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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시복 감사 미사 강론(사도좌 정기방문 2015년3월12일)

 


 



 


 


시복 감사 미사 강론


(2015년 3월 12일(목) 베드로 대성전)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광화문 광장에서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를 드린 감동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을 회상하며 지금 우리는 베드로 대성전에서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전면의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창 밑의 의자 내부에는 베드로 사도께서 사용하셨던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의자가 들어있는데, 이 의자를 중심으로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암브로시오 주교와 아우구스티노 주교, 동방교회를 대표하는 아타나시오 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네 분의 대표적인 교부들이 베드로 사도의 의자를 받들고 있습니다. 이는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으로 신앙과 신학상으로 일치하여 하느님 나라를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뜻깊은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함은 한국천주교회도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을 기념함은 단순히 감상적인 추억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함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서에서 뛰어난 율법학자 엘아자르에게 이교도의 법을 따르라는 회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아자르는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며 하느님의 법을 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재산, 가족까지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들도 엘아자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그 분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하느님은 순교자들의 믿음을 통해 당신 백성을 자라게 하셨으며 저희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을 따라 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 8월 시복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 순교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고 있으며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순교자들을 위한 현양비를 세우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순교정신이 우리네 삶 안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어나가야 하는지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밀알은 땅에 뿌려지면 같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씨앗 자체가 썩어 양분이 되고 뿌리가 양분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새로운 싹이 돋아나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정신으로 살아야 할지 그 방향과 삶의 자세를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세상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죽이고 겸손하게 낮추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밀알이 부서지지 않고 만약 그대로 보존하려고 하면 썩기는커녕 한 알 그대로 남아있어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희생 없이는 썩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희생의 참 뜻을 모르는데 어찌 삶의 기쁨이 주어지겠습니까? 씨앗으로 돌아가 싹을 틔우고 보이지 않는 흙 속에 묻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남모르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 흙 속에 파묻혀 썩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집안에도 십자가 없는 집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헌신하는 희생적인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한국천주교회의 외적인 성장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고 기도하며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도 늘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많은 분들의 희생 때문에 2000년 세월 속에서 교회가 든든한 하느님의 반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분이 없으십니다.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기 위해 아무리 작은 부속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것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다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분이십니다.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는 교우 여러분, 일생을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봉헌하시는 성직자 수도자 여러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생활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고자 합니다. 지난 사순절 동안 사랑의 삶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남은 기간에라도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자신의 십자가를 느끼지 못하면 사순절의 전례 또한 무의미할 것입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순절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연례행사일 뿐입니다. 부활절은 사순절의 결실입니다.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씨앗이 썩으면 새싹은 당연히 돋아나게 됩니다. 올해 부활절은 우리가 새롭게 성장하여 삶의 또 다른 싹을 틔워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다.


 


주님. 다가오는 부활축일에 저희도 새로운 사람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사순시기를 희생과 봉사, 용서와 화해의 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저희도 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본받아 저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굳건히 이겨 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