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장소
구산, 천진암, 남한산성, 뫼룬리
정여삼 바오로는 충청도 직산 사람으로 일찍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생활하다가 용인의 삼배일 점촌(현 용인시 이동면 덕성리의 삼배울)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모친을 모시고 조카 정덕구 야고보 가족과 함께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의 병인박해가 발생하였고, 11월 26일(음력 10월 20일) 광주 포교 세 패가 삼배일로 쳐들어와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할 때, 정여삼 바오로도 모친과 조카 정덕구 야고보와 마티아, 예비 신자 이화실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교들은 이들을 모두 한 방에 몰아넣고는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은 뒤 “신자들을 밀고하라.”고 재촉하였으나, 모두가 “죽을지언정 신자들이 있는 곳을 밝힐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바오로와 이화실, 야고보를 심하게 때려 정신을 잃게 하였다.
이어 포졸들은 야고보의 동생 마티아의 쇠사슬을 풀어주고는 술과 고기를 사오라고 하였다. 마티아는 술과 안주를 실컷 마시고 먹은 포교들이 잠에 빠지자, 가족들과 함께 도망쳐 뒷산으로 올라갔다. 한편 야고보는 새벽에 깨어나 삼촌 바오로와 이화실을 흔들어 깨웠으나 일어나지 못하자 혼자서 몰래 빠져나와 동생과 가족들이 숨어 있던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후 정여삼 바오로는 이화실과 함께 광주로 압송되어 순교하였으니, 당시 바오로의 나이는 44세였다.
(2018. 4.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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