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의
생애, 덕행 그리고 순교 명성에 대한 예비심사 폐정
한국 전쟁을 전후해 북한에서 공산주의 체제하에 목숨을 잃은 성 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와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 교구 및 연길 교구 사제들의 시복 예비심사를 위한 법정이 곧 폐정한다. 이어 교황청 시성성에서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 이하 왜관수도원)은 시복 추진의 주체이긴 하지만 예비 심사를 위한 법정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2009년 당시 춘천교구장이었던 장익 주교에게 이 예비 조사를 진행해 주도록 요청하였고, 교구장 퇴임 이후에는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를 대리하여 장익 주교가 이 조사를 이끌었다.
왜관수도원에서는 2007년 2월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평의회의 권고와 200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춘계 총회에서의 격려로, 북한에서 순교한 수도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생애, 덕행 그리고 순교 명성에 대한 예비심사를 추진한 지 만 10년 만인 2017년 10월 19일 오후 3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예비 조사를 마무리하는 폐정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시복 재판 청구인인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와 부청원인인 이성근 신부는 시성 절차법에 따라 폐정식 때 예비심사 조서와 사본들,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문서들을 봉인한 뒤, 오는 10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할 예정이다. 예비심사 조서가 접수되면 교황청 시성성은 이에 대한 조사와 보고 문서를 작성하며 이 안건에 대해 심사를 시작하게 된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 그림.(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장)
▨ 시복 청원 배경과 대상자 선정 과정
왜관수도원은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2월에 개최된 연합회 평의회(Congregation Council)의 권고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07년 춘계 총회의 논의를 거쳐,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도”로서, 북한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와 관련된 수도자와 성직자들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대희년중앙위원회 새순교자위원회는 1996년 9월 18일에 [순교자에 대한 성찰과 지침]을 마련하여 “우리 시대의 최근년까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피를 흘린 모든 이를 미래에도 기억하자”고 호소하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기도 했다.
대상자 선정 작업에는 오딜리아 연합회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재 아빠스와 왜관수도원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를 비롯한 수도원 관계 인사들과 성 오딜리아 연합회 역사 저술가인 요한네스 마르 박사가 참여했다.
대상자 선정 기준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즉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순교했거나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 베네딕도회 소속 남녀 수도자들과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및 연길 교구 소속 교구사제들이었다.
왜관수도원이 처음 선정한 대상자는 36명으로서, 덕원수도원 소속 사제와 평수사 26명, 연길수도원 소속 사제 1명, 독일 보이론 수도원 소속 사제 1명, 툿찡 포교 성베네딕도회 원산수녀원 소속 수녀 3명과 헌신자 1명,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소속 사제 4명이다.
그러나 시복시성 절차를 준비하던 중에 서울교구 관할이었던 황해도에서 사목하다가 공산정권에 체포되어 행방불명된 연길교구 소속 한승윤 필리보 신부와 신윤철 베드로 신부가 대상자 선정 기준에 해당되면서도 명단에서 누락된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 이형우 아빠스는 이 두 명을 대상자에 포함시켜 주기를 관할 주교에게 요청하였고,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상자는 모두 38위가 되었다.
▨ 시복시성 안건의 예비심사 경과
1) 교령 반포와 청원인 임명 왜관수도원 이형우 아빠스는 수도원 장로회의 표결과 참사회의 자문을 얻어 2007년 5월 10일,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했다. 이로써 이형우 아빠스는 이 시복시성 안건을 위한 청구인이 됐다. 이형우 아빠스는 청구인으로서 독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 소속 에두아르도 로페즈-텔로 가르시아 신부를 청원인으로, 왜관 수도원 소속 이성근 사바 신부를 부청원인으로 임명했다.
2) 관할권과 안건 착수 본 안건의 경우 관할권은 본래 평양교구, 서울대교구,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의 주교들에게 있다. 이를 하나의 안건으로 통합하기 위해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인 이형우 아빠스는 평양교구장 서리, 서울대교구장, 함흥교구장 서리에게 관할권을 자신에게 이전해 줄 것을 요청하여 서면 동의를 얻었다.
시복시성 예비심사의 관할권을 이양받은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 이형우 아빠스는 안건을 추진할 교회법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에게 본 안건을 접수하고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함흥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던 장익 주교는 함흥교구와 과거 덕원자치수도원구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춘천교구에서 해당 안건을 접수하고 추진할 것을 승낙하였다.
3) 주교회의 동의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 이형우 아빠스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09년 추계 총회에서 시복시성 안건의 적절성에 대해 자문을 구하였고, 주교회의는 왜관수도원이 개별적으로 안건을 추진하도록 전원 동의하였다(중협주 2009-58 공문).
