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성인 연표

시성

1968년 한국 순교 복자 24위의 시복 이후 103위 복자의 시성 추진을 위한 현양운동 시작
1971년 12월 13일
~17일
주교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식 안건 채택: 연구 과제로 미루어짐
1975년 9월 13일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과 103위 복자의 시성을 위한 후원 활동과 현양 사업을 전국적으로 추진하기 로 결의
1975년 10월 28일 시복 시성을 위한 자문 위원들을 위촉
1976년 4월 21일
~23일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주교들의 연명으로 작성한 103위 복자들의 시성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함과 동시에 김남수 안젤로 주교를 시복 시성 촉진 책임 주교로 선출
- 103위 시성 추진과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 추진 운동이 본격화 되기 시작
- 이후 주교회의는 시성 추진을 위한 기도문을 전국 본당에 배포
1977년 10월 13일 김남수 주교는 로마 유학 중인 박준영 루도비코 신부를 로마 주재 법정 대리인으로 임명
1977년 11월 7일 시성성으로부터 승인을 받음
1978년 4월 13일 한국 복자 103위의 시성 건이 정식으로 접수되어 교황 바오로 6세의 윤허를 받음
1980년 7월 17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준비위원회에서 시성 추진을 200주년 기념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입안
1980년 11월 17일 변기영 베드로 신부가 시복시성추진위원회의 실무 책임 담당 총무로 임명됨
1982년 6월 18일 박준영 신부 후임으로 김진석 마태오 신부가 로마 주재 법정 대리인으로 임명되어 시성성의 승인을 받음
1982년 5월 28일 한국 주교회의에서 시성의 요건인 '기적 관면'을 시성성에 요청하였으나, 시성성에서는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보내옴
1982년 9월 9일 제1차 시복시성추진위원회 개최:
- 초기 교회 순교자 중에서 우선 22명을 선정하여 조사와 약전 작성을 전문가들에게 의뢰
- 주교단에서는 200주년 기념행사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도록 추진함과 동시에 이때 시성식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을 교황청에 건의하기로 결의
1982년 11월 19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로마의 추기경 회의에 참석한 뒤 교황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주교단의 의사 전달: 교황으로부터 방한을 희망한다는 확답을 얻음
1983년 1월 28일
부터
한국 천주교회에서 순교자 유해의 순회 기도를 시작
1983년 2월 12일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인 변기영 신부 교황청 시성성 차관으로부터 한국 주교단의 이름으로 기적 관면 청원서를 다시 한 번 교황청에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음
1983년 3월 5일 한국 주교단에서 '기적 관면 청원서'를 작성
1983년 3월 7일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가 김진석 신부의 뒤를 이어 로마 주재 법정 대리인에 임명
1983년 3월 24일 교황 대사 몬테리시(F. Monterisi) 대주교의 추천서를 첨부한 '기적 관면 청원서' 교황청에 제출
1983년 6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성 장관의 제청과 추기경 회의 의견을 참작하여 기적 심사 관면을 허락
- 한국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에 가장 중요한 관문 통과
1983년 7월 13일 한국의 시복시성추진위원회에서는 주교단 17명의 연서로 시성식 장소를 한국으로 정해 줄 것과, 동시에 시성 청원서의 제목을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102위 동료 한국 순교자들"로 변경해 줄 것을 교황에게 청원
1983년 9월 2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별회의에서 한국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을 승인 · 선포
1983년 10월 29일 교황청의 한국 주교단에서 요청한 두 가지의 청원 수락
1983년 11월 7일 시성성에서 이미 10월 25일자로 한국 순교 성인의 축일 명칭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결정하였음을 한국 주교단에 통보해옴
19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을 최초로 방문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복자 시성
- 아비뇽 교황 시대 이후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 밖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시성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