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0 송 마리아
  1. 송 마리아 (1753∼1801)

 

송(宋) 마리아는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인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의 부인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참봉 송낙휴(宋樂休)의 딸로 태어나 1765년 은언군과 혼인하였다.

송 마리아는 은언군과 혼인한 뒤 전동(磚洞)의 양제궁(良娣宮, 현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에 거주하였다. 그러나 1786년 11월(음력) 장남인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자살하면서 불행하게 되었다. 이때 은언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양제궁은 역적의 집이라 하여 ‘폐궁’(廢宮)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에도 송 마리아는 상계군의 아내 곧 맏며느리인 신(申) 마리아와 함께 양제궁에서 살았다.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가 천주 교리에 대해 듣게 된 것은 1791~1792년경이었다. 양제궁 나인 서경의(徐敬儀)의 외조모인 조(趙) 씨가 그들의 불행을 동정하여 천주교를 전하였고, 두 사람은 신앙을 통해 자신들의 슬픔과 아픔을 잊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영혼을 구원하고 천당에 갈 수 있는 좋은 길임을 확신하였다.

1794년 말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한 뒤 송 마리아는 며느리 신 마리아와 함께 신부에게 성사를 받았고,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의 집을 방문하여 미사에 참석하고 강론을 들었다. 이후 골룸바 회장과 김연이(金連伊) 율리아나 등은 자주 양제궁으로 두 사람을 방문하여 교리를 강습하였고, 골룸바 회장은 이들을 명도회(明道會)에 가입시키기도 하였다.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는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집안에서 열심히 교리를 공부하고 기도생활을 하였다. 또 양제궁 나인으로 있던 강경복(姜景福) 수산나와 서경의 등에게 천주 신앙을 갖도록 권유하여 입교시켰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골룸바 회장의 집을 나와 잠시 양제궁으로 피신하였고, 이때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는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던 중 체포된 신자들의 문초 과정에서 그들이 천주교를 믿고 있다는 사실과 야고보 신부를 집안에 숨겨주었던 사실들이 밝혀졌다.

이때부터 조정에서는 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의 처형을 두고 논란이 일게 되었다. 그 결과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는 4월 28일(음력 3월 16일)에 두 사람을 사사(賜死)하라는 명을 내렸고,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는 이튿날 의금부 도사들이 가져온 사약을 마시고 순교하였으니, 당시 송 마리아의 나이 48세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자살죄를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사약을 마시기를 거절하였고, 그래서 억지로 사약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현재 절두산 성지 경내에 송 마리아의 묘비가 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