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6.05.11
하느님의 종 오반지 바오로의 묘 |
새 신자 오 바오로는 8년 전부터 진천 지역 기장골(지장골)이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양반으로 태어났으나 한문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꽤나 안락한 삶을 누렸기에 일하는 법도 전혀 배우지 않았다. 아직 외교인이었을 때 그는 노름과 술로 가산을 탕진했으며, 궁핍하게 살던 중 천주교를 처음 접했다. 그는 은총으로 감화되어 이내 교리를 배웠고, 세례성사로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모든 악습을 완전히 버렸다. ... 그는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극심한 곤궁의 삶을 인내하며 잘 견디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지력을 타고 났기에 천주교의 교리를 폭넓게 잘 배우지는 못했지만 진실하게 신앙을 실천했고, 신앙은 그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칼레 신부의 1866년 병인박해 보고서: 오반지> 중에서
청주 병영으로 압송되어 모진 형벌과 문초를 받으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지 나는 천주교인이요라는 말만 되풀이 할 따름이었다. 그가 순교한 뒤 "백일 청천에 무지개가 떠서 그의 시체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았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아들과 신자들 몇 명에 의해 지장골로 옮겨져 그 인근에 안장되었다.
하느님의 종의 후손이 현장조사에 함께 하였다. |