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57 최천여 베드로

관련 장소

공주, 천안
  1. 최천여 베드로 (1812∼1866)

 

최천여 베드로의 본관은 강릉(江陵)으로, 보명(譜名: 족보에 기록된 이름)은 문석’(文錫)이다. 그의 부모는 경상도 출신으로 일찍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이후 이곳저곳으로 피신해 다니다가 충청도 목천 소학골 교우촌(현 충남 천안시 북면 납안리)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 결과 베드로도 이곳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1866년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최종여 라자로는 그의 아우이고, 1868년 경기도 죽산에서 순교한 최제근(崔濟根) 안드레아는 그의 조카이다. 또 1910년에 사제품을 받은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는 베드로의 후손이다.

베드로와 라자로 형제는 소학골 교우촌에서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로 교리를 실천하였다. 또 1866년의 병인박해 이전까지 페롱(S. Féron, 權 스타니슬라오) 신부와 칼래(N.A. Calais, 姜 니콜라오) 신부 등에게 성사를 받는 은총을 누리기도 하였다.

병인박해가 소학골 교우촌을 휩쓴 것은 칼래 신부가 이곳을 떠난 직후인 1866년 11월 14일(음력 10월 8일)이었다. 목천 포교들이 들이닥쳐 베드로와 라자로 형제를 비롯하여 이웃에 사는 배문호 베드로, 고의진 요셉 등을 체포한 것이다. 이들은 즉시 목천으로 압송되었다가 공주 진영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때는 1866년 12월 14일(음력 11월 8일)이요, 베드로의 나이는 54세였다.

최천여 베드로와 동료들이 순교한 뒤 그 시신은 강치운이 찾아다 소학골 인근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