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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평화신문-순교자 황사영은 평등실천가이자 개혁자

 

[평화신문] 2013. 06. 09발행 [1219호]

 

 

 

 

순교자 황사영은 평등실천가이자 개혁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심포지엄
 
 
 


   122행 1만3311자에 이르는 백서를 통해 근대 조선을 뒤흔든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작업이 본격화됐다.

 그간 백서에 대한 연구 자체가 아주 부족한데다 순교 명성과 평판에 갖가지 이견이 제시되면서 시복 추진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제외돼 온 황사영 순교자가 지난 2월 조선왕조 치하 2차 시복추진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그의 시복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모색되기에 이른 것이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 원장 안명옥 주교)는 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심포지엄을 갖고 영성신학과 윤리신학, 역사학, 시복시성절차법 등에 비춰 황사영에 대한 시복작업 추진 가능성을 타진했다.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황사영이나 「백서」에 대한 평가는 신앙적 관점과 민족적 관점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시복시성이라는 관점에서 두 관점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선입견 없이'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을 마음에 되새길 것을 주문했다.

 최현식(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와 유경촌(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신부, 김수태(안드레아)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등 신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황사영의 죽음이 순교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박해자인 조선 조정의 '신앙에 대한 증오'가 명백하고 황사영의 순교 원의가 항구하며 죽음이 실제적이기에 순교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윤리신학적으로 중요한 시복 절차 가운데 하나인 순교 명성이나 평판이 황사영의 경우엔 부정적이지만, 조선교회 신앙인들에 대한 보편적 가치나 인권 훼손은 어떤 실정법으로도 합법화될 수 없기에 부정적 인식의 극복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균(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주임) 신부는 "무엇보다도 황사영 백서 자체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고, 백서 전체가 균형 잡히게 평가된다면 그 윤리적 정당성,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자 했던 황사영 내면의 양심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사영 백서는 신앙의 자유라는 단선적 차원보다 사회 구원, 민족 생존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본다면 인권선언서로 평가할 수 있고, 황사영을 비롯한 신유박해 순교자들은 반상이나 남녀 차별을 극복한 평등실천가, 전제군주체제를 비판한 개혁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박해 소식 알리고 조선교회 재건 위해 백서 작성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심포지엄


 

▲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초상


 

   27살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간 조선 유생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 1801년 9월 신유박해 당시 '백서(帛書)'사건으로 붙잡혀 능지처사를 당한 대역죄인 황사영이 교회사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한국천주교회가 지난 2월 조선왕조 치하 2차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로 선정하면서다.

 그렇다면 황사영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걸림돌은 뭘까? 걸림돌이 있다면 그럼에도 그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를 놓고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1일 서울 중곡1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다.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은 안명옥(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위원장 겸 마산교구장) 주교 축사와 '황사영의 신앙과 죽음에 대한 자리매김'에 관한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1부와 2부로 나눠 다섯 소주제에 대한 발표를 듣고 종합토론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소주제 발표는 △영성신학의 입장에서 조명한 황사영의 신앙과 성덕(최현식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황사영의 행위와 죽음에 관한 윤리신학적 소고(유경촌 신부,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황사영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사료 재조명(김수태,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황사영 백서의 종교적 본질과 사회적 비판(박광용,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황사영의 순교와 시성 규범(박동균 신부, 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주임) 차례로 진행했다. 다음은 주요 주제발표 내용.

▲ 「황사영 백서」를 7차례나 필사한 박이식(요한 사도)씨가 자신이 제작한 백서 필사본을 주교회의에 기증하자 사회자 박선용(오른쪽) 신부와 세 번째 주제발표자인 김수태 교수가 이를 심포지엄 참석자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다.



 ▶피의 순교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

 영성신학적 입장에서 최현식 신부는 백서를 통해 황사영은 자신의 순교영성을 이루는 그리스도교적 근거들로 하느님은 대군대부(大君大父)이자 은주(恩主)라는 인식을 드러냈다며 그 신앙의 목표로서 개인적으로는 완덕(完德),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완덕에의 부르심인 성화소명(聖化召命)을 꼽았다고 밝혔다. 이어 신앙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황사영은 복음화와 전교, 교회 재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지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위해 향주삼덕, 곧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 신부는 또 황사영의 영성으로 공동체 중심적 영성, 전례 중심 영성, 기도 영성, 성사 영성, 선교 영성 등 다섯 가지를 꼽고, 피의 순교를 통해 황사영은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갔다고 결론을 맺었다.

