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26 폴 비예모

26. 폴 비예모 신부(1869-1950)

 

폴 비예모(Marie Pierre Paul Villemot, 禹一模 바오로) 신부는 1869년 6월 28일 프랑스 오트마른(Haute-Marne)의 랑그르(Langres)에서 귀스타브 비예모(Gustave Villemot)와 앙리에트 로제(Henriette Roger)의 아들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았다. 성장한 뒤 랑그르교구의 대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886년 6월 21일 삭발례를 받았고, 1888년 9월 13일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마친 뒤 1892년 3월 12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런 다음 조선대목구 선교사로 파견되어 4월 28일 파리를 떠나, 6월 18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92년 9월 23일 폴 비예모 신부는 제물포 본당(현 답동 본당)의 임시 주임으로 임명된 뒤 이듬해 4월 22일 전라도 고산(高山) 지역으로 전임되었다. 폴 비예모 신부는 고산에 부임한 뒤 차독백이(현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의 백석)에 거처를 정하였고, 1894년 1월에는 산 너머의 되재(升峙, 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성당 터를 잡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되재 성당은 1896년 11월 1일 뮈텔(G. Mutel. 민덕효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되었다.

1897년 5월 8일 폴 비예모 신부는 조선대목구의 당가 신부로 임명되어 오랫동안 재임하였고, 1917년 4월 28일에는 서울 약현 본당(현 중림동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1926년 초까지 사목하였다. 그는 1921년 10월에 치료차 프랑스로 귀국하였다가 이듬해 10월에 돌아왔다. 1925년에는 본당의 4년제 가명 학교(加明學校)를 가명 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26년 1월 뮈텔 주교가 유럽을 순방하던 차에, 에밀 드브레(E. Devred, 유세준 에밀리오) 보좌 주교가 선종하면서 폴 비예모 신부는 1월 31일부터 조선대목구의 장상을 맡게 되었다. 이어 그해 3월 5일에는 조선대목구장 직무 대행 겸 명동 주교좌성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제9대 조선대목구장 아드리엥 라리보(A. Larribeau, 원 하드리아노) 주교는 1933년도 보고서에서 폴 비예모 신부에 대하여 “허약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 교우들의 사정을 더욱더 알고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자 고통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1942년 5월 28일 폴 비예모 신부는 은퇴 결정과 함께 명동 본당의 주임에서 물러나, 명동 성당 옆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도 신부를 맡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1945년의 8⋅15 광복과 1950년의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폴 비예모 신부가 북한군에게 체포된 것은 1950년 7월 11일이었다. 당시 그는 고령에 장티푸스를 앓고 있었으므로 나흘 만에 석방되었지만, 7월 17일에 다시 체포되어 소공동의 삼화 빌딩에 수감된 뒤 인민재판을 받아야만 하였다. 7월 26일에 그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베아트릭스(Béatrix de Marie) 관구장 수녀 등과 함께 평양으로 이송되어 29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9월 5일에 다시 평양 수용소를 떠나 11일 만포(현 자강도 만포시)에 도착하였다. 그 뒤에도 그들은 고산진(현 만포시 고산리) 등지로 끌려다니다가 만포로 돌아왔다.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는 만포에서 중강진(현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에 이르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때 폴 비예모 신부는 더없이 쇠약해져 발걸음도 겨우 내딛을 정도였으니, 결국 중강진에 도착한 지 이틀 만인 11월 11일에 동료들의 기도 안에 조용히 눈감고 말았다. 폴 비예모 신부의 나이는 81세였다. 이튿날 동료들이 나뭇가지와 돌을 모아 만든 무덤에 그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중강진에 도착한 뒤 폴 비예모 신부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오! 천주님, 당신께로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을 당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두서너 번 말하였다. 또 선종하기 직전에는 동료들에게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기꺼이 떠나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늘에서 당신들을 만나겠습니다.” 하고 작별을 고하였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출처: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