지 못하고 형제애로써 화해를 이루지 못하는 분열된 우리 세계를 나타내 보인다고 하겠습니다”(주: 요한 바오로 2세,1984.5.4., 외교단에게 한 연설에서).

바로 이러한 땅에서, 불의와 분쟁과 불신과 불안으로 가득한 온 세상의 믿는 이들이 하나로 모여,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세계성체대회를 거행한다 함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평화의 하느님

그러나 그처럼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라고 하느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이름은 평화의 왕이라 불리우리니”, 그는 “끝없는 평화를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이사 9,l.5.7). 그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자, 천사들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며 이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루가 2,14).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 그것은 분명히 평화였습니다(시편 85,8). 죄스러운 인간과 맺으시는 뉘우침 없는 언약이었습니다(창세 9,13). 그것은 이미 구약에서도 단지 전쟁이 없는 때를 가리키는 소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인생의 온갖 복을 누리면서 자연과 이웃과 하느님과 화합하는 삶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언약된 평화의 참 뜻을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울 것이다”(마태 5,9). 그럼에도 이 진복의 말씀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루가 19,42).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바로 이런 가운데에, 한편으로는 평화를 염원한다면서도 실상 참 평화의 길을 가고 있지 않는 우리 가운데에,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진 일입니까?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을 대하실 때마다 첫 마디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36-40) 하며 인사하셨습니다.

그 평화는 삶과 죽음을 통해 당신 자신을 가이없는 사랑으로 다 내주시고 얻으신 열매였습니다(루가 24,36.40; 요한 16,33) 그것은 십자가의 피로써(골로 1,20), 하느님과 천지만물 사이에 화해를 이루고(로마 5,1), 우리 서로를 한 몸으로 묶어준 저 평화(에페 4,3), 세속과 죄악과 죽음을 이긴 평화(루가 7,50; 8,48; 10,10; 24,36), 이 세상이 못 주는 주님의 참 평화(요한 14,27; 루가 12,51)였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사람의 아들”(마르 10,45)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뿐더러(요한 13,14-15),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어(요한 13,1), 목숨을 내주신 더없는 헌신 희생으로 이룬 것이 곧 주님의 평화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그 평화를 찾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성찬에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마르 14,24; 마태 26,28; 1고린 11,24; 루가 22,20), 온 세상의 생명을 위한 음식으로(요한 6,27-58), 먹는 빵이 아니라 먹히는 빵으로, 당신 몸을 다 내줌으로써 만민의 구원이 되시고(이사 53,5) “우리의 평화가 되신 그리스도”(에페 2,13.14) 자신에서입니다.

 

너희는 이를 행하라

이제 이 크나큰 은혜에 어찌 응답해야 마땅할지를 모르는 우리에게 주님 친히 갈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말을 씻어 주었으 니 너희도 서로 발운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런데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내 벗이 된다”(요한 15,13)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행하는 성찬을 두고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1고린 11,24; 루가 22,19)는 “그리스도의 명”은 또 어찌 받들어 마땅하겠습니까?

성찬의 전례를 거행할 뿐 아니라, 그로써 우리가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행하신 바, 즉,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당신 몸을 음식으로 내주신(요한 6,51) 바로 그 사랑, “이를”, 우리 또한 “행”하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또한 “모두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다 내주는 일상 생활 전체의 표출로서 성찬례를 “행하라”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나부터 굶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그러나 오천 군중을 위해서는 어림도 없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쪽을 서로 다 내줄 때에 비로소 모든 이를 배불리신 기적이 이 세상에서 되풀이될 것입니다(요한 6,5-14). 그래야만 일상과 주일이 하나로 이어져 성찬의 실현이 비로소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복음에 비추어 우리가 오늘 놓여 있는 오늘의 상황을 묻지 않을 수 없고 아울러 우리 자신의 입장과 향방 또한 묻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우리 교회, 우리 각자는 그 안에서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고 어떤 입장에 서 있습니까? 성찬에서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처럼 살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길을 가야겠는가를 다같이 생각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이들 물음에 복음 따라, 특히 산상수훈(마태 5,3-12; 루가 6,20-26)”과 최후 심판의 말씀(마태 25,31-46) 따라, 산 응답을 실행하는 길이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성찬을 참으로 사는 길로 믿어집니다.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다만, 이 길을 주님께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 안하신다면(출애 33,14-17), 우리만의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에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풀어 주신 주님의 구원을 이미 맛보았으면서도 약속의 땅을 향해 끝없는 사막을 걸어야만 했던 이스라엘처럼, 우리 또한 엠마우스의 제자들같이 빵을 쪼개 주실 때 알아뵈온 주님의(루가 24,30.31) 명을 혼자의 힘으로 다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사십년 동안이나 불기둥을(출애 14,24) 바라보고 만나를 먹으며(출애 16,35) 약속의 땅을 향해 사막을 걷던 이스라엘의 그 마음이 곧 오늘의 우리 마음이기도 합니다. 엠마우스 제자들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루가 24,29) 하며 주님께 간원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전하며”(1고린 11.26) “그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으면서”(전례문),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20) 하고 거듭거듭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세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주님을 성찬에서 기념하고, 또 기념함으로써 그 성사적 은혜를 구하여 입는, 믿고바라는 순례자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신심 역시 이 희망과 염원의 마음과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서 오소서, 주 예수여, 우리의 평화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