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6.06.2
1791년 신해년, 천주교인에 대한 공식적인 첫 번째 처형 |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바오로는 고결하게 그의 머리를 처형대 위에 올림으로써 1791년 신해년 음력 11월 12일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이것이 천주교인에 대한 공식적인 첫 번째 처형이었고, 바오로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성 다블뤼 주교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윤지충 곁에는 그의 투쟁과 영광의 동반자가 있었는데, ... 그는 권상연이라 불리는 사람이었고, 그의 세례명은 요한이다. ... 이 두 그리스도인은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권 요한은 그의 친척들과 벗들과 이웃들의 질책과 욕설을 윤 바오로와 함께 나누었다. 그는 윤지충과 함께 전주에 투옥되었다. 그는 거기서 윤지충과 함께 윤지충 못지 않게 의연한 태도로 신문과 형벌을 감내하였으며, 신해년 1791년 11월 13일, 41세의 나이로 신앙을 위해 윤지충과 동시에 전주에서 참수되었다. 성 다블뤼 주교 <조선 순교사 비망기>
전주교구 전동 성당 내 유리화 |
첫 결안이 도착하자 모든 것이 완료되었으며, ... 이렇게하여 임금 자신도 피하려고 했던 한 천주교인에 대한 첫 공적인 박해가 이루어졌고, 이날 이후로 이 박해는 우리의 적들에게 천주교인들에 대한 사형 선고를 국법으로 여기게끔하는 뒷받침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조선에 몇 번이나 넘쳤던 피바다의 원인이 되었다. 윤지충은 김범우가 용감하게 길을 보여준 순교의 월계관을 거기서 얻었다. 성 다블뤼 주교 <조선 순교사 비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