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대전] 홍성-원시장,방프란치스코,박취득, 황일광
조사일시 : 2006.05.09
곳곳에 순교자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홍주읍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신앙의 증거터, 홍주(홍성). 1791년 이곳에서 하느님의 종 원시장 베드로가 순교하면서 이어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등 하느님의 종이 홍주 읍내에서 순교하였다.
홍주 관아(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홍성군청)
순교자들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하였뎐 홍주 목사의 동헌.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 마음을 크게 움직입니다.
홍주 관장은 원시장 베드로를 옥에서 끌어내어 형벌을 가하기도 하고, 마음을 돌려 배교를 하도록 혈육의 정에 호소해 보기도 하였지만 그의 한결같은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하여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의 몸에 물을 붓고 밖에 내다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가 덮어쓴 물은 이내 얼음으로 변하였고,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목숨을 봉헌하였다. 1793년 1월 28일, 당시 그의 나이는 61세였다.
홍주 감옥터(충남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848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내)
옥에 갇힌지 두달쯤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천주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잠결에 십자가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이 발현은 약간 희미하기는 하였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종 박취득 라우렌시오는 홍주 옥에 갇혀 모진 매를 맞았고, 8일 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의 상처가 기적적으로 나아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옥졸들은 요술이라고 생각하여 새끼줄로 그의 목을 졸라 죽였다.
홍주 감옥터
홍주 옥은 신앙의 증거 장소이기도 하면서 최대의 순교 터도 된다. 이곳에서 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등 113명이 옥중이나 그 인즌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홍주, 해미 성지 자료집>
홍주 형장터 인근(홍성읍 북문교의 월계천변)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홍주에서 태어난 황일광 시몬은 백정 출신으로 당시 사회에서 천대를 받으며 살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놀랄만한 지능과 열렬한 마음, 명랑하고 솔직한 성격은 큰 선물이었다. 그는 정약종 회장의 이웃으로 이주하여 황사영, 김한빈 등 여러 교우들과 자주 교류하며 신앙을 더욱 굳건히 키워나갔다. 신유박해로 체푀되어 다리가 부러져 으스러지도록 잔인한 매질을 당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그는 고향 홍주로 이송되어 도착하는 즉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순교자들은 생매장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잡혀온 신자들이 너무 많아 죽이기 어려워 생매장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