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2 이명호 요한
  1. 이명호 요한 ( ? ∼1801)

 

이명호(李明鎬) 요한의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운(李鼎運)의 아들로 태어나 숙부인 이익운(李益運)의 양자가 되었으며, 이겸환(李謙煥)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의 양부 이익운은 1801년의 신유박해 당시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요한은 1795년 이전에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이후로는 지나치게 격한 자신의 성질을 고치고 모든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을 따라 조절하는 데 힘썼다. 또 언제나 금욕하고자 노력하면서 식사를 조절했으며, 세속적인 일과 모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집 근처에 별채를 마련해 혼자 생활하면서 주일에는 신자들과 만나 함께 기도를 드리고 성서를 읽으면서 거룩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울러 신분과 나이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요한이 가깝게 지낸 교우로는 홍재영(洪榟榮) 프로타시오,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등이 있었다. 한편 1795년에 조정에서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를 체포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일어나자, 요한은 일시 다른 곳으로 피했다가 돌아와 계속 신앙생활을 하였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직후 이명호 요한의 행적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통문을 성균관에 올렸고, 곧이어 이 통문은 의금부로 보내졌다. 여기에서 그들은 요한이 천주교 신자가 되어 밤낮으로 교우들과 교리를 공부한 일, 1795년의 사건 때 피신했다가 돌아온 일, 따로 집을 마련해 살면서 교우들과 어울린 점 등을 거론하며 요한의 처벌을 주장하고, 그의 집안을 비난하였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자 부친 이익운은 집안에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그는 통문이 의금부로 보내지기 직전에[vi] 아들 요한을 불러다 천주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였고, 요한이 이를 듣지 않자 독약을 먹고 자결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요한이 이것마저 거절하자, 사람들을 시켜 요한에게 강제로 독약을 먹이도록 하였다. 그 결과 요한은 몇 시간 뒤에 순교하였으니,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안토니오) 주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찬탄할 만한 죽음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하느님 대전에서 아주 고귀하고 또 값어치 있는 죽음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