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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 (황사영 토굴과 기념 성당)

조사일시 : 2008. 5.21.

제천 고을 배론 , 황사영이 <백서>를 쓴 곳이며, 박해 시대 신학교가 있었고,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이곳 언덕에 있다.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어, 왕이 그의 비상한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불어들여 얼마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후대하여 친애하는 표로 손목을 잡기까지 하였던 황사영. 왕은 그에게 "네가 20세가 되거든 곧 나를 만나러 오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네게 일을 시키고 싶다." 하였다. 이후 왕의 손이 닿은 영광을 가진 이 손을 보통 사람은 마구 만질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손목을 명주로 늘 감고 다녀야 했던 그는 마재 정씨 집안, 즉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 명련과 혼인하여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구원의 학문이 아닌 다른 학문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황사영은 <백서> 사건으로 1801년 11월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27세의 나이에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그의 처형 이후 그가 소유했던 가산은 적몰되었고, 어머니는 거제도에, 아내는 제주도에, 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황사영은 이곳에서 은신하며 62 x 38 크기의 비단천에, 아주 가는 붓으로 121줄에 평균 한 행당 110개의 글자가 담긴 북경 주교에게 올리는 긴 편지(황사영 백서)를 썼다.

황사영 순교자가 백서를 쓴 토굴

그의 죽음은 모든 교우들을 매우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신부의 지식과 그의 강론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게 될 때 그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페롱 신부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1861년>

배론 성지 성당에 안치된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