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윤봉문 요셉 (1852-1888)
윤봉문(尹鳳文) 요셉은 경상도 경주 인근에서 윤사우 스타니슬라오와 막달레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의 가족은 1866년의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당한 뒤에 양산으로 이주하였다가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거제도로 건너가 진목정(현, 경남 거제시 옥포동)에 정착하였다.
윤 요셉의 부친인 윤 스타니슬라오는 그 이전부터 비밀리에 천주교 신앙을 전하고 다녔다. 또한 거제도로 이주한 뒤에는 진 요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입교시켰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윤봉문 요셉은 장성하여 진 아녜스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1887년 겨울에는 경상도를 담임한 로베르(A. P. Robert, 金保祿)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고자 거제도를 방문하였다. 이때 윤 요셉이 거제도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로베르 신부를 안내하였는데, 그해 거제도에서는 15명의 어른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로베르 신부가 거제도를 떠난 이듬해 봄에는 그곳에서도 박해가 시작되었다. 통영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함으로써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려고 일으킨 박해였다. 이 박해 때, 윤 요셉은 다른 교우 3명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그 혼자만 통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모진 형벌에도 관장이 강요하는 배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영 관장은 이 사실을 곧바로 대구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감사는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도적과 같으니, 윤봉문을 진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윤 요셉은 진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십계명을 외우면서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그를 하옥시킨 뒤, 그날 밤에 옥리들을 시켜 교수형을 집행토록 하였으니, 그때가 1888년 4월 1일(음력 2월 20일)로, 당시 윤 요셉의 나이는 36세였다.
윤봉문 요셉이 순교한 다음, 로베르 신부는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교구장에게 보고하였다.
“저는 운 좋게도 이 거룩한 순교자를 친밀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열심한 교우였으며, 비신자들의 회개를 위한 열성이 가득하였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벌써 그에게 눈길을 주어 여러 섬에 신앙을 전파하는 일에서 저를 돕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제게서 빼앗아 가셨지만, 그것은 당신의 충실한 벗들에게만 주시는 영광을 그에게 주시려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