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복자 약전

No.123 박대식 빅토리노
박대식 빅토리노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사람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로는 언제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68년의 박해 때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과 김해 포졸들이 함께 그의 집으로 몰려와, 박 빅토리노와 그의 조카 박수연을 체포하여 김해 관아로 압송하였다. 당시 그의 조카는 아직 예비 신자였다.

김해 관아의 옥에서 박 빅토리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동료로 맞이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였기에 3일 만에 대구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대구 감사는 결국 박 빅토리노와 그의 동료들을 결코 배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박 빅토리노는 조카와 동료 2명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로, 당시 빅토리노의 나이는 56세였다.

참수형을 집행한 다음,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 아래 그들의 머리를 높이 매달도록 하였다. 한편 빅토리노의 가족들은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구로 와서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발췌: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2017. 10. 20. 제3판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