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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보은, 충주
자(字)가 ‘시경’이고, 관명이 ‘준기’인 김준기 안드레아는 충청도 진천(鎭川) 출신으로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는 신자들이 비밀리에 교우촌을 이루고 살던 진천 새울(현 충북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로 이주해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의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이나 교우촌을 수소문하고 다니던 진천 포교들에 의해 새울 교우촌도 발각되고 말았다.
진천 포교들이 포졸들을 데리고 새울 교우촌으로 들이닥친 것은 1866년 10월 초였다. 그때 안드레아와 함께 새울에 있던 네 명의 신자가 체포되어 진천 관아로 압송되었고, 체포되는 것을 면했던 조대여(판크라시오)는 이튿날 진천 관아에 자수하였다.
안드레아와 동료 신자들이 체포되어 오자, 관장은 신앙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도록 권유하면서 여러 가지로 문초했지만, 순교를 각오한 그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관장은 안드레아와 동료 신자들을 청주로 이송토록 하였고, 그들은 포졸들에게 이끌려 청주 진영(현 충북 청주시 남문로 1가)으로 압송된 뒤 다시 옥에 갇혔다.
청주 영장 앞에서 있은 문초와 형벌은 진천 관아에서보다 혹독하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다. 또 함께 형벌을 받던 교우들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보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하기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함께 순교하자.”고 하면서 힘써 권면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옥중에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뒤를 따르라고 가르쳤고, 동생에게도 다음과 같은 당부 편지를 보냈다.
“동생 보아라. 그 사이 어머님 모시고 잘 지냈느냐? 나는 주모(主母)의 도우심으로 아직까지 생명을 보존하고 있지만, 어느 날인가는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실 것이다. 너는 내가 죽은 후에도 어린 조카를 잘 가르치고, 열심히 수계해서 내 뒤를 따라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여라.”
이후 안드레아는 끝까지 형벌을 극복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런 다음 동료 교우들과 함께 순교했으니, 그때가 1866년 11월 23일(음력 10월 17일)이었다.
(2018. 4.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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