▨ 시복시성 예비심사 과정
1) 예비심사 착수와 법정 개정 2009년 12월 18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성당에서 한국천주교회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시복재판이 열렸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시복시성을 위해 구성된 이 예비심사 법정은 20세기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첫 시복재판이란 점에서 교회 안팎으로 주목받았다.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안건 착수 교령을 반포하고, 교회 신문인 「평화신문」과 「가톨릭 신문」을 통해 안건 착수 교령을 공표하였다. 이어 2009년 12월 28일 왜관수도원 성당에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에 대한 시복시성 소송을 개정하였다. 개정식에서 장익 주교는 직접 재판관으로 부임하였고, 검찰관으로 서울대교구 변종찬 신부, 공증관과 보조공증관으로 전성홍 형제와 정혜경 자매가 임명되었다.
2010년 1월 28일 장익 주교가 함흥교구 주교 서리를 사임하고, 2010년 3월 25일 춘천교구장으로 김운회 주교가 착좌한 다음, 장익 주교는 김운회 주교로부터 소송을 위임받아(춘교 2010-12) 계속 재판관 직무를 수행하였다.
2) 회기 2009년 12월 18일에 개정하여 2017년 10월 19일 주교회의 사무처 강당에서 폐정하기까지, 소송은 아래와 같이 17차에 걸쳐 회기가 열렸다.
회기 |
일시 |
장소 |
내용 |
1차 |
2009. 12. 28. 10:30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 |
개정식 |
2차 |
2010. 4. 15. 14:00 |
춘천교구 법정 |
증인 김진해 마리아의 증언 |
3차 |
2010. 8. 16. 10:00 |
대구대교구 왜관 본당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홍범숙 베네딕다 수녀, 툿찡 포교 성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박정렬 오틸리아 수녀의 증언 |
4차 |
2010. 8. 16. 14:30 |
대구대교구 왜관 본당 |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의 베르티비나 체사르 수녀와 이정순 베로니카 수녀의 증언 |
5차 |
2010. 8. 17. 14:30 |
대구대교구 왜관 본당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노규채 아우구스티노 신부와 증인 방정종 마리아의 증언 |
6차 |
2010. 8. 18. 09:30 |
대구대교구 왜관 본당 |
증인 김춘자 바울라, 김순례 가리나의 증언 |
7차 |
2010. 8. 18. 16:00 |
대구대교구 왜관 본당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석철 미카엘 수사의 증언 |
8차 |
2011. 5. 11. 09:3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강오수 마리아 루갈다 수녀와 박숙안 카리타스 수녀의 증언 |
9차 |
2011. 5. 11. 14:0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평양교구 김득권 굴리엘모 신부의 증언 |
10차 |
2011. 5. 12. 09:0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서울대교구 유봉준 토마스 신부의 증언 |
11차 |
2011. 11. 3. 09:00 |
부산교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의집 |
증인 권병서 스테파노의 증언 |
12차 |
2011. 11. 3. 14:00 |
부산교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의집 |
툿찡 포교 성 베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의 장초득 피아 수녀의 증언 |
13차 |
2016. 9. 20. 15:00 |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
번역자, 신학 검열관 임명, 역사위원회 위원 부분 임면 |
14차 |
2017. 9. 6. 15:3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복사자 임명, 신학 검열관 보고서 제출 |
15차 |
2017. 9. 15. 15:3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역사위원회 보고서와 문서 증거 제출, 조서 공표 |
16차 |
2017. 9. 26. 15:00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소송 조서의 사본과 번역본 제출, 원본과 비교 |
17차 |
2017. 10. 19. 15:00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폐정식 |
시복 예비심사 법정은 17차례 회기를 거쳐 2017년 10월 19일 오후 3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종결 교령 반포로 폐정하게 됐다.
왜관수도원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와 부청원인 이성근 신부는 하느님의 종 38위에 대한 시복 예비심사 조서 사본과 영어 및 이탈리아어 번역본을 10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할 예정이다.
▨ 시복 대상자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는 해방 후 정치 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무신론자인 공산당원들에 의해 무참히 순교한 이들이다. 독일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이 땅에서 봉사하던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북녘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증거하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6ㆍ25 전쟁을 전후해(1949~1952) 공산주의자들 손에 적잖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는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ㆍ연길수도원ㆍ원산수녀원 소속 수도자들과 함흥대목구ㆍ연길대목구 소속 사제 38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는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이고,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이다. 교계 직분으로 좀 더 세분하면 주교 1명, 성직수사 13명, 덕원ㆍ함흥교구 사제 4명, 평수사 13명, 수녀 3명, 평신도 1명으로 구성돼 있고 연길교구 사제 2명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25명은 독일 7개 교구 출신 수도자들이다.
또 이들 38위 순교자 중 23명은 평양인민교화소와 자강도 만포 관문리 수용소 등지에서 총살이나 지병 등으로 살해됐고, 13명은 옥사덕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과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한윤승(필립보)ㆍ신윤철(베드로) 신부는 해주 인민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근처 바닷가에서 생매장됐다.
