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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조사일시 : 2006.03.08

양근성지

한국 천주교회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양반 집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앙을 이어받아 열심한 신자가 되었던 권상문 세바스티아노.1800년 6월 양근에서 일어난 박해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양근과 경기감영을 오가며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고, 포도청과 형조에서도 형벌을 받은 그는 고향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는 명령에 따라 양근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33세의 나이에 순교하였다.

신앙의 증인들이 순교의 길을 향해 건너간 양근 성지 근처 오미다리

양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어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당한 하느님의 종 윤유오 야고보, 동정생활을 원했지만 처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풍속으로 결혼한 과부처럼 행세하며 동정을 지켜나갔던 하느님의 종 윤점혜 아가타는 한양에서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고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고향인 양근으로 보내져 처형을 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양근 관아로 부터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큰 길가로 끌려나가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하느님의 종들이 참수된 처형장 일대(현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502-504번지 일대)

10년 동안이나 깊이 빠져 마음으로 굳게 믿고 깊이 맹세하였으니, 비록 형벌 아래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사학징의> 권1, 윤점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