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안군심 리카르도 (1774-1835)
1774년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난 안군심 리카르도는 청년 시절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경상도로 이주하였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교회 서적을 베끼는 일에 몰두하면서 살았다.
본디 명랑한 데다가 겸손하고 친절하였던 안 리카르도는 누구나 애덕으로 대하였고, 그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생활하였다. 또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와 묵상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보통 일주일에 세 번씩은 단식재를 지켰다.
언제인가 안 리카르도는 포졸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관장 앞으로 끌려 나가 모호한 말로 대답하여 석방되었고, 이후로는 언제나 그때 분명하게 신앙을 증언하지 못한 것과 용기가 부족하였던 것을 후회하였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안 리카르도는, 언젠가는 자신도 체포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동안 교우들에게 나누어준 서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얼마 동안 숨어 지내면서 순교할 준비를 하였는데, 상주 포졸들이 마침내 그곳을 찾아내서 그를 체포하였다.
상주 관장은 안 리카르도를 보자마자 천주교 신자인지를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교리를 외워 보라고 하자, 그는 몇 가지 중요한 교리를 외우고서는 간단하면서도 명백하고 천주교 교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 관장이, “국법을 어기는 것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주는 우주의 큰 임금이고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므로, 우리는 그분을 만물 위에 공경해야 합니다. 임금님과 관장님과 부모님은 천주 다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이어 관장은 천주를 배반하고 동료들을 밀고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안 리카르도는 이를 거절하고 형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자주 옥에서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언제나 끈기 있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대구로 이송토록 하였다.
안군심 리카르도는 대구 감영에 도착한 뒤에도 리카르도는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의 몸은 이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천주에 대한 그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지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고는 다시 옥으로 끌려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동안 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1835년 이질에 걸려 사망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6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