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정찬문 안토니오 (1822-1867)
경상도 진주 허유고개 중촌(현, 경남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의 양반 집안에서 1822년에 태어난 정찬문(鄭燦文) 안토니오는, 먼저 세례 받고 입교한 아내로부터 뒤늦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런 다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니, 그의 나이 41세 때인 1863년이었다.
이후 정 안토니오는 3년 이상을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살았다. 그러던 가운데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나 사방에서 신자들에 체포되기 시작하였고, 그해 가을에 그도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일가 친척과 평소에 알던 그 지방의 하급 관리가 와서 “배교한다는 말만 하면 끌려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유혹하였지만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진주로 끌려간 정 안토니오는, 25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종종 관장 앞으로 끌려 나가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동안 그의 가산은 적몰되고 가족은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의 아내는 밥을 빌어다 옥으로 가져가 그에게 넣어주곤 하였다.
어느 날 정 안토니오는 다시 옥에서 끌려 나와 무수히 매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옥으로 끌려 들어간 뒤, 그날 밤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으니, 이때가 1867년 1월 25일(음력 1866년 12월 20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정찬문 안토니오가 순교한 뒤 그 시신은 3일 동안 옥에 버려져 있었다. 그의 조카들이 그의 시신을 거두어 고향 인근에 장사를 지냈는데, 그때까지도 그의 몸이 굳지 않았고, 얼굴에 화색이 있어 산 사람 같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