주요 인물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며 덕원수도원 수도원장이었던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덕원 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그리고 고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등이 있다. 또 루치우스 로트 덕원수도원 원장 신부는 교황 비오 12세가 독일 주재 교황대사로 있을 때 대사 비서로 일했고,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는 한국어 신약성경을 번역 출간해 성경 보급에 앞장섰다. 백작 가문의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는 '두메 본당 신부'로 희생적 삶을 산 수도자였다. 또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는 한국인 첫 수련장 수사였고, 성 남종삼(요한)의 후손인 부산 출신 김동철(마르코) 신부는 월남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기 본당을 버리지 않고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체포돼 순교했다.
▨ 순교 자료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삶과 수난사는 처음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인 수도자들이 평양 인민 교화소에 갇혔을 때 수도원에서 쫓겨난 몇몇 한국인 수도자는 담장 안의 형제와 비밀 쪽지를 주고받았다. 이들 한국인 수도자들의 담대한 용기가 없었던들 많은 순교 행적이 영영 땅속에 묻힐 뻔했다. 또한 옥사덕 수용소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하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수도자들의 증언도 그들의 순교 사실을 알리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 시복 청원 의미 20세기 순교자로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에 대한 시복시성 청원이 지니는 각별한 의미는 이들이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나누었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치·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분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 사건은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니다.
이들 38위 순교자들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순교 행적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가슴에 품고 공경할 만하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한국에 처음으로 진출한 남자 수도원이다. 1908년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 요청으로 이듬해 1909년 2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수도승 2명이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해 서울 백동(혜화동)에 수도원을 세우며 성 베네딕도회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서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숭공학교와 숭신학교를 잇따라 설립해 교육에 치중했고, 1911년 수도원과 성당을 완공했으며, 1913년엔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했다.
1920년 8월 경성대목구에서 함경남북도와 간도ㆍ의란 포교지를 관할하는 원산대목구가 분리 설정되면서 성 베네딕도회가 이 지역 선교를 위촉받고 사우어 아빠스가 초대 원산대목구장에 임명됐다. 1927년에는 서울 백동 수도원을 경성대목구에 매각하고 원산 인근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이전했으며, 1927~28년에는 덕원신학교를 건립했다.
1928년 7월 3일 원산대목구에서 의란 포교지가, 그해 7월 19일 원산대목구에서 연길지목구가 분리 설정되자 덕원수도원에서 연길 성 십자가 수도원이 분리된다. 1940년 1월 덕원면속구(현 덕원자치수도원구) 설정과 더불어 원산교구는 함흥교구로 개칭됐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북녘 땅에 진주하며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1949년 5월 9일 덕원 수도원이 폐쇄됐다. 연길 수도원도 1952년 8월 마지막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나면서 폐쇄됐다.
왜관수도원은 1952년 1월 월남한 덕원면속구와 함흥ㆍ연길교구 신학생 및 수사들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1953년 왜관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자 왜관 수도원은 본당 사목과 함께 출판사업을 통해 문서선교에 기여했고, 철공소와 목공소, 농장을 경영하며 자급자족했다. 또 피정의 집 설립, 본당 증설, 교회건축 등에 이바지했다.
1964년에는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해 자립수도원이 됐다. 1969년 5월 안동교구가 설정되면서 왜관 감목대리구 일부 관할권을 안동교구로 넘겼고, 감목대리구는 1986년까지 존속했다. 현재 왜관 수도원 수도자는 130명으로, 이 중 70명은 왜관 본원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고, 나머지 수도자들은 서울ㆍ부산ㆍ금남ㆍ화순ㆍ미국 뉴튼 분원에서 생활하거나 본당이나 수녀원 지도를 위해 파견되어 있다.
▨ ‘하느님의 종들’ 명단 1.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 2.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3. 고틀리프 아우어 수사 4.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 5. 장 악네타 헌신자 6. 최병권 마티아 신부 7. 다고베르트 엥크 신부 8. 파스칼 팡가우어 수사 9. 루드비피 피셔 수사 10. 일데폰스 플뢰칭거 수사 11. 페르루스 게르네르트 수사 12. 프룩투오사 게르스트마이어 수녀 13. 그레고르 기게리히 수사 14. 요셉 그라하머 수사 15. 바실리우스 하우저 수사 16. 솔라누스 헤르만 수사 17. 힐라리우스 호이스 수사 18. 김봉식 마오로 신부 19. 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 20. 김동철 마르코 신부 21. 김이식 마르티노 신부 22. 루페르트 클링자이스 신부 23.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24. 이재철 베드로 신부 25.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 26. 에우세비우스 로마이어 수사 27. 마르쿠스 메츠거 수사 28. 오이겐 오스터마이어 수사 29. 쿠니베르트 오트 신부 30. 박빈숙 루치아 수녀 31. 안셀름 로머 신부 32. 루치우스 로트 신부 33.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 34. 에바 슈츠 수녀 35. 그레고르 조르거 신부 36. 그레고르 슈테거 신부 37. 한윤승 필립보 신부 38. 신윤철 베드로 신부
(* 출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소식란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29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