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68 서유형 바오로

68. 서유형 바오로 ( ? ~1867)

 

서유형(徐有亨) 바오로는 1867년의 상주 순교자 서태순(베드로)의 친척으로, 일찍이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로 이주해 살았다. 1866년의 병인박해 당시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곳은 경상도 점촌의 모전(茅田, 현 문경시 모전동)이었다.

병인박해 발생 후 곳곳으로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러 다니던 포교들이 모전 부락에 들이닥친 것은 가을 추수가 끝난 1866년 10월경(음력)이었다. 이때 바오로는 물론 그의 아내 성재추(막달레나), 일곱 살 된 딸, 세 살 된 아들 순보와 하인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또 포교들은 바오로의 형 집으로 달려가 바오로의 형수인 박 루치아를 체포하였고, 인근에 살고 있던 방 회장도 체포하였다.

이내 상주 진영으로 압송된 바오로 일행 가운데 그의 하인들은 그날로 석방되었고, 얼마 뒤 바오로의 아내 막달레나도 어린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에서 자식들과 함께 석방되었다. 반면에 바오로의 일가족과 방 회장은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투옥되었으며,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석방된 막달레나는 이후 먹을 것과 의복을 마련하여 감옥으로 들여보내는 등 옥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한편 감옥에 남아 있던 방 회장은 어느 날 탈출을 결심하고, 함께 있던 바오로에게도 이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렇게 순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언제 하느님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감옥에는 바오로와 그의 형수인 루치아, 문경 한실(현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에서 체포되어 온 김 아우구스티노와 서태순(베드로) 등만이 남게 되었다.

상주 진영에서는 감옥에 있는 신자들을 하나씩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서유형 바오로도 1867년 1월 23∼24일(음력 1866년 12월 18∼19일)에 형수 루치아를 비롯하여 김 아우구스티노, 서 베드로 등과 함께 다시 한 차례 매를 맞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굵은색 표시는 약전 출간 이후 수정된 내용이다.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