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로도 불리는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역으로 이사하였고, 1866년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가 체포되던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사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함께 체포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에 힘입어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마침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