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88 강 요한

88. 강 요한 (1800 ~1867)

 

강 요한은 충청도 신창(新倉)의 어촌 사람으로, 일찍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부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그는 신자의 본분을 잘 지키며 자식들과 동네 교우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데 노력하였고, 그 결과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안토니오)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요한은 선교사들을 도와 교회에 봉사하다가 1866년의 병인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부인을 친척 집으로, 15세 된 아들을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낸 뒤 선교사들을 구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때 리델(F. Ridel, 李福明 펠릭스) 신부는 요한의 도움으로 공주 지역에서 은신처를 구하고, 체포되지 않은 페롱(S. Féron, 權 스타니슬라오)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어 7월 1일(음력 5월 19일) 장상인 페롱 신부의 명에 따라 리델 신부가 중국으로 피신하자, 요한은 조선에 남은 페롱 신부와 칼래(N. Calais, 姜 니콜라오) 신부를 보살폈다.

이러한 활동으로 강 요한의 이름은 점차 박해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1867년에는 마침내 신창 지역을 돌아다니던 경포들, 곧 서울의 포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때 요한이 지니고 있던 선교사의 편지가 발각되었고, 경포들은 그를 교회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여 서울로 압송하였다.

서울로 압송되기 전에 요한은 가족들을 향해 “나는 살려준다고 해도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순교할 것이다. 너희도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교리를 실천하다가 만일 체포되거든 주님을 위해 순교하도록 해라.”고 당부하였다. 그런 다음 1867년 8월 30일(음력 8월 2일) 서울 양화진으로 압송되어 조 타대오 회장 등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