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운’이라고도 불렸던 손선지는 충청도 임천(林川)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착해 16세 때 정(샤스탕) 신부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순교할 때까지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병인 박해 때 그는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면서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2월 5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정문호, 한재권 등과 함께 전주 감영 후면옥에 갇혔다. 신문을 받다가 회장 신분이 탄로나, 관장에게 공소를 거쳐 간 서양 신부들의 이름과 교회 서적의 출처를 대라고 강요당하며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손선지는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함께 체포된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다가,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숲정이에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47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