 
 ▶저항권 행사일 때 제한적으로 윤리성 확보

 유경촌 신부는 조선교회 재건과 성직자 영입을 위한 방안으로 백서에서 제시된 도득황지(圖得皇旨), 내복감호(內服監護), 대박청래(大舶請來) 등 소위 '3조흉언(三條凶言)'에 대한 윤리신학적 평가를 시도했다. 이 가운데 청나라로 하여금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행사토록 하는 도득황지 방안이나 서양 선교사 영입 방편으로 조선과 청나라 간 언어와 의복을 섞어 왕래를 쉽게 하고자 한 내복감호는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가치중립적 사안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병사 5∼6만 명과 서양군함 수백 척에 대포를 비롯한 무기들을 싣고와 서양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우호조약을 강제하는 대박청래는 군사력, 즉 폭력을 동원하는 일이기에 윤리적으로 선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무력을 수반한 대박청래 방안은 황사영의 행위가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을 거스른 당시 조선 조정에 대한 불가피한 저항에서 이뤄진 것으로 본다면, 그가 택한 방법이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부도덕한 정권의 폭주에 저항할 권리를 교회는 공동선의 관점에서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로서 황사영에 주목

 김수태(안드레아) 교수는 신앙인이 아니라 역사가로서의 황사영에 주목했다. 그래서 「황사영 백서」를 역사적(당대적) 의의와 현대적(현재적) 의의를 구분해 고찰한 뒤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올바른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백서 역주작업은 체계적, 실증적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사료로서 「황사영 백서」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황사영 백서」를 주문모 신부에 대한 순교 보고서이자 새로운 성직자 영입 청원서라고 봤다. 나아가 한국인 신자의 순교사적을 기록한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사 저술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백서에 조선교회 성립 이후 10여 년에 걸친 군란(窘亂), 곧 박해의 정치적, 사상적 원인과 전말이 기록돼 있고, 백서에 수록된 인물 55명 가운데 밀고자를 제외하고 천주교회와 관련된 인물 39명에 대한 박해사실 및 활동 내용, 간략한 기록이 담겨있는 데서 비롯됐다.
 

 ▶오늘날과 당시 판단은 서로 어긋날 수 있다

 박광용(아우구스티노) 교수는 오늘날 합리적으로 보이는 판단과 당시 보편성에 입각한 판단이 서로 어긋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물론 당시 황사영 심문기록이나 결안에서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황사영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일관되게 왕조국가에 대한 병란 도모이자 반역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비판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황사영이 조선의 국가적, 민중적 지식인인 동시에 동아시아적 지식인이라는 관점에서 백서에서 취한 입장을 새롭게 분석한다. 유교적 지식인이자 동아시아적 지식인의 입장에서 황사영은 당시의 상황을 난세로, 따라서 "혁명의 시대이자 반정의 시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상영은 대박청래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제안이 어짐(仁)과 정의(義)를 다하는 아주 뛰어난 표양이 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황사영의 방안이 애국-애족적 입장에서 제기된 건 아니지만 가톨릭적 영성 속에서 교회 공동체를 우선시하며 제기된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만하다고 보았다.

 

 ▶황사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 극복은 가능하다

 박동균 신부는 황사영의 체포와 심문, 처형에 이르는 과정은 '신앙에 대한 증오'라는 박해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으며, 순교자들이 지녀야 할 지향인 순교 원의의 항구함이나 순교 자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다만 황사영에 대한 순교 명성과 평판(윤리적 확실성)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은 황사영의 시복 추진에 있어 가장 큰 장애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최근 시복시성주교특위에서 그를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극복이 가능하며 그 순교 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 교회의 노력을 선언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황사영에게는 윤리적으로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올바르지 않다는 윤리적 대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는 자연법론에 근거해 백서의 보편적 가치를 확인한다면 극복 가능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 신부는 또 법적 차원에서 현대의 형법 원칙에 비춰봤을 때 황사영이 대박청래 등을 제안했지만 △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갖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아닐뿐더러 옮길 수 도 없었고 △그 계획은 당시에 이미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것으로 황사영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는 점을 들어 황사영에게 적용돼 실행된 처형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황사영 백서 사건은 당시 조선왕조의 일방적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반민족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평가하는 데만 머무른다면 윤리적으로 그 정당성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세계사적 지평에서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으로 형성된 근대주의를 배경으로 평가한다면 백서가 지닌 긍정적이고 선구적인 의미와 가치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박 신부는 주장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기조강연을 한 김희중(앞줄 왼쪽) 대주교 등이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