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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량 생가터, 순교 현양·기념비

조사일시 : 2006.02.21.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생가터

 

1816년 제주 섬 함덕리(현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리)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하던 그를 사람들은 김선달이라고 불렀다.

그는 1857년 2월 동료들과 함께 무역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1개월 이상 표류하다
중국 광동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홀로 살아 남게 되었다.

그는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져 그곳에서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 신학생을 만나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제주의 사도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현양비

 

어와 벗님들아 순교의 길로 나아가세그러나 순교의 길로 나아가기는 어렵다네
나의 평생 소원은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것이요
밤낮으로 바라는 것은 천당뿐이로다
펠릭스 베드로는 능히 주님 대전에 오르기를 바라옵나이다.



오는 주일, 성령 강림 축일에 우리는 이미 말씀드린 난파한 조선인에게 세례를 줄 것입니다.
그는 교리를 완전히 배우고 영세의 행복한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요즘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사랑이라고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루세이유 신부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57년 5월 24일자 서한 중에서>

제주교구 조천 성당에 세워진 김기량 순교 기념비

귀국 직후 김 펠릭스 베드로는 고향인 제주로 나려가기 전
1858년 페롱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신부들은 그가 제주의 사도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가족과 그의 사공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데 열중하였으며,
육지로 나와 교구장인 베르뇌 주교를 만나 성사를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